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을 권리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 시사IN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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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니면 결혼, 내키지 않는 두 선택지를 넘어서기 위해서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결혼에 이르기 전에 서로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연인일 수도 있다. 또 이혼과 사별 후에 더 이상 친족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는 사람도, 노인과 장애인처럼 특히 돌봄이 필요한 이들도 긴요하게 쓸 수 있는 제도다. 흔히 ‘동거‘를 무책임하고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연으로 함께 살고 있고, 또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과 혈연 이외의 사람들이 함께 살 때 필요한 사회복지혜택과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고, 둘이 동거생활을 시작하고 해소할 때 필요한 공정한 절차를 규정하는 법이다. - P8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핵심은 ‘고독‘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외롭다. 국가는 국민이 외롭게 살도록 방치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폭증하는 1인 가구를 자유와 낭만을 갖춘 새로운 생활방식처럼 꾸미지만 실제로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 누구와 같이 사는 게 민폐가 되는 여러 환경, 너무 높은 결혼의장벽, 가부장적 가족문화 등으로 ‘어쩌다 보니‘ 비자발적으로 1인 가구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가족 간에 물리적, 감정적으로 서로 돌보지 못하거나 돌봄을 거부하는 상황도 빈번해 가족과 함께 살아도 외로운 경우가 많다.
‘고독‘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개인의 기분이 아니라 실재한다.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이 고독한 상태가 되면 그건 사회적 문제이자 정책적 과제다. 지속적인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돌봄을 제공하는 자원이 필요하다.
나는 고독이, 외로움이, 돌봄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많은 - P10

사람이 어쩌면 한국의 가장 큰 정책적 과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고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기껏해야 상담을 해주고 정신과 치료에 대한 보험수혜를 늘려주는 정도다. 물론 경제 정책, 복지 정책, 노동 정책을 통해 사회적 고독을 만드는 요소를 줄여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외로움 자체를 해소하려면 더욱 직접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법은 고독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돌봄‘에 대한 법이다. 우리는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 화장실에서 넘어졌을 때 구급차를 불러줄 사람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은가. 돌봄은 좁은 의미의 간호나 가사노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험난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바쁜 친구와 밖에서 만나 얘기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내일의 건강한 출근을 위해서 오늘 털고 가야 할 이야기도 있다. 치킨을 주문하거나 라면을 끓일 핑계가 되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눈송이만한 외로움이 밤새 몸을굴려 눈사태가 되지 않도록 그저 누군가의 잠자는 숨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물론 누군가와 같이 산다 해도 내 몫의 돌봄은 내가 해야 한다. 하지만 품앗이는 할 수 있다. 내가 힘들고 바쁠 땐 상대가 도와주고, 아플 땐 서로 보살피고 집안일도 대신 해출 수 있어야 한다. 피곤하고 아파도 어쩔 수 없이 출근은 해야 하는데, 빨아놓은 셔츠가 한 장도 없을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묻게 된다. 우리에겐 연대와 협동, 상호돌봄이 필 - P11

요하다.
한국은 돌봄을 이미 상당 부분 공공서비스와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많은 복지비용을 들여 공공산후조리원, 아이 돌보미부터 치매 간병까지 일생에 걸쳐 돌봄 서비스를 지원한다. 물론 돈이 있다면 시장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구입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 제공하는 돌봄은 청소, 아이 보기, 간호하기 등 구체적 행위뿐 아니라 감정노동까지 포함한다.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 나를 아껴주는 기분을 느끼고자 적지 않은 돈을 쓴다.
이러한 돌봄을 정부와 시장이 다 해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가족 대신 정부와 시장이면 충분할까? 돌봄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인격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전인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다. 아무리 많은 자원을 들여 각종 서비스를 지원한다고 해도 채울 수 없는 여지가 있다.
가령 노인 1인 가구가 오늘도 건강히 잘 지내는지, 영양가 있는 식사를 했는지, 사회적으로 단절된 곳에서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회복지비용을 들여야 한다. 더구나 이런 서비스는 해당 노인을 연명시킬 수 있을지언정 외롭지 않게 하기는 어렵다. 이 노인이 믿을 수 있는 친구와 살아갈 수 있는 제도가 있고, 이를 장려하기 위해 임대주택과 수당도 준다면 어떨까? 우리 사회는 ‘특별한 한 사람‘만 내 옆에 있으면 되는 간단한문제를 너무 어렵게 풀어가고 있다. - P12

일부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가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동거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면 더더욱 결혼을 안 할 것이고, 출산율이 떨어지며, 우리 사회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 법이 허용한 동거의 방식이 결혼뿐이라 누군가와 같이 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결혼하는 것이라면 정말로 진지하게 가족법의 재건축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족의 위기가 아니라 ‘가족법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을 이루도록 장려하는 법, 서로에게 더 책임을 갖고 정착하도록 독려하는 법, 가족의 믿음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법인 생활동반자법은 당연히 ‘보수적인 법‘이다.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정시킨다는 의미에서 보수적이다. 생활동반자법은 기존의 경직된 가족제도를 떠난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탈락하지 않고 사회를 더 신뢰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우리가 만들어 온 사회복지제도에 더 많은 사람을 포함시키고, 개인으로서, 또 가족구성원으로서 보장받아야 한다고 여겨온 권리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하는 법이다. - P15

한국 사회의 아들딸로 사는 우리에게 ‘부모에 대한 부담감‘이 보편적 - P27

으로 와닿기 때문인 것 같다. 부모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고,
부모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 한국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꼭 모셔서 정신건강 특강을 듣고 싶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인순이의 〈아버지〉, 자이언티(Zion.T)의 〈양화대교〉, 라디(Ra.D)의 〈엄마〉 같은 노래가 필승카드로 쓰이는 한 이 원망과 미안함의 이중적 감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용돈을 드리고 자주 찾아가서 뵈어도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밑 빠진 독과 같다. 쓰고 넘칠 정도로 돈이 많아서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해드리면 괜찮을까? 그럴정도로 돈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녀의 경제력이 충분하다면 아마 부모의 경제력은 넘치게 충분할 가능성이 크고, 한국 사회의 효도는 단순히 경제적 부양을 넘어서 감정적 충만함이라는 좀처럼 완성되기 어려운 목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처럼 관직을 버리고 3년상을 치르는 게 현대식 효도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효도는 자랑할 만한 아들딸이 되는 것이다. 해외로 효도여행을 보내서 동창들이모여 있는 네이버 밴드에 자랑할 사진을 찍게 해주고, 면세점에서 세상을 덮을 만한 샤넬 로고가 박힌 핸드백과 아버지 손목 관절에 무리를 줄 만큼 무거워 보이는 롤렉스 시계를 사드리는 것이다. 부모님 지인이 듣고 단박에 알 만한 직업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효도가 될 만한 직장을 잡으려면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털어 지원을 받아야 한다. 효도 - P28

를 하려면 불효를 해야 하는 딜레마다. 지금의 불효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성공을 이뤄 부모님의 노후까지 책임져야한다. 이렇게 한국 사회 청춘들은 효도를 향한 피의 레이스를 진행하고 있다.
미안하다가도 가끔은 화가 난다. ‘좋은 직장도 못 갖고 돈도 못 버는 게 누구 탓인데‘ 생각하다가도 죄스러운 마음에 얼른 지운다. 미안하다가 원망했다가 잘 해야지 하다가 부담스럽다가 부모에 대한 감정이 널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부모 덕으로 사장이네 대표네 갑질을 할 때면 더 좋은 위치에 나를 올려다주지 못한 부모가 원망스럽다. 재벌기업까진 물려주지 않더라도 그때 내게 조금 더 투자를 해줬더라면, 딸이라고 학원비를 아끼지 않았더라면, 내게도 학자금 대출이 없었다면, 전세금만 보태줬다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자식을 좋은 위치에 보내기 위해 과잉 투자한 부모에 대한 원망도 있다. 학업 성취만 요구하고 내 마음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원망이다. - P29

결국 자식에게 ‘올인‘한 후 부양을 받는 게 이들의 노후대책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악화된 노동 환경에서 자녀는 부모를 부양할 만큼 충분한 돈을 벌지 못 한다. 정부는 기초노령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사회복지제도를 급히 만들었지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 역시 국민연금처럼 돈을 미리 쌓아 놓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 대상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이중고에 시달린다. 굶어 죽지 않을 수준의 노인 복지, 그나마 잘 갖춰진 의료제도와 기술로 한국의 노인은 아프고 가난하게 오래 산다. 그 결과 한국의 노인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이 일하는데도 가장 가난하고 압도적으로 많이 자살한다.
노인일자리 사업을 나가거나 폐지를 주워 돈을 벌고, 기초노령연금을 적게나마 받고, 자녀가 조금이라도 용돈을 - P32

주면 간신히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조그만 돌부리도 너무나 버거운 절벽이 된다. 국민건강보험이 허락하지 않는 병을 오래 앓는 것, 노인복지센터나 경로당을 가지 못할 정도로 다쳐 밥과 여가를 해결할 수ㅠ없는 것, 오랫동안 살던 동네가 재개발 되는 것, 자녀가 실직을 하는 것 모두 준비되지 않은 돌부리다. 노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자녀의 생활도 도미노처럼 함께 무너진다. - P33

