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허삼관매혈기




문득 매일 먹는 밥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밥을 먹고 사는 일이 고달프다는 말을 사회에서 실감하게 될 때쯤 나는 책<허삼관매혈기>와 마주했다.

책 속에는 허삼관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피를 팔면서 삶의 고비들을 넘어선다. 피를 판돈으로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며 ‘가장’의 역할을 해나간다.

가난 때문에 피를 판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서늘한 느낌마저 자아내지만 막상 책장을 펼쳐 보면 연신 웃음이 지어진다.

피를 파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동네와 허삼관의 톡톡 쏘는 짜릿한 말투 등이 그렇다. 책은 피를 팔면서까지 삶을 연명해야 하는 고달픈 인생살이를 해학적으로 풀어 나간다. 어느 순간 책 안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 해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

“저야 내일모레면 쉰이니 세상사는 재미는 다 누려봤죠.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라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봤으니 사람 노릇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부모에게는 자식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었을까.

책 속 주인공인 허삼관은 우리네 아버지와 닮았다.

허삼관과 조우한 나는 문득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부의 삶을 살고 계신 나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반평생을 험한 물살을 가르며 어둠과 싸워왔다.

아직도 아버지란 이름보다는 ‘아빠’가 더 익숙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아빠’가 익숙했던 내 나이 열여섯이 되던 해가 기억난다. 당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나는 답답한 섬이 아닌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은 나의 바람대로 삶을 이끌어 주지 못했다. 현실과 저항하며 울음을 쏟던 내게 아빠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어가며 말했다. 1톤이 조금 넘는 배를 10년 넘게 타 온, 수동으로 시동을 걸어야하는 낡은 기계 때문에 겨울에는 몇 시간 동안 고단한 작업 준비를 해야 했던 나의 아빠는, 작은 배로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기가 버거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와 상의 끝에 나를 육지고등학교에 입학시켜주는 대신 3톤이 조금 못되는 배를 사기로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대학은 꼭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겠노라, 하셨다.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업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아빠는 자식들에게 만큼은 배움의 기회를 마음껏 누리게 하고 싶다, 하셨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빠도, 듣는 나도 두 눈에 눈물이 글썽 거릴 만큼 고통스러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식을 위해 ‘아버지’라는 무거운 짐을 평생 어깨에 메고 외롭게 싸워야 했을 나의 아버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피를 팔아서 자식들에게 옥수수 죽 대신 국수를 사 먹이고 아픔을 치료해주는 허삼관의 간절한 마음이 나의 아버지와 같으리라 생각하니 눈물이 나기도 하고.




나는 독서를 통해서 삶을 배워나간다.

책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또 다른 삶을 접하기도 한다.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알게 된 후로 내게 ‘배려’와 ‘용서’를 절실하게 보여준 것도 책이었다.

이번에 읽은 <허삼관매혈기>는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랑의 무게는 동일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조건 없는 내리 사랑으로 평생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는 위대한 삶의 개척자라고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위대한 개츠비 ㅣ 펭귄클래식 10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토니 태너 서문, 이만식 옮김 / 펭귄클래식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위대한 개츠비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된다.

처음 마음에 품었던 여인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채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충 줄거리만 알고 있던 책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마주한 나는 묘한 여운 때문에 생각 속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의 줄거리는 첫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자의 순정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책 속 주인공인 개츠비는 첫사랑인 데이지라는 여성을 찾기 위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다. 결국 그녀를 만나지만 잠깐의 행복을 맛 본 후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는 것.

사랑하는 여인을 잊지 못해 매일 밤 큰 집에서 화려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의 돈과 명예를 벗 삼으려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는 하지만 파티를 열 때면 개츠비는 세상 누구보다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각계각층의 사람들 속에 쌓여 있는 개츠비는 흔히 진정한 재산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그들은 뒤에서 개츠비에 관한 억측을 일삼기도 하지만.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츠비를 두고 온갖 이야기를 사실로 만들어 버린다. 소설 속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사실인 것만 같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어느덧 개츠비의 친구가 되어있다. 그가 살아온 방식을 이해하고 그를 위대하다고 말하며, 세상누구보다 그를 안타깝고 맑은 사람으로 여긴다.




개츠비의 삶을 소설로 만난 나는, ‘어떤 것이 행복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그녀를 다시 만난 개츠비는 진정 행복했을까? 개츠비가 사랑했던 여인에게는 이미 남편과 아이가 있었고 예전에 알고 있던 그녀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기억 속 개츠비가 아닌, 부유하고 신사적인 새로운 이상향의 개츠비가 보였던 것이다.

