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 - 최고에 도전하는 김연아를 위한 오서 코치의 아름다운 동행
브라이언 오서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몸치라 운동을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보는 것은 좋아한다. 물론 보는 것이라 함은 TV를 통해 마주하는 것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승리가 가져다주는 ‘희열’은 짜릿하다.




내가 김연아 선수를 알게 된 것은 지금 보다 앳된 2006년 시니어 데뷔 그랑프리 대회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김연아’라는 선수가 앞으로 어떤 빛을 발휘하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몇 년 사이 그녀는 최고의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는 김연아 선수를 엿보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된 책이다. 최고의 자리에서 ‘은반 위의 요정’이 된 김연아 선수는 어떤 열정으로 어떻게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책 속에서 꿈을 이루는 방법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김연아 선수의 코치 브라이언 오서다.

그는 1980년대의 전설적인 스케이트 선수였고 코치의 길에 들어선지 일주일 만에 동양에서 온 작은 소녀 김연아를 만났다고 한다.

문득 그들의 만남 속에서 ‘멘토’의 의미를 생각 해냈다. 내가 알고 있는 ‘멘토’의 사전적 의미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삶을 살면서 인생의 ‘멘토’를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인지 그들의 만남은 내게 더 와 닿았다.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오서코치는 누구보다도 김연아 선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김연아 선수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을 겪어왔기에 그녀의 고민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외로운 길에 대한 고민을 진심으로 이야기 할 수 있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 이렇듯 부러워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삶의 순간을 함께 나눌 세상살이의 선생님(?)을 만났을 때의 감흥은 어떨지.

예전에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이란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작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은 영등포 여고 재학시절 국어담당 최홍이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써내려간 반성문을 보고 소설가가 되어보지 않겠냐던 선생님의 권유가 그녀를 최고의 작가가 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책을 통해 삶을 살아가면서 귀인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한 번 느꼈던.

 

책<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에서는 이미 최고의 길을 걸어온 오서코치와 최고가 되기 위해 모자람이 없었던 김연아 선수 사이의 ‘공통점’이 이어진다. 책을 읽는 내내 때론 오서의 이야기가 김연아의 이야기가 되고 김연아의 이야기가 오서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책은 그들이 처음 스케이트를 탔던 순간과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떻게 현실과 마주했는지 등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비슷한 환경에서 스케이터로써 꿈을 이루기 위해 품었던 열정과 노력들은 책 속에서 빛을 발한다. 이미 최고의 순간을 경험해 온 오서 코치는 ‘삶의 열정’에 대해 조언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열정을 그 하나의 목표에 쏟아야 한다. 그래서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과정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씩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누리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는 만큼 꿈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라고. 




책을 통해 나는 오서 코치의 삶과 김연아 선수의 삶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열정’에 대해 또 다시 배운다.

김연아 선수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끊임없는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좌절감을 극복하고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스스로의 비상을 꿈꾸며 부상을 치유하기 위한 혼자만의 싸움에서 그녀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힘을 믿었다. 그녀의 천재성만을 바라보던 내게 오서 코치는 이야기 한다.




천재성을 하늘에서 내려준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녀의 연습 과정을 더도 말고 딱 사흘만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녀는 매일같이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모든 훈련에 최선을 다한다. 잘 안 될 때는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점프를 몇 십 회식 연습하면서 아레나의 공기 속으로 뛰어오른다. 그 모습을 보면 천재성 속에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음을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재능에 헌신하고, 최고를 소망하고, 노력하는 기간 동안의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과 강인한 정신, 링크장 위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자신을 잊지 않을 수 있는 담력, 실패에도 흔들림 없는 용기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내는 통찰력과 스스로를 앞으로 이끄는 추진력이 있어야 비로소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최고라는 이름을 좇기보다 가슴 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이 책을 읽는 내내 눈앞에 아른 거렸다.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 뒤에 그녀가 흘렸던 수많은 땀과 눈물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본다. 앞으로도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 끝없이 반복되고 고된 연습으로 스스로를 빛낼 그녀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더불어 그녀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오서 코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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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사랑도 늙을까요?
김남우 지음 / 스토리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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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처럼 사랑도 늙을까요?  