현재의 부양의무제는 착하고 가난한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원망하고 미안해하도록 한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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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결혼 - 여자들 사이의 섹스 없는 사랑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
에스더 D. 로스블럼 & 캐슬린 A. 브레호니 지음, 알.알 옮김 / 이매진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보스턴 결혼‘은 미국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존재한 여성들 간의 동거 관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성애적 결혼이 여성을 완성시킨다는 남성 중심적 여성관이 팽배하던 시절 결혼은 여성에게 유일한 ‘승인‘의 장이며, 동시에 영원한 족쇄였다. 결혼은 남성의 경제력과 여성의 출산력을 교환하는 제도였고, 그 결과물인 ‘가정‘은 냉담함과 엄격함에 따라 지배됐다. 그러나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만한 전문직 일자리들이 생겨나면서 여성은 결혼하지 않으면서도 잘 살 ‘궁리‘를 해냈다. 청교도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혼이면 당연히 금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와 여성들 간의 친밀성을 결합해낸 여성의 문화적 능력이 바로 ‘보스턴 결혼‘이었다. 여성들은 마치 친밀한 부부처럼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지만, ‘섹스‘가 없는, 또는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관계로 함께 살았다. 물론 이것은 19세기 미국의 현상만은 아니다. 보스턴 결혼 같은 관계로 사는 여성들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이를 낳아줘야 한다는 강박도, 남편의 감정과 성적 충동을 일방적으로 헤아려줘야 하는 불평등도 존재하지 않는 여성들 간의 동거 관계는 평온하고 장기적이었다. 그러나 보스턴 결혼은 그뒤 ‘성적인‘ 것을 강조하고, 비혼 동거 여성을 낙인찍고 비정상화하는 사회적 변화에 밀려 더는 언어화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성관계를 뜨거운 ‘열정‘의 산물로, 여성 간의 친밀성을 레즈비어니즘으로 ‘낙인‘ 찍는 사회에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들 사이의 친 - P8

밀성은 서둘러 자매애와 우정으로 정의 내려졌다. 자신의 정체성을 레즈비언으로 규정하는 여성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레즈비언은 ‘성적으로 여성에게 끌리는 존재‘라는 존재론적 속박에 눌려 헌신적이지만 섹스가 부재한 관계를 ‘위기‘로 여기기 시작했다.
《보스턴 결혼》은 이런 인식의 혼란을 해결하려 한 레즈비언 여성들이 쓴 책이다. 로맨틱하면서도 성적이지 않은 여성들 간의 관계, 격한 감정을 성기 섹스로 환원시키지 않는 관계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지은이들은 선조 언니들의 지혜와 현대 레즈비언 여성의 자부심을 복원해 ‘신 보스턴 결혼‘을 창조해내고 있다. - P9

얼마 전 어느 워크숍에서 마니 홀은 레즈비언 관계에서 섹스가관계를 정의하는 변수가 되는 까닭을 설명했다. 홀에 따르면 우리 레즈비언들은 자신의 관계를 외부에서 거의 승인받지 못한다. 그런데 섹스를 하지 않으면, 내부의 인증조차 없어져버린다. 홀이 레즈비언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관계의 "참고서Cliff Notes"들을 버리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섹스 서사sex narrative보다는 친밀함 서사intimacy narative가 될 만한 것을. 가부장제가 좋은 관계는 섹스를 포함한다고 간주한다면, 섹스를 뒤집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 홀은 "세상에 섹스 같은 것은 없다. 로맨스니 환상이니 절정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없다.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것은 남성 발기다. 우리는 이제 때려치겠다고 맹세를 해야 한다"라고 썼다. - P34

관계란, 집단이 합의한 이름이 있든 없든, 관계다. 우리는 관계를 범주화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관계의 한 양태를 병리 현상으로 취급하려고 보스턴 결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 우리 언어로는 기술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무형의 관계들까지 레즈비언 문화의 어휘를 확장해보려는 뜻이다.
내 의견으로는, 보스턴 결혼이(아니면 다른 어떤 류의 관계든지) 상대적으로 바람직하고 건강한지는 결국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그런 관계에서 성적이지 않으려는 자신의 욕구와 동기들을 자각하고 있는가? 자기 본능과 본성을 막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성적 본능을 가로막으면서 다른 본능들까지 막고 있는가? 자신의 성애적인 본성에 수반된 에너지를 다른 통로로 이끌어주고 있는가? 이것이 자신에게 좋고 건강한 선택인가?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가, 그것은자각과 의식이 동반된 선택인가? - P47

‘보스턴 결혼‘이라는 명칭의 시발점이 된 헨리 제임스의 소설《보스턴 사람들The Bostonians》(1885)은 19세기 후반 미국 도시 지역에 이런 관계가 널리 퍼져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소설에서 헨리 제임스는 서로 헌신적인 여성 커플을 여럿 등장시킨다. 제임스는 자기 소설을 "뉴잉글랜드에서 아주 흔하던 여자들의 우정 가운데 하나[에 관한] …… 아주 ‘미국적인American‘ 이야기"로 특징지었다. 그런 관계는 ‘보스턴 결혼‘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아직 여성 동성 관계female same-sex relationship가 ‘레즈비언‘으로 널리 낙인찍히는 시대가 아니던 19세기 후반, 자기 일을 가진 여성들에게 그런 ‘결혼‘은 굉장히 그럴듯한 것이었다. 그런 관계는 여성에게 동지애companionship, 돌봄nurturance, 마음 맞는 이들끼리 나누는 연대감, 로맨스(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관계는 아니라도 일부에서는, 섹스)를 가능하게 해줬다. 자기 삶에 ‘중요한 타자‘가 가져다 주는 모든 이점을 주면서, 이성애에 따라붙는 짐들, 그러니까 자기 직업을 가진 앞서 나가는 여성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짐은 없었다. 한 세기가 지나도록 이런 관계는 많은 중산층 여자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지로 남아있었다.
19세기 후반, 여성에게 새로이 열리고 있던 직업군에서 일하려고 진지하게 고려하던 여자라면 여러 번 임신하고 대가족을 꾸릴 책무를 지는 상황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어 - P51

렵지 않게 이해했다. 남아 있는 선택지 가운데서 제일 나은 것은
‘노처녀‘였다. 노처녀로서 이성 간 내연 관계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는 일은 도덕 규범에 어긋났으나, 가까운 여성 친구와 나누는 동지애를 굳이 멀리할 이유는 없었다.
과거 긴밀한 여성 간 우정은 고귀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로맨틱한 우정이라는 관례가 서구권에서 보인 발전을 추적했는데, 적어도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서구 관례와 비슷한 것들을 비서구 세계, 예를 들어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구의 성과학자들이 ‘레즈비언‘이라는 종種으로 정의해버리고 자기들이 내린 정의를 대중의 의식에 퍼트려놓기 전까지, 로맨틱한 우정은 다른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가능하고 또 널리 흥했다. ‘레즈비언‘은 로맨틱한 우정 관계에 전제되고 높이 찬양받던 ‘고귀한 순수성‘을 수상쩍게 만드는 성 정체성을 의미했다. 또한 ‘레즈비언‘이라는 범주의 출현은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자기 애정을(따라서 자기 자신까지)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분류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면서 이 여성들을 나머지 여성들로부터 갈라놓았다.
그러나 여성들의 강렬한 애정이 언제나 수상하게 비춰지지는 않았다는 증거는 압도적이다. 역사적으로 젊은 여자들에게는 종종 다른 여자들과 키스할 수 있고, 서로 아껴주고, 함께 잠을 자고,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고, 영원한 믿음을 약속하는 관계가 허용됐다. 이런 관계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성적이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개인의 성적 취향이 가지는 스펙트럼을 고려하면, 실제 성기 성애genitally erotic가 그중 전혀 없었다고 믿기는 어려우며, 역사적인 기록도 일부는 확실히 그런 성애를 나눴다고 입증한다. 하지만 나는 대 - P52

부분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위에 제시했듯이, 저 로맨틱한 친구들과 동시대에 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믿은 것과 같은 까닭에서다. 성욕의 잠재력에 관한 일반적인 생물학적 설명 방식도 있다. 그러나 개인이 사회와 나누는 상호작용과 개별 환경이 성욕의 표현 범위를 결정짓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는 킨제이가 면담한 여자들 가운데 20퍼센트가 19세 무렵에 삽입 성교를 해봤다고 했는데, 1971년에는 대조군 표본 수치가 거의 50퍼센트에 가깝게 올랐다. 변한 것은 명백히 성욕의 생물학이 아니라, 더 많은 여자들이 욕망을 의식하고 그 욕망에 따라 행동하도록 허용(때로는 심지어 강요)한 사회인 것이다. 이성애 행위와 동성애 행위 사이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는 1950년대보다도 훨씬 심하게 여자들이 섹슈얼리티를 부정하게 만드는 시대였다. 이 시대 여성들은 좋은good 여자한테는 자발적인 성욕이 없다고 믿게끔 자랐다. 단순히 부부 관계와 출산의 의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남편의 욕구를 고려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지 않는다면, 여자들은 성적이지 않은 존재였다. 이성애 경향이 있든 동성애 경향이 있든, 섹슈얼리티에 가해지는 이런 제재에 맞서 싸운 여자들보다는 이것을 내면화한 여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대개 성적이지 않게끔 사회적으로 구성됐다. - P53

