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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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나기 위한 목숨을 건 여행 끝에 엔리케는 드디어 엄마를 만난다. 11년 만에 만난 모자간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많은 틈이 존재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에 대해 엄마가 사과하길 원한다. 애들에게는 굶더라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을 버린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있지만 힘들게 일해서 가족에게 송금하는 등 자신의 희생에 대해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엄마와 아이들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엔리케와 엄마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서로를 미워하게 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는 엔리케의 모습이 독자들에게는 안도의 한 숨을 쉬게 해준다.

보통 엄마들은 자신의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어야 의식주 해결과 자녀에 대한 교육을 시킬 수 있고, 그래야만 자녀들에게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기에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스킨십과 미소 그리고 사랑이다. 해리 하를로의 실험결과에서 보듯이 엄마 잃은 새끼 원숭이는 우유를 주는 철로 만든 인조 엄마보다는 먹을 것을 주지 않더라도 부드럽고 따듯한 헝겊으로 감싼 인조 엄마를 좋아했다. 즉 아기에게는 먹는 것 보다 엄마의 따스한 스킨십이 더욱 필요로 한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엔리케는 122일에 걸쳐 온두라스의 데구시갈파에서  멕시코-미국 국경까지 8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다. 그 거리는 2,574 킬로미터에 달하며 그는 이 과정에서 무수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 몸은 상처투성이로 변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주민들의 모습이 애처로워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난하고 또 불쌍한 그들의 돈과 몸을 빼앗는 짐승 같은 강도, 갱들, 경찰관을 보고는 분노했으며, 불법 이주민들을 돕는 베라크루스 사람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코끝이 찡해왔다. 2000년 세계은행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멕시코의 1억 명의 인구 중 42.5퍼센트가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며, 시골 마을에서는 다섯 살 난 아이의 30 퍼센트가 잘 먹지를 못해 성장이 느리다고 한다. 기찻길을 따라 허름한 집에서 사는 이 사람들이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들이 베라크루스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중 20 퍼센트는 미국으로 떠난 자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불법 이주자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다. 또 열차에서 떨어져 다리나 팔이 잘려나간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다.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에 바쁘다보니,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인 것 같다. 동병상련(同病相憐)!!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저자인 소냐 나자리오는 이 책을 쓰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기간 중 6개월간은 이주민들과 같이 위험한 여정에 올랐으며 각지에서 취재를 했다. 저자는 엔리케가 지나온 여정을 그대로 재연했다. 즉 온두라스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멕시코에서는 화물열차와 히치하이크로 여행을 했다. 아니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었을 것이다. 이 목숨을 건 긴 여정은 그녀에게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주자를 없애기 위한 유일한 효과적인 전략은 ‘이민자들의 고국 경제를 후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그들 나라에서 의식주와 자녀 교육에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 와서 3D 업종에 근무하는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을 생각해본다. 그들도 단지 돈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말도 잘 안 통할 뿐만 아니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가면서 고국으로 보낼 돈을 벌기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도 따스한 시선을 보내주는 성숙함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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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의 함정 - 위기를 혁신으로 바꾼 경쾌한 비즈니스 이야기!
데이비드 모즈비.마이클 와이스먼 지음, 박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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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고이거나 차별화(Best or Different)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흔히 한다. 요즘은 더 나아가 최고이고 차별화(Best and Different)까지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이 두 가지를 합친 경우가 탁월함(Excellence)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탁월함에 어떤 역설이나 함정이 있다는 것인지, 이 책 제목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 수는 없었다.

 

또한 기술이 중시되는 첨단 제품의 경우, 경쟁사보다 기술적으로 월등한 제품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정말 시장에서도 판매에 월등할까? 아니다라는 대답이 정답이다. 그렇다면 기술 이외에 어떤 조건이 있어서 고객이 만족하고 감동을 할까!

 

그렇다면 탁월함에 어떤 역설이나 함정이 존재하는 지를 알기 위해 이 책 안으로 들어가보자.

 

탁월함의 함정(역설)이란 성과가 향상될수록 점점 고객의 눈에 띄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객들은 회사가 해결해온 문제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회사가 제공하는 진정한 가치를 간과하는 것을 말한다. 라고 개념 정의하고 있다.

 

위의 말을 좀 쉽게 표현해보자면, 탁월함이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즉 어느 한 시점에서 서비스나 제품이 탁월하다고 해서 고객이 계속적으로 탁월하다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객은 탁월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탁월함에 대한 기대치는 계속 높아간다. 그러니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고객의 요구 수준을 계속적으로 파악하여야 하며 또 제품(서비스)의 탁월함을 높여나가야 한다. 그러나 어디 그것에 쉬운 일인가!

