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은 지금 파업 중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21
장 프랑수아 뒤몽 지음, 이주희 옮김 / 봄봄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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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반란, 그리고 화해_

 

요즘은 어린이 도서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문득 나도 아이의 생각,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사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_

어린이 도서들이 친근하고, 오히려 깊은 감동을 유발하는 것만 같다.

나는 요즘, 달콤한 동화같은 책들을 통해 잊고 있던 동심을 만끽해보기도 하고, 유쾌한 이야기 속에서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경험해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내 생활을 조금씩 반성해보기에 이른다.

 

<양들은 지금 파업 중>은 털이 보송보송한 게 매력적인 양들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풀밭 끝 농장에서 풀을 먹고 순하게 자라는 양들은 겨울마다 털을 깎고 벌거숭이가 된다.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끝날 무렵, 이른 아침 풀밭이 얼음으로 덮이면 양들은 털이 없어 추위에 떤다.

그런 나날이 반복되자 양들이 털을 깎지 않겠다고 파업하기에 이른 것_

 

농장 내에서는 양과 그들을 지키는 양치기 개들을 옹호하는 동물 친구들이 두 편으로 나뉘게 된다.  

서로 할퀴고 힐난하면서 그들은, 상처는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닭장에서, 토끼장에서, 마구간에서 달그락 달그락거리며 그들이 마련한 새로운 대안은 양들이 더이상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는 예쁜 새 옷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 겨울이 찾아오고 양들은 털을 깎는다. 하지만 친구들이 선물해 준 따듯한 옷 덕분에 겨울이 예전처럼 춥지만은 않다.

 

한 편의 동화가 작은 진리를 선물해준다.

자신만의 말이 옳고 생각이 바르다고 목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를 위한 주장을 하되, 남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 것, 함께 조금씩 양보해 합의점에 도달해가는 모습은 이기심으로 얼룩진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혼자만 옳다고 아집을 부리는 대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따듯한 마음을 배워야 할 때다.

 

귀여운 양들과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농장 친구들이 어린이들에게도, 어른의 겉모습을 갖춘 내게도 많은 생각을 전해준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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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보름달문고 23
김려령 지음, 노석미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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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으로 가족을 말하다_

 

내게 '가족'은 의자와 세트를 이루는 네모난 식탁이 아닌 짧은 다리의 동그란 상을 생각하게 한다.

보잘 것 없이 평범한 모습으로 둘러싸인 우리 가족은 내 가슴에 사랑을 담게 해주고 슬픔을 이겨내는 법,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방법, 사람을 대하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주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어부인 아빠의 작은 배가 검푸른 바다 위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등대에 오롯이 앉아 엄마와 둪 살 터울의 남동생과 함께 바라본 적이 있었다.

힘들게 일하는 아빠의 삶을 보면서 나는 글이 아닌, 눈으로 가족을 배웠고 삶을 배웠던 것 같다.

때로는 말에 상처를 입고, 가깝다는 이유로 더 소홀해지는 관계 '가족'_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때 있었던 친부모와의 헤어짐. 그 뒤에 온 엄마 아빠와의 만남. 이런 것들이 나는 정말 힘들다.

아기는 엄마 뱃속이 아니라 잘 가꾼 꽃에서 나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에게만 나눠 주는 곳, 그래서 친부모라는 말도, 입양이라는 말도 없는 곳, 그런 내 하늘 마을에서 살고 싶다. p.101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의 하늘이는 소위 가슴으로 낳았다는 입양아다.

평범한 가족이라는 이름 대신 입양아라는 시선을 받으며 자란 하늘이에게는 가슴 속에 해마가 산다.

친부모의 존재를 모른 채 입양 된 하늘이는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선천성심장질환 수술을 받아 가슴에 긴 해마를 갖게 되었다.

해마는 하늘이에게 위로를 주고, 마음을 나누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희망이 되어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준다.

하늘이는 자신을 입양아로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엄마라는 이름이. 입양으로 꾸려낸 가족이 불편하다.

어쩌면 책 속 하늘이는 입양이 만들어 낸 가족은, 자신을 보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때론 정형화 된 구성원으로 만들어버리는 듯 한 느낌을 받았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는 '시간'이라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가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를 배워나간다.

자신이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의 얼굴과 매일 마주하는 집이 얼마나 편한 곳인지, 스스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어주는지를 알아나간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따스함을 배워나간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내내 내 가슴 속에도 작은 해마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상처입은 자국은 해가 바뀌면 서서히 옅어지겠지.

하지만 마음이 상처받은 곳은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된다.

시선이, 한 마디의 말과 글이 얼마나 아픈 상처가 될 수 있을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껴보았다.

입양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생소한 우리네 삶에서 하늘이의 일상이 조금은 더 외로웠으리라 생각했다.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다. 여전히 동심을 간직하고 픈, 철들기에는 아직 부족한 어른인 나는 이 책을 통해 마음이 참 따스해진 것 같다.