다른 시대에는 이런 관계가 허용됐는데, 어째서 지금은 낙인이 찍혔는가? 아마 ‘여러 세기에 걸쳐 남자들이 이런 관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이런 관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불가침이자 보편적인 남성 우월주의(여자는 남자로부터 독립된 존재일 수 없다는 관념을 강요하는)에 타격이 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로맨틱한 우정이 사회 조직에 주요한 위협으로 여겨지지 않은 까닭은 이 로맨틱한 우정을 주로 찾아볼 수 있던 중간 계급과 상류층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여자는 다른 이유를 제쳐두고서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아남으려면 결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해 그런 관계는 한시적이거나 적어도 결혼에 견줘 부차적으로 비춰진 것이다.
또한 그런 관계는 사회적 요구에도 부응했다. ‘정숙한‘ 여자는 결혼 말고는 남자와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평판에 흠이 나지 않게 하려면 자기 애정을 어디다 둘지 조심해야만 했다. 여자의 정조에는 어떤 오명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한 여자에게 남편의 가정으로 옮겨갈 때까지 아무도 사랑하지 말라고, 감정이든 희열이든 무엇이든 느끼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다른 여자와 나누는 로맨틱한 우정은 그런 감정적 요구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고 또한 이미 말했듯 죄가 되지 않고 무해하다고 간주됐다. 젊은 여자의 순결(보통 엄청 - P55

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에 그런 관계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여자가 결혼할 때까지 여러 가지 문제에 말려들지 않게 지켜준다고 여겨졌다. - P56

‘로맨틱한 우정‘, ‘보스턴 결혼‘ 같은 용어가 ‘변태‘, ‘도착‘, ‘동성애‘, ‘레즈비어니즘‘이라는 용어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갔다.
이 태도 변화는 성적 가능성을 사람들이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한다. 여성-여성 관계의 관례가 전에는 사회적 위협이 될 수 없었지만 1920년대쯤에는 그 위상이 변했다. 여성주의 운동이 거둔 다양한 성공은 이제 노동 인구로서 더 많은 여자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했다. 앞서나가는 극소수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더는 생존을 위한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됐다. 경제 문제가 여자들을 결혼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하고 맺는 관계를 통해 완벽하게 만족한다면, 오랫동안 여성주의의 공격에 버텨온, 이성애 결혼이라는 위기에 처한 제도는 뭐가 되겠는가? 여성-여성 관계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것이 이성애를 변호하는 무기가 됐다.
낙인찍기가 여성-여성 관계에 끼친 영향은 복합적이다. 한쪽에서는 그 영향이 매우 파괴적이었다. ‘레즈비언‘이라는 이름표로 낙인찍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여자들에게는 수세기에 걸쳐 여자들이 누려온 강렬한 동성 간 감정적 결속의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해야만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레즈비언‘만이 다른 여 - P59

자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자신은 레즈비언이 아니라 한다면, 이 여성들은 다른 여자를 향해 그 어떤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 게 되더라도 그것을 억눌러야만 했다. 이런 의미에서 1920년대 여자들에게는 그 선조 격인 여자들보다 훨씬 허용되는 범위가 좁았다.
한편으로는 ‘레즈비어니즘‘이 소개돼 여자들이 자기의 동성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훨씬 큰 자유가 생겼다. 자기네 관계를 영속 가능성이 있는 관계로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들 스스로 ‘레즈비언‘ 이라는 이름표를 받아들이면 다른 여자를 향한 사랑을 단초로 하나의 생활 양식이나 나아가 하위문화까지도 구축할 수 있게 됐는데, 예전에는 대체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번 여자가 ‘레즈비언‘이라는 이름표를 받아들이고 레즈비언 하위문화 속에 자리를 잡으면, 다른 여성들을 향한 사랑과 관련한 전에 없던 또 다른 압력들, 자기 정체성이 낙인찍히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의 압력들에 시달렸다. 근대에 등장한 새로운 통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심지어 여자나 아이까지도 성적인 존재였다(이것은 앞에서 썼듯, 유럽과 미국의 역사 전반에 걸쳐 격렬히 부정돼온 사고방식이다). 바로 전 세기나 더 앞선 시대의 가정을 완전히 뒤엎고, 마담 드 스탈과 세라 오언 주엣의 편지에서 드러나는 그런 정열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관계는 예외 없이 성적 요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는 추측이 널리 퍼졌다. 또한 관련 당사자인 여자들이 종종 그런 전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신의 충동이 자기를 에로틱한 방향으로 이끌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즉 스스로 다른 여성과 강력한 결속을 경험했다고 인정하면 ‘레즈비언‘이라는 - P60

이름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고 ‘레즈비언‘은 여성-여성 간 ‘성적‘ 관계를 암시하므로, 이 여자들은 그렇게 보이게끔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내면화된 압력을 받았다(단지 자신에 관해 감정적으로 일관성 있는 시각을 취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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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기 - 비혼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
송제숙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한국 싱글남성의 노동과 비교했을 때 한국 싱글여성 노동의 유일하게 다른 혹은 더 강조할만한 지점은, 여성 대다수가 제조업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에마저 학위에 대한 보상을 안정된 일자리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 P27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싱글여성들이 제대로 고용되지 못하는 상황은 노동시장의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첫째,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노동시장 신자유주의화를 통해 시간제 일자리가 지배적인 고용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며, 전일제 일자리를 차지한 남성들의 비율도 줄어들고 있다. 둘째, 아시아금융위기 이후 양질의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에게 안정적인 직업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산업예비군, 잉여인구, 혹은 한국에서 신빈곤층이 된 젊은이들을 일컫는 표현인 ‘백수‘가 되었다. - P28

전세와 재테크를 각각 퇴적된 금융화와 월스트리트식 금융화의 창으로 설명하는 2장은 비혼여성들의 주택과 경제적 독립, 삶의 안정성을 규율하는 데 전세와 재테크가 가진 함의를 도출한다. 자산증식 메커니즘의 젠더화되고 계급화된 규율은 분명 싱글가정을 차별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자본축적 과정을 이해하려면 (전세를 통한, 이후에는 공식적인 금융시장에서 투자의 확대를 통한) 이 같은 금융투자 기교들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은 주로 한국이라는 국가와 재벌이 산업생산을 통해 국가적인 이익의 증식을 주도해왔다는 ‘발전주의 [자본주의] 국가‘의 틀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스케일에서 (하위주체들의 생존전략에서 출발한) 비공식적인 금융화의 역사에 대한 고찰이 이론적 기여를 할 수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경제 수준에서 소득이 불규칙한 사람이 (대체로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을 통해) 삶의 안정성과 자산증식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 더 세밀하게 이해하고, 이들이 거시경제 수준에서 국가 및 전 세계 수익 창출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재생산에 어떤 식으로 기여하는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공식 경제를 정량화하기 어렵다고 해서 이 같은 분석의 중요성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 P39

이어지는 1장에서는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성적 통제와 결혼 압력이라는 차별적이고 당혹스러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집을 어떻게 떠나 자기만의 장소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다양한 비혼여성들의 설명을 소개한다. 그리고 2장에서는 혼자 살고자 하는 비혼여성들 앞에 놓인 제도적·경제적 도전들의 맥락을 살펴보고, 퇴적된 금융화와 월스트리트식 금융화라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비혼여성들의 재정적 불안을 살펴본다. 3장에서는 비혼여성들의 삶과 환경에 구현된 향유라는 규범을 중심으로 - P42

구舊학생운동 세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동 영역을 살핀다. 이는 반체제적인 정동으로서의 향유와 신자유주의적인 자기관리의 속성으로서의 향유가 역설적으로 수렴되는 현상을 특징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4장은 자유화 이전 시대부터 지속된 정동의 영향이 정치 및 사회조직에 몸담고 있는 비혼여성들의 활동에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책을 마무리한다. - P43

따라서 스스로를 비혼여성이라고 여기는 내 연구참여자들은 여성의 주거 해방을 개인적인 실천으로서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의식과 공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투쟁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사회적 규범에 맞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이 특수한 사회역사적 순간들(미디어와 여행을 통 - P54

한 코즈모폴리턴적 문화의 영향과 성평등의 주류화)을 거쳐왔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 시기에 학생운동가로 활동했었으며 사회운동의 자유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점차 여성과 다른 사회정의 문제로 정치적 관심을 옮겨간 시대적 변화의 장본인들이다. 따라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서 자기만의 주거지에서 살기 위한 여정과 사회운동과 관계 맺기 위한 노력은 자유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좌파적인 인간상의 증표라 할 수 있다. - P55

내 연구참여자들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가난을 면치 못하거나 노숙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거주 독립의 동기를 부여한 것은 가족들의 결혼 압력이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시장을 염두에 두고 퍼부어지는 외모에 대한 간섭의 말들과 꾸준한 중매 제의를 경험했다. - P56

제가 감정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그분들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는 거죠. 무엇보다 결혼 압력은 부모님과 제 사이의 골을 깊게 만들었어요. - P62