 

또 판매자의 입장에서 볼 때 고객과의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판매자는 단순하게 제품(서비스)만 고객에게 제공해서는 안되고, 고객과의 관계를 폭넓게 활용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고객이 판매자의 제품(서비스)가 탁월하다고 평가해야만 진실로 탁월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즉 제품이나 서비스의 탁월함은 판매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결론이지만 수 많은 회사들이 경쟁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 번 되새겨 봐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고객으로부터 탁월하다고 평가 받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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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머신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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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남자입니다. 당신에게는 친구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는 애인이 있는데 당신의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습니다. 당신은 친구의 슬픔은 뒤로 하고 친구의 애인과 애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여자입니다. 당신에게는 애인이 있고 또 그 애인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애인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애인의 친구는 애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이렇게 이 소설의 화자는 두 명입니다. 가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죽었고, 그리고 가지를 사이에 두고 살아남은 두 사람은 애인이 되지만, 죽은 가지의 생각이 항상 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가지에 대한 과거의 그리움을 공유하면서도 그들은 어쩌면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죽은 가지에 대한 미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는 이렇게 변명하고 있지요. 가지, 걱정하지마 나오코는 내가 지켜줄게

 

당신은 이경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받으들일 수 있나요? 저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들은 이렇게 선택할 수 있죠. 다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선택 때문에 가슴 아파하겠지만, 오히려 둘은 그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다른 짝을 찾는 것 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모두 과거에 얽혀서 살고 있습니다. 그 과거가 즐거웠던지, 흥겨웠던지, 괴로웠던지 상관없이 우리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기억이 괴로웠다면 현재가 더욱 힘들 것입니다. 이 소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뇌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서, 오래된 기억들은 버리게 됩니다. 망각이라고 불리는 뇌의 기능 덕분에 우리는 과거를 잊으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많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지만 조금씩 과거를 잊어가는 것은 진화 과정에서 우리에게 허용된 축복이란 생각이 듭니다.

 

살아남은 두 사람이 아무쪼록 과거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덮으면서 윤도현의 노래 사랑했나봐에 나오는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기억은 계절 따라 흩어져 가겠지”, 맞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잊어가며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사람들의 삶에서 본질적인 부분들을 이야기로 꾸며 들려주므로, 소설은 삶의 본질과 살아가는 길에 대해서 성찰한 기회를 독자들에게 준다.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길로는 소설만한 것이 드물다. 이렇게 소설가 복거일은 소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또 거부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런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은 무엇이든 가능하고, 또 그것에 대해 그럴 수도 있을꺼야 하고 생각하게 해주어, 폭넓은 사고를 우리에게 허용해주는 것 아닐까요? 20대 초반의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오늘도 세상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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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사석원의 황홀한 쿠바
사석원 지음 / 청림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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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에 쿠바에 관한 책 두 권(이우일, 카리브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느린 희망)을 읽으며, 내가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는 쿠바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아바나, 살사,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카스트로, 체 게바라, 관타나모기지 등)을 합치자 멋진 그림이 나타났다.

마치 조각 퍼즐을 맞추듯, 의미 없는 조각들이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니 멀고 먼 나라 쿠바의 모습은 이렇게 나에게 구체화 되었다.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쿠바 사람들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기억을 되살리며 나는 쿠바에 대한 책을 또 집어 들었다. 바로 이 책 <황홀한 쿠바>(청림출판. 2004년)이다.

이 책의 저자인 사석원은 화가이다. 흔치 않은 성을 가지고 있는 그는 정말 흔치 않게 쿠바로 여행을 가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이 책에는 화가인 그가 쿠바에서 그린 그림들과 또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그의 진솔한 글이 함께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는 2004년2월9일부터 3주간 쿠바여행을 한다. 그를 쿠바로 이끈 것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본 1년 후 그는 진짜 쿠바로 떠난다. 그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들은 쿠바의 음악을 통해서 카리브 해의 유장한 리듬 속에 녹아들어 있는 쿠바인들의 삶에 깃들어 있는 애환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쿠바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들른 곳은 멕시코였다. 그곳에서 그는 ‘프리다 칼로’를 만난다. 정말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칼로의 흔적은 화가인 저자에게 많은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프리다 칼로가 죽기 8일전에 그린 그림에 쓰여 있는 글귀는 바로 ‘인생이여, 만세’였다. 저자는 이 그림 속의 글을 읽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글귀가 관람객의 심금을 울린다”.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만큼이나 불행했던 그녀의 삶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녀의 ‘인생이여, 만세’는 어쩌면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오리다’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드디어 저자는 쿠바의 아바나에 도착을 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그가 제일 처음 본 풍경은 쿠바 공업성 건물에 부조되어 있는 ‘체 게바라’의 얼굴이었다. 그렇다! 쿠바에서 ‘혁명’이라는 글자를 빼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쿠바는 혁명 그 자체이다. 쿠바가 저자에게 처음 보여준 것은 바로 ‘혁명’이었다. 하지만 건널목에서 벌어진 남자의 성적인 손짓은 쿠바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섹스였다. 저자는 혁명과 섹스 사이에서의 혼란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쿠바가 가지고 있는 두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쿠바에서 머무는 동안 가장 그를 잡아 끈 장소는 바로 ‘말레콘(방파제)’였다. 방파제에는 사랑, 우정, 음악, 유혹, 인종 등 상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네 삶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볼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그곳에서 저자가 만난 쿠바인들에게서는 가난에 찌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낭만과 편안함이 묻어나오고 있었으며, 그것은 또한 저자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느꼈던 것을 다시 확인하는 절차였을 것이다.

