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林巨正)은 실존인물이다. 조선조 연산군에서 명종 대까지 화적패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다. 벽초 홍명희(碧初 洪命憙, 1888~1968)는 일제시대 10권 분량의 대하소설로 『임꺽정』을 저술했다. 홍명희는 해방이후 월북해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냈다. 그래서 『임꺽정』은 남한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어 읽을 수가 없었다. 1985년에 가서야 『임꺽정』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2008년 사계절출판사에서 『임꺽정』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 개정판을 가지고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지금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신간 <임꺽정, 길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사계절.2009년)이다. 그런데 이 해석이 아주 재미있다.

저자는 『임꺽정』을 읽은 후 그 느낌을 몇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 느낌 가운데 제일 첫 번째가 눈에 들어온다. “꺽정이와 칠두령은 의적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그들은) 의적이 될 생각조차 품지 않았다. 백성들과 계급적으로 연대하려고 한 흔적도 없다.”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 책에 홀딱 빠졌다. “말발이었다. 무슨 화적들이 이렇게 입담이 좋담?”이 그 이유였다.

이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책은 일곱 개 분야로 나뉜다. 경제, 공부, 우정, 사랑과 성, 여성, 사상 그리고 조직이다.

첫 장인 ‘경제’부터 보도록 하자. 저자는 임꺽정과 그 친구들을 ‘노는 남자’로 규정한다. 이들은 농사를 짓자니 땅이 없고, 장사를 하자니 밑천도 없다. 지금 시대로 따지면 그들은 모두 백수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먹고들 산다. 이들은 놀면서도 당당하고,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운다. 그 배움을 바탕으로 분야별로 달인이 된다. 그들은 놀면서도 당당하다. 그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하는 인간’이다.

‘사랑과 성’에 보면 나오는 인물들의 사랑은 하나같이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꺽정이 패들은 사랑에 있어서도 달인들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한다. 이들은 정말 재주도 좋다. 게다가 이들의 사랑에는 중간단계가 없다. 머뭇거림, 잔머리, 확인절차 없이 그냥 몸으로 ‘들이 댄다’. 그들은 모두 호모 에로티쿠스(Homo eroticus, 성애하는 인간)다.

‘여성’ 부분에서 독자들은 놀란 장면을 만나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여장부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조선의 다소곳한 여성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또한 장모들의 권력이 막강하다. 고부간의 갈등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장모와 사위의 갈등은 수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갈등의 끝은 항상 장모가 승리한다. 그녀들은 현대 여성보다 훨씬 강하다.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조직’이다. 이들의 조직은 아주 유연하다. 구체적인 행동 강령이나 원칙도 없다. 그럼에도 실전에 들어가면 신출귀몰한다. 이들의 요새인 청석골은 수시로 움직인다. 또 이들은 잠행과 변신의 귀재다. 여차하면 요새를 버리고 튄다. 호모 노마드(Homo nomad, 유목하는 인간)다.

이 책의 부제는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다. 저자의 문장이 개인 블로그에 쓴 글처럼 구어체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컨대 “주인공 꺽정이는 하늘이 내린 장사에다 검과 말 타기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놀면서도 당당하고,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운다!(이럴 수가!)”, “몸과 몸이 직접 교통하는 것. 그것이 조선시대 민중들의 ‘사랑법’이다. 온갖 잔머리에 매뉴얼까지 동원해서 줄다리기를 하지만 정작 사랑이 시작된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는 우리 시대의 연애와는 얼마나 다른지. 쩝!” 이런 부분을 읽으면 독자들은 절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읽어주는 여자 고미숙, 그녀의 출중한 입담을 느껴보라. 이 책을 만난 것이 즐거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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