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내게로 왔다 - 이주향의 열정과 배반, 매혹의 명작 산책
이주향 지음 / 시작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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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는 문학이 있을까? 사랑이 없는 음악이 있을까? 우리 주변은 온통 사랑이야기로 가득 차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온통 사랑이라는 것에 둘러쌓여 있다. 아마 인간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인간은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성생식을  하는 우리에게 사랑은 유전자를 후대로 전해주는 데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랑에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만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는 행운(?)을 허락했다. 그렇기에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선조들은 모두 사랑에 성공한 사람이다. 

이 책 <사랑이, 내게로 왔다>(시작.2008년)은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사랑에서 시작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와  프시케, 호머의 <일리아드>는 사랑 때문에 일어난 트로이 전쟁이야기다. 그리고 세익스피어의 <오셀로>는 사랑과 질투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게다가 변학도와 춘향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랑이야기도 있고, 원효와 요석공주이야기 등 33권의 문학작품 안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사랑 안에는 미움과 증오, 질투, 죽음까지도 함께 나타난다는 것을 이들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사랑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현실아래에서 사랑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그 변한 사랑 때문에 인간들은 죽음을 생각을 하게 되고, 복수를 꿈꾸고, 살인을 계획하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해서 온전하게 독점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기에 그 독점적인 위치가 흔들린다면 우리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은 지극히 감성적이다.

이렇게 사랑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섭고 두렵다고 해도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를 항상 사랑에 빠지게 이끌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랑에 성공하면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에 빠진다. 그러나 실패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보인다.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 앞에 마음에 드는 이성이 나타나면 우리는 아팠던 과거를 망각하고 새로운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친다. 

책의 내용은 저자인 이주향 교수가 월간 <에세이프러스>에 연재했던 것이다.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책의 표지에 있는 문장이 멋지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상대방의 무엇이 좋아서 사랑에 빠졌나요?” 여러 가지의 대답이 나올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얼굴이, 성격이, 그의 재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아주 이성적인 대답이다. 상대방의 조건을 보고 시작한 사랑은 조건이 바뀐다면 사랑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의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은 무엇일까? “그냥 좋았어요.”가 정답은 아닐까? 이런 저런 조건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상대방을 만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그를 만나면 숨을 쉬기 어려운 정도로 가슴 벅찬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33개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면서 멋진 장면에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으며, 안타까운 사랑의 경우에는 함께 슬퍼했다. 데스데모나를 죽인 오델로의 행동에 대해서는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아름답다는 말이 마음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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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한국사 - 동아시아의 참역사를 바로 잡아주는
박선식 지음 / 베이직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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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전쟁을 싫어하는 민족이라는 얘기가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기에, ‘그동안 한국사에서 일어난 전쟁은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는 방어전쟁의 성격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이 책 <위풍당당 한국사>(베이직북스.2008년)를 읽어보면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간에 대륙으로 또는 일본으로 침략을 한 역사적 현장을 볼 수 있다. 아마 그동안 방어적인 성격의 전쟁만 했다면 우리 민족은 이 땅에 살아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침략 또한 가장 좋은 방어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위서로 생각하고 있는 <환단고기 桓檀古記>를 통해 우리의 조상이라고 알려져 있는 치우의 중국 중원으로의 진출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외 전쟁은 고구려 시대에서부터 시작된다.

 

고구려는 개국하고 발달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철제무기를 만들어 중국지역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히기 시작한다. 고조선이 망하고 그 영역에 설치되어 있던 한의 군현과의 전쟁을 비롯하여 중국의 중원에까지 고구려는 출병하여 고구려 국력을 과시한다.


신라의 경우에는 왜의 침략을 자주 받았고, 아주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르러서 광개토왕이 구원을 했던 경우가 있었던 것이 삼국사기나 광개토대왕비에 나와 있다. 반대로 신라가 왜를 침략한 경우는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규원사화, 동사강목, 해사록이나 일본서기의 내용을 분석하여 신라가 왜의 명석포로 들어가 왜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나온다. 물론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경우이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아주 상세히 여러 문헌의 근거를 들추어가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이채롭다.

백제의 경우에도 대외 침략전쟁의 미스터리가 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벡제는 중국 요서 지방과 일본 규슈 지방을 점령해 이 지역을 식민지로 경영했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고, 중국의 정 사서인 양서나 송서에 나온다.


고려시대에도 지금의 함경도나 평안도를 확보하기 위해 윤관이 별무반을 창설해 여진족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몽골과 연합하여 일본을 침략한 사례도 소개되고 있다. 또 고려말에 시작해 조선 초까지 연이었던 대마도 정벌의 성격을 저자는 ‘동북아 해상 평화회복 전쟁’ 이라고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다.

