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허삼관매혈기




문득 매일 먹는 밥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밥을 먹고 사는 일이 고달프다는 말을 사회에서 실감하게 될 때쯤 나는 책<허삼관매혈기>와 마주했다.

책 속에는 허삼관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피를 팔면서 삶의 고비들을 넘어선다. 피를 판돈으로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며 ‘가장’의 역할을 해나간다.

가난 때문에 피를 판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서늘한 느낌마저 자아내지만 막상 책장을 펼쳐 보면 연신 웃음이 지어진다.

피를 파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동네와 허삼관의 톡톡 쏘는 짜릿한 말투 등이 그렇다. 책은 피를 팔면서까지 삶을 연명해야 하는 고달픈 인생살이를 해학적으로 풀어 나간다. 어느 순간 책 안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 해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

“저야 내일모레면 쉰이니 세상사는 재미는 다 누려봤죠.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라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봤으니 사람 노릇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부모에게는 자식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었을까.

책 속 주인공인 허삼관은 우리네 아버지와 닮았다.

허삼관과 조우한 나는 문득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부의 삶을 살고 계신 나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반평생을 험한 물살을 가르며 어둠과 싸워왔다.

아직도 아버지란 이름보다는 ‘아빠’가 더 익숙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아빠’가 익숙했던 내 나이 열여섯이 되던 해가 기억난다. 당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나는 답답한 섬이 아닌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은 나의 바람대로 삶을 이끌어 주지 못했다. 현실과 저항하며 울음을 쏟던 내게 아빠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어가며 말했다. 1톤이 조금 넘는 배를 10년 넘게 타 온, 수동으로 시동을 걸어야하는 낡은 기계 때문에 겨울에는 몇 시간 동안 고단한 작업 준비를 해야 했던 나의 아빠는, 작은 배로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기가 버거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와 상의 끝에 나를 육지고등학교에 입학시켜주는 대신 3톤이 조금 못되는 배를 사기로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대학은 꼭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겠노라, 하셨다.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업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아빠는 자식들에게 만큼은 배움의 기회를 마음껏 누리게 하고 싶다, 하셨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빠도, 듣는 나도 두 눈에 눈물이 글썽 거릴 만큼 고통스러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식을 위해 ‘아버지’라는 무거운 짐을 평생 어깨에 메고 외롭게 싸워야 했을 나의 아버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피를 팔아서 자식들에게 옥수수 죽 대신 국수를 사 먹이고 아픔을 치료해주는 허삼관의 간절한 마음이 나의 아버지와 같으리라 생각하니 눈물이 나기도 하고.




나는 독서를 통해서 삶을 배워나간다.

책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또 다른 삶을 접하기도 한다.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알게 된 후로 내게 ‘배려’와 ‘용서’를 절실하게 보여준 것도 책이었다.

이번에 읽은 <허삼관매혈기>는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랑의 무게는 동일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조건 없는 내리 사랑으로 평생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는 위대한 삶의 개척자라고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