전 진짜 해방된 기분이에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을 때도 부모님이 제 삶에 많이 개입했던 건 아니지만, 보는 눈이 있을 때랑 없을 때랑 자유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 P66

호선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평화롭게 사는 것)를 알게 된 순간 망설이지 않고 집을 떠났다. 어쩌면 호선은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젖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지 모른다. 하지만 가족에 대해 감정적으로 민감하고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전혀 예외적이지 않다. 엄마의 동정과 걱정은 호선에게 압박감을 주어 결혼에 대한 감정을 바꾸도록 했다. 자신이 외로운지 아닌지 자문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편견이 어떻게 낭만적인 관계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고 이 욕망을 결혼에 대한 재고와 뒤섞이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집에서 독립함으로써 확보된 물리적 거리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가족으로부터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가족에 대한 감정적 민감성은 여전히 숙제로 남게 된다. - P69

가족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추억마저도 죄책감이 들거나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그렇게 큰 고생을 했다, 우리 아빠가 날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했다, 뭐 그런 식으로요. 가족에 대한 추억을 건드리게 되면 가족구성원의 희생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해서 1차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활양식과 관점을 공유해야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가족 안에는 단지 혈연과 지연 때문에 억압적인 기대 같은 게 있어요. 생물학적 가족은 ‘순리‘ 같은 걸 따르는 것 같아요. - P73

가정 안에서, 그리고 결혼을 하려고 할 때 이루어지는 비혼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는 단순한 감정적 지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불안한 경제적 상황은 결국 자신의 거처를 얻기 위해 가족의 재정적 지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낳는다.
이 장에서 되풀이된 진술들은 사회적 자본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로서 화폐자본이 갖는 힘을 확인시켜준다. 가족과 친족 내에서 호혜성의 원칙으로 오가는 사회적 자본을 대체할 유일한 힘은 화폐자본으로 귀결된다(자세한 내용은 2장을 참조할 것).
어머니로부터 몸매에 대한 잔소리와 저임금 일자리에 대한 부당한 지적과 함께 데이트와 결혼에 대한 압력을 받았던 보희는 어머니의 관점을 이렇게 전한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거면 돈이나 넉넉하게 벌든가." 역시 가족들과 따로 떨어져 사는 소정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돈을 더 번들 그분들이 더 이해해주실지도 잘 모르겠어요 [웃음]." 부모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집을 나와 따로 살고 있는 몇 안 되는 비혼여성 중 하나인 지수는 가족의 압력을 진정시키는 화폐의 힘을 이렇게 설명한다. "특히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벌이가 좋다는 걸 부모님이 아시고 난 다음부터 제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 결혼 얘기를 별로 안 꺼내세요." - P83

라파비차스Lapavitsas(2009)는 신용거래와 금융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필요로 하는 개별 가정을 발판으로 신자유주의 안에서 30년간 켜켜이 쌓인 금융자본주의를 "일상생활의 금융화"라고 정의한다. 그는 최근의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마르크스 등이 주목했던 금융자본이 있던 초기 자본주의와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금융화의 상황이 더 복잡하다. 이는 한국이 최근에 발전하여 뒤늦게 세계자유시장에 뛰어들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도래하기 훨씬 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은 공식적인 금융투기의 규모와 양태에 비교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본의 생산보다는 화폐자본의 순환을 우선시함으로써 (특히 이자에서 이윤을 남김으로써) 자산을 마련하는 자산증식의 논리와 욕망이라는 측 - P89

면에서 양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엘리어카Elyachar(2010)의 간명한 지적처럼 비공식 시장은 친족구성원이나 이웃 같은 1차적인 사회적 네트워크에 크게 의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착취 과정은 훨씬 복잡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월스트리트식 금융화global financialization‘라는 라파비차스의 맥락과 구별 짓기 위해 가정경제의 뿌리 깊은 토대를 이루고 있는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을 ‘퇴적된 금융화sedimented financialization‘라고 부를 것이다.
이 장에서는 젠더화된 노동빈곤층을 살펴보는 창이라는 의미에서 월스트리트식 금융화과 퇴적된 금융화의 개념적, 역사적 차이를 개괄하고 이 두 금융 시스템이 비혼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퇴적된 금융화가 어떻게 심지어 ‘포드주의적인 생산양식‘ 혹은 ‘신자유주의 이전의 자본주의‘로 알려진 시기에 이미 화폐자본이 주도적으로 자산증식을 꾀하는 데 이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화폐자본을 가지지 못한 노동빈곤층은 어떻게 배제되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금융자본은 전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퇴적된 금융화는 공식적인 금융시장을 통해 만들어진 월스트리트식 금융화와 그저 나란히 공존하지 않는다. 그보다 퇴적된 금융화는 한국인들의 일상적인 실천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월스트리트식 금융화라는 이름의 이 새로운 금융화를 (순환의) 속도와 (불안의) 강도, (금융 계급의 양극화라는) 영향 면에서 더욱 가속화시킨다.
우리가 한국의 자본축적 과정을 이해하려면 (전세주택과 비공 - P90

식적인 대출, 그리고 나중에는 전 지구적인 시장을 통한) 이 같은 금융투자 기법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 자본주의는 산업생산을 통해 국가적인 이윤의 축적을 주도하는 양대 기둥을 국가와 재벌로 바라보는 ‘발전주의 [자본주의] 국가‘의 틀에서 주로 설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가계경제의 수준에서 대체로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을 통해 삶의 안정성과 자산을 관리하는 불안정한 소득계층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이해가 필요하다. - P91

임대 시스템과 대출 정책은 한국의 부동산경제와 금융시장의성격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변동성이 큰 한국의 도시 부동산시장은 자산축적과 계급양극화의 주된 근원이다(H. B. Shin 2008). 한국전쟁(1950~1953년)과 군사쿠데타 및 독재의 시기(1960~1987년)를 거치며 한국의 경제적 중심은 농업에서 산업생산으로 급속히 바뀌었고, 이와 함께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유입되었다. 사람들은 특히 수도인 서울로 몰려들었는데, 그 결과 오늘날 서울은 전체 인구의 1/4을, 수도권 지역까지 고려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같은 대대적인 이주와 함께 도시 지역의 아파트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는데, 서울의 경우 1986년과 2002년 사이에 - P100

300% 이상이 올랐다(신광영 2003, 줄레조 2007, 하의도 2008).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 1970년대 말, 1980대 말, 그리고 1990년대 말 세 시기는 특히 주목할만하다. 이 세 시기를 거치면서 비공식적인 현금시장과 결합한 부동산시장은 비공식적인 현금시장을 위해 완전히 활용되었고, 화폐자본을 통한 부의 양극화를 가속화시켰다(김용창 2004),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소유는 부와 계급이동성을 결정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 특이한 점은 공식적인 임대금융 부문이 거의 개발되지 않다보니 부동산자산 거래(매매뿐만 아니라 임대도)가 현찰 목돈시장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담보대출시장은 2003년에야 도입되었고, 지금도 일반적으로는 고소득의 정규직 종사자에게만 가능하다. 은행의 주택대출 시스템과 주택보험기관들 역시 최근까지도 정부가 운영하는 주택기금에 국한된 미개발 상태였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과거 주택 구입 비용을 조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파트에 청약할 수 있는 저축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채택된 북미식의 주택담보대출mortgage과는 달리, 주택 구입을 위한 한국의 은행 대출은 부동산 소유권이 확정된 이후에야 가능했고, 구입한 주택을 위해 대출할 수 있는 최대치는 북미의 주택담보대출(95%)보다 낮은 70%였다.
수년에 걸친 군사독재와 국가의 경제정책을 통한 성장의 유산들은 대체로 은행 융자 관행과 관련된 규제에 영향을 미쳤다.
1960~1997년까지 중소기업과 개별 가구는 심한 제약 때문에 은 - P101

행 대출을 받기가 어려웠다. 발전주의 국가의 성격이 강했던 한국은 은행을 통제하여 대기업(재벌)이 생산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이에 대부분의 대출(90%)은 대기업의 몫이었다.
이 같은 한국 대기업들은 미국이나 다른 선도적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정부의 총애를 받는 정도가 달랐다. 한국에는 삼성, LG, 현대 등 약 열 개 정도의 재벌이 있는데, 각각의 재벌들이 족벌주의를 통해 재생산한 자회사들은 자동차·전자·첨단기술상품·섬유·의류·제과·요식업·식료품업·백화점 등거의 모든 산업 및 서비스 상품을 망라한다. 좀 더 최근에는 벤처캐피털 회사와 여타 제2금융기관들도 재벌의 네트워크에 속하게되었다. 아시아금융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이들 재벌이 양적인 면에서나 속도의 면에서나 월등한 생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신용거래로 상품의 생산과 유통 사이의 시간적 격차를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우호적이었던 발전주의 국가 한국은 개별 가정에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저축을 하라고 장려했고, 이를 토대로 은행에는 대기업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라는 압력을 넣었다.
따라서 개별 가정에서는 비공식적인 대출업과 계가 은행보다 훨씬 접근 가능하고 수익성이 좋으며 더 나은 선택지로 각광받았다. 비공식적인 대출의 이자율은 연 60%가 넘었지만(은행 대출 이자는 연 20% 미만이었다) 중소기업과 개별 가정들은 규제 밖에 놓인 비공식 화폐시장의 단골고객이 되었다. 이는 한국인들 - P102

