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다락방 Special edition - 내일의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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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학교 졸업 후, 밥벌이의 지겨움을 알게 되면서부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항상 뭔가 부족한 것만 같고 나도 모르게 현실 속에서 도피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자리를 잡고 나오기 시작할 때면 모든 것이 혼돈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고민과 좌절을 뒤로하고 결국은 같은 질문만 되풀이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기계발서 책은 편식하는 편이지만 이따금씩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 류의 책을 읽고 나면 ‘지금의 나도 나름 잘 살아가고 있구나. 라든가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해답이 보일거야’라는 보편적인 사실들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

<꿈꾸는 다락방-스페셜 에디션>은 ‘원하면 이루어진다.’ 는 단순명료한 한 마디의 말로 현대인의 불안을 잠식시킨다.
예전 1, 2편에서 봐왔던 내용이 꿈을 찾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번 책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자기 주문이 내용의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성공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위의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들어봤고, 학창시절 수많은 좌우명 중 단연 최고로 꼽으며 스스로의 ‘노력’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책에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나는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게 아니다. 그것은 1%의 영감이 없다면 99%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였다."

오늘날에도 천재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에디슨,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은 끊임없는 자기 암시였다. 
 

책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실망, 그 이면의 모습에 주력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말고 꿈을 기록하고 말하고 쓰기를 반복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전한다.
그렇다보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과 조우하게 된다는 것이 요지.

꿈을 이룬 내 모습과 조우한다는 것은 충분히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에 앞서 이따금씩은 내가 꾸는 꿈이 어떤 것인지,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노력하고 가꿔나가야 되는지 중심을 잃을 때가 많다. 더군다나 각종 걱정들과 뒤섞이다 보면 꿈은 저 멀리에 있는 것 같아 자괴감마저 드는 것이다.

책은 항상 꿈을 생각하고 삶의 도화지에 그리고 생각하기를 독려한다. 책 속 이야기들은 분명히 꿈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꿈에 다가가기에 나는, 고민과 걱정이 참 많다.

하루에도 무수한 걱정 속에서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걱정에 대한 해석은 너무도 명확하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것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하고 고민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현실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도 또 ‘걱정’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문득, 책 속 꿈을 이룬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이상향의 삶을 사는 그들과 대조적인 내 모습에 움츠려들기도 했다.

책은 이문열 작가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는 신춘문예 탈락에 이어 출판사에 직접 투고한 원고까지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고. 꾸준한 자기암시와 습작, 그리고 고통과 좌절의 시간이 그를 지금의 자리로 만들었다고.

사고방식은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은 미래를 결정한다. 실패자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실패를 만드는 행동을 하게 되고 이는 곧 더 큰 실패로 이어진다. 세상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영원히 실패의 암흑 속으로 사라진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꿈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단계부터 어색하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꾸준한 자기 암시는 꿈에 아주 약간이라도 가까이 가는 지름길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꿈꾸는 다락방>을 읽으면서 때로는 또 다시 좌절하기도 했고, 현실과는 동떨어진다는 이질감도 느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바라보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절대불변의 진리 같다.
원하는 것이 모두 이뤄진다면 좋겠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성취감을 맛볼 때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진정 행복하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행복하기 위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맞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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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 있다 -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전범석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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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항상 눈에 담는 일상이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유난히 파란 하늘을 볼 때,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의 걸음마를 바라볼 때면 문득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행.복.하.다. 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 속 풍경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 앞에서 자꾸만 좌절한다.
뭔가를 쫓아만가다 보니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와 있는 것 같아 괴롭고 세상 속에서 철저히 격리된 듯,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이다.

이따금씩 나는, '내가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가만히 보면 나는 도전하기를 좋아하지만 쉽게 좌절에 빠진다.
매듭짓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것에 매달리고 도전하려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를 반복해야 된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뭔가 성취감을 알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코 모르지 않지만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복잡하게 고민하는 내게 책 한 권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서있다>
책은 신경과 전문의 전범석이 2004년 6월부터 2005년 3월까지 병마와 싸웠던 시간들을 글로 담고 있다. 책 속에서 마주한 그는, 환자를 돌보고 제자를 가르치고 등산을 좋아하는 의사에서침대에 누워 발가락 하나밖에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된다.

등산 중 입게 된 척추 손상으로 그는 ‘전신마비’의 상태가 되어 긴 시련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매일이면 몇 번이고 넘나들던 병원 문턱은 걸어서 지날 수 없고 푸른 하늘 조차 맘껏 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죽고 싶어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존재로.

순간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 몸에서 ‘신경’이 하는 역할을 연구하는 의사였기에 그는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다시는 걸어서 병원 문을 나설 수 없다는 것도.

