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9~5.12
여성이 주도권을 잡은 사회라면 어떨까? 저자는 ‘이갈리아’라는 가상국가를 통해, 여성차별에 대한 모순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이갈리아, 이 나라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용어를 알아야 한다. 이 나라는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여성을 상징하는 ‘움(wom)’이라는 용어를 쓴다. 남성은 ‘맨움(manwom)’이라 불린다. 움은 맨움보다 강한 지위를 가지며, 집에서 가사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것은 맨움이 할 일이다. 맨움은 능력있는 움에게 ‘부성보호’를 받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움의 간택을 받기 위해 맨움은 외모를 가꾸고 얌전한 체하며 살아야 한다. 신체적 능력이 움보다 강한 맨움은, 타고난 힘을 억누르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을 배운다. 이갈리아에서는, 힘이 세고 키가 큰 맨움은 매력적이지 않다.

-52쪽.
“크리스토퍼!” 그녀가 큰 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이에요, 여보? 난 턱수염에 샴푸를 잔뜩 묻혔는데.”
“전화, 전화 갖다줘.”
“안 돼요. 거품이 온 집 안에 다 떨어질 거예요.”
“씻고 말려, 빌어먹을!”
(...)
“설명서에 오 분 동안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써 있어요. 지금 헹구면 턱수염은 모두 꼬불꼬불하게 될 텐데 난 내일 모닝 커피 모임에 가야 한다구요.”
하느님 어머니! 어떻게 그런 일이 중요할 수 있나. 맨움들이란!
-

한 쪽 성에 우월성을 부여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이 소설의 초반부를 읽으면서는 어느 정도 통쾌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 바로 이런 부분들이 문제라고. 남자들도 겪어본다면 어떤 기분인지 알텐데, 남자들도 이 책을 읽어봐야 해.’ 하지만, 중간부를 지나면서부터는 맨움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맨움해방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맨움들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여성들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알았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맨움들의 입을 통해, 성차이에서 비롯한 맨움에 대한 차별이 정당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한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차이에 비롯한 여성에 대한 차별 역시 매우 부당하는 점을 독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나 여성해방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생각을 제고해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역지사지를 이보다 더 잘한 책이 있을까 싶다.

나는 각 대학의 대나무숲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여학우들의 제보를 보면서 분노를 느낀다. 반대로 그런 일들이 남학우들에게 일어난다면 그들이 과연 남성해방을 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의 314, 315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맨움’을 ‘여성’으로, ‘그녀’를 ‘그’로, ‘우리’를 ‘여성’으로 생각하고 읽어도 모를 수 있을까?

-314~315쪽.
맨움해방연망에서 이런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부성보호 때문에 갖게 된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또한 동시에 작업장에서의 평등을 요구할 수는 없다. 아이를 생기게 하는 것과 그 책임에서 벗어나 재미있을 것 같은 모든 일을 하는 것, ‘꿩’먹고 ‘알’먹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현실에서 움은 두 가지를 다 하는 반면, 맨움은 꿩도 먹지 못하고 알도 먹지 못합니다. 맨움은 이제야 겨우 꿩을 먹거나 그렇지 않으면 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
피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우리들’ 뿐입니다! (...) 왜 맨움은 P-씌우개(콘돔과 같은)를 쓰면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죠, 움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오르가슴을 위하여 아무것도 씌우지 않은 페니스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그 작은 즐거움을 위해 그는 엄청난 고통-부작용이 항상 따라다니는 피임약 또는 강제적 불임수술-을 겪어야만 합니다. 불임수술이 일시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수술 중 이십 퍼센트는 잘못되어 영원히 불임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왜 움이 피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습니까?
-

이 책은 출판된지 어느덧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차별은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책은 여성운동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에 더해,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느 한 쪽 성에 대한 근거없는 차별의 비합리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공부를 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결국 한 쪽 성의 우월성을 논하는 것은 문명의 결과일 뿐이다. 어느 한 쪽 성도 없어서도, 차별받아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지금 여성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당연하며, 이 운동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 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12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ㅎㅎ

아트 2018-05-12 21: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