이 치솟는 주택 가격을 어떻게든 감당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주택 가격을 치를 때 목돈의 현금을 선불로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을 해내는 한 방법은 큰 위험을 감수하고 창의적으로 비공식 대출 시스템을 부풀리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이 주택 구매에 필요한 목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해낸 주요한 방법은 주택임대 시스템을 목돈의 현금을 냈다가 돌려받는 전세라고 하는 일종의 신용 시스템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Dongchul Cho 2006, Nelson 1991, Renaud 1989).
부동산시장이 연구 분야에서뿐만 아니라(공공주택에 대한 정책 지향적인 연구의 일환으로서) 정치에서도 뜨거운 주제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또한 도시 주거의 가혹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전세에 대한 역사적·정치경제학적 연구가 드물다는 점은 뜻밖이다. 부동산과 주택 문제를 다루는 사회학자, 도시계획가, 경제학자 그 누구도 전세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지 못하고, 전세가 금융시장 및 화폐자본의 축적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비중 있는 정치경제학적 분석도 흔치 않다. 연구자들은 공공주택의 형태를 바꾸고 좀 더 완화된 대출 정책을 개발할 것을 권고해왔다. 하지만 이런 정책 제안들은 목돈이 요구되는 보증금의 관습 자체에 대해서는 별 문제를 삼지 않는 듯하다. 이 원인은 한국에서 전세 시스템이 집 장만 과정에 완벽하게 침투해버린 데다, 문화 속에 워낙 깊이 뿌리를 박고 있어서 대안적인 메커니즘을 상상하는 것마저 불가능해 - P103

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연구참여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 중 누구도 많은 현금과 고소득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이 고통스러운 전세 시스템을 비판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목돈 마련의 어려움을 개인적 실패 혹은 세대의 실패로 인식한다. - P104

(주로 남성이 수행하는) 임금노동과 (주로 여성이 참여하는) 비공식 화폐시장 간의 이 같은 젠더화된 분업은 정규직일자리시장에서 여성고용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학교를 다니는 자녀가 하나 이상 되는) 규범적인 가정의 일원인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의 주 관심사인 자녀 교육과 자녀의 초기 경력개발을 관리하는 일과의 관계에서 가정의 재정적 안정성에 대한 책임을 맡는다. (부모에게는 딸의 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큰 손실일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아들이든 딸이든) 자녀의 결 - P107

혼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에도 목돈의 현금이 들어간다. 학원비도 대야 하고 교사, 군 복무와 대학입학 관련 기관의 인사, 그리고 자녀의 고용주에게 뇌물도 줘야 하기 때문이다(S. J. Park and Abelmman 2004).
현대적인 계가 젠더화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계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관계나 모계, 사돈관계를 통해 삶의 경로와 패턴이 연결된 주부와 아이 어머니들에게만 허용된다. (계주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거나 순번이 다 돌 때까지 돈을 유지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분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성원의 모집은 주로 가족·결혼·고향·학교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 결혼과 가정에서 멀리 떨어진 여성들은 이런 종류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약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적인 신용시장에서 주변화된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들과 같이 어떤 계를 만든다 해도(재정관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이 중 결혼해서 부모가 되는 구성원이 생기기 시작하면 결혼한 동료들이 싱글들을 낙인찍듯 대할 뿐만 아니라 공통의 관심사가 사라지기 때문에 싱글들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가령 내 연구참여자인 자경은 그녀가 결함 있는 성인이라는 암시를 주는 남성 동료의 모욕적인 언행에 발끈한 뒤 대학 동창들로 구성된 사회적 네트워크의 모임자리에 더 이상 초대받지 못했다. 또 다른 연구참여자인 호선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정기적인 친척 모임에서 점점 발을 뺐다. - P108

이처럼 계가 결혼과 모성을 가지고 여성의 입지를 제한하는 젠더화되고 가족/결혼 중심적인 관행임에도 불구하고, 계급과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생존과 사회적 비용 때문에 모두가 목돈의 현금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계는 단지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목돈의 용도는 주거(구입과 임대 모두), 교육(공교육과 사교육 비용 모두), 결혼(결혼식을 직접 치르는 하객으로 참여하든), 모든 종류의 경조사 비용 등 다양하다. 현금 선물이 필요한 경조사로는 생일(특히 아기의 백일과 돌, 어른의 경우 환갑, 칠순, 팔순), 기념일, 시험(행정고등고시, 사법시험, 외무고등고시 같은 전문직 시험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시험과 대기업 입사시험), 졸업, 그 외 중요한 성취 등이 있다. 화폐자본이 많은 사람일수록 화폐 선물을 거래하기가 더 좋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계급화된 관행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참여 방식은 계층을 넘어서 누구나 다 받으면 줘야 한다는 호혜성의 원리를 토대로 삼고 있다. 가령 민서는 아버지가 예상보다 빨리 은퇴하시고 이를 계기로 부모가 농촌으로 이사를 가자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에게 일자리를 그만둔다는 것은 자녀의 결혼이나 부모의 장례식 같은 가정의 경조사가 발생했을 때 동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부조금, 즉 호혜적인 화폐 선물을 포기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결혼은 목돈을 이용해 자녀 결혼 비용을 상쇄하고, 신혼여행·가구·주택 등의 형태로 신혼가정을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현금 선물인 축의금은 신랑과 신부 가족들이 가장 신뢰하 - P110

는 사람(주로 가족구성원)이 결혼식장이나 교회에서 걷는다. 그리고 이 선물을 받을 때는 돈을 낸 사람의 이름과 액수를 대체로 기록하여 이를 돌려줘야 할 때 최소한 어느 정도의 금액이어야 하는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종류의 화폐 선물은 계에 투자할 수 있는 종잣돈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한국에서 현찰 목돈에 대한 필요와 그 공급은 계급과 관계없이 보편적이며 정상화되어 있다. 즉, 사람들은 화폐시장을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략, 다시 말해 (이자를 통해) 돈 버는 돈에 이미 익숙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서는 임대 시스템이 수익을 남기기가 좋다는 인식이 생겼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을 받아 이자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쏠쏠한 돈벌이가 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금융위기 이전에는 정부가 은행을 규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주인(혹은 현금을 가진 사람중에 이자 낳는 자본 혹은 돈 버는 돈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은 전세보증금을 비공식 대출시장에 투자하거나 더 수익이 높은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썼다. 중산층은 두 번째 집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할 수 있고, 노동계급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일부를 임대하여 얻은 목돈을 굴려 나중에 자녀가 태어나거나 성장했을 때 더 큰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세보증금은 모두에게 유리했다(Nelson 2000). 목돈의 보증금 확보는 주택이나 아파트 현금 구입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전략이다. 한국의 많은 중산층이 이런 보증금을 잘 굴려서 노동계급에서 중산층으로 계층이 - P110

동을 했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집주인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거의 없다. 임대가 종료되었을 때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이 없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와 나가는 세입자, 그리고 집주인이 부동산 중개소에서 함께 만나, 들어오는 세입자의 보증금을 나가는 세입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원래의 보증금을 손실고 새로운 세입자도 찾지 못한 데다가 비공식 대출로 부채를 메우지도 못했을 경우에는, 부채 때문에 자신의 부동산을 잃을 위험에 놓일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세입자를 제때 찾는 문제는 집주인에게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전세의 교환가치가 높긴 하지만(부동산 구매가의 절반 이상), 한국 세입자들은 앞서 지적했다시피 월세는 돈을 날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직업이 불안정하고 소득이 불규칙한 세입자들은 월세를 낮추기 위해 보증금을 높이고 싶어 한다. 이는 어째서 내 연구참여자들이 룸메이트가 이사를 가버리고 나면 전세보증금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빌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이들은 월세를 내는 것보다는 목돈의 전세금을 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세 제도는 세입자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노동빈곤층을 위해서는 월세 제도를 채택하는 게 더 낫다.
는 제안도 있었다 (Nelson 1991). 노동계급 세입자 역시 목돈의 현금을 동원하여 더 큰 거주공간을 획득하는 방편으로 전세 제도 - P111

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집을 소유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넬슨의 주장에 동의한다. 특히 소득이 제한적이고 결혼과 가족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자본이 한정된 사람의 경우, 통상적으로 주거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목돈을 만들 수가 없다. 이들에게 임대주택은 자신이 가진 한정된 자금으로 얻을 수 있는 영구적인 주거지라는 지속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연령과 결혼을 우선시하는 조항을 없애 전세대출 정책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산층 부동산시장에 종속되지 않고 안정적인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전세대출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는 한국의 맥락이라는 창을 통해 전 지구화되고 있는 금융 관행이라는 더 넓은 주제로 연결된다. 공식적인 금융시장이 전 지구적 규모로 폭발하기 전부터 이미 발달해있었던 화폐자본을 통한 자산증식은 화폐자본이 (일반적으로는 이자 발생과, 포인트카드 같은 현물 보상을 통해) 어떻게 그리고 왜 노동빈곤가정과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에서 중요한 생존수단으로 편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더 깊은 (부정적인) 함의를 가질수 있다. - P112