여행기를 좋아하는 나는,

가을이 짙어가는 10월에 또다른 여행기 한 권을 집어들게 된다.

유난히 이색적인 풍경의 사진들이 많은 이 책 속에는

여행을 떠난 자의 자유로움과 외로움이 교차된다.

 

 

   끝도 없어라. 외로움은.

겨우 캔맥주 하나 정도가 막아주더라, 내 외로움을.

외롭다는 사람에게

개폼 잡지 말라고 말하진 마.

그건 네가 사람이라면

네가 개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닥쳐버리는

그런 종류의 슬픔이니깐.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더라.

그 외로움은, 참 아프게도.

-루브르 박물관 앞 길가, 그 위의 맥주.

 


누군가 이별을 하면 누구나 다 시인이 되는 것 같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슬픈 노랫말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낯선 감정과 아픔에 외로움이

묻어나면서 진심을 담은 이야기들은 시가 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마주하면서 여행자의 일기를 엿보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인 듯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적어내려간 그의 일기장은 꽤 매력적이다.

때로는 흥미롭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부럽기도  한  

문구들은 책 속 사진들과

조화롭다.

사진 속 짧은 글귀들은 광고 카피를 연상시킨다.

'사랑받는 누군가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상징'

'꿈은 꿈의 입맛에 맞는 결말로 널 꿈꾸게 할 거야'

 

나는 여행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볼 때마다 설렌다.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이국적인 풍경이 연상되어 설레고,

낯선 곳에서 외로워지는 감정들이 내 마음에 동화를 이루기도 하고,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길에 오르기만 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발동 하기도 한다.

 



 

사진 속의 에펠탑은 아주 작다.

무릎과 손가락 하나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에펠탑의 모습을

다시 한번 내 눈에 담고 싶어만 진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글귀가 이채롭다.

누군가가 써놓은 "재미있는 세상, 더욱 재미있게"라는 낙서에

작가는 답글을 단다.

"아름다운 세상, 더욱 아름답게"라고.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눈에 담을 수 있는 많은 새로운 풍경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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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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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편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의 추억>과 처음 조우했을 때는 나도 모르는 편견에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이정명 작가의 소설과는 다른 낯선 느낌.

조금의 어색한 기운마저 감도는 <악의 추억>은 편견을 넘어 나를 압도했다.

책 속 이야기에 매료될수록 나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범죄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괴로웠고 허탈했고 아팠다.




안개는 위험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위험할 뿐이다.




책의 시작은 주위를 사위는 안개 때문에 등대의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적막한 바다와 같다. 




케이블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금발의 여인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죽은 여자가 웃고 있어요.”

웃으면서 죽었나 싶을 정도로 차갑게 식어버린 입가에 스민 행복한 웃음을 익숙한 솜씨로 카메라에 담아내는 범인을 좇는 사람들.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로 죽음을 맞이한 여자와 연쇄살인처럼 이어지는 살인의 도미노들.

흔적 없는 죽음의 순간들은 책을 읽는 내게 ‘범죄’에 대한 실체를 찾고자 재촉한다. 누가, 왜 그녀를 죽인 것인지.




범죄의 중심에는 거대한 도시 뉴아일랜드가 있다. 화려한 도시의 내면을 뒤로하고 삶과 죽음의 양면성을 확실히 띄고 있는 중심에 크리스 매코이가 자리한다.

그는 살인마 데니스 코헨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고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다. 깊은 잠에 빠져들 수도, 자신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마의 죽음 또한 인정하지 못한 채 작은 고양이 한 마리와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문득 그의 삶을 바라보면서 범죄의 상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선의 편에서 악을 좇던 그에게 가족을 잃은 고통은 어떤 것에 비유될 수 있었을까?