처음으로 하늘을 보았다.
오늘은 상체를 60도까지 세웠더니 중환자실 창밖으로 푸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원한 지 3주일 만에 처음으로 보는 바깥세상 풍경이다.

병원에 입원하게 된 후 처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그 날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때문에 하늘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뭔가 쫓기는 듯 살아가고, 반복된 삶은 금새 피로해지고 지치게 만든다.
환자가 되어 하늘을 보는 것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은 하루가 그에게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주 가벼운 일들이 간절해지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생각 속에 사로잡히게 될까?
책 속 글쓴이 또한 스스로의 모습과 위치를 똑바로 보기 힘들어 했다.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자신 또한 병원에서 나갈 수 없게 되진 않을까 순간의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전신마비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지만 스스로와의 기나긴 싸움을 충분히 예감했고 인내했고 기적처럼 일어났다.

사람들은 예견하지 못했던 일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계획했던 것에서 어긋나는 일들을 용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쉽게 슬픔에 빠진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과 마주하게 되면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오게 됐는지 인정할 수 없게 된다. 또 그것을 버텨내지 못하는 소약한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절망 앞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도 희망을 포기하고 ‘기적’따위는 바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조우한 그의 모습은 기적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끊임없이 재활치료에 매달리면서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희망을 심고 가꾸기를 반복 했다.
절망의 끝에서 기적을 꿈꾸었을 그의 의지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삶 속에서 ‘기적’을 바라기도 한다. 억만장자가 되어 세계를 누비고 원하는 직업에, 유창한 외국어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지는 꿈.
그에게 ‘기적’은 ‘걸을 수 있는 것’, ‘서 있을 수 있는 것’이었으리라.

수많은 요행을 바라며 살아가는 내 삶이, 쉽게 지치고 포기하는 내 삶이 그의 힘찬 ‘걸음’을 통해 다시 바라보기를 한다.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그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를 당한 것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불행이라는 점에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정도 부상을 입었는데 목숨을 건지고 또 이만큼 회복한 것도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한 후, 그는 걸음마를 다시 배웠고 낯설고 새로운 삶과 조우했다. 
육체의 죽음으로부터 기적을 경험했고, 평생 누워서 살아야만 할지도 몰랐던 암담한 현실에서 그는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게 됐다.
치료 도중 운동치료실에서 만난 아이의 고통은 환자 진료 시 보아왔던 모습보다 더 사실적이었으며 더 고통스러웠고 그런 아픔의 시간들은 의사로서의 그의 삶을 한층 깊고 애착을 갖게 했다. 그는 자신의 좌절 앞에서 더 많은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적을 얻었다.

책은 ‘살아있는 것은 다 소중하다’는 진리부터, 삶의 언덕과 모서리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내게 희망, 자기반성의 길을 찾아준다.
깊은 밤 밤하늘의 수많은 이름 모를 별들처럼, 사는 방법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자기만의 ‘기적’을 바라며 사는 오늘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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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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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김연수 ‘작가의 말’이다.

그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란 책을 통해 '소통'을 말하고자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개개인이 만나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이 공간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는 없으며 역시 100%의 완벽한 ‘소통’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서로 '노력'하지 않는 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없고, 결핍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책은 아홉 개의 색깔을 갖고 있다.
각 단편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오늘을 산다. 그들은 갑작스레 불꽃이 이는 사고현장을 목격하기도 하고, 우연히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기도 하고,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을 좇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세상이라는 세계를 접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낯설고, 두렵고, 또 설레기도 한 일들이 눈 앞에 무수히 펼쳐진다. 그런 순간들은 나를 무지상태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한 것 같다.
책 속에서 마주한  주인공들의 오늘 역시 그러했다.