이처럼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은 화폐자본(이자 낳는 자본)의범위와 형태를 전방위적으로, 특히 포인트카드 같은 유사현금 제도의 창출을 통해 확대했다. 좀 더 안정된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주식시장과 공식적인 신용대출시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포인트카드 제도는 가처분소득이 많지 않은 청년, 학생, 어린이들까지도 공략한다. 금융자본주의의 중심부가 젊은 층으로부터 그 광대한 인프라의 씨를 뿌리면서, 이런 식으로 이자 낳는 자본의 논리, 즉 이자를 통해 혹은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쌓아 비록 공짜일지언정 화폐자본력을 늘릴 수 있다는 신화가 확산되었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출발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반이 있으며, 이 현상은 포인트카드 같은 금융상품을 이용하여 자산을 축적하는 작은 규모의 관행에 의해 도전받기보다는 오히려 정당화된다.
이런 종류의 금융상품과 선택지를 이용하는 ‘재테크‘라고 하는 행위는 사회경제적 안정을 얻고자 한다면 일반인에게도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개인들은 더 이상 평생고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국가관료주의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평판 때문에 새롭게 발족한 국민연금 역시 신뢰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내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이 이런 자산증식 기법들을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지 - P116

걱정스러워했다. 대부분은 미래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사적인 금융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비용에 관계없이 모두가 이런 기법들을 이용할 수 있고, 유일한 변수는 정보를 관리하는 개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듯 싶었다. 이 장의 첫머리에 있는 인용구에서 원이가 밝히고 있듯, 이들이 이런 기술을 갖추지 못했을 때 이를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 - P117

이 대화는 금융위기 이후의 금융 불안이 자산을 축적하고 현재와 미래의 불안정에 맞서는 최상의 방법이었던 금융위기 이전의 소소한 돈 불리기와 목돈 거래라는 금융 습관을 어떻게 증폭시키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요컨대 한국의 임대 제도는 집주인이 집세만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목돈의 현금을 비공식적으로 손에 넣어 돈놀이를 할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 세입자는 목돈을 집주인에게 맡겨놔도 아무런 이자를 받지 못하지만, 집주인은 목돈의 현금을 받아 낮은 위험으로 이를 다른 곳에 투자하여 이자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시아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 기법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일상생활 곳곳으로 침투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이용된 자산증식 수단의 중추인 임대주택의 중요도가 더욱 확대되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퇴적된 금융화와 월스트리트식 금융화가 한국 신자유주의 속에서 융합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금융위기 이후 공식적인 금융시장이 자유화되면서 등장한 신용카드, 주택담보대출, 사보험 및 연금, 고금리 저축상품 등 이자 낳는 자본을 굴릴 수 있는 추가적인 기회가 나타났고, 이는 한국에서 월스트리트식 금융화를 이루고 있다. 산업자본가와 금융시장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결합한 금융자본이 출현한 증거로, 경제학자들은 대기업이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지분을 상당히 소유하게 된 점을 거론한다(C. H. Lee, Lee, and Lee 2002), 비은행 금융기관은 전세를 통해 상당한 보증금을 - P121

받는 집주인, 계에 참여하는 사람, 심지어는 고리대금업자 같은개인들에게 중요한 채널이다. 내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에는 이보다 훨씬 소박한 방식으로 이런 종류의 월스트리트식 금융화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고리대금업과 계, 그리고 전세라는 보편적인 주택 임대 시스템을 통한 비공식적인 금융자본축적과 목돈의 현금 기반 거래에 의존하는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했을 때, 재벌 주도의 산업자본주의를 통한 현대 한국 경제의 등장과 관련된 지배적인 이론은 한국 자본주의를, 특히 가계경제의 측면에서 완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이 등장하면 효율성 증대를 위해 순환과 축적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민간 대부자들을 제도화된 은행으로, 그다음에는 공식적인 금융자본 시스템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고리대금업 같은 비공식적 금융 관행이 사라진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국의 비공식 대출과 신용시장은 산업자본 레짐이 절정에 이르기 전에도, 절정인 동안이나 그 후에도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에서 비공식 금융자본, 그중에서도 특히 계는 산업자본이 점점 우세해지는 동안 금융자본의 제도화 속으로 자취를 감추기보다는 자산축적의 핵심 요소로 남아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례를 토대로 생각했을 때, 주택금융 영역에서는 구매뿐만 아니라 독특하게도, 임대 제도 역시 이자 낳는 자본을 축적하는 핵심 요소이며 이는 자본주의 축적 과정에 노동계급의 의도하지 않은 동참을 통해 실행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 - P122

요한 점은 금융자본을 허구적이라고 일반화시켜버릴 경우 임금과 목돈의 현금 운용 모두가 한국의 맥락에서 계급을 막론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양식이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는 한국 자본주의 역사(자본주의의 축적 과정과 위기), 그리고 국가 및 재벌 주도 경제발전의 위기라는 큰 그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강력한 금융시장(주식시장이 부각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사채나 큰손 같은 다양한 고리대금업과 계 같은 비공식 대출업)이 없었다면 그 무엇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초기에는 (이자 낳는 혹은 허구적인) 주택 호황이 자본축적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월스트리트식 자본은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통해서야 보편화되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주택과 금융시장의 연관성은 최근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이 붕괴해 크게 피해를입은 북미와 유럽국가의 상황과 유사해 보일 수 있다(Panitch andGindin 2008). 하지만 미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행 시스템에 의한 주택시장 투기가 주택과 (공식적인) 금융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게 된)은 한국의 상황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주로 비공식 금융시장을 통해 가계자산의 관리가 이루어졌고, 이렇게 관리된 가계자산이 주택(및 임대) 시장에 투기되면서 아시아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국가경제의 몰락을 초래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경제를 지탱함으로써 공식적인 금융시장을 크게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이같은 비교는 투기를 자본주의적 축적의 믿음직한 방법으로 옹호 - P123

하는 월스트리트 은행가 등의 견해를 지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금융화와 금융시장이 주로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로에 좌우된다는 솔깃한 일반화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이제까지 나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주거안정성 및 금융안정성을 저해하는 다섯 가지 구조적 제약의 집합을 다루었다. 첫째, 한국전쟁 이후 경제는 목돈의 현금과 그 이자를 개별 가정의 자산축적을 위한 주요 수단이자 원천으로 활용하는 독특한 금융시장을 발달시켰다. 둘째, 전세를 이용하는 보편적인 관행은 목돈 순환의 핵심 고리다. 셋째, 임대주택의 경우 까다로운 요건과 관료적인 평가절차 때문에 임대주택에 맞는 금융상품과 대출 기회가 제한적이다. 넷째, 금융법과 은행조례는 특히 임대주택대출 신청 자격요건에 정규직 일자리 규정과 연령 규정을 넣음으로써 결혼한 부부와 규범적인 가정이 당연히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듯이 명시해놓았다. 다섯째, 일반적으로 여성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비혼여성들은 대출 자격요건인 정규직 근무 기록을 제시할 수 없었다. 앞의 세 가지 맥락은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네 번째 사항은 대출 신청 전에 혼자 살았음을 증명할 수 없거나 나이가 어린 싱글(젠더를 막론하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사항은 혼자 혹은 비가족구성원과 함께 살고 싶은 비혼여성 같은, 재정적으로 주변화된 집단의 주택 필요에 젠더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데 중요하다. 관습법 관계에 있는 이성커플도 네 번째 사항의 영향을 - P124

받을 수 있지만, 이 경우 주택 문제는 남성 쪽의 자원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고용 상태가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전세대출 등의 융자 신청요건에 부합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비혼여성, 여성 동성커플, 가족관계나 성적인 관계가 아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정이, 특히 정규직 시장에 진입했던 경력이 없거나 그런 경력을 쌓을 수 없는 젊은 여성들로만 구성되어 있을 경우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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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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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정의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전시하여 소비하지 않되 고통의 절대성에 사람들이 충분히 공명하게 할 수 있을까? 또한 어떻게 - P7

하면 고통에 대한 증언을 전문가의 해석을 기다리는 날것의 정보도, 그렇다고 그 자체로 완벽한 말도 아닌, 고통에 대한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런 자리는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의 뒤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증언자들이 힘차게 증언하고, 참석자들이 공명하고, 정치적 결의를 하고 난 다음이다. 참석자들이 떠나간 자리, 혹은 증언자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난 다음의 문제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하고, 그 고통에 다른 사람들이 공명함으로써 증언자들은 힘을 받는다. 그러나 다시 홀로 남은 자리에서 사람들은 묻곤 했다. "이 고통이 끝나긴 할까요?"
끝이 없다는 것.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는 것. 그것이 고통의 끝자락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장 큰 절망이라는 고통이었다. 그 고통이 고통을 고통으로 지속시켰다. 따라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소원은 단 하나다. 고통이 끝나는 것. 고통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는 것도, 고통에 대한 언어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고통이 끝난다면 그 모든 걸 접을 수 있다고 했다. - P8