사랑을 나누고, 표현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 편견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내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친부모'라는 이름으로 늘 내곁에서 걱정과 사랑을 아끼지 않는 내 부모님께도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가정을 갖고 자식을 키우고,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지금의 내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돌아보게 되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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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만난 175가지 행복이야기
장현경 지음 / 성안당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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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더 무모해져도 좋은 곳, 뉴욕_

 

내가 아는 '뉴욕'은 화려한 도시, 당당한 도시였다.

그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은 스스로 오롯하게 빛날 것이라 생각했고 성공만을 위해, 앞만보고 달리는 외로움 따위는 모를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뉴욕이 궁금해졌다.

상상만으로도 가슴 떨리게 하는 그 곳은 어쩌면 내게 이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뉴욕을 만났다.

자신감 넘쳐보이는 도도한 도시 뉴욕,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화려한 조명아래 반짝이는 수많은 상점과 소탈한 뒷골목까지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면도, 화려한 면도, 인간적인 면도 모두 갖춘 도시,

그 곳에서라면 조금 더 무모해져도, 조금 더 외로워해도 좋을 것 같았다.

책 안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는 타임스퀘어의 화려함을 조금 벗어나 키 큰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비밀의 정원 '브라이언 파크'를 만났다.

내가 사는 이 곳의 놀이공원에서나 볼법한 회전목마가 여유로이 돌아가고 벤치에 앉아 책 읽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곳을_

문득, 그 곳에서라면 빠르게만 지나가는 뉴욕의 시간을 느긋하게나마 잡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두꺼운 책 한 권을 옆에 끼고 하루종일 나만의 시간에 취해보고만 싶었다.

 

여러 인종, 문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다민족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곳, 뉴욕_

진정으로 섞이지 못한 채 공존만 하는 사회, 뉴욕_

뉴욕은 하나의 색을 갖고 있는 도시가 아닌 것 같았다.

때론 밝은 색으로, 때론 조금 어두운 색으로 둘러싸인 도시_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될 정도의 소리는 소음이라 생각하는, 코를 훌쩍거리는 것보다 시원하게 큰소리로 한 번 풀어버리는게 더 예의에 맞는 도시,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발음으로 이름을 불러버리는 도시, 그래서 소중한 누군가의 이름을 또박또박 소리내어 불러보고만 싶어지는 도시...

종종 사무치는 외로움에 빠져들게 하는 곳이 뉴욕이었다. 그렇지만 꿈을 꿀 수 있는 도시가 뉴욕이었다.

 

꿈을 찾아 떠나 온 전세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다양한 나라의 음식, 문화가 동화되어 있는 곳, 뉴욕은 매력적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도심을 벗어나면 숨겨져 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고, 클로이스터같은 곳을 어렵지 않게 접해볼 수 있다.

 

이 책은 한 권의 뉴욕생활보고서 같았다.

뉴욕에서의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팁, 뉴욕에서 발길을 닿아보길 바라는 곳, 뉴욕을 대표하는 먹거리와 카페, 그리고 박물관을 찾는 법 등등이 지은이의 경험을 통해 쉽게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책을 읽는 동안 더이상 내 안의 뉴욕이 상상만의 도시는 아닌 것 같아 편하게 느껴졌다.

미술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 곳을 찾은 엄마가 스케치북과 연필만 든 아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도록 하던 모습은 내게도 동화되고 싶은 뉴욕의 풍경이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을 지나 한적한 골목에서 퍼져 나오는 커피향기가 있는 뉴욕, 어쩌면 그 곳이기에 소박한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여러 불빛들이 모여 커다란 빛을 형성하는 곳이 뉴욕인 것 같았다.

밝고 어두운 모습을 모두 갖춘, 꿈을 이루기에 충분히 행복한 곳 뉴욕에 나의 발길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보았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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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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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아무런 소리없이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게 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음식을 먹어야 허기를 면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글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들어야만 할까?

과연, 슬픔 속에서 헤어나올 수는 있을런지_

 

내 앞에 <영란>이 놓여있다.

여름날 풀내를 맡으며 여유롭게 산을 오르내리고 있을 무렵, 사랑하는 내 아이가 죽었다.

그리고 어둠이 모든 것을 가져가버릴 듯한 어느 겨울 날 밤,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장미 향기 가득하던 그 곳에서 '나'만 홀로 잔인하게 붉어져버린 장미를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설 <영란> 속의 그녀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냈다.

아무런 소리없이, 흔적없이, 예고없이...

자신 앞에 갑작스레 놓여진 슬픔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남은 건 함께 공유하던 추억과 웃음과 말소리와 남편이 남긴 얼마간의 빚과 검붉게 피어있는 장미 뿐이다.

그녀는 밥을 먹지 않았다. 아니 먹지 못했을 것이다.

동네 슈퍼에서 노인에게 막걸리와 빵을 사와서 삶이 허기질 때, 기억이 솟아나고 눈물이 흐를 때마다 먹곤 했다.

그리고 남편의 출판사에서 밀린 인세를 전하지 못한 작가에게 연락을 한다.

"한상준이 돈을 안 주고 죽어버렸잖아요."라는 말과 함께_

이정섭은 그녀를 만나던 날, 친구의 부음 소식을 듣고 함께 목포행 버스를 탄다.

