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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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나서 부부간에도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서로의 늦은 귀가와 바쁜 업무, 일상에 쫓기다 보니 부부간에는 필요이상의 믿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가 우리 부부에게 “서로를 얼마나 믿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이런 질문에 “부인을 못 믿어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이란 책의 주인공 공생원.

공생원 부부에게는 결혼한 지 스물 세 해 만에 아이가 생겼다. 마흔 다섯이면 손자를 보고도 남을 나이.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충분한 기쁨을 만끽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겠건만, 공생원은 부인의 임신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아기를 갖기 위해 몸에 좋다는 약과 용하다는 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그들 부부에게 서지남이라는 의원이 던진 한 마디가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생원님이 문젭니다. 마나님 탓하실 것 없지요.”

부인에게 잘 하라는 의미로 했던 이야기가 공생원에게는 마나님의 뱃속에 아이가 자라는 280일 내내 불안하고 의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말로 작용했던 것.

결국 공생원은 두부장수부터 아내의 팔촌까지, 동네 남자들 모두 의심대상(?)에 올려놓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마나님과는 어떤 친분이 있는지를 살피며 나름의 리스트들을 삭제해나간다.




공생원이 범인을 색출해나가는 이야기 고개에는 조선시대를 사는 평민들의 삶이 이웃의 모습을 보는 듯 가깝고도 흥미롭게 묘사되어있다. 인물을 한 명씩 지목해 진실을 헤쳐나 갈 때마다 소소한 시대의 일상과 인물 묘사 때문에 나도 모르게 “혹시......?”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니 처음 처를 믿지 못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공생원 편에 내가 서 있었다. 오지랖 넓은 마나님이 혹시나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난 것은 아닌지…….




공생원과 마음을 합해 범인을 찾아내는 것을 뒤로하고 문득, 글을 쓴 작가가 궁금해졌다.

언젠가부터 책을 펼쳐들면 ‘작가의 말’ 부분을 꼼꼼하게 읽는 버릇이 생긴 나는, 글을 쓰는 내내 노는 마음이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이상하기도 부럽기도,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작가는 주부의 삶을 살다 마흔 살에 소설가가 되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가정에서 주부로 살며 책 읽기를 꾸준히 해 온 것이 소설을 쓰는 힘을 주었다고. 작가가 쓴 이전의 책들도 색채가 짙을 것 같아 궁금해졌다.




각설하고,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딴 짓을 하는 버릇 때문에 읽는 진도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던 터라, 작가의 이야기를 알고 난 후, 소설 속 공생원의 추격이 상승선을 타는 듯 했다.

결국 범인은 누구란 말인가?

공생원과 내가 책을 읽는 내내 알고자 했던 질문에 마나님은 책의 말미 부분인 출산직전, 진통과 싸우며 일침을 가한다.

“당신 자식이 아닙니다. 제가 어느 화상의 쓰를 받아온 것 같습니까?”

“이 뱃속에 말입니다. 아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스물세 해 만에 생긴 아이가. 한데 허구한 날 이 배를 쳐다보면서 끄응, 아니면 후우, 하는데 천치가 아니고서야 그 속뜻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생원의 깜찍한 발상과 어설픈 추리를 보면서 내 스스로도 진실과 거짓을 두고 싸웠다. 공생원의 엉뚱한 생각 편에 서 있다가도, 마나님의 진실(?) 편에 서 있기도 했다. 소설로 마당놀이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수많은 풍자와 해학을 소설 속에 담아 낸 것 같다.




공생원의 모습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웃음이,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남편의 이야기는 단순 부부간의 신뢰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쉽게 믿지 못하고 한 편이 될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비판하고 있는 듯 했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삶을 살면서 공생원처럼 지극히 진실적인 것들을 거짓으로 생각하고 의심해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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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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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름.







얼마 전 고향집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나는 그 곳에서 낯선 풍경을 만났다. 이제 시집갔으니 집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해두었다고 가져가라는 말에 몇 권이나 되는 사진첩을 하나씩 펼쳤다.

사진 속에는 나조차도 잊고 지냈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그 사진들의 뒤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고 예쁜 모습의 엄마가 있었다. 언뜻 보면 나와는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한 나이에 맞게 적당히 멋을 낸 세련된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다.

