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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평점 :
독일학자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독일 철학, 문학, 카톨릭
신학을 공부하고 그 곳에서 계속 계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책은 독일어로 쓰여졌고 김태환이란 분이 번역한 책입니다. ...
피로사회라는 책을 쓰신 그분의 책입니다.
우선 이책의 특징은 얇고, 비싸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벼워서 갖고 다니기는 좋습니다.
1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지만 정말 진도가 빼기가 쉽지 않습니다.
에로스의 종말, 제목이 에로틱해서 잡은 책입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더라구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에로틱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우리가 아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사랑입니다.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이것만은 포기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권력 구조 안에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 사랑이 무엇일까요?
작가는 사랑은 사랑안에서 내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란 타자 속에서 내가 죽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내가 죽어 타자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랑이 결국 나를 구원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당신을 사랑하면서,
나는 당신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한다. 당신이 나를 생각하기에.
그리고 당신 속에서 나를 버린 뒤에 나는 나를 되찾는다.
당신이 나를 살아 있게 하므로”(page 59)
지배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 타자를 장악하지만 사랑하는 자는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는 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생경하게
읽힙니다.
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지배하고 장악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 속에서 긍정성 삶의 압박이 얼마나 우리를 속박하는지,
결국 그렇게 삶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삶에서,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에로스는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생존하는 자는 살아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고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는 산송장과
비슷한 존재”라는 말이 매일매일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저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모두가 비슷해 지기 위해 문화를 소비
하는 사회에서 과연 타인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꿈꿀 수 있을까?
이런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다면, 이런 생각을 좀 더 일찍 했다면
이렇게 비루한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사는 삶이 얼마나 비루한지 모르고 사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만약 선택권이 있다면 삶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사는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