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이 서재에서 철학에 관련된 책을 추천하였을때, '러셀 서양철학사' 를 추천한 적이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겉멋만 들었다, 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는 서양철학사를 끝까지 읽지 못했고 - 겨우 칸트부분까지만 읽었다 - 읽은 부분도 사실 내것으로 만들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결국에는 나는 철학에 대하여 아는 척, 하고 있는 딜레탕트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해서 내가 저 딜레탕트의 수준을 넘었냐면, 또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여전히 중구난방식으로 이 철학자의 이 이론, 저 철학자의 저 이론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약간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장 자크 루소의 사상 정도에 지나지 않으리라. 결국 모든 철학자에 대하여 모든 것을 통달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모든 철학자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한 끝도 없는 딜레탕트의 평원에서 땅짚고 헤엄치고 있을 뿐이리라.

 

이 글은 이왕 딜레탕트의 범위에서 글을 쓸거라면.. 이라는 생각에서 쓰게 된 것이다. 어차피 깊게 묻지도 않고 논문쓸것도 아니라면, 아는 척 하는 정도로 겉만 슬쩍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 말이다.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내기도 하는 세상인데 철학이라고 달라질 게 있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이 글이 철학을 읽으면서 허세를 부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먼저 철학에 대하여 질문부터 시작하자. 여러분은 철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도올 김용옥 같은 경우에는 무전제의 사유,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여러분이 이 질문을 받았을때 꼭 이 답변부터 먼저 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철학 포인트가 5포인트 상승할 것이다.) 하지만 무전제의 사유는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전제를 안내리고 사유를 한다? 전제가 없이 생각을 한다고? 그냥 자유롭게 생각하자는건가? 하지만 당신의 앞에 있는 사람은 절대 이정도로 물어오지는 않을 것이고, 따라서 여러분의 무식이 탄로나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논쟁에서도 절대 이런 것을 물어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철학에 대한 토론은 게임과도 같아서, 깊게 물어오는 것은 룰에 위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런 식으로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어두운 방 속에 검은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이는 서양의 농담에서 따온 말인데, 이렇게 이야기하더라도 당신의 지적능력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는 전혀 훼손되지 않고 도리어 매우 유머스러운 사람이라는 평을 얻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앞서 말한 이야기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그럴듯하게 보인다. 해석은 상대방이 하는 것이다. 그저 당신은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상대방은 모른다. 당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고차원적인 토론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모를 것이다. 토론 규칙중에는 자비의 원칙이라는게 있어서, 여간하면 당신이 합리적이고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될터이니 말이다. 인터넷으로 철학 논쟁을 한다면 더욱 쉽다. 댓글 다는 사이에 검색좀 해보면 된다. 아, 인터넷 논쟁이라면 친목을 쌓고 정치적 관점을 좀 가지면 하면 논쟁을 이길 수 있다. 당신의 동조자를 만들라. 당신의 철학의 깊이가 아무리 깊더라도 동조자가 없으면 키보드 앞에서는 모두 평등해진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 스스로도 철학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가지고 있으며, 납득할만한 설명을 원한다면 철학은 1. 익숙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을 정지하고, 2. 그 익숙한 것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3. 완전히 부숴버린 그 익숙한 것을 스스로의 말로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 이라는 이 세 가지 단계를 밟아나가는 학문이라고 여기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쉬운 말로 풀어썼지만 어렵게 쓰자면 저 세 단계를 한없이 어렵게 쓸 수 있다. 그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쓰도록 하자.

 

이렇게 철학에 대한 규정을 하고 나면 철학은 크게 갈래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하나는 존재론, 하나는 인식론, 하나는 가치론. 여기서 당신이 현대 철학의 조류라던가, 한창 유행했던 정의론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가치론 쪽으로 가도록 하고, 만약에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가도록 하자. 왠지 후자의 쪽이 더 멋있어보이니 이 글은 후자를 택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상대방이 가치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말을 중간에 끊고 플라톤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라.

