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 있다 -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전범석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항상 눈에 담는 일상이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유난히 파란 하늘을 볼 때,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의 걸음마를 바라볼 때면 문득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행.복.하.다. 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 속 풍경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 앞에서 자꾸만 좌절한다.
뭔가를 쫓아만가다 보니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와 있는 것 같아 괴롭고 세상 속에서 철저히 격리된 듯,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이다.

이따금씩 나는, '내가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가만히 보면 나는 도전하기를 좋아하지만 쉽게 좌절에 빠진다.
매듭짓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것에 매달리고 도전하려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를 반복해야 된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뭔가 성취감을 알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코 모르지 않지만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복잡하게 고민하는 내게 책 한 권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서있다>
책은 신경과 전문의 전범석이 2004년 6월부터 2005년 3월까지 병마와 싸웠던 시간들을 글로 담고 있다. 책 속에서 마주한 그는, 환자를 돌보고 제자를 가르치고 등산을 좋아하는 의사에서침대에 누워 발가락 하나밖에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된다.

등산 중 입게 된 척추 손상으로 그는 ‘전신마비’의 상태가 되어 긴 시련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매일이면 몇 번이고 넘나들던 병원 문턱은 걸어서 지날 수 없고 푸른 하늘 조차 맘껏 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죽고 싶어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존재로.

순간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 몸에서 ‘신경’이 하는 역할을 연구하는 의사였기에 그는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다시는 걸어서 병원 문을 나설 수 없다는 것도.

처음으로 하늘을 보았다.
오늘은 상체를 60도까지 세웠더니 중환자실 창밖으로 푸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원한 지 3주일 만에 처음으로 보는 바깥세상 풍경이다.

병원에 입원하게 된 후 처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그 날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때문에 하늘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뭔가 쫓기는 듯 살아가고, 반복된 삶은 금새 피로해지고 지치게 만든다.
환자가 되어 하늘을 보는 것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은 하루가 그에게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주 가벼운 일들이 간절해지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생각 속에 사로잡히게 될까?
책 속 글쓴이 또한 스스로의 모습과 위치를 똑바로 보기 힘들어 했다.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자신 또한 병원에서 나갈 수 없게 되진 않을까 순간의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전신마비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지만 스스로와의 기나긴 싸움을 충분히 예감했고 인내했고 기적처럼 일어났다.

사람들은 예견하지 못했던 일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계획했던 것에서 어긋나는 일들을 용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쉽게 슬픔에 빠진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과 마주하게 되면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오게 됐는지 인정할 수 없게 된다. 또 그것을 버텨내지 못하는 소약한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절망 앞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도 희망을 포기하고 ‘기적’따위는 바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조우한 그의 모습은 기적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끊임없이 재활치료에 매달리면서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희망을 심고 가꾸기를 반복 했다.
절망의 끝에서 기적을 꿈꾸었을 그의 의지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삶 속에서 ‘기적’을 바라기도 한다. 억만장자가 되어 세계를 누비고 원하는 직업에, 유창한 외국어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지는 꿈.
그에게 ‘기적’은 ‘걸을 수 있는 것’, ‘서 있을 수 있는 것’이었으리라.

수많은 요행을 바라며 살아가는 내 삶이, 쉽게 지치고 포기하는 내 삶이 그의 힘찬 ‘걸음’을 통해 다시 바라보기를 한다.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그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를 당한 것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불행이라는 점에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정도 부상을 입었는데 목숨을 건지고 또 이만큼 회복한 것도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한 후, 그는 걸음마를 다시 배웠고 낯설고 새로운 삶과 조우했다. 
육체의 죽음으로부터 기적을 경험했고, 평생 누워서 살아야만 할지도 몰랐던 암담한 현실에서 그는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게 됐다.
치료 도중 운동치료실에서 만난 아이의 고통은 환자 진료 시 보아왔던 모습보다 더 사실적이었으며 더 고통스러웠고 그런 아픔의 시간들은 의사로서의 그의 삶을 한층 깊고 애착을 갖게 했다. 그는 자신의 좌절 앞에서 더 많은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적을 얻었다.

책은 ‘살아있는 것은 다 소중하다’는 진리부터, 삶의 언덕과 모서리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내게 희망, 자기반성의 길을 찾아준다.
깊은 밤 밤하늘의 수많은 이름 모를 별들처럼, 사는 방법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자기만의 ‘기적’을 바라며 사는 오늘이 행복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