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으로 시작한 영어 - 당신에게 희망의 한 조각을 드립니다
송은정 지음, 김종원 주인공 / 글단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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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초콜릿’이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과 부드러움은 내 미각과 촉각을 곤두세운다. 많이 먹으면 체중이 증가하고 충치를 유발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초콜릿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처음 초콜릿 맛을 알게 됐을 때의 나처럼 한 소년 역시 그 맛에 반하게 된다.
태어나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달콤하고 매력적인 맛.
이 맛에 끌려 자신에게 초콜릿을 준 사람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평생 동안 ‘영어’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뭔가를 배운다는 것이 초콜릿을 먹는 것처럼 달콤하게 다가온다면 어떨까? 아마도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쉽게 다가올 것만 같다.
새해가 밝아오거나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때 나는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항상 그 자리이지만 시작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 것 같은 내 영어 공부법.
공부라는 것이 쉽게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영어 앞에서 나는 배고픔에 허덕거리는 가난한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자신감이 없고 뚜렷한 방향도 잡지 못한 채 흔들리는 것만 같다.

<초콜릿으로 시작한 영어>란 책은 ‘영어’울렁증에 사로잡힌 내게 희망을 전한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의 영어 고백서 정도가 될 것도 같다.
책은 영어를 배우고자 했던 소년이 청년으로 다시 노인으로 변화하는 삶의 과정까지 함께 그리고 있다.
처음 초콜릿의 맛을 알게 됐을 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초콜릿이란 영문을 뚫어지게 쳐다봤던 소년.
초콜릿의 달콤함에 이끌리고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의 품을 떠나게 되면서 낯선 나라의 언어인 ‘영어’를 배우고자 마음먹는다. 
 

지금 내가 사는 오늘은 배고픔을 느끼기에는 풍족한 하루를 살지만 소년의 하루는 고단하고 버거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환경만을 탓한 채 스스로를 내려놓기도 하지만 영어에 대한 배움의 의지로 한 평생을 살았던 그의 삶이 경이롭게까지 느껴졌다.
‘영어’와 관련된 일자리를 구하고 문화와 생김새가 다른 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소중히 여겼던 책 속의 그.

문득 일생에서 목표 한 가지만 바라보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됐을 때의 나처럼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은 없을지.  

영어만을 위해 자신의 하루를, 일상을 할애하고 바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노력하는 한, 능력은 분명 향상되고 있다. 지나친 욕심이나 조바심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너무 서두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나는 늘 눈에 보이는 것만 좇아온 것 같다.
그것이 냉정하게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은 좌절하고 포기하면서 앞으로가 아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천천히’란 말은 여전히 어렵다.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고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도 서질 않을 때가 많다.
<초콜릿으로 시작한 영어>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삶과 공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의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잠식시켜 준 것도 같다. 

 

배움의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책 속에서 가장 와 닿았던 한 문장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즐거움, 그것이 ‘배움’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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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내가 좋아 - 좋은 습관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4
장성자 지음, 박영미 그림 / 소담주니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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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늘 삶에 지쳐 바쁘게 사는 부모님이셨지만 나는 그 분들에게 ‘웃음’을 배웠던 것 같다.
늘 웃는 모습.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웃음을 머금었던 어린 나.
‘웃음’은 나도 모르게 길들여져 버린 ‘습관’이었다.
어린 나는 ‘습관’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잘 웃던 나는 어른이 되면서 차츰 웃음을 잃었고, 다른 습관들이 생겨났다.
괜스레 인상을 찡그리거나 말하는 무심코 못된 말을 툭툭 던지게 된 것.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습관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것 같다.

<달라진 내가 좋아>란 책은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책이기도 했다.
좋은 습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반성을 유도한다.
물론 나도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일상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됐다.