오히려 내가 주목하고 염려하는 것은 고통을 겪는 이들의 주변 세계다. 고통을 겪는 이들은 어떤 말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혹은 소통하지 못하면서 누구와 세계를 짓고 또 누구와의 세계는 부수고 있는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쓸 수 있는 언어로는 어떤 세계를 짓는 것이 가능한가. 혹 그 언어로 주변 세계를 짓는 것은 불가능하고 부수는 것만 가능한 것은 아닌가?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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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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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식의 풍자, 볼테르식의 철학적 허구, 그리고 우화식의 SF는 모두 우리에게 빛을 전해 줄 뿐, 온기는 없다. 인류에 대한 보편 진실을 찾기 위해, 이런 글들은 개별 인간들의 강력한 저항정신을 포기하고 가야 한다. 다른 소설들은 거기에서 활력을 얻는데 말이다. 또한 이런 이야기 방식들은 스스로를 남성으로 성별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을 비하할 수도 있고, 여성을 남성 등장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스테레오타입으로 끼울 수도 있으며, 아예 여성을 내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두가 18세기나 그 이전 모든 세기의 문학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SF는 너무 자주 인류의 절반만으로 "미래"를 창조함으로써 장르의 지적, 도덕적 잠재력을 좁힌 나머지, SF 하면 다 사내아이들을 위한 순진한 모험담이라 치부할 수 있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던가.
자료에 나오는 솔라리스학의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들은모두 남성으로 보인다. 현재 솔라리스에 가 있는 과학자들은 모두 - P240

남성이니, 분명 이전에 갔던 팀도 모두 남성이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쓰인 진지한 소설이 여성을 아예 포함시키지 않고서 지적 영역을 구축하려 한다면, 이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누락을 통해 어떤 선언을 담는 셈이다. 독자는 당연하게도 혹시 지적인 영역이란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성립하는 걸까 생각할 수 있다. 혹시 여자를 받아들이면 그 영역은 무너질까? 이건 그런 암시일까? - P241

자기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해 쓰는 작가는 두 가지 위험을 감수한다. 하나는 오해와 와전, 즉 잘못 진술하는 것이다. 또 하 - P252

나는 착취와 강탈, 즉 잘못하는 짓이다. 지배적인 집단에 속하면서더 힘없는 집단 구성원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작가들은 그런 위험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무관심으로 위험을 감수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해도, 그런 무지는 결과를 망친다.
콜럼버스는 자신들이 신의 의지에 따라 모든 것과 다른 모든 이들의 통제자이자 소유자이자 정당한 착취자로 타고났다는 백인의 확신을 신세계에 가져왔다. 인디언들은 그 후로 줄곧 그 어마어마한 특권 의식에 맞서 왔다.
침묵당한 이들을 위해 말하는 일과,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들여 화자의 목소리로 묻어 버리는 일은 다르다. 후자와 같은 잘못을 너무나 오랜 기간 저질렀기에, 어쩌면 정직한 선의와 선행을 아무리 쌓는다 해도 인디언에 대해 쓰는 백인 소설가(또는 회고록 저자, 또는 인류학자)가 또 강탈하겠구나 하는 의심을 완전히 씻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인디언과 백인이 관계를 맺은 역사 전체에서 죄의식은 피할 수가 없다.
죄의식이란, 죄의식을 인정함으로써 더 나은 곳으로 갈 수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지난 1세기 동안, 주로 인디언 작가와 활동가들이 쉼 없이 의식화해 준 덕분에 우리는 서서히 더 나은 곳으로 향했다. 백인 작가들은 열렬한 동일시가 역겨운 침해일 수 있고, 이상화는 악마화 못지않은 모욕일 수 있음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이제 순진하게도 "인디언의 관점에서" 소설 쓰기에 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다. - P253

모하비 땅 깊숙이 자리 잡은 외딴 방목장에서 사는 사우스보이는 인디언들과 함께 섞여서 자랐고,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을 인디언들에게 배웠으며,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많은 부분 인디언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인디언은 아니다. 그는 피가 섞인 게 아니라 문화와 정신과 마음이 섞인 사람이다. 그에게는 두 영혼이 있다. 그리고 열다섯의 나이에 그는 한쪽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은 영영 떠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성인이 된다는 건 언제나 자기 사람들을 찾고 망명에 나서는 일,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 - P255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가늘게 비치는 빛은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쓰는 고독한 한 사람이다. 주인공은 오직 잘못을 저지르고 거짓말을 함으로써만 옳은 일을 하고 남편을 지킬 수 있다. 그녀는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눈이 먼 척하지만 사실은 눈이 멀지 않았기에, 견딜 수 없는 참상들을 목격해야 한다. 그녀의 딜레마 속에는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는 애꾸눈이 왕"이라는 냉소적인 옛말이 들어 있다. H. G. 웰스는 그 격언이 틀렸음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뛰어나면서 가장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쓰기도 했다. 사라마구는 그 반박을 더욱 발전시켜, 지난 50년간 세상에 나온 가장 강력한 도덕 소설로 만들어 낸다. 나에게는 그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고, 20세기의 가장 진실한 우화다. 이 작품은 위기에 마비된 이 기묘한시대에 문학이 무엇일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사라마구는 2010년 여름, 87세에 사망했다. 그해 가을, 휴턴 미플린 하코트 출판사는 그의 소설들을 전자책으로 출간했고,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버추얼 문학에 대해 말한 사람이 사라마구였기에 이렇게 가상으로 존재하는 판본이 있는 게 딱 맞는 일 같다. "그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해 현실에서 떼어낸 듯 보이는" 허구라고 쓴 그는 이 장르의 발명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돌리지만, 이 장르에 보르헤스의 작품에는 없는 탁월 - P269

한 요소를 가져온 사람은 사라마구였다. 평범한 사람들과 일상에 대한 열정적이고 연민 가득한 관심 말이다.
우리에게 분류 카테고리가 정말로 더 필요하지는 않을 테지만, 버추얼 문학은 외삽(外揮) 경향이 있는 과학소설과 사변 소설, 완전히 상상해 낸 현실을 다루는 판타지, 분개와 개선 의지가 담긴 풍자 소설, 남아메리카 고유의 마법적 리얼리즘, 진부함에 고착된 현대 리얼리즘과 다른 유용한 카테고리일 수 있다. 나는 버추얼 문학이 이 모든 장르와 기반을 공유하지만 (실제로 모두 겹쳐지는데가 있고), 그 목적이 사라마구의 표현대로 수수께끼를 밝히는 데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이해한다.
그의 작품들에서 이는 가장 소박하고 수수한 통찰로, 어마어마한 계시가 아니라 그저 해가 뜨기 전에 서서히 찾아오는 빛이다. 드러난 수수께끼는 대낮의 빛, 세상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빛이며, 말 그대로 매일 일어나는 신비다. - P270

그는 나와 같은 세대의 소설가 중에서 내가 몰랐던 것, 아니 어쩌면 내가 아는 줄 몰랐던 것들을 말해 주는 유일한 소설가다. 내가 아직도 배우게 되는 유일한 소설가다. 그에게는 우리가 부족하나마 지혜라고 부르는 예리하고도 꾸밈없는 이해력을 얻어 낼 시간과 용기가 있었다. 지혜라고는 부르지만 흔히 지혜라고딱지 붙이는 번지르르한 다독임이 아니다. 그는 전혀 사람을 안심시키지 않는다. 체념하라는 조언을 읊어 대진 않지만, 친절한 트릭스터인 희망에 대해서도 별로 확신하지 않는다. - P271

사라마구는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은 우주의 침묵이고, 인간은 그 침묵에 의미를 부여하는 외침이다." 그가 그렇게 극적인 경구를 내놓을 때는 자주 없다. 나라면 신에 대한 사라마구의 평소 태도를 꼬치꼬치 따지고, 회의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끈기 있다고 표현하겠다. 흔히 보는 절규하는 전문 무신론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는 무신론자이고 교권 반대론자이며 종교를 믿지 않고, 신실한 지도자들도 당연히 그를 싫어하거니와 그역시 진심으로 그들을 싫어한다. (...) 사라마구의 무신론은 페미니즘의 한 조각이고 그의 페미니즘은 여자들에 대한 학대와 저임금 지불과 평가 절하에 대한 격분, 모든 사회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권력을 오용하는 방식에 대한 격노이다. 그리고 이 모두가 그에게는 사회주의의 한 부분이다. 그는 약자 편에 서 있다.
사라마구에게 감상주의가 없지는 않다.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면에서 대단히 희귀한 뭔가를 전달한다. 환상을 깨뜨리면서도 애정과 경탄을 허용하고, 맑은 시선으로 용서한다. 그는 우 - P273

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그 정신과 유머 면에서 최초의 위대한 유럽 소설가 세르반테스와 가장 가까운 작가인지도 모른다. 이성의 꿈과 정의의 희망이 끝없이 좌절될 때, 냉소주의는 쉬운 출구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농민 사라마구는 그쉬운 출구를 택하지 않는다. - P274

노벨상 연설에서 사라마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사는 작은 경작지 너머로 모험을 떠날 수도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기 때문에, 남은 가능성이라곤 뿌리를 향해 땅속을 파고 들어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제 뿌리일 뿐 아니라, 터무니없는 야심을 부려도 된다면 세상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그 힘겹고 끈기 있는 파 내려가기가 이토록 가볍고 기분 좋은 책에 깊이와 무게를 더한다. - P286

