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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ㅣ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방학 때마다 시골 큰할머니댁에 놀러가곤 했었다. 방학이라야 달리 갈곳도 없었을 뿐더러 마을 아이들이 죄다 모여들 만큼 큰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솜씬 인근에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 중 귀신 야기는 단연 우리들에게 인기있는 소재였다. 사촌 동생은 하얀 소복을 입은 긴머리 풀어헤친 처녀귀신 이야기를 들은 밤이면 화장실 가기 무서워 어김없이 이불에 오줌을 지리곤했다. 그럼에도 그 녀석은 귀신이야기만 해달라고 할머닐 조른다. 아무리 '전설의 고향'이나 '구미호' '여괴담' 등이 무섭다하고 특수분장이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사실적이고 한층 정교해진 귀신이 등장해도 어릴적 이야기로만 듣던 상상속 처녀귀신 만큼 공포스럽진 않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더위를 식혀줄 등골이 오싹한 납량특집 공포영화가 인기다. 서점에서도 공포나 호러, 판타지, 탐정소설등이 단연 인기기에 제목이 '처녀귀신'이라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며 가볍게 첫장을 펼쳤다. 허나 기대와는 달리 조선시대 귀신이야기를 탐구하고 시대적 상황과 소수문화의 한 장르로 조선시대 귀신이야기를 재 해석하고 있다. 처녀귀신의 입을 빌려 약하고 힘없던 여인이 현세에서 미처 못 다한 말을 세상에 이야기한다. 살아생전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사랑의 배신을 당하거나, 강간당해 죽은 억울한 여인들이 못 다 푼 한 때문에 차마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며 저승과 이승 사이를 배회하는 원귀가 되어 그 한맺힌 사연들을 들려준다.
왜 하필 처녀귀신이 한국 귀신의 전형이 되었을까? 처녀귀신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처녀'들이야말로 사회적 약자이며 억압받는 존재였기에 처녀귀신 이야기를 만들고 즐겨온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들이 우리 마음속의 죄책감을 환기시키기 때문에 그들에 관한 사회적 책임과 어쩌면 내가, 우리가, 죄없는 약한 여인을 죽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사회적 통념, 여인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몬 사회의 책임이 문학적 장치를 통해 이야기하고 함이다. 그렇기에 귀신의 목소리는 무서움보다는 슬프고 처연하다. 귀신이 한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놀라 기절해버리거나 심지어 죽는 일은 듣는자가 자신도 그녀들이 이야기에 무관하지 않음을 알기에 지례 겁먹거나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30여 편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남녀차별은 귀신의 세계에도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자 귀신은 죽어서도 존경 받고 저승의 관리가 죄지만 그에비해, 여자 귀신은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됨은 고소설에도 나타나 있으며 또한 남녀의 자살률을 분석한 것이나, 폐쇄사회였던 조선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 과감히 사랑을 고백하거나 대담하게 여자쪽에서 먼저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이야기는 우리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며 이 여인들이 결국에는 거절당한 사랑으로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귀신이 된다. 매몰찬 거절의 댓가로 비정한 남자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귀신의 한 맺친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무섭기보단 그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고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녀귀신의 귀곡성을 오롯이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공감하며 연민마저 느끼게 된다. 귀신이야기라 하면 사람들은 현실이 아니고 자신의 이야기도 아니라 여기지만 결국 우리내 이야기이기에 자꾸만 호기심이 일고 빠져드는게 아닌가. 무섭고 추한 귀신 이야기를 통해 소외된자들의 억울함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금기시된 일도 귀신을 통해 현실로 끌어내 공론화 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귀신이야기는 우리에게 단순한 오락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회적 모순과 정치적인 이야기들도 서슴치 않고 비평할 수 있고 여론화 할 수 있는 우리사회의 건강한 어둠을 대표하는 귀신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상징한다. 매년 우리 곁을 찾아오는 귀신이야기를 무섭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