서른 살.
미래를 바라봐온 십대, 현실과 싸웠던 이십대라면, 삼십대는 멈춰서 자기를 바라봐야 할 나이다. 이젠 좀 솔직해져도 괜찮은 나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끊임 없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도 '노력'을 해야한다. 그 안에서 함께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하고 그것 역시 '노력'만이 정답인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서른 살과 나의 실제 서른 살은 같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지나온 서른 살과 누군가는 지나게 될 서른 살, 누군가는 막연히 그리워 할 것이고, 누군가는 책망할 수도 있는 나이, 서른 살.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의 나’는 서른 이란 숫자가 내 나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다. 그녀는 서른이 되기 일 년 전 남자친구와 이별했다.
서른이 되기 전 새로운 인생을 찾아보겠다고 선언한 남자친구가 택시 운전을 하겠다는 말이 진부하다,는 이유로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녀는 자신의 서른 살을 준비한다.
그녀의 서른 번 째 생일은, 페터 한트케의 어떤 소설의 주인공처럼 미국의 어느 소도시를 지나가다가 저녁 무렵 '오늘이 내 서른 번째 생일이다'는 것을 깨닫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서른 번째 생일날 그녀는 세 시간의 짧은 수면과 낯선 진외종조부의 손자 부부와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예전 남자친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서울 시내에서 그의 택시를 탈 확률이 7만 분의 1이라는 사실을 가로지르고서.
그녀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1440개의 아름다운 일 분들로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간을 뒤로 돌아본다. 스물네 시간이 1440개의 일 분들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던 서른 이전의 시간들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일들이 도저에서 일어나고,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낯선 현실과 마주했을 때의 막막함이 책 속에서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래서 순간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누구나 상처를 받고 외로워진다는 것도.
돌이켜보면 막연함이 가져다주는 공포와 아픔은 가족 간의 ‘사랑’, 여인과의 ‘사랑’, 지나온 시간에 대한 추억의 ‘사랑’을 통해 치유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살면서 겪는 우연한 일들은 언제나 징후를 드러내는 오랜 기간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설사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실연의 고통에 잠겨서 죽지 않고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렇다고 인정해야만 했다. 예기치 않게 쏟아진 함박눈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시작된 우리의 사랑은 또 그만큼이나 느닷없이 끝나버렸다.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 쓰러진 날 만나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무너지는 날 헤어지게 된 커플이.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는 의도하지 않게 마주하게 된 위기 앞에서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삼류 코미디언이던 아버지는 어느 날 사.라.진.다.
이야기 속 그녀는 촬영 차 찾았던 점자 도서관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알게 된다.
무대 위에서 대사 없이 나무에 머리를 부딪치고 무대 밖으로 넘어지는 것을 반복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했다.

누군가의 부재로 그 사람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처럼, 빛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의 부재는 지루하고 답답하던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실마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빛을 따라 그녀 또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나는 가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아닌 당신이기에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생각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내게 ‘소통’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었다.
갑작스레 시력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고단한 삶은 가족들에게 조차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벗고 사막 속으로 사라져 간 아버지의 삶에서도, 7만 분의 1이란 확률에도 불구하고 진부한 서른 살을 살게 될 것 같아 헤어진 남자친구의 택시를 타는 서른 살의 ‘나’ 모습에서도.

누군가가 내게 삶의 아픔을 호소해 온다면 나는 '네 마음을 다 알아' 라는 말 대신에,
'네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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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죽여라
구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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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니 ‘게으름’이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순전히 날씨가 춥다는 변명으로 대체하고 있으니.

<게으름을 죽여라>는 책을 마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책제목 때문이었다. ‘게으름을 죽이는 방법’등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가장 컸던 듯하다.

이 책에는 아홉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예전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로 구성된 소설집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장편소설만 읽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소재들을 풀어헤친 단편들의 매력을 알게 된 듯, 소설집만 골라 읽는 느낌이다.

각설하고, 
처음 책을 펼친 후 덮는 끝까지 떠오르는 이미지는 ‘검은색’이었다.
아마도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자살, 죽음 등의 극단적인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쓰기만 할 뿐 남의 글을 읽지는 않았다.
쓰기만도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은 외로웠고
자신의 글을 읽어줄 사람을 간절히 필요로 하게 되었다.

<독평사>는 우연히 독평사가 된 한 여인의 이야기다.

그녀는 의뢰인의 글을 읽고 인터넷 상에서 만나 평을 한다. 그리고 의뢰인의 글에 대한 평가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글을 마주하고 소통하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글을 통해 만난 의뢰인과 독평사일 뿐이다.

독평사인 그녀는 의뢰인의 글들에 특별한 애정이 없다. 그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대화창에서 의뢰인의 글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불안한 만남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평가하고 단정지어버리는 지금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뜻하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주고, 원하지 않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들과 닮아있다.

독평사를 통해 자신의 글과 새롭게 마주하게 된 의뢰인은 화를 내고, 결국 대화창을 나가버린다. 얼마 후 의뢰인의 친구가 독평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그녀의 팔과 다리가 부러지게 만든다. 남의 글을 읽고 상처를 준 대가는 삭발에다 팔다리 하나씩 부러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평사 역시 자신의 일에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닐는지.
누가 약자고 누가 강자인지, 누가 악하고 누가 선한 사람인지…….
뜻하지 않게 독평사가 된 사람과 필요에 의해 자신의 글을 평가받고 싶어 했던 의뢰인 모두 약자가 아닐지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고 한 자리에서 외롭게 빙빙 도는 사람들의 모습들.

