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스산해졌다.
추운 날씨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단단히 찬 바람이 새어든 것만 같다. 약간의 외로움을 채워 줄 무언가가 필요할 즈음,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어떤이들은 편지쓰기가 촌스럽고 번거로운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 손끝에서 머릿속을 떠나는 수많은 문장들의 울림이 좋다.
책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예전부터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책이었다.
어디선가 지나치듯 본 '이 책을 읽고나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이다.'는 문장 때문에_
역시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편지를 쓴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답장을 받고 싶어졌다.
책 속에는 집이란 공간에만 있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한 남자와 그의 곁을 지키는 개 와조가 있다.
그는 누군가의 편지를 배달하던 집배원이었고, 와조는 그가 조부라 부르는 사람의 안내견이었다.
와조가 조부를 잃고 사고로 시력까지 잃게 됐을 때, 그는 직장을 관뒀으며 숨이 차오르는 공간인 집을 떠나 끝이 없는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는 낯선 여행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름대신 번호로 그들을 기억했다.
그의 일과는 매일밤 모텔에 투숙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매일 아침 친구에게 편지가 왔냐는 물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편지여행자, 그에게 맞는 이름인 셈이었다. 그는 때로는 가족에게, 혹은 여행지에서 만났던 누군가에게 편지로 소통했다.
그의 편지는 때로는 절박했고 때론 통쾌했고 때론 서글펐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읽는내내 궁금했던 것은 그가 답장을 받았냐는 것이었지만 친구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였다.
왜 사람들은 그의 편지에 답장을 해주지 않았던 걸까.
누군가는 그 사이에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고, 편지받는 것을 싫어할 수도, 딱 한 번 만난 사람으로 부터 온 편지를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답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까지도 그에게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답장이 오면 여행을 그만두기로 한 그는 와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다.
와조는 오랜여행의 시간만큼 세월의 나이를 훌쩍 지나쳐버려 더이상 여행을 하기에는 힘들었고, 그는 와조의 마지막을 편하게 해주고싶었다.
집에 돌아온 와조는 편안해보였지만 그는 숨이 차올랐고 어지러웠다. 집 앞에 세워둔 작은 우편함에는 여전히 누군가로 부터 배달되어 온 편지가 없었고, 가족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남들에게는 안락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집이 왜 그에게는 이렇듯 힘든 공간이었을까? 답장에만 신경을 곤두세워서인지 나는 이런 의문을 책의 말미에서야 가져보았다. 그리고 곧 해답을 얻었다.
조부의 장례식을 치르던 날, 함께 떠나버린 가족의 빈자리가 그를 거리로, 여행길로 내몰았던 것이다. 갑작스레 가족의 얼굴이, 목소리가, 웃음이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텅빈 공간에서 그는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외로웠을테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빈집에서 수도 없이 떨어졌을 욕실의 물방울과 시계 바늘 소리가 그에게는 더없이 낯설고 두려웠을 거란 것도...
그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를 지탱해주던 와조가 죽는다.
그리고 절망의 끝에선 그에게 마치 희망처럼 수많은 답장들이 배달되어 온다.
3년이란 시간동안 그의 이름으로 배달되어 온 답장들은, 그의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든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 한 사람뿐이라 하더라도.
나는 글 한 줄의 힘을 믿는 사람이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새롭게 마음에 담아보았다.
내 마음을 전할 목적의 편지가, 문장이 누군가에게 생의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을, 잃어버린 웃음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은 나도 누군가에게서 오는 편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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