부산 아가씨 티가 팍팍 날 만큼 섬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 름. 다. 운 모습.

엄마는 이 사진을 마주할 때면 어떤 생각이 들까?

문득 궁금해진 나는 몇 살 때 사진인지 물어봤다. 엄마는 시집오기 전 나보다 두어 살은 더 젊었을 때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때는 이런 섬에 시집올지 몰랐다고 했다.

섬 에 시 집 올 지 몰 랐 지.

다시 고향집이 있는 섬을 떠나 도시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엄마의 그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낯설지만 아름다웠던 엄마의 젊었을 때 사진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던 때, 나는 <엄마를 부탁해>란 책을 마주하게 됐다.

제목을 보면서도, '엄마에 관한 이야 기겠구나.' 생각했지만 막상 책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사진에서 마주한 낯선 엄마의 모습을 책 속에서도 발견할 것 같아서.



내게 엄마는 떠올리기만 해도 아련해지는 사람이었다. 나의 엄마는, 여느 엄마들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였고 밥벌이를 위해 삶에 강하게 대처하는 사람이었다. 세상과 맞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엄마,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왜 아련해지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




책은 시골에서 상경한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갑작스레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자식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하지만 자식들은 엄마의 이름 외에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다. 첫째부터 막내의 태어난 시간까지 술술 읊는 엄마와는 다르게 자식들은 엄마에 관해 무지할 뿐이다.

문득 나는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에 '너'가 나를 지칭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너와 같은 시절 미래를 꿈꾸던 엄마였다는 것을, 어릴 적 예쁜 옷을 입고 작은 신발을 신고 엄마의 엄마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

처음부터 마치 가족을 위해 만들어진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삶 속에 의지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책은 딸에게 '너', 아들에게는 '그', 남편에게는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엄마를 이야기한다. '나'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로지 '엄마'뿐.

나의 엄마는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기억이 있을까? 내 기억 속 엄마의 이름은 ‘엄마’였다. 엄마가 ‘나’였던 적은 있었을까?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여자'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가수를 보면 설레고, 예쁜 옷을 보면 입어보고 싶고 때로는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싶어 하는 여자로.




책 속의 엄마는 현실 속 나의 엄마와 많이 닮아있다. 억척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삶에 냉정했던 모습과 품에서 멀어지는 자식들을 보며 남몰래 눈물짓던 모습까지. 항상 입에 달고 지내는 '엄마'라는 이름이, 소설 속에서 이렇게 아프게 다가올지 나는, 몰랐다.




책 속 '너'가 고향집을 떠날 때, 엄마는 많이 울었다. 나는 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내'가 고향집을 떠날 때, 나의 엄마 역시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나를 앉혀놓고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했었다.

엄마처럼 고생하지 말라고. 했다.

많이 배우고 좋은데 시집가서 호강하면서 살아라, 했다.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보면서 어부의 아내로 살다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더라고. 했다.

대학공부까지 시킬 수 있을까 걱정하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학교를 보낸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떠나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어땠을까?

문득, 엄마는 자식들과 남편이 지겹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적은 수입에 자꾸만 커 가는 자식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사는 게 바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삶이 숨 막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엄마는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품을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며 한 편으로는 조금은 후련하지는 않았을까?




어릴 적 나는, 늘 돈에 쫓기는 엄마라 미워했고, 공부하라는 소리를 지겨워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삶과 맞서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항상 나와 가족들의 걱정으로 가득한 엄마 이야기에는 무관심 했다.

스스로가 강해져야만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엄마의 희생과 삶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져온다.

책 속 엄마를 잃은 가족들을 보면서 그들도 나처럼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엄마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걸겠다는 전화를 잊기도 하고, 엄마가 보내온 택배를 잊기도 하고,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내 방식대로 새롭게 정의했다. 외로움을 모르는 엄마, 항상 강한 엄마, 눈물을 모르는 엄마, 자식들만 위하는 엄마, 꾸미기에는 어색한 엄마로.




책을 통해서 '엄마에게도 이런 삶이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 나이만큼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과 세월이 미안했고 안타까웠다. 훗날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겠지만 과연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엄마가 '나'의 자리에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고.

항상 자식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살아온 엄마의 삶이 이제는 자식들에게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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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힘이 세다
이철환 지음 / 해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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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크기와 힘은 어느 정도일까?란 질문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사실은 딱히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눈물을 펑펑 쏟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된 다는 것과 마음이 시원해진다는 것이다.

