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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데미안>을 읽는 중 성경의 이 구절이 떠오른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 로마서 7:21
내 안의 두 세계를 보여주는
<데미안> 특별판의 표지.
물론, 나는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했다. 나는 내 부모님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눈과 귀를 향하는 곳 어디에나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다른 것들 속에서도 살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내게는 자주 낯설고 무시무시했고, 그곳에서는 규칙적으로 양심의 가책과 불안을 얻을지라도, 심지어 한동안 내가 가장 살고 싶어 한 곳은 금지된 세계 안이었다. 그리고 밝음 속으로의 귀환은 -그것이 제아무리 필연적이고 제아무리 선하더라도- 덜 아름다운 것, 보다 지루한 것, 보다 황량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의 내 목표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되는 것, 그렇게 밝고 맑게, 그렇게 뛰어나고 단정하게 되는 것임을 나도 때로는 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르는 길은 멀었다. (...) 내 누이들도 똑같이 밝은 세계에 속했다. 그들은 내 눈에 본질적으로 아버지 어머니와 더 가까운 듯 보였다. 그들은 나보다 선했고, 도덕적이었고, 결함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부족한 점과 나쁜 습관이 있었지만 그런 점들은 내 보기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15~17쪽)
그러니까 나의 내면의 모습이 그랬던 것이다! 빙빙 돌며 세상을 경멸하던 나! 정신에 있어서 자부심이 충만했고 데미안과 생각을 함께했던 나! 나의 모습이 그랬다, 취하고 더럽혀지고 구역질 나고 비열한 인간 폐물이자 잡놈, 야비한 충동의 기습을 받은 살벌한 야수였다! 모든 것이 정결함, 광채 그리고 우아한 사랑스러움인 저 정원에서 온 내가, 바흐의 음악과 아름다운 시를 사랑했던 내가! 아직도 속이 메스껍고 격분한 내 귀에 자제력 없이 멍청하게 헉헉 터뜨려 대는 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게 나였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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