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라는 사춘기를 헤엄치고 있는 우리딸에게
20세기 독일 아저씨의 위로와 응원이 힘이 되길 바랍니다.
<데미안>
중학교 땐지 고등학교 땐지 암튼 10대 후반쯤 읽었던
기억이 있는 책입니다.
헤르만 헤세라 이름이 멋져보여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도통 무슨 얘긴지, 데미안과 싱클레어라는 이름 정도밖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읽으니 좋네요. 난 이만큼 어른이 되고 이제 늙는다는
얘기가 어색하지 않은데 책속의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여전히
푸른 소년들이네요. 당연하지만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대학생이던 친구 언니가 읽던 '유리알 유희'라는 범접할 수 없던
두께의 책도 기억납니다.
마당이 예뻤던 친구네 집도 생각나네요.
그집 마당 무화과나무도...
다시 읽어도 어렵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양면성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이야기 합니다.
그래요.
한가지 특성으로 인간을 규정하는 건 좀 바보같은 일입니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밝은 집과 교활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까지 지닌 어두운 골목.
거기서 방황하며 성장하는 섬세한 소년의 이야기죠.
놀라운건 헤세가 40대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겁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이런 소년감성으로 글을 쓸 수 있다니,
놀랍네요.
데미안은 1919년에 쓰여졌네요.
우리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쓰러져 갈때 저 멀리 이국땅에
한 남자는 이런 소설을 썼네요.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을 너무 어렵게 읽은 탓에 뒤로 미루어뒀던 책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렸습니다.
읽기는 '수레바퀴 밑에서'가 훨씬 수월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전형적인 구조라서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파국을 향해 달리는 '한스 기벤라트'가 참 가엾고 쓸쓸합니다.
비인간적인 교육제도와 억업적인 기성세대라는 수레바퀴
밑에서 신음하다 서서히 죽어간 소년.
무서운 건 1900대초 독일의 교육과 2017년 우리에 교육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섬세하고 똑똑한 한 소년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갑니다.
제 나이가 한스에게 감정이 이입되기 보다는 한스를 바라보는
어른의 한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장 한장 넘길때 마다 그냥 재미있는 소설로만 읽기는 좀
찔리는 것도 많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억압적인 기성세대가 되었을까요?
억압적인 기성세대 전문용어로 "꼰대"죠 씁쓸합니다.
얼마전 청년들이 어른들의 잔소리에 지쳐 입을 닫아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루를 여는 첫마디는 "아메리카노 주세요"랍니다.
언뜻언뜻 우리 아이들에게 '한스 기벤라트'라 비쳐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에너지 넘치는 중2 딸아이는 키우는 엄마로써의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조용히 지내기만을 강요하는 학교.
너무나 하고 싶은게 많고 즐겁게 지내고 싶은 15살 딸아이.
학교는 벌점으로 화답하고 엄마는 잔소리로 대답했네요.
숨쉴틈이 있었을까 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15살 아이의 감성과 꿈을 너무 짓밟는 꼰대는 되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벌점'문자는
정말 짜증납니다.
그래도 15살이 15살처럼 신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겠습니다. 사실 학교와 학원에 앉아만 있기는 좀
아까운 나이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