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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서 시작된 촛불시위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다. 정부에서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번개에 맞을 경우 보다 낮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마치 소고기를 먹으면 모두 병이 걸리는 양 반응했다. 이 원인을 <문명의 관객>(바다출판사.2009년)의 저자인 이충웅씨는 시사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영상과 함께 진행자의 멘트나 내레이션이 의미를 고정하고 위력을 증폭시킨다.”(158쪽) 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특히나 인간 광우병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의 인터뷰와 한국인이 인간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프로그램의 보도 내용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가게 했다. 요컨대 미디어로 인해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미디어는 얼마든지 사람들을 비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미디어에 일정부분 책임을 지우고 있다.
그러나 홍성욱교수는 그의 책 <과학에세이>에서 이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다. 현대와 같이 ‘불확실하고, 가치가 논쟁의 대상이 되며, 그 여파가 크고, 반면에 판단은 급박하게 해야 하는 상황에 적용’되는 경우에는 탈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탈정상과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과학의 주체가 ‘과학자 공동체’에서 주민과 이해 집단을 포함하는 ‘확장된 공동체’로 바뀌는 데 있다. 즉 과학의 민주화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요컨대 홍성욱 교수는 정부가 국민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보고 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어찌 보면 이충웅씨나 홍성욱 교수의 견해 모두 타당해 보인다. 광우병에 대한 문제는 복합적이기에 그 해법도 다양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과학은 우리의 삶 가운데 깊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은 많은 역할을 해왔고, 또 현재 우리의 문명을 일구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은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기는 하나 상업화 혹은 이데올로기에 따라 극단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고, 이에 따라 우리 인간을 해칠 수 있다. 그렇기에 과학의 미래에 대한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과학윤리가 중요하다.
한때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황우석에 대한 경우를 한 번 생각해보자. 정부와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황우석 신드롬은 대부분이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황우석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 영웅으로 숭배한 우리사회는 그의 신화가 진실이 아님이 규명되면서 사람들의 허탈은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황우석의 말이 진실이기를 바랬다. 이 사건을 보는 저자의 시선은 아주 냉정하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인간의 이성에 기여하기보다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이용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109쪽)이라고 이 사건을 평가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국민들의 비이성적 ’집단적 열광‘에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서해안 기름 유출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놀랍다. 전국민적으로 일어난 자원봉사활동이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방재장비도 없이 기름을 직접 제거하는 행위가 과학적으로 극히 위험하지만 미디어에서는 이를 간단히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은 어찌 현대 과학기술을 평가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이에 저자는 과학기술의 질주에 대해서 반성해야하고, 또 미디어에서 발표하는 내용에 대해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은 깊은 ‘성찰’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깊은 성찰을 위해서는 국민 저마다 과학에 대해 관심과 아울러 지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