내가 추측하건데 데이지가 추억 속에 간직했던 개츠비를 다시 만난 순간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설레고 낯설지만 흥분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신대륙의 등장으로 사실화 된 것처럼 허영을 좇던 데이지에게 개츠비는 더욱 반가운 존재였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개츠비를 대하는 데이지의 마음이 순도 백퍼센트의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확실하게 이해되는 사실은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마음뿐이었으니까.




이야기는 결국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사랑을 찾아 갈망했던 개츠비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 때문에 오해를 받아 죽음에 이른다. 개츠비는 순진하게도 그녀의 마음이 지금 그가 갖고 있는 마음과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 그처럼 그녀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사랑만을 좇아 세상의 끝까지 오고만 개츠비의 삶은 쓸쓸하다.

그의 장례식장은 한적하다 못해 스산한 느낌마저 감돈다. 마지막 그의 곁에는 그토록 사랑했던 데이지도, 파티를 열 때마다 찾아오던 사람들도 없다. 죽음과 함께 그의 이름도 사람들에게 등한시되고 사라져만 간다.

개츠비가 간절히 원했던 데이지는 결국 그의 곁을 흔적도 없이 떠났다. 지옥인지 천국인지 알 수 없는 길로 나서는 그는 곁에는 차갑고 메마른 빗자국들만 가득하다.




사람들에게 호의적이고 관대했던 개츠비에게 타인은 허영과 거짓, 편견으로 마주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실체가 없는 뿌연 안개와 같은 느낌이다. 형상이 뚜렷하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모호하기도 하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 옆으로 잠깐씩 빠져 생각 속에 잠기기도 했다. 남아있는 책장이 몇 장 되지 않았을 때에야 나는 현실을 살면서 타성에 젖고 자신도 모르게 거짓과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문득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혼을 하고나서 부부간에도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서로의 늦은 귀가와 바쁜 업무, 일상에 쫓기다 보니 부부간에는 필요이상의 믿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가 우리 부부에게 “서로를 얼마나 믿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이런 질문에 “부인을 못 믿어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이란 책의 주인공 공생원.

공생원 부부에게는 결혼한 지 스물 세 해 만에 아이가 생겼다. 마흔 다섯이면 손자를 보고도 남을 나이.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충분한 기쁨을 만끽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겠건만, 공생원은 부인의 임신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아기를 갖기 위해 몸에 좋다는 약과 용하다는 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그들 부부에게 서지남이라는 의원이 던진 한 마디가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생원님이 문젭니다. 마나님 탓하실 것 없지요.”

부인에게 잘 하라는 의미로 했던 이야기가 공생원에게는 마나님의 뱃속에 아이가 자라는 280일 내내 불안하고 의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말로 작용했던 것.

결국 공생원은 두부장수부터 아내의 팔촌까지, 동네 남자들 모두 의심대상(?)에 올려놓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마나님과는 어떤 친분이 있는지를 살피며 나름의 리스트들을 삭제해나간다.




공생원이 범인을 색출해나가는 이야기 고개에는 조선시대를 사는 평민들의 삶이 이웃의 모습을 보는 듯 가깝고도 흥미롭게 묘사되어있다. 인물을 한 명씩 지목해 진실을 헤쳐나 갈 때마다 소소한 시대의 일상과 인물 묘사 때문에 나도 모르게 “혹시......?”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니 처음 처를 믿지 못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공생원 편에 내가 서 있었다. 오지랖 넓은 마나님이 혹시나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난 것은 아닌지…….




공생원과 마음을 합해 범인을 찾아내는 것을 뒤로하고 문득, 글을 쓴 작가가 궁금해졌다.

언젠가부터 책을 펼쳐들면 ‘작가의 말’ 부분을 꼼꼼하게 읽는 버릇이 생긴 나는, 글을 쓰는 내내 노는 마음이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이상하기도 부럽기도,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작가는 주부의 삶을 살다 마흔 살에 소설가가 되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가정에서 주부로 살며 책 읽기를 꾸준히 해 온 것이 소설을 쓰는 힘을 주었다고. 작가가 쓴 이전의 책들도 색채가 짙을 것 같아 궁금해졌다.




