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 과학에서 배우는 삶의 교훈
제임스 듀이 왓슨 지음, 김명남 옮김 / 이레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기 마련이다. 인간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잘 알아왔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멘델이 완두콩으로 19세기 중반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음에도 유전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알 수가 없었다. 1953년 불과 900단어에 불과한 짧은 논문은 유전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25세에 불과한 제임스 왓슨과 37세의 프랜시스 크릭이 짧지만 혁명적인 내용의 논문을 쓴 장본인이다.

신간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이레.2009년)는 제임스 왓슨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과학자로서의 삶과 성공 그리고 후학들에게 줄 교훈을 자서전 형식을 빌어서 쓴 책이다. 이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하버드를 떠난 1976년까지 50년간의 인생이 들어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30년을 뛰어넘어 현재로 와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 소장 자리에 머무를 때 끝을 맺는다. 이 책은 미국에서는 2007년 출간되었다. 책이 출간된 이후 왓슨은 인종차별 발언으로 말미암아 콜드스프링하버 연구 소장에서 물러났다.

1928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왓슨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같이 새를 관찰하고는 했다. 이런 부분이 왓슨을 생물학자가 되는데 기반이 되었으리라. 또 아버지와 함께 공립도서관에 갔을 때 아버지가 권해준 책인 <미생물 사냥꾼>이나 <애로스미스>를 통해 20대 초반의 과학자가 영웅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큰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사촌인 오손 웰스로 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왓슨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시카고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는 천재는 아니었다. 올 A 학점을 받는 학생도 아니었고, 아이큐도 120정도에 불과했다. 시카고 대학에 응시할 때 지원서는 왓슨의 어머니가 단어 하나하나를 고쳐서 작성했다. 그러니 어머니의 적극적인 성격이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만드는 데 바탕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장학생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왓슨은 영국으로 건너가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DNA 구조를 발견한다.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을 발표한 9년 후, 1962년 왓슨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 노벨상을 받을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에 불과했으니, 남다른 면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운동은 지적 우울을 몰아내는 특효약이다’,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낄 만큼 대단한 목표를 설정해라’,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과학은 극도로 사교적인 행위이다’, ‘시대에 앞선 과학의 목표를 선택해라’ 등 왓슨은 후학들이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점들을 아주 재미있는 제목과 사례를 가지고 설명해 준다.

학문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가 못하는 분야도 있었다. 바로 ‘연애’다. 이 책에는 왓슨이 여자를 사귀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항상 실패한다. 독자들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오리라. 그가 이 부분까지 쉽게 성공했으면 독자들은 ‘그래! 잘났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왓슨의 처절한 실패에 독자들은 오히려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왓슨은 40살이 되어서야 결혼을 한다. 연애가 공부보다 훨씬 어려웠던 모양이다.

노벨상을 수상하고, 왓슨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한다. 한 기자는 DNA 구조 발견으로 유전자 조작 인간이 탄생하지 않겠느냐고 걱정 섞인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왓슨의 대답이 걸작이다. “똑똑한 아이를 얻고 싶으면 똑똑한 아내를 얻어야 하는 겁니다.”(255쪽) 40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한 왓슨은 상대 여성과는 20년이나 나이 차이가 난다. 좋은 가문 출신에다 책에 수록된 사진을 보니 아름다운 여성이다.    


이 책에서 보면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인 왓슨의 성공 뒤에는 부모의 열정에서 시작해서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조차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왓슨의 글 솜씨도 상당하기에 독자들은 딱딱한 과학 이야기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위대한 과학자의 성공에는 특별한 부분도 있었지만, 평범함 가운데에서 일상에서의 노력도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林巨正)은 실존인물이다. 조선조 연산군에서 명종 대까지 화적패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다. 벽초 홍명희(碧初 洪命憙, 1888~1968)는 일제시대 10권 분량의 대하소설로 『임꺽정』을 저술했다. 홍명희는 해방이후 월북해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냈다. 그래서 『임꺽정』은 남한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어 읽을 수가 없었다. 1985년에 가서야 『임꺽정』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2008년 사계절출판사에서 『임꺽정』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 개정판을 가지고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지금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신간 <임꺽정, 길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사계절.2009년)이다. 그런데 이 해석이 아주 재미있다.

저자는 『임꺽정』을 읽은 후 그 느낌을 몇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 느낌 가운데 제일 첫 번째가 눈에 들어온다. “꺽정이와 칠두령은 의적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그들은) 의적이 될 생각조차 품지 않았다. 백성들과 계급적으로 연대하려고 한 흔적도 없다.”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 책에 홀딱 빠졌다. “말발이었다. 무슨 화적들이 이렇게 입담이 좋담?”이 그 이유였다.

이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책은 일곱 개 분야로 나뉜다. 경제, 공부, 우정, 사랑과 성, 여성, 사상 그리고 조직이다.