3주간의 쿠바 여행에서 느낀 것은 카리브의 진한 바다색, 아름다운 쿠바의 연인들, 애절한 음악이었다. 그는 후기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함부로 그곳에 가지 마시라, 그곳엔 특별한 것이 있나니, 그리고 특별한 것의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테니..” 그가 느낀 쿠바는 바로 ‘독’이었다. 다만 책으로 쿠바를 보고 있는 나이지만, 내게도 저자가 보고 느낀 그 쿠바의 매력이 그대로 전해진다. 확실히 쿠바에는 중독성이 있다. 나도 쿠바의 특별함에 대가를 치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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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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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구 부족들은 ‘몸’을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옷’을 입지 않는다.”

위의 말은 이 책의 제목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문장일 것이다. 이 책에는 아마존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벗은’ 모습이 사진으로 또 글을 통해서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내가 표현한 ‘벗은’이라는 표현이 잘 못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벗었다는’ 의미는 옷을 입고 있다가 벗은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아마존 원주민들은 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옷을 입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어쩌면 옷을 입고 있는 상태가 이미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옷을 통해 우리 인간들은 무언가를 감추려고 하고 있고 또 옷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고 하는 가식적인 마음이 우리 속에 내포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들이 문명의 모습이고, 그 문명이 우리 인간의 모습을 왜곡시키고 관계를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된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문명세계라고 말할 수 있고, 아마존 정글애서 사는 원주민들은 원시적인 삶을 살고 있다거나, 아니면 미개하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문명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과학과 기술덕분에 우리들은 예전보다 삶은 편리해지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행복한 것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보듯이 우리가 보기에  아마존 사람들은 불편한 환경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전혀 불편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명으로 인하여 우리는 불행해지고 있는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살기에 적합한 몸으로 진화된 호모 사피엔스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불행의 시작이 아닌가! 그러니까 문명은 결코 진보와 같은 가치를 담고 있는 단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본질적인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문명으로 인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걱정 속에서 지내고 있는가?  지구의 온난화가 그렇고, 오존층의 파괴 등 지구의 균형은 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량한 편리함을 얻는 대신에 우리는 미래를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니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욱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는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도 포함이 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 원주민들처럼 살아간다면 결코 그런 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인간의 불행이란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과 또 가식적인 우리의 생각이 아닌가 한다.

인간에게 해로운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 같은 해충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우리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필요 없는 것들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해충이라는 존재는 자연계에서 보면 해충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 속에서 중요한 먹이 사슬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자연을 인간 중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수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이 지구의 주인은 우리 인간이 아닌 것이다. 이 지구의 주인은 지구 생태계에 속하는 모든 생물인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읽는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쳐준다. 

저자인 정승희는 카메라맨이다. 그러니까 그는 항상 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만큼 그는 좋은 사진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그의 글 솜씨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 곳곳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소리로 웃게도 하고, 미소를 짓게도 하고 있으며, 또한 걱정스러운 얼굴을 만들어 내기도 할 만큼 감동적인 글을 쓰고 있음을 독자들은 충분히 알게 한다.

아마존은 우리들에게 보통은 지구의 허파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아마존의 원시림에서는 산소를 생산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마존의 자연은 매년 전라남북도를 합친 면적(약 2만 km²)의 숲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는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정화 기능을 급격히 떨어뜨려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킨다. 게다가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없애버리고 있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그곳에서 없어진다면 아마 우리 모두의 미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든다.

원주민들의 명칭이 인디오라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든다. 인디오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인디아 사람(인도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즉 유럽인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콜럼부스는 그가 죽을 때까지 그 땅이 인디아(인도) 땅인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만큼 인디오라는 단어에는 식민지 침략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책을 읽으면 우리의 문명 속에 감추어져있는 그림자를 느낄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 멀어져 있음으로 우리의 불행이 시작된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행복한 것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옷을 입지 않는 상태인 자연 그대로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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