실체 없는 안개 속에서 함께 사라져버린 가족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함께 있을 때 해주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 앞에서 더욱 가슴 아파해야 했던 고통의 순간들이. 남아 있는 것이 죄스러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차례로 피살된 금발의 여자들은 매코이의 가족을 살해했던 범죄자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 그들은 범죄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고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희생자들의 삶은 곧 죽음과 같았다.

매코이는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가스를 주사해 죽는 순간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했고 살아있는 것이 고통스럽던 그들에게 죽음으로 삶을 동정했을지도.

살인자의 총에 의해 선과 악, 두 이름의 삶을 살았던 매코이의 생이 안타까웠다. 피해자였던 사람이 결국은 잔인한 상흔을 남기는 살인자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책은 끝을 맺는다.

실체 없는 안개 가득한 도시에서 범죄를 찾아 끝없이 선의 편에 서고자 했던 그는 결국 범죄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매코이의 삶은 항상 갈래의 길에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내 삶의 모습과도 어느 부분 닮아있는 것 같다. 옳고 그른 것이 정해지지 않은 삶의 순간들을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끝까지 선의 편에 서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매코이의 삶이 내게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삶이 주는 진정성, 삶을 살아가야 할 자세…….




책을 읽는 내내 낯설고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범죄에 의해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 또 다른 이름의 범죄로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읽는 내내 범죄 앞에서 사라져간 희생자들보다도  그들의 삶을 짓밟아버린 범죄자의 흔적을 자꾸만 따라가던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두려웠다. 순간순간 내가 방관자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책을 덮으며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처해 온 내 삶이 안일하게 느껴지기도.

<악의 추억>을 통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의 다양한 이면들과 조우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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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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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매혈기




문득 매일 먹는 밥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밥을 먹고 사는 일이 고달프다는 말을 사회에서 실감하게 될 때쯤 나는 책<허삼관매혈기>와 마주했다.

책 속에는 허삼관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피를 팔면서 삶의 고비들을 넘어선다. 피를 판돈으로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며 ‘가장’의 역할을 해나간다.

가난 때문에 피를 판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서늘한 느낌마저 자아내지만 막상 책장을 펼쳐 보면 연신 웃음이 지어진다.

피를 파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동네와 허삼관의 톡톡 쏘는 짜릿한 말투 등이 그렇다. 책은 피를 팔면서까지 삶을 연명해야 하는 고달픈 인생살이를 해학적으로 풀어 나간다. 어느 순간 책 안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 해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

“저야 내일모레면 쉰이니 세상사는 재미는 다 누려봤죠.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라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봤으니 사람 노릇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부모에게는 자식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었을까.

책 속 주인공인 허삼관은 우리네 아버지와 닮았다.

허삼관과 조우한 나는 문득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부의 삶을 살고 계신 나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반평생을 험한 물살을 가르며 어둠과 싸워왔다.

아직도 아버지란 이름보다는 ‘아빠’가 더 익숙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아빠’가 익숙했던 내 나이 열여섯이 되던 해가 기억난다. 당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나는 답답한 섬이 아닌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은 나의 바람대로 삶을 이끌어 주지 못했다. 현실과 저항하며 울음을 쏟던 내게 아빠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어가며 말했다. 1톤이 조금 넘는 배를 10년 넘게 타 온, 수동으로 시동을 걸어야하는 낡은 기계 때문에 겨울에는 몇 시간 동안 고단한 작업 준비를 해야 했던 나의 아빠는, 작은 배로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기가 버거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와 상의 끝에 나를 육지고등학교에 입학시켜주는 대신 3톤이 조금 못되는 배를 사기로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대학은 꼭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겠노라, 하셨다.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업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아빠는 자식들에게 만큼은 배움의 기회를 마음껏 누리게 하고 싶다, 하셨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빠도, 듣는 나도 두 눈에 눈물이 글썽 거릴 만큼 고통스러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식을 위해 ‘아버지’라는 무거운 짐을 평생 어깨에 메고 외롭게 싸워야 했을 나의 아버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피를 팔아서 자식들에게 옥수수 죽 대신 국수를 사 먹이고 아픔을 치료해주는 허삼관의 간절한 마음이 나의 아버지와 같으리라 생각하니 눈물이 나기도 하고.