첫 장인 ‘경제’부터 보도록 하자. 저자는 임꺽정과 그 친구들을 ‘노는 남자’로 규정한다. 이들은 농사를 짓자니 땅이 없고, 장사를 하자니 밑천도 없다. 지금 시대로 따지면 그들은 모두 백수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먹고들 산다. 이들은 놀면서도 당당하고,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운다. 그 배움을 바탕으로 분야별로 달인이 된다. 그들은 놀면서도 당당하다. 그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하는 인간’이다.

‘사랑과 성’에 보면 나오는 인물들의 사랑은 하나같이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꺽정이 패들은 사랑에 있어서도 달인들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한다. 이들은 정말 재주도 좋다. 게다가 이들의 사랑에는 중간단계가 없다. 머뭇거림, 잔머리, 확인절차 없이 그냥 몸으로 ‘들이 댄다’. 그들은 모두 호모 에로티쿠스(Homo eroticus, 성애하는 인간)다.

‘여성’ 부분에서 독자들은 놀란 장면을 만나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여장부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조선의 다소곳한 여성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또한 장모들의 권력이 막강하다. 고부간의 갈등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장모와 사위의 갈등은 수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갈등의 끝은 항상 장모가 승리한다. 그녀들은 현대 여성보다 훨씬 강하다.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조직’이다. 이들의 조직은 아주 유연하다. 구체적인 행동 강령이나 원칙도 없다. 그럼에도 실전에 들어가면 신출귀몰한다. 이들의 요새인 청석골은 수시로 움직인다. 또 이들은 잠행과 변신의 귀재다. 여차하면 요새를 버리고 튄다. 호모 노마드(Homo nomad, 유목하는 인간)다.

이 책의 부제는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다. 저자의 문장이 개인 블로그에 쓴 글처럼 구어체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컨대 “주인공 꺽정이는 하늘이 내린 장사에다 검과 말 타기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놀면서도 당당하고,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운다!(이럴 수가!)”, “몸과 몸이 직접 교통하는 것. 그것이 조선시대 민중들의 ‘사랑법’이다. 온갖 잔머리에 매뉴얼까지 동원해서 줄다리기를 하지만 정작 사랑이 시작된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는 우리 시대의 연애와는 얼마나 다른지. 쩝!” 이런 부분을 읽으면 독자들은 절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읽어주는 여자 고미숙, 그녀의 출중한 입담을 느껴보라. 이 책을 만난 것이 즐거움으로 남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혹하는 우주 - 별의 탄생에서 인류의 진화까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본 우주의 수수께끼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이민용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비약이다. - 닐 암스트롱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인 1609년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달을 보는 최초의 인간이 된다. 그로부터 360년 후, 1969년 7월20일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통해서 바라본 그 달에 인간이 첫 발을 내딛는다. 달 표면에 찍혀있는 암스트롱의 첫 발자국은 오랫동안 인간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으리라.

갈릴레오의 관측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도 모두 인간의 오래된 호기심을 풀기위한 행위였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하늘의 신비를 알려고 노력했다.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또 달을 보면서 우리의 선조들은 파종 시기를 알아냈고, 또 왕조의 흥망과 개인의 길흉을 점쳤다.

낮의 하늘을 보면 태양은 동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즉 쉽게 생각하면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태양을 비롯해 모든 별들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밖에 없었다. 신간 <유혹하는 우주>(옥당.2009년)의 저자인 게르하르트 슈타군(Gerhard Staguhn)는 이를 두고 ‘우주는 착각이다.’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땅바닥이 평형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었고,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조차도 실제와 다르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우리의 눈은 신뢰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지구는 태양계에서도 목성이나 토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행성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있는 줄로 알았고, 또 인간을 지구의 중심으로 생각했다. 현대 천문학이 발달해 우주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작은 태양계에서도 한 점에 불과한 작은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그래서 우주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우주는 넓고도 크다. 그렇다면 우주는 얼마나 클까. 지구와 비교해서 엄청나게 큰 태양조차도 별들 가운데 평균 크기다. 태양의 크기를 유리구슬 정도의 크기하고 가정해보자.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은 200Km가 떨어져 있다. 평균 크기의 은하에는 약 1,000억 개의 별이 모여 있다. 즉 1,000억 개의 유리구슬들이 서로 200Km의 거리를 두고 모여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나의 은하만 해도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주에는 은하가 또 1,000억 개나 있다. 그 작은 먼지만한 생성에 살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다.