 

책 <눈물은 힘이세다>는 이철환 작가의 성장 소설인 듯 하다.

책 속에는 가난하고 힘들었던 우리의 가족들이 있고, 그들의 삶은 고단했던 유년기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아빠의 눈과 마주한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 퀭한 눈, 자식들의 오늘과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가여운 가슴을 가진 남자의 안타까운 눈빛이.

 

문득, 아빠에 대해 떠올려 본다.

스무살이 조금 넘어서 부터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삶을 살아오신 나의 아빠.

나는 어릴 적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본 기억이, 아빠와 마주앉아 밥을 먹어 본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내 아버지는 고단하고 바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리라.

십수년간 남의 배를 타다 내가 태어나고 걷기를 시작할 무렵, 아빠는 늘 소망하던 아빠만의 배를 갖게 됐었다.

아침 저녁으로 바다와 그 배에 희망과 몸을 맡기며 배질을 하던 나의 아빠.

비록, 자식들이 생긋 웃는 모습보다 잠든 모습이 익숙했지만 아빠는 가난때문에 배움에 목이 말랐던 자신의 삶을 물려주기가 싫었다. 하셨다.

퉁퉁 불어가는 손과 발, 오랜 시간 배질로 고통스러운 팔과 다리의 통증보다 자식들의 어두운 미래가 더 무섭고 서러웠다. 하셨다.

 

책 속에서 '사람을 꿈꾸게 하는 건 아픔이었다'는 글귀가 마음에 남는다.

거친 파도 속에서 점점 작아져가는, 흐려져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렸던 나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만큼의 아픔이었다. 그런 아픔들이 나를 꿈꾸고 나를 더 성장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 아버지는 여린 사람이었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술로 극복하려 했고, 불안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폭력으로 포장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팠고 절망했고 두려웠고 무엇보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이 책 속 주인공을 꿈꾸게 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요즘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유난히 많다.

읽다보면 평범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일상과도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특별한 감동을 준다.

문득 우연히 읽게 된 한 줄의 글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치랄까.

<눈물은 힘이세다>책과 마주했을 때, 작가의 예전 책 <연탄길>이 떠올랐다.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은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작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읽다보니 또 다른 감동이 몰려온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족들의 아픔을 통해서, 가족들의 눈물을 통해서.

소설 쓰기를 꿈꾸던 주인공,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던 나약한 아버지.

서로를 위해 흘린 눈물은 주인공의 밝은 미래를 비춰 줄만한 큰 빛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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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어 -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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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아직도 낯선 것이 참 많다.
자주 가는 식당에서 같은 메뉴 먹기를 좋아하고, 이메일이나 메신저 보다는 손 글씨가 담긴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나. 이런 나는 일본소설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다.
유명하다는 일본작가의 소설도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고 난해한 감정선들은 이해하기가 조금은 벅찼다.
사실, 요시다 슈이치의 연애소설은 <열대어>또한 그랬다. 읽고 난 후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은 충동은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떤 말을 써야지 책을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난감했기 때문에.

열대어는 3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기억에 맴도는 사람은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이스케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한 편이고 정을 많이 나누지만 타인에게 그는 늘 이방인 같다. 기술만 있으면 밥을 굶지 않을 목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그. 그의 집에는 애인과 그녀의 딸, 백수로 빈둥거리는 청년이 함께 살고 있다. 생각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른 그들이 한 공간에서 지내는 동안 다이스케는 그들에게 정을 느끼고 연민을 느끼지만 항상 그는 혼자인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면서 왠지 다이스케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어쩌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줄곧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온 내 모습과 닮아있는 것은 아닐지.
가끔은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정에 그립기도 하지만 결국 혼자여야 되는 생각,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세상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해도 작은 변화와 문제들 속에서 스스로는 외로워진다. 갑작스레 애인에게 통조림통을 던져 버리는 그린피스 이야기 속 남자를 통해 사람과 소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책을 통해 관계와 소통, 이해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보게 된다.

아직도 일본 소설이 많이 어렵기는 하지만 <열대어> 속 세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감수성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심리와 관계, 소통에 대해 조금 더 고민을 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본다.

