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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드라마 ㅣ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1
최복현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권력이 존재하는 사회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가 함께하게 마련이다. 물론 신화의 체계나 서사가 복잡하고 간단한지에 대한 차이가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신화는 존재했다. 창세 신화에서 건국 신화, 영웅 신화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요컨대 신화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사는 곳에는 보편적으로 존재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구상에는 수많은 신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는 이 많은 신화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야기가 풍성하고, 아마 가장 많이 연구가 된 분야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스 신화는 단순히 신화에서 그치지 않고, 후대에 문학과 미술, 음악 등 각종 예술 장르에까지 스며들 만큼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그 생명력도 길어서 2000년이 훨씬 지난 21세기까지 와서도 왕성하게 되새겨지고 있다.
서양문화의 모체로서 그리스 신화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인간 본성을 탁월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리스 신화가 만들어질 시기의 인간이나 21세기를 사는 인간이나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동일하다는 의미다. 여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여신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남성 신들의 모습이나 아름다움을 두고 다투는 여신들의 모습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게다가 부모 신의 성격을 그대로 닮는 자식 신의 모습에서 신화 화자들이 마치 유전학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를 보면 항상 어려움 점이 있다. 우선 신들이 너무 많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신들이 서로 간에 얽혀있어 일목요연하게 신들의 성격이나 계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신간 <신화 드라마>(풀로엮은집.2009년)는 어려운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불문학자인 저자 최복현은 서문에서 이 책의 의미를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신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개략적으로 신화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고, 신들의 가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요컨대 그 복잡한 그리스 신들의 상호 연관관계를 파악해 신화 전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사랑하고, 고통을 느끼고, 화를 내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등 인간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왜 그리스 신들은 우리 인간들과 닮았을까? 신화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들이 지어낸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 안에서 신화가 싹트고 키워진 것이다. 신화는 바로 인간의 모습을 다룬 이야기이면서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발로이다.”(18쪽)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신화를 만들었다는 저자의 말에는 100퍼센트 동의한다. 그러나 신화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지어낸 상상의 산물’이라는 말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한다. 물론 신화에는 인간의 많은 상상이 들어있다는 점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 신화가 바로 이를 증명해준다. 트로이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역사였음을 고고학자인 슐리이만이 밝혀낸바 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과거에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호소력 있게 인간에게 다가오고 있지 않을까. 여하튼 이제 본격적으로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그리스 신화를 읽기 전에 알아야 할 몇 가지 키워드’라는 부분이 있다. 이 가운데 ‘신의 이름 이해하기’ 부분은 다른 책에서는 본 적이 없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다. 남신의 경우 이름의 어미가 ‘-스’로 끝난다. 다만 어미가 ‘-이스’ 혹은 ‘-미스’로 끝나면 여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스’, ‘-오스’, ‘-아스-’, ‘-에스’로 이름이 끝나면 남신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니 상당히 쉽게 다가온다. 반면 여신의 경우는 어떤가. ‘-아’, ‘-에’로 이름이 끝나면 여신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들의 이름에 담긴 의미도 한 번 살펴보자. 하늘이나 태양, 달과 같은 자연존재를 나타내는 신들의 이름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나 운명, 공포, 지혜, 욕망과 같이 존재의 본능을 대상으로 한 신들의 이름도 잘 분류해 놓고 있다.
그리고 1세대 ‘카오스’로부터 시작해 본격적으로 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2세대는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결합으로 탄생한 거인 신들의 이야기다. 3세대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제우스를 정점으로 한 올림포스 12신의 시대다. 4세대 신들의 이야기에서 부터 드디어 인간이 탄생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빚어 만들고, 인간에게 각종 불행과 질병을 가져다주는 판도라도 등장한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은 아테네 왕가, 탄탈로스 왕가, 헤라클레스 가계, 테베 왕가, 트로이 왕가 등 지중해 일대의 인간 왕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상 그리스 신화를 책 한 권에 모두 담는 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야기도 많지만, 신화 이야기 속에 담겨진 각각의 의미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자면 끝이 안보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저자도 이 책의 맺음말에서 “이 여행은 ....새로운 시작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수많은 신화의 이야기들은 숙제로 남아 있다.”(250쪽) 고 그리스 신화의 방대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부록이다. 전지 한 장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신들의 계보도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계보도 내용을 손으로 쫓아가며 읽으면 그리스 신화를 이해하는 일이 훨씬 더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