 

 

 

 

 

 

 

 

 

 

 

 

 

 

 

 

자, 그럼 수박 겉핧기 식으로 철학에 대하여 아는 척을 하기 위해서 책을 골라보도록 하자. 위에 세 권 정도 골라봤는데, 가장 왼쪽의 철학, 책, 이 책을 넘겨보고는 개인적으로 놀랐다. 이 책은 무료로 제공되는 책임에도 생각보다 알차게 구성되어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가장 위에 올라와 있는 이유는 무료이기 때문이다.) 무료로 이정도 정보를 제공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뒤에는 더 읽을거리까지 풍부하게 소개되어있다. 당신이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이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뒤에 철학자들이 쓴 책들 몇 권을 외워가도록 하라. 물론 좀 아쉬운 부분도 있다. 실용주의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는 그다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칸트 전문 연구자인 백종현 교수가 직접 칸트에 관해서 소개하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나름 각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각 철학자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해왔고, 번역도 맡았던 교수들이 필진으로 참여한 것에 대하여 매우 만족스럽게 여겨진다.

 

그 다음 책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인데 개인적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철학에 입문하고 싶거나, 혹은 얕은 지식으로 아는 척을 하고 싶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너무 깊지는 않게, 그러나 너무 얕지도 않게 나와있는 이 책은 각 시대별로 사상의 변천을 잘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강점은 한 철학자의 사상이 어떻게 내면적 연관을 맺고 있는가 에 대하여 잘 설명을 하고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로크의 사상을 공부할때, 우리는 로크가 주장한 제1성질, 2성질과 로크의 사회 사상에 대하여 따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모든 것은 내면적 연관을 갖고 있다. 라이프니츠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의 모나드론과 변신론, 그리고 그의 논리학적 업적이 어떻게 연계가 되어있는지 피상적으로는 따로 외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이 책은 매우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 번째로 제논의 역설에 관한 것인데, 이 역설 - 아킬레우스가 어떻게 거북을 못따라잡는가 - 은 결국 풀리긴 풀렸다. 여기서는 '언젠가 풀릴 날이 올 것' 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프레게와 그 이후의 논리학적 성과에 의하여 풀린 것으로 알고 있다. 계량할 수 있는 무한과 계량할 수 없는 무한의 구분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의 저자가 그 연구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기에 좀 의아한 부분이 있다. 번역에 대한 문제도 있는데, 중간에 '뉴턴을 내버려 두라', 라고 번역한 부분은 '뉴턴이 있으라' 라고 번역하는게 옳을 것이다.

 

세 번째 책은 철학 개념어 사전, 인데 이 책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물론 위의 책들을 읽더라도 여전히 모르는 개념어들이 있을 것이고, 괜스레 상대방이랑 대화하다가 유식한 척 개념어를 내뱉었을때, 그 개념어가 무슨 뜻이지? 라고 되물어오면 당황스러울때가 있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이런 책 하나 정도는 구비해두는 게 좋다. 물론 책을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제목과 저자만 외워두고 실제 개념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는게 효율적이다. 어차피 상대방도 이 책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령 보았더라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철학책을 대충 읽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언급한 정도만 읽어도 아, 그때 그거? 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다. 어차피 철학자의 무슨 무슨 책 읽었냐, 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는 '당신은 읽었냐?' 라고 되물어라. 아니면 애초에 상대방이 당신이 읽은 것 처럼 여기도록 대화를 할때, 플라톤의 ...에 따르면, 등과 같은 말들을 가져다붙여라. 그러면 상대방은 당신의 학식에 놀라 '아, 이 사람 너무 잘난 척 하는데' 라고 여길 것이다. 혹은.. 상대방도 당신처럼 자신의 무지를 감추고 맞장구를 칠 것이다. 당신이 고대 아테네 철학을 읊는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으로 말이다. 너무 노골적인가? 그렇다면 국내 철학자들이 쓴 책들도 있다.

 

