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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서른두 살이고,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이혼녀이다…키가 크고 늘씬한 금발 미인이다. 초록빛 눈의 금발 미인이 영화나 노래가 아니라 소설로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프랑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위 글은 이 책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문학세계사, 2002년>의 책 날개에 있는 저자 안나 가발다(Anna Gavalda)에 대한 소개이다.
마치 저자 자신의 일처럼 딸 둘을 가진 젊은 여자의 남편이 자신과 가족을 버리고 딴 여자에게 간다. 그녀가 몹시 괴로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버림을 받은 것이니 말이다. 그녀와 딸 둘을 버린 남편에게는 아버지가 있었다. 물론 그는 여주인공인 클로에의 시아버지이다. 시아버지 피에르 디펠은 며느리를 달래기 위해 시골에 있는 별장으로 데려간다.
평상시에 무뚝뚝하고 말이 전혀 없는 피에르 디펠은 꼭 한국의 아버지를 보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뿐만 아니라 아들과 딸들에게도 한없이 엄하고 칭찬한 번 하는 일없이 야단만 치는 근엄하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바로 피에르 디펠이었다. 전혀 감정을 드러내놓지도 않으며 회사의 업무와 집 이외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꽉 막힌 그가 며느리를 위로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상황에서 어떤 말인들 당사자에게 위안이 될 것인가! 그녀의 입장에서는 아마 배신감에서 시작해서 남편을 죽여버리고 싶기도 할 것이고,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클로에는 눈물만 흘리고 있다.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시아버지는 어떻게 며느리를 위로할까! 그는 자신의 알려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며느리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 아내 이외의 여자를 사랑할만한 부드러움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을 듣고는 놀랍고, 또 궁금했다.
그는 그녀와 처음 만난 동안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녀와 함께 보낸 며칠 동안, 나는 나 자신이었어. 더도 덜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지.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어…..그때까지 아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152쪽)
그는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것은 마흔두 살의 남자에게 찾아온 사랑의 힘이었다. 자! 사랑은 이런 것이다. 자신이 이전에 알던 세상과 사랑에 빠진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 보이고, 그에게는 모든 것에 대한 자신감 마저 생긴 것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어떤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 한 것과 상통한다. “젊음은 마흔 일곱부터…” 사실 사람의 40대는 예전과 비교해서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다. 누가 마흔 살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는가! 공자는 틀렸다. 마흔 살은 유혹(誘惑) 그 자체일 만큼 아직 젊다..
“한쪽에는 든든한 마누라가 있고, 다른 쪽에는 짜릿한 전율이 있는 것, 내 깜냥에는 그런 게 딱 맞았을 거야. 매일같이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따금 밖에서 일탈을 경험하는 정도가 말이야…..느긋한 포만감과 팽팽한 긴장이 어우러진 삶, 그게 편리하고 안락했지…” (182쪽)
그는 위와 같이 불륜에 빠진 남성의 입장을 이야기 한다. 이 부문에서 사십 대인 나에게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저자인 안나 가발다는 사십 대 남자들의 속을 훤히 들려다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일탈된 사랑 이야기로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포도주를 함께 하며 밤을 지샌다. 시아버지의 평소와는 전혀 달라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은 며느리는 과연 위로를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의 일탈에 대해 충격을 받은 며느리를 위로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까지 꺼내는 그의 모습이 가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을 다 읽고서야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의 후반까지도 나는 여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끝까지 그런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은 여 주인공인 클로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시아버지인 피에르 디펠의 이야기였기에 제목이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였던 것이다.
이 책은 특히 번역자의 적절한 번역이 눈길을 끈다. 이유는 우리의 고유말을 적절히 사용하여 번역함으로 번역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읽혔기 때문이다.
겨울로 가는 문턱에서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안나 가발다에게 내 속 마음을 온통 들킨 기분이들었다. 이제 그녀의 또 다른 책을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