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행복해 - 배려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3
노지영 지음, 조경화 그림 / 소담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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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뱃속에 있는 아가에게 ‘너 때문에 행복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는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내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누군가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작지만 큰 진리가 요즘 나를 웃음 짓게 한다. 


‘너 때문에 행복해.’라는 말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됐을 때 나는 같은 제목의 책과 만났다. 사실 예전에는 어린이 도서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될 준비를 하면서 아이의 눈을 닮고만 싶어졌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어린이들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싶었다.


<너 때문에 행복해>란 책은 ‘배려’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려’라는 것은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내가 아닌 타인부터 생각하는 것, 문득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만원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일종의 배려가 될 수 있고,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는 것도 하나의 배려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쉽게 옮기지 못하는 것, 내가 실생활에서 느낀 배려의 정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앞선다.
머리로 잡다하게 생각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맑은 눈과 마음은 행동에 거침이 없는 것 같다.

비오는 날, 다들 무심코 지나쳐가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씌워드린 아이의 동심, 다문화 가정의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는 친절, 눈 덮인 골목길을 함께 치우는 사람들 간의 정은 각박하다고만 느끼게 되는 삶 속에서 진정한 ‘배려’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진실’과 닮아 있는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된 듯하다.  


<너 때문에 행복해>란 책을 보면서 순수함을 지닌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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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눈동자
알렉스 쿠소 지음, 노영란 옮김, 여서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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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몸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는 것, 어른이 되는 것, 삶에 순응하게 되는 것.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길 바랐다.  

뭐든 척척 해내는 어른은 어쩌면 어린 내게 신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은 모험의 세계 같기도 했던 것 같다.

<노래하는 눈동자> 책 속에는 두 명의 어린 아이가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말한 그대로를 믿는 여동생 비올렛과 어쩌면 할머니의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
책 속의 ‘내’가 악몽을 꾸던 날 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죽어서 벌이 될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여동생은 믿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식탁위로 날아온 말벌 한 마리를 발견한다. 여동생은 그 말벌을 할머니라고 믿지만 나는 어쩌면 우리를 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죽여 버린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는 여동생과 나는 말벌을 위한 장례식을 준비한다. 여동생과 함께 나누는 할머니의 기억은 내가 생각하기엔 ‘거짓’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라 말하기에는 평생 쉬지도 못하고 고무공장에서 고무줄을 만들었던 할머니의 삶이 가엾다. 
 

 

문득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의구심이 생겼다.  

평생 북을 쳤다고 손자들에게 말해왔던 책 속 할머니의 이야기는 모두 가짜인 것일까?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들었던 생각은 현실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평생 하고 싶어 했던 일과 다르더라도 실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있었다.  

물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길만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삶은 그랬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꼭 그 길로 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 길과 가장 가까운 곳에 닿을 수 있다는 말을. 
 


책 속 할머니가 어린 손자들에게 이야기했던 북에 대한 이야기는 할머니의 이상 속의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무공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북을 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된 하루를 견뎠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손자들에게는 평생 이루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했던 것이리라. 
 


책 속의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가짜’라고 여동생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아직 확실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년은 할머니가 살았던 고무공장에서의 일상만이 ‘진짜’이고 북을 치며 살고 싶어 했던 꿈을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년은 그렇게 ‘성장’한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부재를 인정하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곰곰이 재해석해보기도 하면서.
동화를 닮은 이야기를 통해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소년의 모습과 조우했다.  

아직은 서툴고 미흡하지만 언젠가는 그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당당한 어른이 되어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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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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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은 이러한 모습이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내게는 상상 속의 가족이 존재했다.  