각설하고,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딴 짓을 하는 버릇 때문에 읽는 진도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던 터라, 작가의 이야기를 알고 난 후, 소설 속 공생원의 추격이 상승선을 타는 듯 했다.

결국 범인은 누구란 말인가?

공생원과 내가 책을 읽는 내내 알고자 했던 질문에 마나님은 책의 말미 부분인 출산직전, 진통과 싸우며 일침을 가한다.

“당신 자식이 아닙니다. 제가 어느 화상의 쓰를 받아온 것 같습니까?”

“이 뱃속에 말입니다. 아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스물세 해 만에 생긴 아이가. 한데 허구한 날 이 배를 쳐다보면서 끄응, 아니면 후우, 하는데 천치가 아니고서야 그 속뜻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생원의 깜찍한 발상과 어설픈 추리를 보면서 내 스스로도 진실과 거짓을 두고 싸웠다. 공생원의 엉뚱한 생각 편에 서 있다가도, 마나님의 진실(?) 편에 서 있기도 했다. 소설로 마당놀이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수많은 풍자와 해학을 소설 속에 담아 낸 것 같다.




공생원의 모습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웃음이,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남편의 이야기는 단순 부부간의 신뢰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쉽게 믿지 못하고 한 편이 될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비판하고 있는 듯 했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삶을 살면서 공생원처럼 지극히 진실적인 것들을 거짓으로 생각하고 의심해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의 이름.







얼마 전 고향집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나는 그 곳에서 낯선 풍경을 만났다. 이제 시집갔으니 집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해두었다고 가져가라는 말에 몇 권이나 되는 사진첩을 하나씩 펼쳤다.

사진 속에는 나조차도 잊고 지냈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그 사진들의 뒤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고 예쁜 모습의 엄마가 있었다. 언뜻 보면 나와는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한 나이에 맞게 적당히 멋을 낸 세련된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다.

부산 아가씨 티가 팍팍 날 만큼 섬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 름. 다. 운 모습.

엄마는 이 사진을 마주할 때면 어떤 생각이 들까?

문득 궁금해진 나는 몇 살 때 사진인지 물어봤다. 엄마는 시집오기 전 나보다 두어 살은 더 젊었을 때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때는 이런 섬에 시집올지 몰랐다고 했다.

섬 에 시 집 올 지 몰 랐 지.

다시 고향집이 있는 섬을 떠나 도시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엄마의 그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낯설지만 아름다웠던 엄마의 젊었을 때 사진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던 때, 나는 <엄마를 부탁해>란 책을 마주하게 됐다.

제목을 보면서도, '엄마에 관한 이야 기겠구나.' 생각했지만 막상 책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사진에서 마주한 낯선 엄마의 모습을 책 속에서도 발견할 것 같아서.



내게 엄마는 떠올리기만 해도 아련해지는 사람이었다. 나의 엄마는, 여느 엄마들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였고 밥벌이를 위해 삶에 강하게 대처하는 사람이었다. 세상과 맞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엄마,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왜 아련해지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




책은 시골에서 상경한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갑작스레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자식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하지만 자식들은 엄마의 이름 외에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다. 첫째부터 막내의 태어난 시간까지 술술 읊는 엄마와는 다르게 자식들은 엄마에 관해 무지할 뿐이다.

문득 나는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에 '너'가 나를 지칭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너와 같은 시절 미래를 꿈꾸던 엄마였다는 것을, 어릴 적 예쁜 옷을 입고 작은 신발을 신고 엄마의 엄마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

처음부터 마치 가족을 위해 만들어진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삶 속에 의지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책은 딸에게 '너', 아들에게는 '그', 남편에게는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엄마를 이야기한다. '나'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로지 '엄마'뿐.

나의 엄마는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기억이 있을까? 내 기억 속 엄마의 이름은 ‘엄마’였다. 엄마가 ‘나’였던 적은 있었을까?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여자'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가수를 보면 설레고, 예쁜 옷을 보면 입어보고 싶고 때로는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싶어 하는 여자로.




책 속의 엄마는 현실 속 나의 엄마와 많이 닮아있다. 억척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삶에 냉정했던 모습과 품에서 멀어지는 자식들을 보며 남몰래 눈물짓던 모습까지. 항상 입에 달고 지내는 '엄마'라는 이름이, 소설 속에서 이렇게 아프게 다가올지 나는, 몰랐다.




