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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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이 작품은 2막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제목의 ‘고도’는 작품에 대사가 하나도 없다. 아니,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고도 godot는 영어로 god, 프랑스어로 dieu를 합친 단어라고 하는데 이 두 단어는 모두 신을 뜻한다. 그러니까 고도는 신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서로를 각각 고고, 디디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고’와 ‘디’ 역시 god, dieu의 앞글자를 따온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런데 어떤 존재인지는 작품을 다 읽어봐도 알 수 없다. 이 작품에는 늙은 방랑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등장한다. 이들은 거의 50년째 매일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구원의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고도는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에스트라공은 기다리다 지쳐 목을 매 죽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블라디미르와 함께 고도를 기다린다.

작가인 베케트가 이 작품을 쓸 당시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라고 한다. 베케트는 피난민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매번 다른 화제를 꺼내야 했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항상 다른 화제를 꺼내며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실제로 베케트가 자신의 경험에서 착안하여 쓴 책이라고 한다. 아마 이 책을 쓸 당시의 배경이 전쟁 상황을 겪은 후였다면, 당시 베케트가 기다리던 고도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올지 알 수 없지만 고도를 기다리기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오늘을, 내일을 살 수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도를 하나쯤은 갖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희망이지만, 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힘을 주는 그런 ‘고도’.
고도는 누군가에게는 언젠가는 실현하고자 하는 희망일수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희망 자체로도 삶의 원동력이 되는 자극제일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연금술사>, 파울로 코옐로

마지막까지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밝히지 않은 것은, 독자들 각자가 저마다의 ‘고도’를 투영하여 읽도록 한 베케트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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