양복을 입은 자상한 아빠와 앞치마를 하고 활짝 웃는 엄마, 사이좋은 오누이 혹은 형제의 모습. 하지만 나의 가족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아이었을 때부터 그려왔지만 부합될 수 없었던, 현실 속 가족의 모습이 멀어지게 되면서 내게는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졌다.
내가 ‘새로운 가족’을 꾸리게 된 것은 대학을 입학한 후 자취생활을 하면서 부터였다.
항상 작업복 차림에 피곤함이 묻어있는 지친 어깨를 가진 아빠는 관광지에서 활짝 웃는 사진으로 바뀌었고, 각종 반찬과 잘 익은 김치는 엄마의 흔적을 대신했다. 남동생은 가끔 군에서 보내오는 몇 통의 편지와 전화통화로 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내 삶 속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고령화가족]이란 책과 처음 조우했을 때 사실 나는 불편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터무니없이 사실적인 말투, 이야기 속 가족들의 모습은 ‘부조화’였다. 어쩌면 사회 부적응자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이가 좋지 못한 형제, 그 사이에 놓인 엄마, 그리고 엄마의 딸과 조카.
위태로운 가족을 바라보며 문득 내가 떠올린 것은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 나름대로 대체해버린 ‘새로운 가족’이었다. 사진 속 웃기만 하고 있는 아빠는 오늘의 날씨는 어떠한지, 공부는 잘되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등을 묻지 않은 채 그저 웃기만 했다. 잘 익은 김치가 자꾸만 익어 먹지 못하게 됐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찬에서는 더 이상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함께 먹는 밥이 그리워질 때쯤, 전화로 들려오는 집에 오겠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더 이상 귀찮지 않았다. 나는 일상적으로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목소리에 대뜸 고향집에 다니러 가겠다고 대답했다. 먹고 싶은 음식 몇 가지를 나열하는 것과 함께.
마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꾸며 수년을 살아온 책 속 주인공이 그의 엄마와의 통화에서 닭죽을 먹으러 가겠다고 흔쾌히 선심 쓰 듯 대답한 것처럼.
한동안 떠나있었던 밥상과 다시 마주했을 때 음식들은 천천히 내 미각을 자극했다. 마치 꽥 소리 지르며 아빠를, 엄마를 자극했던 내 모습처럼. 
 


최근의 엄마에겐 의아한 대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살면서부터 엄마에게 알 수 없는 활기가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책 속의 엄마도 동네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과가 있는 큰아들은 엄마의 집에 얹혀산 지 오래고,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독립해서 나간 둘째 아들은 마흔이 넘어 병약해진 모습으로 엄마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몇 번의 이혼을 거듭하면서 딸아이까지 데리고 엄마의 집으로 찾아든 딸까지. 그들은 평균나이 사십 구세에 ‘가족’이란 테두리를 또다시 구성했다. 서로의 부모가 다르다는 비밀을 품에 안은 채. 
 

 

 

날의 삼겹살을 시작으로 엄마는 거의 한 끼도 빠짐없이 고기를 상 위에 올렸다.  

항상 엄마의 입에서는 ‘먹고 싶은 게 없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누가 봐도 살이 포동하게 오른 자식들이지만 뭐든 더 먹이고 싶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이야기 속 엄마 역시 자식들에게 풍족한 ‘음식’을 먹인다. 엄마의 밥상은 으르렁대고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자식들이 살을 마주대고 앉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조금씩 가슴 속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몇 달 동안 세끼 꼬박꼬박 고기반찬만 만들어 내는 엄마를 나는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엄마가 혹 미친것은 아닐지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부모의 작은 관심조차도 가볍게 치부해버린 내 모습들이 스쳤다.  


소설 [고령화가족]을 읽으며 나는 ‘밥’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나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기에 밥벌이를 위해 일터에 나가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함께 밥을 먹기 위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구성원들은 공존한다. 때로는 웃는 모습으로 다정하게, 혹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가겠다.’는 주인공의 말을 기억한다.  

헤밍웨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내뱉었다는 완벽한 문장이 결국은 하나인 것처럼, 보잘 것 없고 자칫 위태로워 보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내게 허락한 삶의 일부인 그들을 ‘가족’이라 말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스무 살의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 못했다. 매끼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이 가족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제 나는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주어진 내 삶 속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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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
김정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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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소망은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변하고, 시험도 치지 않고,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흐르는 눈물도 감춰야 하고 아픔 따위를 내색하는 일에 서툴게 되고 밥벌이의 고통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것, 삶에 대한 책임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린 내게는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는 ‘어른의 삶’은 놀랍고 신비한 것, 그것뿐이었던 것 같다. 다 큰 어른들이 흘리는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나는 어린아이인 채로 성장했다.

처음 책 <아버지의 눈물>과 마주했을 때 어린 내 눈에 비친 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항상 허름한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있는 모습, 피곤한 몸을 이끌며 조업 준비를 하던 아빠의 충혈 된 두 눈.
매년 여름이면 아빠의 두 눈엔 핏기가 더했다. 늦은 오후 조업을 나가 새벽이면 돌아오셨기 때문에 잠든 모습을 보는 게 더 익숙했지만 피로에 지친 붉은 눈은 오래토록 내 기억 속에 잔재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꿨던 어린 내게는, 삶에 지친 아빠보다 활기차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아빠가 더 필요했다. 책 속 상길과 상우형제처럼 나는 서서히 아빠와 멀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커가면서 몇 마디 주고받는 이야기가 어색해지고 함께 식사를 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나의 성장이 부모에게는 어떤 의미이고 시간인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사회인이 되었고 가정을 꾸렸다.
부모가 되어보지 못하면 절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가.
가난 때문에 자식을 다른 곳에 맡기고, 사는 게 바빠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함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우리네 부모라는 걸 철없던 나는 알지 못했다.
책을 읽는 내내 ‘부모’의 삶을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처연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아 머리에 각인되는 느낌이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흔들림의 연속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잘못된 하나의 선택에 우리의 삶은 쉽게 흔들린다.
책 속 아버지 흥기도 흔들린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를 이용하려는 값싼 양주에도 준하지 않는 우정이라는 이름과 성장해가는 자식들에게서 느껴지던 안도감과 두려움이 아버지를 흔들리게 했다. 무능한 아버지, 남편이기 이전에 한 가족의 아들이자 자랑스러웠던 동생인 그가 돌이키기 힘든 곳으로 내몰린다.
나는 두려웠다.  