책 속에는 동네 개를 발로 차고 욕하는 아이와 못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아이, 자기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리한다.
스스로의 모습이 바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변화해 나간다.
화가 난다고 발로 차고 괴롭혔던 개가 반대로 자신을 겁주고 괴롭히는 꿈을 꾸고 난 후 아이는 변화한다.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던 아이는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학교 준비물을 늘 깜박하던 아이는 수업 시작 전 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예쁜 말, 고운 말을 쓰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다 성장한 내 모습을 되뇌어 본다.
겉모습은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어린 채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감정 컨트롤에 어색하고 분위기에 쉽게 휩싸이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좋은 습관’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장한 나도, 책 속 어린 아이들도 좀 더 노력해야 될 것 같다. 못된 말 대신 예쁜 말을, 타인에게 소리 내어 먼저 인사를 건네어 보기도 하고 말이다.
<달라진 내가 좋아>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지만 어른인 내게도 뜻 깊은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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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행복해 - 배려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3
노지영 지음, 조경화 그림 / 소담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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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뱃속에 있는 아가에게 ‘너 때문에 행복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는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내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누군가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작지만 큰 진리가 요즘 나를 웃음 짓게 한다. 


‘너 때문에 행복해.’라는 말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됐을 때 나는 같은 제목의 책과 만났다. 사실 예전에는 어린이 도서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될 준비를 하면서 아이의 눈을 닮고만 싶어졌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어린이들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싶었다.


<너 때문에 행복해>란 책은 ‘배려’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려’라는 것은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내가 아닌 타인부터 생각하는 것, 문득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만원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일종의 배려가 될 수 있고,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는 것도 하나의 배려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쉽게 옮기지 못하는 것, 내가 실생활에서 느낀 배려의 정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앞선다.
머리로 잡다하게 생각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맑은 눈과 마음은 행동에 거침이 없는 것 같다.

비오는 날, 다들 무심코 지나쳐가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씌워드린 아이의 동심, 다문화 가정의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는 친절, 눈 덮인 골목길을 함께 치우는 사람들 간의 정은 각박하다고만 느끼게 되는 삶 속에서 진정한 ‘배려’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진실’과 닮아 있는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된 듯하다.  


<너 때문에 행복해>란 책을 보면서 순수함을 지닌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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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눈동자
알렉스 쿠소 지음, 노영란 옮김, 여서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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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몸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는 것, 어른이 되는 것, 삶에 순응하게 되는 것.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길 바랐다.  

뭐든 척척 해내는 어른은 어쩌면 어린 내게 신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은 모험의 세계 같기도 했던 것 같다.

<노래하는 눈동자> 책 속에는 두 명의 어린 아이가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말한 그대로를 믿는 여동생 비올렛과 어쩌면 할머니의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
책 속의 ‘내’가 악몽을 꾸던 날 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죽어서 벌이 될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여동생은 믿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식탁위로 날아온 말벌 한 마리를 발견한다. 여동생은 그 말벌을 할머니라고 믿지만 나는 어쩌면 우리를 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죽여 버린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는 여동생과 나는 말벌을 위한 장례식을 준비한다. 여동생과 함께 나누는 할머니의 기억은 내가 생각하기엔 ‘거짓’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라 말하기에는 평생 쉬지도 못하고 고무공장에서 고무줄을 만들었던 할머니의 삶이 가엾다. 
 

 

문득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의구심이 생겼다.  

평생 북을 쳤다고 손자들에게 말해왔던 책 속 할머니의 이야기는 모두 가짜인 것일까?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들었던 생각은 현실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평생 하고 싶어 했던 일과 다르더라도 실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있었다.  

물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길만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삶은 그랬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꼭 그 길로 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 길과 가장 가까운 곳에 닿을 수 있다는 말을. 
 


책 속 할머니가 어린 손자들에게 이야기했던 북에 대한 이야기는 할머니의 이상 속의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무공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북을 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된 하루를 견뎠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손자들에게는 평생 이루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했던 것이리라. 
 


책 속의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가짜’라고 여동생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아직 확실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년은 할머니가 살았던 고무공장에서의 일상만이 ‘진짜’이고 북을 치며 살고 싶어 했던 꿈을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년은 그렇게 ‘성장’한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부재를 인정하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곰곰이 재해석해보기도 하면서.
동화를 닮은 이야기를 통해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소년의 모습과 조우했다.  

아직은 서툴고 미흡하지만 언젠가는 그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당당한 어른이 되어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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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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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은 이러한 모습이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내게는 상상 속의 가족이 존재했다.  