그들은 게으르고 싶어서 게으른 게 아니었다.
뭘 하고 싶은지를 몰라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몰라서 못하는 것과 하기 싫어서 못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나는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게으름을 죽여라>에서 주인공(나)은, 대학졸업 후 백조생활을 하고 있다. 스물여섯의 내가 빈둥빈둥 논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게으름치료센터’라는 곳으로 나를 보낸다.
그 곳에는 내 또래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무능력’과 ‘게으름’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의도하지 않게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지 못한 나는 입을 닫고 잠만 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면서도 과연 내가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두렵고,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기에는 왠지 어색하고 속상하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이런 내 생각들을 잠시 위로해본다.
나의 게으름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고. 내 주변의 상황들이 나를 조금은 더 게으르게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다고. 그래서 스스로를 조금은 위로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게으름을 죽여라>책 속에서 만났던 아홉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외로웠다. 그들 모두는 세상의 틀 속에서 꿈꿨고 소리 내었다. 비록 누군가는 입을 닫아버렸고, 자살을 선택했고, 어쩔 수 없는 생존의 환경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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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랑해
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지음, 유혜자 옮김 / 숲속여우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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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요즘 내 관심사는 ‘아이’다.

결혼을 하고나면 아이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던 말을 이제야 조금씩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엄마, 세상 어느 이름보다도 ‘엄마’라는 이름표가 가장 잘 어울리는, 처음부터 ‘엄마’로 나고 자랐을 것 같은 이름.

그런 이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내게 책 한 권이 다가온다.

<엄마가 사랑해>.

책 속에는 스위스 국적의 부부가 한국아이를 입양해 지금까지 키워온 이야기가 담겨있다.

입양 전부터 입양 후 아이와 함께 보낸 2년의 시간을 일기로 담아냈다. 입양당시 그들에게는 다섯 살 난 라아스라는 남자아이가 있었고 1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 한국에서 태어난 웅이라는 남자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지금이야 입양에 대한 이미지나 관점이 많이 달라졌지만 십년 전만 하더라도 입양은 낯설었다. 쉽게 입에 담을 수도 없었고, 좋게 바라볼 수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낳지 않은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내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매일 밤 신경질을 부리고, 보채고, 울고 소리 지르는 웅이를 마주할 때면 더욱 그랬다.

어릴 적 받은 충격 때문인지 웅이는 먹는 것에 집착했다. 밤마다 배고프다고 먹을 것을 요구했고 식사 후 몰래 음식을 먹어댔다. 자꾸만 늘어나는 몸무게 때문에 가족들은 통제했지만 아이를 말릴 수 없었다. 막무가내인 웅이를 보며 그들 부부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내 아이가 아닌 입양아에게도 똑같은 관심과 사랑을 전하는 엄마, 아빠가.

고집불통 막무가내인 웅이가 낯선 환경에서 처음으로 내뱉은 단어는 ‘엄마’였다. 아이 크기만큼 작은 입술에서 ‘엄마’를 찾을 때,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모국어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네 살 배기 아이는 자신과 다른 말을 쓰고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엄마’라는 이름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엄마’의 위대함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문득,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새로운 식구에 대한 큰 아이의 거부감도 있었고,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웅이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갈수록 부부는 자신들의 선택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행복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입양아인 웅이 때문에 자신들의 친아들인 라아스가 힘겨워할 때도 그들은 기다리며 인내했다. 결국 라아스와 웅이의 사이는 서로를 의지하는 친구이자 형제로 발전하게 된다.

세월이 흐른 지금, 40년 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입양되어 온 웅이는 자신만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아내와 쌍둥이 딸, 아들을 둔 가장이 되었다. 웅이는 한국에 대해 알기를 두려워했던 마음이 사라져 언젠가는 고향을 찾아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여행을 하면서 자연을 구경하고,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도 했다.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세상이다. 자신의 부모를 해하고 아이들에게 폭행과 폭력을 일삼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따뜻한 빛 한 줄기를 본 듯하다.

낳은 정도 중요하지만 기른 정이 무섭다는 말이 언뜻 떠올랐다.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낯설고 두려웠던 그 곳에서 꿈을 펼치고 새 삶을 개척해간 웅이를 보면서 나는 사랑의 힘을 다시금 깨닫는다.

웅이를 막내아들로 맞고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부부는 책 속에서 이런 말을 전한다.

나중에, 할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인생이 새삼스럽게 찾아와 문을 노크하지는 않을 거라고.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과 고통도 모두 삶의 일부분이고, 그런 힘든 시기도 삶에 대한 의욕과 사랑이 건재하다면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하게 될 거라고.

항상 ‘입양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라고 생각해왔지만 책을 접한 후 그런 생각조차 부끄러웠다. 그들은 입양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행복해했다.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사랑했기에 아이의 몸과 마음은 성장했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입양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가족을 꾸리게 될 많은 입양가족들의 설렘이 내게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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