작가의 인터뷰 글이 기억에 남는다.
“쓸쓸함의 원형 같은 것을 그리고 싶었다. 인간의 감정을 광물이라 할 때 그 본질 같은 것 말이다. 가끔 잠들기 전에, 내가 만일 범죄를 저지른다면 무엇 때문일까 멍하니 생각한다. 내 경우 아마도 돈 때문은 아닐 것이고 증오 때문도 아닐 것이다. 그 정도는 억제할 수 있다. 그렇지만 너무 쓸쓸해서 못 견디겠으면 어떨까. 자기도 모르게 일을 저질러 버리게 되지 않을까? 요즘 일어나는 사건을 보다가 그 배경에 쓸쓸함이 비칠 때면 왠지 공감이 간다.” -에스콰이어, 작가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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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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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믿는가?

<도가니>와 마주한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희망’에 관한 질문을 던져본다.
긍정적인 의미의 ‘희망’이 주는 파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주저 없이 희망을 믿는다고 대답하고 있다.

책 <도가니>는 서울에서 농아학교의 기간제교사가 되어 무진시(霧津市) 내려온 선생님의 눈으로 시작된다. 처음 낯선 도시에서 그와 조우한 것은 짙은 안개다. 눈앞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익숙한 도시 무진, 그 곳에는 농아들이 사는 자애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농아. 나는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그들과는 다른 언어로 말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이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불린다는 것 밖에.

책 <도가니>속에는 입이 아닌 손짓으로 그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세상에 진실을 말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들이, 있다. 평화롭고 고요한, 뿌연 안개에 가려져 신비감마저 맴도는 그 곳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는 악행이 일어나고 있다.
책은 이름 있고 권위 있는 사회의 기득권자들에게 소리 없이 대항하는 장애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개 속에 감춰진 진실과 거짓의 실체 그리고 눈물과 아픔이 책 속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 속에 이야기 중심에 아직 미성년자인 청각장애인 연두, 유리가 있다. 그 아이들의 눈은 진실을 보고, 손짓은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 아이들의 손짓이 말하는 진실은 놀랍게도 지역사회에서 덕망 있는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지도 교사에 의해 자행된 수차례의 성폭행.

악행의 흔적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껏 누구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리 없는 아이들의 외침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올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들의 편에서 손짓의 언어가 아닌 입으로 그들의 잘못을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선생님의 눈이 그들의 눈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책 속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1964년 뉴욕에서 퇴근길에 일어난 제노비스 살인사건이 떠올랐다. 분명 그녀가 살해당한 장소에는 목격자가 38명이나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향해 도움의 손짓을 건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없었고, 그녀를 위협하는 살인자에게 소리 지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결국 그녀를 죽인 것은 ‘방관’이었다.

책을 읽으며 농아 아이들의 숨 죽여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어쩌면 아이들의 아픔은 사람들의 차가운 외면과 방관의 눈빛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는 얼마나 용기 내어 살고 있는지, 타인의 이야기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들의 눈을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돌아본다.
소리 내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있었던가.
진실의 편에 맞서 당당하게 싸울 의리가 내게는 있었던가.
나 또한 짙은 안개를 핑계 삼아 진실을 외면한 적은 없었던가. 
 

책은 오늘을 사는 비겁한 방관자들에게 진실의 힘을 다시금 알려준다.
이 책 속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사실을 축소해 소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록 소설 속 악행을 자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을 맺지 못했지만, 스스로에게 남이 아닌 자신의 편에서 묵묵한 방관자의 태도로 일관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의도하지 않게 남에게 상처를 주고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게 한다.

<도가니>를 읽는 내내 나는, ‘안타까운 진실’과 ‘불편한 거짓’ 사이를 오르내렸다.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가니.
책을 통해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흥분하기도, 진실의 편에 서 있는 많은 희망 때문에 감격하기도 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이며 그것들의 실체는 어떤 것인지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알 수 없다. 하지만 유난히 짙었던 도가니 속 안개 끝에는 반드시 진실이 또 다른 희망으로 번져있을 것이리라.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희망을 가진 사람, 꿈꾸는 사람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수많은 거짓 더미에 파묻힌다 해도 결국 희망은 빛을 발한다. 진실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희망이라는 진실이 있는 한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 세상은 열정과 행복으로 가득한 도가니, 가 될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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