모두의 아버지와 같이 느껴지던 그의 마지막이 비겁해질까봐, 누구에게도 그동안 열심히 살았노라 떳떳하게 말할 수 없어질까 봐. 그가 다시는 웃을 수 없을까 봐서.
하지만 부모라는 이름의 그는 강했다. 뜨거운 눈물을 쏟은 뒤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떡볶이 장사를 하며 힘들지만 행복하게 사는 누나에게, 자신만 믿고 오늘까지 함께 손을 붙잡고 가정을 이어와 준 아내에게, 길을 잃고 헤매다 어렵게 답을 찾은 자식에게.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었다. 다시 무엇을 해 아내를 책임지고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할 것인가. 아내가 그처럼 집착하는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어쨌거나 마지막 순간까지 최소한 비루하게는 살지 말고,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기틀은 되어 주고 싶은 마음. 아무리 힘들어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은 지켜 줘야 했다. 그래야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책 속 아버지의 변화를 통해 대학 입학 후, 살아온 이야기를 진지하게 풀어놓으시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났다. 무뚝뚝한 아빠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한스러운 고백에 스무 살의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기억은 별처럼 내 어딘가에 촘촘히 박혔다.
나는 이제 안다. 어른도 울고 싶을 때는 소리 지르고 눈물 흘릴 수 있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때로는 그들도 아버지에게 위로받고 싶은 늙은 자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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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백 문학동네 청소년 3
김리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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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고 ‘학생’을 정의한다.

학생답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좁은 교실 안에서 책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인 채 공부하는 모습만이 우리가 생각하는 ‘학생다운’것일까?

나의 청소년기를 돌이켜보면 별다를 게 없었다. 어촌 마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게 친구는 늘 같은 아이들로 한정되었고 공부는 대학에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특별하릴 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내 앞에 십대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 <어떤 고백>은 풋풋하게 다가온다. 책은 십대들만의 고민과 소리를 담았다. 책 속 청소년들은 부모님들의 잔소리를 걱정하고 떨어지는 성적을 고민하며, 친구와의 어긋난 관계를 속상해하기도 하면서 말 못하고 앓는 사랑의 열병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요즘 아이들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좀 더 풍요로운 것에 익숙해져서 부족한 것에는 낯선 아이들, 자기 주관이 또렷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쉽게 생각하고 쉬운 것만 찾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들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가볍게만 치부해버렸다.
<어떤 고백>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고백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느꼈던 이질감을 조심스럽게 고백하게 되는 계기도 되어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두근거리는 그들의 성장기를 보면서 자신의 삶에 적극적이고 당찬 모습에 새삼 놀라웠으니까.
비싸고 좋은 것, 화려하고 조건 앞에서 흔들리는 어른들의 사랑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감정을 존중하는 모습은 풋풋하고 순수한 십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매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책 속에는 멋을 부리는 것에 어색한 평범한 남학생 용하와 그를 좋아하는 선아, 잘 생기고 노래 잘 부르고 옷 잘 입는 찬이와 그의 여자 친구 미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말의 뜻에 공감이 갔다.

<어떤 고백>은 학창시절 교과서 앞에 몰래 얹어두고 읽었던 하이틴 소설과 닮았다. 책 속 이야기가 모두 다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주인공들의 감정에 깊숙이, 쉽게 동화되었던 십대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까.
책을 통해 마주했던 여러 주인공들처럼, 입시 지옥에 갇힌 채 반복된 일상을 사는 ‘학생’이란 이름의 그들에게 좀 더 자유로워져도 좋다고, 그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마음껏 누리라고 말하고 싶다. 스스로의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되 자신의 삶의 모든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도.
순수한 그들의 눈이 허영과 사치를 보기 이전에,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의 추억도, 친구와의 우정도 먼저 볼 수 있길.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빛나는 십대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왠지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까마득하게만 여겨졌던 , 다소 평범하다고 느꼈던 나의 학창시절이 새롭게 다가온 것만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싱그러움이 다가올 봄을 더 재촉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풍성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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