나는 독서를 통해서 삶을 배워나간다.

책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또 다른 삶을 접하기도 한다.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알게 된 후로 내게 ‘배려’와 ‘용서’를 절실하게 보여준 것도 책이었다.

이번에 읽은 <허삼관매혈기>는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랑의 무게는 동일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조건 없는 내리 사랑으로 평생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는 위대한 삶의 개척자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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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펭귄클래식 10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토니 태너 서문, 이만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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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된다.

처음 마음에 품었던 여인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채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충 줄거리만 알고 있던 책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마주한 나는 묘한 여운 때문에 생각 속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의 줄거리는 첫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자의 순정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책 속 주인공인 개츠비는 첫사랑인 데이지라는 여성을 찾기 위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다. 결국 그녀를 만나지만 잠깐의 행복을 맛 본 후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는 것.

사랑하는 여인을 잊지 못해 매일 밤 큰 집에서 화려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의 돈과 명예를 벗 삼으려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는 하지만 파티를 열 때면 개츠비는 세상 누구보다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각계각층의 사람들 속에 쌓여 있는 개츠비는 흔히 진정한 재산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그들은 뒤에서 개츠비에 관한 억측을 일삼기도 하지만.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츠비를 두고 온갖 이야기를 사실로 만들어 버린다. 소설 속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사실인 것만 같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어느덧 개츠비의 친구가 되어있다. 그가 살아온 방식을 이해하고 그를 위대하다고 말하며, 세상누구보다 그를 안타깝고 맑은 사람으로 여긴다.




개츠비의 삶을 소설로 만난 나는, ‘어떤 것이 행복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그녀를 다시 만난 개츠비는 진정 행복했을까? 개츠비가 사랑했던 여인에게는 이미 남편과 아이가 있었고 예전에 알고 있던 그녀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기억 속 개츠비가 아닌, 부유하고 신사적인 새로운 이상향의 개츠비가 보였던 것이다.

내가 추측하건데 데이지가 추억 속에 간직했던 개츠비를 다시 만난 순간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설레고 낯설지만 흥분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신대륙의 등장으로 사실화 된 것처럼 허영을 좇던 데이지에게 개츠비는 더욱 반가운 존재였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개츠비를 대하는 데이지의 마음이 순도 백퍼센트의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확실하게 이해되는 사실은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마음뿐이었으니까.




이야기는 결국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사랑을 찾아 갈망했던 개츠비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 때문에 오해를 받아 죽음에 이른다. 개츠비는 순진하게도 그녀의 마음이 지금 그가 갖고 있는 마음과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 그처럼 그녀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사랑만을 좇아 세상의 끝까지 오고만 개츠비의 삶은 쓸쓸하다.

그의 장례식장은 한적하다 못해 스산한 느낌마저 감돈다. 마지막 그의 곁에는 그토록 사랑했던 데이지도, 파티를 열 때마다 찾아오던 사람들도 없다. 죽음과 함께 그의 이름도 사람들에게 등한시되고 사라져만 간다.

개츠비가 간절히 원했던 데이지는 결국 그의 곁을 흔적도 없이 떠났다. 지옥인지 천국인지 알 수 없는 길로 나서는 그는 곁에는 차갑고 메마른 빗자국들만 가득하다.




사람들에게 호의적이고 관대했던 개츠비에게 타인은 허영과 거짓, 편견으로 마주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실체가 없는 뿌연 안개와 같은 느낌이다. 형상이 뚜렷하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모호하기도 하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 옆으로 잠깐씩 빠져 생각 속에 잠기기도 했다. 남아있는 책장이 몇 장 되지 않았을 때에야 나는 현실을 살면서 타성에 젖고 자신도 모르게 거짓과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문득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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