책 속 '너'가 고향집을 떠날 때, 엄마는 많이 울었다. 나는 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내'가 고향집을 떠날 때, 나의 엄마 역시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나를 앉혀놓고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했었다.

엄마처럼 고생하지 말라고. 했다.

많이 배우고 좋은데 시집가서 호강하면서 살아라, 했다.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보면서 어부의 아내로 살다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더라고. 했다.

대학공부까지 시킬 수 있을까 걱정하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학교를 보낸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떠나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어땠을까?

문득, 엄마는 자식들과 남편이 지겹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적은 수입에 자꾸만 커 가는 자식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사는 게 바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삶이 숨 막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엄마는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품을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며 한 편으로는 조금은 후련하지는 않았을까?




어릴 적 나는, 늘 돈에 쫓기는 엄마라 미워했고, 공부하라는 소리를 지겨워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삶과 맞서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항상 나와 가족들의 걱정으로 가득한 엄마 이야기에는 무관심 했다.

스스로가 강해져야만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엄마의 희생과 삶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져온다.

책 속 엄마를 잃은 가족들을 보면서 그들도 나처럼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엄마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걸겠다는 전화를 잊기도 하고, 엄마가 보내온 택배를 잊기도 하고,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내 방식대로 새롭게 정의했다. 외로움을 모르는 엄마, 항상 강한 엄마, 눈물을 모르는 엄마, 자식들만 위하는 엄마, 꾸미기에는 어색한 엄마로.




책을 통해서 '엄마에게도 이런 삶이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 나이만큼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과 세월이 미안했고 안타까웠다. 훗날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겠지만 과연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엄마가 '나'의 자리에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고.

항상 자식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살아온 엄마의 삶이 이제는 자식들에게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눈물은 힘이 세다
이철환 지음 / 해냄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물의 크기와 힘은 어느 정도일까?란 질문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사실은 딱히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눈물을 펑펑 쏟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된 다는 것과 마음이 시원해진다는 것이다.

 

책 <눈물은 힘이세다>는 이철환 작가의 성장 소설인 듯 하다.

책 속에는 가난하고 힘들었던 우리의 가족들이 있고, 그들의 삶은 고단했던 유년기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아빠의 눈과 마주한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 퀭한 눈, 자식들의 오늘과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가여운 가슴을 가진 남자의 안타까운 눈빛이.

 

문득, 아빠에 대해 떠올려 본다.

스무살이 조금 넘어서 부터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삶을 살아오신 나의 아빠.

나는 어릴 적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본 기억이, 아빠와 마주앉아 밥을 먹어 본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내 아버지는 고단하고 바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리라.

십수년간 남의 배를 타다 내가 태어나고 걷기를 시작할 무렵, 아빠는 늘 소망하던 아빠만의 배를 갖게 됐었다.

아침 저녁으로 바다와 그 배에 희망과 몸을 맡기며 배질을 하던 나의 아빠.

비록, 자식들이 생긋 웃는 모습보다 잠든 모습이 익숙했지만 아빠는 가난때문에 배움에 목이 말랐던 자신의 삶을 물려주기가 싫었다. 하셨다.

퉁퉁 불어가는 손과 발, 오랜 시간 배질로 고통스러운 팔과 다리의 통증보다 자식들의 어두운 미래가 더 무섭고 서러웠다. 하셨다.

 

책 속에서 '사람을 꿈꾸게 하는 건 아픔이었다'는 글귀가 마음에 남는다.

거친 파도 속에서 점점 작아져가는, 흐려져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렸던 나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만큼의 아픔이었다. 그런 아픔들이 나를 꿈꾸고 나를 더 성장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 아버지는 여린 사람이었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술로 극복하려 했고, 불안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폭력으로 포장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팠고 절망했고 두려웠고 무엇보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이 책 속 주인공을 꿈꾸게 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요즘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유난히 많다.

읽다보면 평범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일상과도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특별한 감동을 준다.

문득 우연히 읽게 된 한 줄의 글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치랄까.

<눈물은 힘이세다>책과 마주했을 때, 작가의 예전 책 <연탄길>이 떠올랐다.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은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작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읽다보니 또 다른 감동이 몰려온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족들의 아픔을 통해서, 가족들의 눈물을 통해서.

소설 쓰기를 꿈꾸던 주인공,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던 나약한 아버지.

서로를 위해 흘린 눈물은 주인공의 밝은 미래를 비춰 줄만한 큰 빛을 지니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