양복을 입은 자상한 아빠와 앞치마를 하고 활짝 웃는 엄마, 사이좋은 오누이 혹은 형제의 모습. 하지만 나의 가족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아이었을 때부터 그려왔지만 부합될 수 없었던, 현실 속 가족의 모습이 멀어지게 되면서 내게는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졌다.
내가 ‘새로운 가족’을 꾸리게 된 것은 대학을 입학한 후 자취생활을 하면서 부터였다.
항상 작업복 차림에 피곤함이 묻어있는 지친 어깨를 가진 아빠는 관광지에서 활짝 웃는 사진으로 바뀌었고, 각종 반찬과 잘 익은 김치는 엄마의 흔적을 대신했다. 남동생은 가끔 군에서 보내오는 몇 통의 편지와 전화통화로 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내 삶 속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고령화가족]이란 책과 처음 조우했을 때 사실 나는 불편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터무니없이 사실적인 말투, 이야기 속 가족들의 모습은 ‘부조화’였다. 어쩌면 사회 부적응자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이가 좋지 못한 형제, 그 사이에 놓인 엄마, 그리고 엄마의 딸과 조카.
위태로운 가족을 바라보며 문득 내가 떠올린 것은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 나름대로 대체해버린 ‘새로운 가족’이었다. 사진 속 웃기만 하고 있는 아빠는 오늘의 날씨는 어떠한지, 공부는 잘되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등을 묻지 않은 채 그저 웃기만 했다. 잘 익은 김치가 자꾸만 익어 먹지 못하게 됐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찬에서는 더 이상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함께 먹는 밥이 그리워질 때쯤, 전화로 들려오는 집에 오겠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더 이상 귀찮지 않았다. 나는 일상적으로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목소리에 대뜸 고향집에 다니러 가겠다고 대답했다. 먹고 싶은 음식 몇 가지를 나열하는 것과 함께.
마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꾸며 수년을 살아온 책 속 주인공이 그의 엄마와의 통화에서 닭죽을 먹으러 가겠다고 흔쾌히 선심 쓰 듯 대답한 것처럼.
한동안 떠나있었던 밥상과 다시 마주했을 때 음식들은 천천히 내 미각을 자극했다. 마치 꽥 소리 지르며 아빠를, 엄마를 자극했던 내 모습처럼. 
 


최근의 엄마에겐 의아한 대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살면서부터 엄마에게 알 수 없는 활기가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책 속의 엄마도 동네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과가 있는 큰아들은 엄마의 집에 얹혀산 지 오래고,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독립해서 나간 둘째 아들은 마흔이 넘어 병약해진 모습으로 엄마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몇 번의 이혼을 거듭하면서 딸아이까지 데리고 엄마의 집으로 찾아든 딸까지. 그들은 평균나이 사십 구세에 ‘가족’이란 테두리를 또다시 구성했다. 서로의 부모가 다르다는 비밀을 품에 안은 채. 
 

 

 

날의 삼겹살을 시작으로 엄마는 거의 한 끼도 빠짐없이 고기를 상 위에 올렸다.  

항상 엄마의 입에서는 ‘먹고 싶은 게 없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누가 봐도 살이 포동하게 오른 자식들이지만 뭐든 더 먹이고 싶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이야기 속 엄마 역시 자식들에게 풍족한 ‘음식’을 먹인다. 엄마의 밥상은 으르렁대고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자식들이 살을 마주대고 앉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조금씩 가슴 속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몇 달 동안 세끼 꼬박꼬박 고기반찬만 만들어 내는 엄마를 나는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엄마가 혹 미친것은 아닐지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부모의 작은 관심조차도 가볍게 치부해버린 내 모습들이 스쳤다.  


소설 [고령화가족]을 읽으며 나는 ‘밥’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나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기에 밥벌이를 위해 일터에 나가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함께 밥을 먹기 위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구성원들은 공존한다. 때로는 웃는 모습으로 다정하게, 혹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가겠다.’는 주인공의 말을 기억한다.  

헤밍웨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내뱉었다는 완벽한 문장이 결국은 하나인 것처럼, 보잘 것 없고 자칫 위태로워 보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내게 허락한 삶의 일부인 그들을 ‘가족’이라 말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스무 살의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 못했다. 매끼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이 가족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제 나는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주어진 내 삶 속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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