우리가 침략전쟁을 한 경우만 수록되어 있기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이 침략을 받은 경우는 이 책에 없다. 항상 침략만 받아온 역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기개를 만방에 보여준 전쟁을 수록하고 있기에 이 책의 제목에 ‘위풍당당’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인 박선식은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학자는 아니지만 역사를 전공하고 그동안 여러 권의 역사서를 저술한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강단사학에서 다루지 않고 있는 역사서들을 활용해 한국사에서 잘 밝혀지고 있지 않는 부분에서 그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하고 있음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사서만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 책과 같이 폭넓게 사료를 해석하고자 하는 부분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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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고대사 유적답사기 - 영산강에서 교토까지, 역사의 질문을 찾는 여행
홍성화 지음 / 삼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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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유물은 고류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 불상에 대해서 “진실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다.”라고 말하면서 최대의 찬사를 보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고류사 내유기(內由記)>에는 이 반가사유상이 “603년 백제에서 쇼토쿠 태자에게 전해준 불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최고 국보인 이 불상은 백제에서 만든 것인가? 대한민국 국보 83호인 ‘금동 반가사유상’과 일본의 ‘목조 반가사유상’의 형태와 양식은 매우 유사하여 같은 사람 혹은 같은 집단에서 제작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616년 신라가 불상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623년에도 신라에서 불상과 금탑, 사리를 보냈다는 내용도 있다. 이때 보낸 불상이 ‘반가사유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고류사 내유기>의 기록과 <일본서기>의 기록 중에 어느 것이 맞을까. 즉 ‘반가사유상’은 백제에서 온 것인지 신라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는 일단 ‘반가사유상’의 목재 재질에 있다. 반가사유상의 재질을 분석한 결과 ‘적송’이었다. 적송은 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 일대, 그리고 백두산에서 서식한다. 강원도와 경북 북부 일대라면 신라의 영역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 책 <한일고대사 유적답사기>(삼인,2008년)의 저자인 홍성화는 경북 봉화에서 발견된 밑동만 남은 석조 반가사유상에 주목한다. 이 석조 반가사유상은 백제 반가사유상이나 일본의 목조 반가사유상과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한다. 이 유물 역시 신라가 반가사유상을 일본으로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는 고류사로 간다. 도래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그곳에는 저자는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저자는 동해안에 있는 울진의 봉평비를 찾는다. 이 비문 글자 중에 ‘파단(波旦)’이란 단어에서 그는 무언가 실마리를 찾는다. 단(旦)은 차(且)로도 볼 수 있다. 파단은 일본어로 발음하면 ‘하타’라고 읽으며, ‘하타’는 백제계로서 일본에 건너간 사람집단을 말한다. 이렇게 문헌 연구를 하면 부족한 부분은 직접 현지 답사를 하며 저자는 고대사의 진실에 접근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반가사유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하타씨족이 강원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면, 필시 백제에서부터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백제인이 만든 반가사유상의 기법이 울진과 봉화지역에 전해진 것 같다. 그리고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통합하면서 이들 백제인이 신라인으로 둔갑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일본 반가사유상의 고향을 백제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책에는 영산강 유역의 고분 형태가 일본의 전방후원분인 것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고 있으며. 일본에 한자를 건네준 왕인의 숨은 이야기 속에 후대에 왕인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한 일 양국 사람들의 추한 모습도 담아내고 있다. 또 무령왕과 일본의 관계, 임나일본부 등 고대사에 있어서 의문의 중심에 있는 부분들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우리나라 여러 곳과 일본을 종횡무진 돌아다닌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한국 고대사를 알려주는 한국의 사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거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권의 책이 고대사의 모든 부분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지 않다. 고려시대에 쓰인 책이다 보니 그때까지 존재했던 삼국시대의 문헌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쓰여 졌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공백이 있다. 그래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중국의 사서나 일본의 사서인 <일본서기>를 인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에 그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 즉 어느 사서이든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나 <일본서기>는 거의 소설 수준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훨씬 이전에 쓰인 책이다 보니 한국고대사를 해석해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책이다. 그래도 문헌만 가지고는 연구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고 유물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역사 연구에 있어 답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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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박천홍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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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가정은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가끔 우리들은 가정을 하곤 한다. 이를테면 한국사에 있어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거나, 중국사에 있어서 ‘명나라가 해금(海禁)정책을 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이 가정대로 되었다면 한국사도 세계사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타임머신을 600년을 돌려서 중국을 보자. 명나라의 환관이었던 정화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대선단(大船團)을 지휘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에 원정하였다. 당시 배의 규모는 길이가 122미터, 선폭이 52미터이고 9개의 돛대가 달려있었으며 배수량은 약 2700톤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1405년 제1차 원정 때에는 보선만 62척이었고 장병 2만 7800여 명이 분승하였으며 선단은 총 317척이었다. 1492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상륙했던 콜럼버스의 선단은 선단의 규모인 배 3척, 선원 100여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명나라는 선덕제가 즉위하면서 쇄국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바다의 주도권은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으로 이어지는 유럽의 해상세력은 바다를 지배하면서 21세기의 서양주도의 세계절서를 가져오게 된다. 명의 해금정책은 조선에도 똑 같이 적용되었다.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돌입한 서양의 각국은 자국의 상품을 판매할 곳이 필요하였고, 인구가 많은 중국은 그들이 원하던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서양은 중국에 이어 일본에 까지도 자본시장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그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낯선 땅이었다. 이 시대에 어쩌다 표류로 말미암아 조선의 땅에 발을 내딛은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또 서양인을 본 조선인들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악령이의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현실문화.2008년)는 1797년부터 1860년까지 60여 년 간 바닷길로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조선에 다녀온 후 서양인들은 자국에서 자신들의 여행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했으며, 조선에서는 왕조실록이나 일성록 등의 책에 서양인들과 조선인의 만남을 적고 있다. 생김새도 다르며, 말과 글도 다른 그들 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야 한다.