그렇게 그녀는 목포라는 도시와 마주한다.

 

낯선 시간이 주는 두려움도 그녀의 슬픔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목포에서 예고 없는 '이별'대신 예고 없이 '희망'을 만나게 된다.

오래된 영란여관에서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수옥이를 만나고, 나를 보면 가슴이 미쳐 터져버릴 것 같다고 수줍게 말하는 완규를, 형이 죽음 앞에서 남기고 간 여덟살배기 그의 조카 수환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모시고 사는 억센 여자 인자를 만난다.

목포, 그리고 사람, 그녀에게는 그런 모든 것들이 더이상 체기 같은 마른 울음 때문에 목구멍이 따갑지 않아도 되게하고, 울면서 밥대신 막걸리와 빵을 먹지 않아도 되게 하며, 가끔씩은 옅은 미소도 지을 수 있게한다.

그리고 아픈 이별 앞에서도 주어진 자신의 삶은, 당당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한다.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영란여관의 '영란'이란 이름이 그녀에게 썩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새롭지도 않고 늘 그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이라서 그랬을지도, 그 이름을 갖고 있으면 그녀의 아픈 상처도 조금은 메마를 수 있을거라 믿고만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이별이 두렵다.

낯선 곳에 혼자 놓여지는 것도 싫고, 혼자 밥먹는 것도 싫다.

유쾌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나눌 사람들이 좋고 그립다.

그래서 이별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도 글 속의 나처럼 어느 순간 생의 이별과 마주해야 할 시간들이 분명 있을것이다.

그 이별 앞에는 꼭 '긴 시간'이라는 명제가 붙겠지만 그런 시간을  생각하는 것도 슬프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울었고, 슬퍼했고, 가슴이 아팠고, 그리고 웃었다.

이제 '영란'도 웃었으면 좋겠다.

소리내어 아주 크게,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을 수 있도록 호탕하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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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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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거느리고 풍경과 사물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가망 없는 일이었으나 단념할 수도 없었다.
거기서 미수에 그친 한 줄씩의 문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버리지 못했다.
이 책에 씌어진 글의 대부분은 그 여행의 소산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랑과 희망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으면서 두 가지의 상관관계에 대해 새삼 궁금해졌다.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문득 이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맹목적인 것, 누구나 다 바라는 것, 그러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는 것.




책 속 주인공 ‘나’가 바라보는 아버지는 마른 등과 슬픈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어린 그녀의 눈에 비쳤던 아버지는 상사에게 굽실거리기만 하던, 세상의 모든 초점이 그 사람만을 향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삶을 차차 알게 되어갈 무렵 아버지는 직장 상사의 죄까지 덮어쓰고 뇌물수수죄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나’는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일생을 누군가의 목소리로만 살아야했던 아버지의 삶이 교도소라는 세상과 격리된 공간으로 하여금 짧은 안도감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그곳에서라면 아버지가 던적스러운 세상의 중심에 불안하게 서 있지 않아도 되니까.




아버지가 들꽃이 가득한 새로운 곳으로 이감되는 동안 그녀는 최전방에 자리한 수목원의 세밀화가의 직업을 갖게 된다.

눈이 가득해 더욱 햇볕이 맹렬하게 내리쬐는 듯한, 잎을 떨구어낸 조밀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문득 아버지를 떠올린다.

‘내’가 바라보는 ‘아버지’와 숲 속의 ‘나무’가 왠지 닮아있는 것만 같았다.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죽어 있고 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주고 나이테의 바깥층에서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난다고_

나무의 삶과 나무의 죽음은 구분되지 않고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고_

씨앗이 바람을 타고 마른 대지에 올라앉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생명이 시작되지만 결코 나무는 '누구의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의 딸, 아들,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인간의 시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하나의 나이를 먹고 죽는 동시에 멈춘다.

분명히 인간과 나무의 시간은 다르다.

하지만 나는 책 속 ‘아버지’와 ‘나’와 ‘나무’가 닮아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시간에 따라 껍질의 색깔이나 이파리의 떨림의 질감이 다르다는 백양나무와 들여다보이는 안쪽은 헐렁하게 비어있다는 서어나무의 모습은 왠지 인간의 삶과 닮아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식의 눈에 들여다보이는 자신의 병든 몸이 미안하고 걱정하는 자식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마치 모든 말은 잊어버리고 '괜찮다'와 '미안하다'만 기억하는 것 같아 보이는 ‘아버지’모습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내뱉는 말이 다가 될 수 없는 우리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름의 나무처럼 울창하던 젊음의 시간이 지나가고 죽은 나무줄기처럼 지탱할 힘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젊은 날의 숲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했다.




추위가 깊어지면 헌옷을 벗듯이 너덜거리면서 떨어져내리는 박달나무 껍질.

자세히 보면 안쪽에 다시 맑은 새 껍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박달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내 아버지가 죽음의 생에서 다시 태어나 숨 쉴 수 있기를 바랐다.

교차하는 여러 감정 속에서, 그리고 묵직한 문장들 속에서 나는 ‘사랑’과 ‘희망’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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