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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엄마의 이름.
얼마 전 고향집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나는 그 곳에서 낯선 풍경을 만났다. 이제 시집갔으니 집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해두었다고 가져가라는 말에 몇 권이나 되는 사진첩을 하나씩 펼쳤다.
사진 속에는 나조차도 잊고 지냈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그 사진들의 뒤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고 예쁜 모습의 엄마가 있었다. 언뜻 보면 나와는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한 나이에 맞게 적당히 멋을 낸 세련된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다.
부산 아가씨 티가 팍팍 날 만큼 섬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 름. 다. 운 모습.
엄마는 이 사진을 마주할 때면 어떤 생각이 들까?
문득 궁금해진 나는 몇 살 때 사진인지 물어봤다. 엄마는 시집오기 전 나보다 두어 살은 더 젊었을 때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때는 이런 섬에 시집올지 몰랐다고 했다.
섬 에 시 집 올 지 몰 랐 지.
다시 고향집이 있는 섬을 떠나 도시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엄마의 그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낯설지만 아름다웠던 엄마의 젊었을 때 사진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던 때, 나는 <엄마를 부탁해>란 책을 마주하게 됐다.
제목을 보면서도, '엄마에 관한 이야 기겠구나.' 생각했지만 막상 책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사진에서 마주한 낯선 엄마의 모습을 책 속에서도 발견할 것 같아서.
내게 엄마는 떠올리기만 해도 아련해지는 사람이었다. 나의 엄마는, 여느 엄마들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였고 밥벌이를 위해 삶에 강하게 대처하는 사람이었다. 세상과 맞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엄마,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왜 아련해지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
책은 시골에서 상경한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갑작스레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자식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하지만 자식들은 엄마의 이름 외에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다. 첫째부터 막내의 태어난 시간까지 술술 읊는 엄마와는 다르게 자식들은 엄마에 관해 무지할 뿐이다.
문득 나는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에 '너'가 나를 지칭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너와 같은 시절 미래를 꿈꾸던 엄마였다는 것을, 어릴 적 예쁜 옷을 입고 작은 신발을 신고 엄마의 엄마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
처음부터 마치 가족을 위해 만들어진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삶 속에 의지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책은 딸에게 '너', 아들에게는 '그', 남편에게는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엄마를 이야기한다. '나'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로지 '엄마'뿐.
나의 엄마는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기억이 있을까? 내 기억 속 엄마의 이름은 ‘엄마’였다. 엄마가 ‘나’였던 적은 있었을까?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여자'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가수를 보면 설레고, 예쁜 옷을 보면 입어보고 싶고 때로는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싶어 하는 여자로.
책 속의 엄마는 현실 속 나의 엄마와 많이 닮아있다. 억척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삶에 냉정했던 모습과 품에서 멀어지는 자식들을 보며 남몰래 눈물짓던 모습까지. 항상 입에 달고 지내는 '엄마'라는 이름이, 소설 속에서 이렇게 아프게 다가올지 나는, 몰랐다.
책 속 '너'가 고향집을 떠날 때, 엄마는 많이 울었다. 나는 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내'가 고향집을 떠날 때, 나의 엄마 역시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나를 앉혀놓고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했었다.
엄마처럼 고생하지 말라고. 했다.
많이 배우고 좋은데 시집가서 호강하면서 살아라, 했다.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보면서 어부의 아내로 살다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더라고. 했다.
대학공부까지 시킬 수 있을까 걱정하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학교를 보낸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떠나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어땠을까?
문득, 엄마는 자식들과 남편이 지겹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적은 수입에 자꾸만 커 가는 자식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사는 게 바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삶이 숨 막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엄마는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품을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며 한 편으로는 조금은 후련하지는 않았을까?
어릴 적 나는, 늘 돈에 쫓기는 엄마라 미워했고, 공부하라는 소리를 지겨워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삶과 맞서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항상 나와 가족들의 걱정으로 가득한 엄마 이야기에는 무관심 했다.
스스로가 강해져야만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엄마의 희생과 삶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져온다.
책 속 엄마를 잃은 가족들을 보면서 그들도 나처럼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엄마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걸겠다는 전화를 잊기도 하고, 엄마가 보내온 택배를 잊기도 하고,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내 방식대로 새롭게 정의했다. 외로움을 모르는 엄마, 항상 강한 엄마, 눈물을 모르는 엄마, 자식들만 위하는 엄마, 꾸미기에는 어색한 엄마로.
책을 통해서 '엄마에게도 이런 삶이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 나이만큼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과 세월이 미안했고 안타까웠다. 훗날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겠지만 과연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엄마가 '나'의 자리에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고.
항상 자식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살아온 엄마의 삶이 이제는 자식들에게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