국내 철학자들이 쓴 책을 말할때는 꼭 강신주의 이야기부터 하는게 좋다. 힐링캠프를 나온 이후로 왠만한 사람들에게는 대중적으로 알려져있다. 어, 너도 강신주 알아? 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라. 이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좀 더 당신이 지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강신주의 책들 중 강신주가 가장 아끼는 책이 두 권 있다. 그 책 중 한 권이 가장 오른쪽의 책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진짜다. 강신주가 인터뷰집에서 그런 말을 했다. 다른 책은 김수영을 위하여, 다.) 사실 정말 진지하게 철학 공부를 하고싶다면 이 책은 다른 책들을 읽고 난 뒤에 읽는게 좋다. 가장 표준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가운데 있는 이진경의 책이다. 강유원의 저서도 빼놓을 수 없다. 대중적으로 엄청나게 인지도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내실있는 철학자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최근 철학의 경향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요즘 그럭저럭 이름 날리고 있는 철학자는 지젝이다. 인터넷에서만 유명한 것 같지만 여튼 지젝 정도를 읽고 있다고 하면 왠지 뭔가 있어보인다. 지젝을 말할때는 경희대에서 방한에서 강연했던 그 사람? 혹은 월가 점령 시위에서 연설했던 그 사람? 정도의 추임새를 붙여주라. 그리고 지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일이 있으면 라캉과 헤겔이 보통 같이 나올 것이다. 그럴 때 뒷짐을 지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상대방에게 무지를 들키지 않을 것이다. 아, 지젝의 철학적 작업이 원래 그런거잖아요, 헤겔로 라캉을 읽는. 그래서 최근에 번역서 헤겔 카페랑 라캉 카페가 나오지 않았던가요? 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지젝의 저서에 접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 이현우씨의 해설서로 생각이 든다.

 

아니면 들뢰즈를 읽는다고 해라. 인터넷에서 자주 보는 철학자는 어차피 이 두 명이다. 들뢰즈의 반응은 모르겠지만 지젝은 좋아할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을 것을. 보통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철학자들이 언급이 많이 되는 경향이 있다. 들뢰즈의 저서는 어렵다, 아니 무슨 소리인지 사실 모른다. 제대로 읽은 사람도 별로 없을터이니 혹시나 들뢰즈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면 아, 정말 읽기 어려웠다, 라는 식으로 인정하는 척 해라. 진짜 천 개의 고원과 같은 저서는 독해하기가 어렵다. 아니 이렇게 순순히 인정하면 아는 척을 어떻게 하냐고? 훗, 여기서 한 수 물러나는 것은 전진을 위해서다. 그러다가 리좀 정도의 개념을 검색해서 읊어주면 상대방은 오, 어렵지만 나름 읽었나보다, 라고 착각할 것이다. 어차피 입으로는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실제 읽었다고 해도 검은 것은 글씨다, 라고 읽었다면 안읽은 것이나 차이가 있을리 없다.

 

결국에는 개념 몇 개 외워두고 검색해두면 두고두고 쓸 수 있다. 각 철학자마다 개념어가 있지 않은가? 루소의 경우 일반의지,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는  내 언어는 세계의 한계다. 칸트의 경우에는 정언과 가언, 범주. 이런거 좀 외워두고 국내에 번역된 책들 좀 제목만 알고 있으면 아는 척 하기 어렵지 않다. 여기에 위에 소개한 책들 좀 읽어주면 누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철학이 당신에게 무슨 쓸모가 있냐고? 허세부리는 것 말고 무슨 용도가 있겠느냐고? 그렇다. 허세부리는 것 말고는 용도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당신이 나치 지배하의 독일에서 살았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반인륜적 범죄들을 그대로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이건 철학의 문제다. 앞서 철학의 정의를 적어두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라고. 당신 자신의 찔리다 지쳐 이윽고 넝마가 되어버린 양심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바로 이런 생각들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그냥 눈감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거기서 한 번더 멈춰서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다.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끄나풀이 될 것인가? 그냥 숨을 죽여살것인가? 아니면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고문을 당하더라도 끝끝내 저항할 것인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이 당신만의 철학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당신이 위의 책들을 통해 진지하게 철학을 생각해보고 싶다면.. 철학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 액세서리가 될 수 도 있고, 당신을 지탱해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살아가고 숨쉬며 밥먹는 그 모든 것에 철학이 담길 수 있다. 다만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사유해온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생각을 왜 이용을 하지 않는가? 땅을 파고 기초공사부터 시작하는 것이랑 어느 정도 뼈대가 놓인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아는 척을 하기 위해서 읽은 책들도 있겠지만 혹시나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어도 그런 책들은 당신에게 뼈대를 만들어주는 책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사유했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의 사유를 읽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걸 처음 발명한 사람과 배워서 익힌 사람의 차이가 있긴 하겠는가? 당신이 젓가락질을 처음 고안한 사람과 젓가락질 비교를 한다면 누가 더 낫겠는가? 둘다 별로 차이 없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