“19세기 초까지 조선 해역을 찾아온 이양선들은 주로 우연히 표류해 오거나 지리학적 탐사활동에 나선 배들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중엽부터 이양선의 성격은 변하기 시작한다.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정식 통상관계를 요구하거나 기독교 선교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의식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질적 양상을 달리하고 있었다. 이제 조선과 서양의 만남은 간헐적이고 의중을 떠보는 차원을 넘어 전면적인 접촉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215쪽)

위의 문장에서 보듯이 19세기 초까지 이양선이 한반도에 온 것은 세계 지도 완성과 안전한 항해를 위한 측량에 주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그들은 상품시장을 원했고 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해왔다. 그러나 조선의 입장에서는 명, 청 이래로 외국과의 해로 접근을 차단해 왔었기에 이양선의 접근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또한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좋지 못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공식적으로 배타적이었다. 그러나 이양선에 타고 있던 서양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호기심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법으로 이양선과의 접촉 절차까지도 규정함으로써 물품교환이나 인적 교류에 대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다만 이양선이 표류 등 어쩔 수 없이 상륙한 경우에 한해서는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필요한 물품을 무상으로 조달해주기는 했다. 즉 그들과는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접근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해당 지방 관서의 책임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1849년 여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Liancourt)호는 동해에서 고래잡이를 하다 독도를 발견하고 리앙쿠르 암초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독도는 서양인들에게 리앙쿠르 섬으로 알려지게 되었다.”(441쪽)

 

일본이 계속 자신의 영토라고 우기고 있는 독도는 1849년 서양에 리앙쿠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리앙쿠르란 이름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데, 이는 지극히 서양 우선주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다. 거문도에 불법으로 상륙한 영국인들은 이 섬을 해밀턴 항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등 서양인들은 그들이 모르던 산이나 바다 섬을 발견하면 자신들의 입장에서 작명을 했던 것이고, 깃발까지 꽂으면서 자신들의 영토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누구든지 간에 상관없이 그들은 주인이 없는 공간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바다를 통해 조선에 왔던 서양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서 지도를 그렸고 또 조선인들과의 접촉에 대해서 기록을 남겼다. 그들이 바라본 조선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러시아의 작가이며 러시아 함대에 함께 타고 조선에 왔던 곤차로프는 조선인의 모자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그것은 털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빛깔이 검었다. 그들이 어째서 이런 쓸모없는 모자를 쓰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투명해서 비나 햇빛이나 먼저로부터 머리를 보호하지 못한다.”(513쪽)

곤차로프의 입장은 바로 서양의 실용주의를 대표하고 있다. 그가 말하고 있는 조선인의 모자는 바로 ‘갓’인데, 실상 이 모자는 실용적인 입장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지위를 나타내는 위세품이었는 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한 청나라는 서서히 침몰해간다. 바다를 지배하지 못했던 청나라는 해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에 반해 미국 페리제독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발하게 된 일본은 근대화와 아울러 해양국가로 급히 변모하게 된다. 일본은 서양 각국으로부터 배를 사들이고, 이후 자신들이 직접 배를 만드는 등 그 당시의 의미에서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다. 그 후 중국과 조선, 일본의 운명은 변하고 만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명제가 그 시대의 핵심이었다.

