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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 彩虹 : 무지개 ㅣ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진실할수록 추하고 솔직할수록 퇴폐적인 그녀의 사랑의 끝은....
김별아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눈을 돌리게 할진대 지금도 그리 편하지 않은 금기시된 내용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김별아 작가라고 하면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저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스토리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을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작품을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문학세계를 잘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작가의 문체를 맘에 들어하고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열애>라는 작품들이 평이 좋아 작가에 대해 기대하고 있던 참이다.
"계집이 사내가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하면 무조건 음녀이고 탕녀입니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것이랍니까?"....
"......그저 사랑하고 보니 사내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제가 사랑한 사람이 여인이었을 뿐입니다.!"?"....(p14)
만약에 2012년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당연히 씻을 수 없는 죄악도 아니고 음녀도 아닐뿐 아니라 탕녀도 아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면 저 말이 의미하고 있는 말은 분명 죽음밖에 없음을 알 것이다. 조선의 다섯 번째 왕인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인 순빈 봉씨....그녀가 폐서인 당하고 친정집으로 돌아와 오라버니에게 내뱉은 가슴아픈 말들은 죽음을 목전에 둔 가녀린 인간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임을..그렇게 죽음을 부르는 것임을....
이쁨을 독차지하고 살았던 한 떨기 모란을 연상시키는 열여섯 소녀 난...난의 집안은 남녀유별이 엄격하지 않아서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던 탓에 사랑을 한껏 받고 자라온 자신감으로 모든게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꿈꿔왔던 결혼생활의 동경을 가지고 온갖 의식을 치르고 난 후 드디어 세자와의 첫날밤....가채(가짜 머리)만 겨우 내려주고 그냥 잠들어버린 세자...참 너무하셨소!! 첫날 밤도 치르지 못하고 난생처음 여자로서 수치심을 맛보았던 그 날......
세자가 만백성을 사랑하면서도 한 여인을 사랑하지 못하고 만백성의 사랑은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사랑해야 할 사람의 사랑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문종의 두번째 부인인 순빈 봉씨가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났음을 탓해야 했던 그 시절.....이제부터 순빈 봉씨의 고통의 나날들은 시작된다.
순빈 봉씨(난)는 자신의 말을 할줄 아는 여자였다. 조선시대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캐릭터로 조바심,그리움,사랑의 갈망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도리어 세자의 맘을 멀어지게 하는 상황으로 악화된다. 조선시대에 여자가 어떤 발언권을 갖는다는 자체가 큰 죄이고 그것도 궁궐이라는 공간에서라면 모든 게 시기.질투가 될수 밖에 없음을 조금씩 처절하게 느껴가는 순빈 봉씨....외로움의 연속일수 밖에 없는 독수공방의 세월들을 보내게 되는 순빈 봉씨(난)가 택하게 된 건 결국 세상이 말하는 음양의 이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사실 택한게 아니라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음을....큰 죄이고 목숨까지 걸어야 했지만 세자가 등을 떠밀고 궁궐이 등을 떠밀고 있다. 그녀에게는 사랑이 죄였다. 외로움이 죄였다.사랑받고자 하는 게 죄였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을 보면 모두 사무치게 외롭다. 외로움이 모든 문제의 뿌리였다.
궁녀인 박나인...자신의 볼품과 재주로는 승은을 입기 힘들걸 알기에 묵묵히 궁녀로서 자신의 일만 했던 그녀, 자신의 어머니가 "외로워서 저절로 말이 줄줄 새어 나오는 걸 어떡하냐고~" 했던 것처럼 끝내 외로움이 입밖으로 줄줄 새어 나와 궁궐을 한바탕 들어놓은 그녀....그건 외로움이 뿌리였다.
내시 김태감...집안내력을 바꿔보고자 아들의 고환을 도려낸 비정한 아버지로 인해 내시가 되어 재물에 젊은 아내를 탐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자신의 젊은 아내를 때리는 남자....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처절해지는 외로움이 뿌리였다.
순빈 봉씨를 동성애자로 칭하기는 조금은 억지스러움이 있다. 외로움의 절벽에서 어차피 살아도 죽은 느낌일진대 살기 위한 방식을 택했다고 해서 동성애자라고 치부하기는 무리가 있음을 말이다. 처절하리 외로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알리요마는 역시 전적으로 공감하지 못한 괴리감은 어찌 할 수 없었다.
여자들을 한낱 자손을 잇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조선시대에서 순빈 봉씨는 어쩌면 인간다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가 성에 대한 집착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서 눈살을 찌뿌리게 된다. 그리고 어려운 단어들로 인해 오롯이 몰두하기가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처절한 외로움의 끝>이라고 말하고 싶다. 외롭다고 모두 동성애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궁궐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임금의 부인인 중전이 그랬을 거고~임금의 승은을 입지 못한 궁녀들의 삶이 그랬을 거고~어쩌다 승은을 입은 후처들이 임금 사랑을 받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을 그 시대. 모든 사실을 세세한 사실을 떠나 외로움이 문제였다고 위로해본다. 몹쓸 외로움이 문제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