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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눈동자
알렉스 쿠소 지음, 노영란 옮김, 여서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몸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는 것, 어른이 되는 것, 삶에 순응하게 되는 것.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길 바랐다.
뭐든 척척 해내는 어른은 어쩌면 어린 내게 신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은 모험의 세계 같기도 했던 것 같다.
<노래하는 눈동자> 책 속에는 두 명의 어린 아이가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말한 그대로를 믿는 여동생 비올렛과 어쩌면 할머니의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
책 속의 ‘내’가 악몽을 꾸던 날 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죽어서 벌이 될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여동생은 믿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식탁위로 날아온 말벌 한 마리를 발견한다. 여동생은 그 말벌을 할머니라고 믿지만 나는 어쩌면 우리를 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죽여 버린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는 여동생과 나는 말벌을 위한 장례식을 준비한다. 여동생과 함께 나누는 할머니의 기억은 내가 생각하기엔 ‘거짓’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라 말하기에는 평생 쉬지도 못하고 고무공장에서 고무줄을 만들었던 할머니의 삶이 가엾다.
문득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의구심이 생겼다.
평생 북을 쳤다고 손자들에게 말해왔던 책 속 할머니의 이야기는 모두 가짜인 것일까?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들었던 생각은 현실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평생 하고 싶어 했던 일과 다르더라도 실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있었다.
물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길만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삶은 그랬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꼭 그 길로 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 길과 가장 가까운 곳에 닿을 수 있다는 말을.
책 속 할머니가 어린 손자들에게 이야기했던 북에 대한 이야기는 할머니의 이상 속의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무공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북을 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된 하루를 견뎠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손자들에게는 평생 이루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했던 것이리라.
책 속의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가짜’라고 여동생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아직 확실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년은 할머니가 살았던 고무공장에서의 일상만이 ‘진짜’이고 북을 치며 살고 싶어 했던 꿈을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년은 그렇게 ‘성장’한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부재를 인정하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곰곰이 재해석해보기도 하면서.
동화를 닮은 이야기를 통해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소년의 모습과 조우했다.
아직은 서툴고 미흡하지만 언젠가는 그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당당한 어른이 되어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