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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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로 즐겨 읽는 소설들 대부분이 외국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미스터리의 대국이라고 하는 일본의 소설을 많이 선호하는 편이었다. 단순하지 않으면서도 치밀하고 허술함이 없는 그런 전개로 이어지는 소설의 구도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국내 소설 중에서는 ’미스터리’한 소설을 읽어본 경험이 별로 없긴 하다. 그런 내게도 이 제목은 충동에 가깝게 이 책을 구입하게 만들었다.

 

"너는 모른다"

마치, 너는 한국 소설을 제대로 모른다고 하는 말같이 들려서 읽어보고픈 충동이 느껴졌다.

분홍빛 표지에 역시 분홍치마를 입고, 지금 유행하는 듯한 색깔의 스타킹을 신은 다리만 나온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그 윗부분이 알고 싶다면 읽으라고 유혹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내게 정이현 이라는 작가는 낯설었다. 그래도 역시 표지의 힘이 컸던 듯 덜컥 구입하고 말았다.

손에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꽤 두꺼운 볼륨이었지만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화창한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전, 정체불명의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이 한 사건과 어느 한 가족의 이야기는 처음 부분에서는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고 흘러간다. 마치 이 책에 소개된 다섯 사람의 가족의 모습처럼.

 

한 집에 사는 다섯사람의 이야기는 보통의 가족이 아닌, 혈연으로 얽힌 가족이지만,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가족이라면, 보통 아빠나 아버지, 엄마, 누나, 오빠 등등으로 불리는게 보통인데, 이 가족은 이름으로 소개된다.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빌라에 가장인 김상호와 화교출신인 진옥영 부부. 김상호와 진옥영 사이에는 딸 유지가 있고, 김상호는 전처의 아이들을 집으로 모두 데리고 오려고 하지만, 전처의 딸 은성은 학교앞 원룸이 기거하며 가끔 집에 들르는 정도이고, 아들 혜성은 조용하게 한집에서 살고 있다. 김상호와 진옥영 사이에서 난 딸 유지는 옥영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초등학교 4학년으로 바이올린 영재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며 대회를 준비중이다.

 

보통의 가족에게는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된 자연스러운 끈끈한 존재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가족은 섬뜩할 정도로 서로의 관계에 대해 연결고리를 필요로 한다.

 

정체불명의 무역업을 하는 김상호는 자신의 일은 철저하게 가족들에게 비밀로 한다. 화교출신의 옥영은 아직도 끊지 못하는 대만의 옛 애인이 있다. 전처의 딸 은성은 부모의 이혼에 대한 상처로 반항기와 상처로 얼룩져있다. 은성의 동생 혜성은 고분고분하면서도 어딘가모르게 반항적이고 충동적이라 방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유지는 그런 가정 환경 속에서 태어나 다소 암울해보이고 말수가 적고 어둡다.

그러던 일요일 오후, 김상호는 골프장으로, 진옥영은 친정으로 간다며 준비해서 떠나고, 혜성은 여자친구와의 데이트가 약속이 되어 있다. 그렇게 저마다 집을 비운 일요일 오후, 제각각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 시간 집에 있어야 할 유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족들에게 일요일 오후의 사건으로 인해 각각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가지게 되는 소설의 느낌에 중독되어 책을 놓지 못했다. 처음에는 일련의 관계도 없어보였던 남성의 시체가 떠오른 사건이 점점 가족들의 이야기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전개가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너무 자극적인 주제나 소재로 한, 그리고 범인의 트릭을 밟아가는 그런 느낌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테마로, 한 울타리 안에 묶인 다섯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너는 모르는’ 가족의 모습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는 시선이 도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느낌이 들었다.

 결코 뒷 부분에서는 명확한 사건 해결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그 추측 뒤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족의 전과 후의 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정이현 작가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은 후의 충격으로 다른 책도 궁금해졌다.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는, 이 가족들처럼 진정 ’너는 몰랐던’ 한국 소설의 미스터리의 섬세함과 세련됨, 그리고 치밀함을 한껏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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