무려 800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그동안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서양과 조선의 단순한 접촉에서부터 충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로 간에 호기심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서양우월주의 입장에서 우리를 미개한 민족으로 바라보고 있는 입장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서양인의 시각은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그들의 사고방식은 바로 그들이 바다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인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어떤 부분을 지배해야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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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 상
A.J.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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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한 잡지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던 한 사람이 자신의 지적 능력이 감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읽기에 도전한다. 아주 무모해보이기도 하고 다 읽는다 해도 과연 지식이 늘어날지 의문인 그런 일을 시작해서 멋지게 끝낸다. 백과사전을 읽어 나가는 동안에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욕심에 강의를 듣지만 실패한다. 또 읽기를 빨리 끝내고 싶어 속독법 강의까지 등록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한다. 그리고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늘어난 자신의 지식을 테스트하기 위해 TV 퀴즈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결말이 난다. 이렇게 백과사전을 읽는 중에 일어난 여러 가지 신변의 에피소드를 한권의 책으로 출간한다. 그 책이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이고 저자는 A.J. 제이콥스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괴짜다.

그가 이번에 또 새로운 아니 황당한 일에 도전한다. 그것은 성경의 내용을 성경에 쓰여진 문자 그대로 따라서 1년간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기독교인인 것은 아니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유대교도도 아니고 불가지론자이다. 불가지론자는 ‘우리 인간은 신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조차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미친짓(?)을 하려는 목적이 궁금하다.

 

이 책 <미친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세종서적.2008년)의 서문에 보면 그 목적이 나와 있다. 첫째는 책을 내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단순히 성경을 공부하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성경대로 살아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참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었고, 또 극단적 근본주의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계획을 듣고는 만류를 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을 때도 주변에서 반대를 했지만 그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성공리에 끝을 낸 경험이 있다. 그는 그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일단 관련 책부터 사기 시작한다. 그가 산책들은 “쌓으면 허리까지 올라올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아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분량과 비슷할 것이다.

 

 드디어 그는 시작을 한다. 책도 준비했지만, 그는 앞으로 머리와 수염도 깍지 않을 것이고, 복장도 성경에 나오는 대로 입고 다닐 예정이다. 미친척(?)을 시작한지 61일 째 그의 모습을 한 번 보도록 하자.

“성경을 체험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려 하고 있다. 지금의 내 기분. 들뜨고, 혼란스럽고, 마음 무겁고,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놀랍고, 겁난다. 그리고...당혹스럽다.

내 성경적 자아인 야곱은 점점 더 기인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옷마다 주렁주렁 술을 달고 다닌다. 정결함으로 확보하고자 가는 곳마다 핸디 시트를 들고 다닌다. 내 수염은 덥수룩하다는 차원을 넘어섰다. 턱 밑으로 벌써 5센티미터가 넘게 자라 이제는 구불거리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빠쳐나가기도 한다.“

막상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났지만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있으며, 저자가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또 읽어보면 그가 이런 것조차도 즐기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정말 묘한 사람이다.

 

레위기 20장 27절에 나오는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는 규율도 그가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고민하게 된다. 돌을 죄를 진 사람에게 던지거나 돌로 쳐야하건만,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고, 괜히 사람을 돌로 치거나 돌을 던지면 자신이 처벌 받을 수 있기에 저자는 꾀를 부린다. 그는 사람에게 던져도 잘 못 느낄 정도로 작은 돌을 준비한다. 그리고는 마떵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는 마침내 70대 노인을 향해 돌을 던진다.  “성경은 어째서 한편으로는 지혜로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야만적일까? 이렇게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우리는 왜 믿어야 하는 걸까?”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184일째 그는 잠언 16장 30절에 나오는 ‘눈짓을 하는 자는 폐역한 일을 도모하며..’라고 적혀 있는 문장과 만난다. 이 문장 또한 그가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눈짓을 한다는 것은 바로 윙크를 의미한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성경에서 윙크를 탐탁찮게 여기고 있는 부분이 네 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윙크는 세상에서 가장 음흉한 제스처라는 생각에서다. 윙크를 하는 사람은 윙크를 받는 사람을 자신의 꿍꿍이에 가담하라고 꼬드기고 있는 셈이니까.”

 

이렇게 성경에 문자로 써있는 대로 행동하는 일이 그에게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작한지 9개월이 지난 272일째에 그는 성경에 나와 있는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에 빠진다. 성경을 읽고 또 읽은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의 내용이 그대로 믿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앙심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은 바로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1년 하고도 몇 일이 지난 387일째에 대장정의 끝을 내린다. 그는 1년간 자신과 동거동락했던 성경을 우체국에 가서 소포로 붙인다. 그 성경책은 그가 결혼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인  A.J. 제이콥스와는 두 번째 만났다. 두 권 모두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의 책은 읽으면서 다음 장이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의 다음 번 도전은 무엇일까?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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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9-1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오라버니께서 먼저 읽으셨군요. 리뷰 좋으네요!
추석 연휴가 시작 됐네요. 복된 추석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