137억 년 전 우주는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을 우리는 빅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도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시작이 있었다면 끝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태양계의 끝에 대해서 말해보자. 태양은 50억 년 전부터 불타고 있으며, 매초에 400만 톤의 질량을 상실하고 있지만 그 동안 줄어든 질량은 겨우 1,000분의 3에 불과하다. 앞으로 50억 년은 더 탈 수 있는 수소의 양을 가지고 있다. 태양계에서 태양이 없어진다면 당연히 지구를 비롯해 태양계의 행성들도 같이 폭발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으로 볼 때 50억 년은 상상할 수도 없이 긴 시간이다. 거의 무한대라고 생각해도 된다. 천문학적인 숫자는 항상 우리의 인식 수준을 가볍게 넘어 버린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계속 증폭되어 왔다. 이러한 호기심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마 우주의 생명체에 대한 의문일 것이다. SF문학이나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외계 생명체를 그려왔다. 다만 그 실체를 알 수 없기에 괴상한 물체로 상상할 뿐이다. 이런 호기심은 이 구체화한 사례는 ‘인류로 부터의 메시지’이다. 1974년 지구에서 가장 큰 전파망원경이 있는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전파관측소에서 우주로 신호를 보냈다. 이 전파신호는 약 2만 4,000광년 거리에 있는 헤르쿨레스 자리의 구성성단을 향해 방출되었다. 그 신호의 진동수는 수소의 진동수와 같은 1,420MHz였다. 수소는 우주 물질의 4분의 3을 차지함으로 외계의 진화된 고등 생명체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소의 주파수를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이저 2호는 지구에서 약 10.33광년 떨어져 있는 로스 248이라는 이름을 가진 적색왜성으로 향하고 있다. 아마 4만 2,155년 후면 그 별 가까이 접근할 것이다. 보이저 2호 안에는 구리로 만든 음반이 실려 있다. 이 음반에는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작품과 더불어 고래 울음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도 실려 있다. 과연 이러한 인간의 메시지를 수신할 생명체가 존재할까?

이 책은 인간이 그토록 알고자하는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인류의 진화까지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인 게르하르트 슈타군은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 책의 부제가 ‘별의 탄생에서 인류의 진화까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본 우주의 수수께끼’로 적혀 있지만, 인문학적 상상력을 뛰어넘어 전문적인 지식까지 이 책에 녹아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작가 김탁환은 이야기꾼이다. 2004년부터 햇수로 3년 남짓 개화기를 공부한 그는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을 만들어냈고, 이번에는 <노서아 가비>(살림.2009년)를 탄생시켰다. 책의 제목인 노서아 가비(露西亞 加比)는 ‘러시아 커피’를 말한다. 저자는 조선말 우국지사인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실린 김홍륙의 일화를 모티브로 이 책을 썼다. 김홍륙은 러시아어에 능통한 재주로 아관파천 시절 권력을 누렸다가 몰락한 사람이다. 몰락한 그는 복수의 일념으로 왕이 마시는 노서아 가비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었다. 이 역사적 사건에서 힌트를 얻고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추리 소설처럼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을 통해 독자들에게 팩션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따냐! 이 책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녀는 역관의 딸이었고,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걸음마와 함께 더듬더듬 뿌쉬낀이나 고골의 책을 밟고 다녔으며 러시아 인사법을 배웠다. 아버지가 러시아 어를 딸에게 가르친 까닭은 러시아 물품이 비싸기에 러시아 어를 배워 러시아 상인과 직거래를 하면 큰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해 따냐는 “아버지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즉 이 책의 시작에서 그녀가 러시아를 배운 것에 대해 잘 했다는 의미는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아버지가 역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오는 길에 조선 국왕을 위한 천자의 하사품을 챙겨 러시아로 달아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아버지는 나라의 물품을 훔친 사람이 된 셈이다. 아버지의 머리는 서대문 밖에 효시된다. 당연히 그녀에게는 연좌제가 적용될 터. 그녀는 노비가 될 운명에 처한다. 19살인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다. 청나라를 거쳐 러시아로 건너간 그녀는 사기꾼의 세계에 빠진다. 그녀는 러시아의 광활한 숲을 유럽의 귀족들에게 파는 사기단에 소속된다. 사기단에서 그녀는 귀족들이 숲을 구매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팜므 파탈이었다.

귀족들이 어수룩해서 그랬는지, 그런 사기단은 또 있었다. 그녀의 사기단과 라이벌격인 사기단에는 동양인이 있었다. 이반이란 이름의 남자로, 그는 그녀에게 운명처럼 다가온다. 이반과 그녀는 인생의 파트너가 된다. 이반도 조선인이었다.

따냐는 말과 글씨 쓰기, 그리고 인장을 위조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이반과 한 팀이 되어 사기행각은 계속한다. 그 시절 러시아에서는 니꼴라이 2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대관식에 전 세계에서 축하사절이 온다. 물론 조선사절단도 있었다. 이반은 유창한 러시아어를 바탕으로 사절단의 역관 역할을 수행한다.

사절단과 함께 귀국한 이반은 아관으로 피신해 있던 고종 밑에서 역관으로 채용된다. 천민의 신분이었던 이반은 왕과 고문인 베베르 사이의 통역을 담당하기에 이른다. 그의 출세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반은 자신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뇌물을 받는 등 개인적인 치부에 몰두한다.

이즈음에서 이 책의 제목에 담긴 의미를 이야기해야겠다. 따냐가 커피를 처음 맛본 때는 16살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커피를 처음 맛보았다. 그녀에게 커피의 향과 빛깔과 맛은 아버지를 생각나게 해 주는 추억어린 식품이었다. 커피와의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고종의 바리스타까지 된다. 새벽에 아관으로 출근해서 고종에게 커피를 끓여 올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한양에서도 따냐는 이반과 함께 살지만, 둘 사이에는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반을 믿지 못한다. 그녀의 팜므 파탈 기질은 이반에게도 행사된다.

아관파천을 끝내고 고종은 환궁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 권세를 누려왔던 친러파들은 된 서리를 맡게 된다. 당연히 이반도 몰락한다. 이반은 바로 역사속의 인물이었던 김홍륙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대단하다.

소설의 마지막 무대는 뉴욕이다. 따냐는 조선을 떠나 러시아 뻬쩨르부르크를 경유해서 뉴욕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게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가게를 ‘따냐의 문학카페’라고 불렀다.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노서아 가비를 마시며, 팜므 파탈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서아 가비는 이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또 그녀의 삶 가운데, 지속적으로 등장하여 독자들에게 향과 맛을 잊지 않게 해준다. 재미있는 이야기꾼 김탁환의 재능이 반짝이는 소설이다. 책의 띠지에는 ‘출간 즉시 영화화 결정’이라고 써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세기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지금의 수리남은 소수의 백인이 노예를 노동력의 원천으로 한 커피 농장을 경영했다. 백인들은 유럽의 귀족과 같은 삶을 누렸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 노예들의 처절한 노동을 기반으로 한 결과였다. 신간 <2백 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내인생의책.2009년)는 농장의 백인 딸의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그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라서 너무 행복해, 난 너희들과 다르게 태어났어, 날 달라, 그래서 행복해”

주인공은 이제 막 14살이 되었다. 성년이 된 기념으로 많은 선물을 받는다. 그 가운데 특이한 선물은 바로 흑인 노예였다. 게다가 채찍까지 선물로 받는다. 요컨대 그녀는 이제 채찍을 자신의 손에 잡고 이를 휘두르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반면 노예는 그 채찍에 맞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열네 살이 된 그녀가 아는 것은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과 맞는 사람은 다르다는 점이다.

그녀가 아는 세상은 피부의 색에 따라서 사람과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노예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시대의 가치관이고 세계관이었을 터. 주인공의 아버지가 예쁜 여자 노예를 사온다. 그녀는 아버지가 예쁜 여자 노예를 사온 의미를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그 노예로 말미암아 울고 있다. 이 상태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엄마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자신의 귀를 막는 일뿐이었다. 자신의 옆으로 노예가 다가오자 따귀를 한 대 갈긴다. 엄마가 우는 일이 모두 노예의 잘못인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노예는 남자 흑인으로 아직 어리다. 동작도 굼뜨고 그녀에게 마시지도 머리 손질도 옷가지 정리도 해주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럼 그 애를 팔아 버려.”라고 아줌마들이 말한다. “그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난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정말 기발한 생각이다.” 이제 그녀는 노예를 사고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정말 기발한 생각’이라는 그녀가 정말 발칙하다.

일을 늦게 한다고 채찍에 맞는 노예의 모습을 보고도 그녀는 아무런 느낌도 갖지 않은 채 식사에 몰두한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아프더라도 주인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픈 게 당연한일이건만, 악녀의 눈이 비친 노예는 동정조차도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다. 200년 전 식민지 사회에서 피부색의 흑백 차이는 마치 낙인처럼 찍혀있었다. 200년이 지난 지금 피부색의 차이로 인한 차별은 그대로 남아있다. 정도만 약해졌다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출신 근로자들에 대한 차별도 이의 연장선이 있다. 인종 간에는 어떤 우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이건만, 사람들에게 있어서 너와 나를 나누는 이분법은 그대로 살아있다. 특히나 눈에 보이는 피부색의 차이는 우열을 나누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족주의적 전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네덜란드 작가인 돌프 페르로엔(Dolf Verroen)이다. 50년 넘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을 쓰고 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서문에 나와 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꾸며 낸 인물이다. 하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일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것들이다. 수리남에서”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역사란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을, 역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저자는 악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인종차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인종차별에 대해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 악녀의 생각과 행동은 독자들에게 반면교사의 역할을 해준다. 인종차별의 역사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