SF는 어떤 현실 상황에 대한 상상 속의 전복에나 기꺼이 힘을 빌려준다. 상상력을 기르지 못하는 관료들과 정치가들은 SF 소설이란 다 레이저총이나 나오는 헛소리이고,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SF 작가가 검열을 당하려면 『우리들』의 자먀찐처럼 대놓고 유토피아를 비판하는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노골적이지 않았고, (내 좁은 지식으로는) 정부 정책을 대놓고 비판한 적도 없다. 그때도 제일 감탄했고 지금도 감탄하는 점은, 그들은 이념에 무관심한 듯이 글을 썼다는 점이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우리 작가들도 힘들어하는 일이건만, 그들은 자유로운 사람처럼 썼다. - P289

이 책이 나왔을 때는 SF에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중심인물로 쓰는 일이 꽤 드물었고, 지금도 SF는 쉽사리 엘리트주의에 빠진다. 엄청나게 뛰어난 머리, 비범한 재능, 일반 승무원보다는 지휘관, 노동 계급의 부엌보다는 권력의 회랑이 나온다. 이 장르가 전문적으로, 그러니까 "하드하게 남아 있기를 원하는 이들은 엘리트 스타일을 선호한다. SF를 그저 소설 쓰기의 한 방식으로 보는이들은 전쟁을 장군들만이 아니라 주부와 죄수와 16세 소년들의 눈으로 묘사하고, 외계인의 방문을 지식인 과학자들의 시선으로만 보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통해 서술하는 좀 더 톨스토이다운 접근을 환영한다. - P291

"달의 아침"이라는 챕터는 그 자체로 ‘왜 사람들이 과학소설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는지도 모른다. 진지하게 묻든 깔보듯이 묻듣 간에 그 질문의 답을 내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나는 이런 글을 볼 수 있다는 희망에서 읽는다. 미지의 것들에 대한 기가 막히도록 정확한 통찰, 뜻밖이면서도 필연적인 아름다움…… 과학자들이 아는 것과 같은 발견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 - P306

이야기 끝에 가서 그는 다시 한 번,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미래로 더 멀리멀리, "1분에 1000년 이상씩 성큼성큼" 여행하다가 시간의 끝에서 어느 해변가의 "아득하고도 무시무시한 황혼에 도착한다. 이 황량하고 웅장하며 인간을 넘어선 장면은 순수한 과학소설적 상상이 이제까지 쓴 가장 훌륭한 구절이 분명하다.
과학소설은 인간이(또는 딱 인간처럼 행동하는 신이나 동물이나 외계인이) 지배하지 않는 세계를 정말로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이야기다. 가끔 한 번씩 눈을 들어 인간의 행동이 아무 의미도 없고 인간의 관심사가 대수롭지도 않은 영역을,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면 루크레티우스가 말했던 "빛의 해안"이 잠시나마 위로를 넘어서는자유를 언뜻 비춰 줄지 모른다. - P315

웰스는 과학소설이 과학소설이라는 이름을 갖기 오래전에 과학소설을 썼다. 그는 그것을 "과학 로맨스"라고 불렀다가 나중에는 "가능성의 판타지"라고 불렀는데, 지금 정착한 이름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 P321

내 생각에, 『시녀 이야기』, 『오릭스와 크레이크』, 『홍수의 해』는 모두 SF가 하는 일의 한 가지 사례가 된다. 그것은 현재의 경향과 사건들에 상상을 더하여 반은 예언, 반은 풍자인 근미래를 추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애트우드는 자기 책이 SF라고 불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최근에 내놓은 멋진 에세이집 『움직이는 과녁Moving Targets』에서 애트우드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가능하고 어쩌면 이미 일어난 일이므로, "오늘날에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소설"인 SF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독단적이고 제한적인 정의는 애트우드의 소설들이 완고한 독자와 서평가와 문학상 수여자들이 아직까지 기피하는 장르로 격하당하는 사태 - P339

를 막기 위해 고안한 것만 같다. 그녀를 문학 게토로 밀어 넣을 문학 편견쟁이들을 원치 않는 것이리라. - P340

지난 세기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진지한 시인들은 오직 시만 쓰지, 소설은 쓰지 않는다고 배웠다. 그런 순수주의자들에게 괴테는 무의미했다. 그와 동시에, 모더니즘 소설 비평가들은 상상 문학을 쓰면 진지한 소설가로서 자격이 없어진다고 선언했다. 현실주의자들에게 메리 셸리는 무의미했다. 교수와 문학상 수여자들은 순수주의를 더 좋아했기에, 타고난 재능 탓에 국경을 서성인 이단아 작가들은 계속 가시철조망에 부딪치고 말았다. - P346

우리는 사랑 이야기를 브론테나 오스틴의 손에서나 드물게 예술이 되는, 로맨스 서가에 가득한 흔하고 단세포적인 장르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사실은 사랑에 대나 이야기인가? 나도 어느 글쓰기 워크숍에서 과제로 "사랑 이야기"를 줘 보기 전까지는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그 워크숍에서는 욕정에 대한 단편을 열네 편 받았다. 다음에 다시 시도했을 때는 욕정에 대한 이야기가 열한 편, 증오에 대한 이야기가 두 편, 조카딸을 사랑한 여자를 그린 사랑 이야기가 한 편 나왔다.
우리가 얼마나 온갖 종류의 사랑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소설에서는 사랑을 성적인 욕망으로만 탐구하거나, 성생활을 권력의 - P385

도구로 이용하는 학대나 착취나 집착 관계로만 다룰 때가 이토록 많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다.
『레도잇』은 사랑 이야기다. 열정적으로 성취했으나 결코 안정감을 얻지는 못한 어느 결혼한 부부의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루고, 젊은 여자 로티가 새아버지와 어머니와 이복 남동생에게 품은 격정적인 분노와 거부의 사랑을 다룬다. 가족의 사랑이란 난파선과 가라앉은 보물이 가득한 해안도 없고 해도도 없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항해이려니. 참으로 멋진 이야기다! 어떤 마돈나 사진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는 우리들 대부분이 실제로 사는 삶에 바싹 다가온다. 낭만적이지도 않고 끝도 없는 적응과 실망과 재적응, 눈먼 잔인성과 눈먼 다정함, 매듭과 복잡한 얽힘과 엉킨 그물들, 격분과 의리와 반항, 서로 함께 살아가려 노력하고 서로를 사랑하려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열정들. - P386

일상에 대해 쓴다는 건 힘든 일이다. 비범한 것, 전율스러운 것, 초월적인 것은 자동으로 매력을 발하지만 심지어 특별히 불행하지조차 않을 만큼 흔한 삶을 묘사하려면 용감한 저자여야 한다. 게다가 행복이라니, 성적인 만족도 아니고 야심에 대한 보상도, 황홀경도, 지복도 아니고 그저 일상의 행복이라니 이건 사실상 소설에서 사라진 무언가다.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고 감상주의로 보거나,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쓰기 쉽지가 않다. 진실성 있게 울리려면 가장 초라한 종류의 성취와 만족에 대한 묘사조차도 인간의 부족함과 잔인함, 언제나 질병과 몰락과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쓰여야만 한다. - P400

한 마디만 잘못 써도 모든 게 믿기지 않아진다.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에는 잘못 쓴 한 마디가 없다. 구어체의 편안함과 투명함을 갖춘 산문체와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한 말이나 뻔한 말 하나가 없다.
보통 어떤 소설을 어떤 상황에서 썼느냐는 독자인 나에게 별로 흥미를 일으키지 않지만, 이 경우에는 저자가 죽어 가면서 쓴 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감동받고 경외감마저 느낀다. 이 책은 삶의 먼 가장자리에서,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책임감을 품고 써낸 보고서다. 하루프는 증언하고 있다. 우리보다 멀리 가서, 그곳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어 한다. 하루프가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었고, 내가 그 사실을 알면서 책을 읽었기에, 나는 오직 해야만 하는 말 외에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과 함께한다는 귀한 특권을 고맙게 여겼다. - P401

어쩌면 행복이란 자유와 함께하기에, 불행보다도 예측하기 힘든 것인지 모른다. 또한 자유와 마찬가지로, 결코 확고하지가 않다. 영원할 수가 - P403

없다. 그러나 행복은 현실이 될 수 있고, 이 아름다운 소설에서 우리는 그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 - P404

요즘에는 많은 미국인이 지구 온난화를, 진화를, 과학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어쩌다가 그렇게 어리석고 위험하게 사실을 부정하게 된 걸까? 그 이유를 무식에, 멍청함에, 공화당에, 남부 레드넥에 두는 건 정말이지 오만하고 비겁하게 질문을 회피하는 방법이다. 킹솔버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받는다. 자기가 쓰는 사람들을 알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도 신용이라곤 없으며, 세상과 그 속의 자기 자리를 이해하려고 할 때 거의 도움받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만 잔뜩 받는, 그 생생하고 취약하며 무시당하는 사면초가의 시골뜨기들을. - P411

어떤 작가들은 소설 속에 미래상과 특수 용어를 가득 채워놓고서 맹렬히, 심지어는 식식대며 이건 SF가 아니라고 부정한다. 아니, 아니, 난 그런 형편없는 물건은 쓰지 않아요, 건드리지도 않아요. ‘문학‘을 쓰지요. 이런 작가들은 그 경멸스러운 장르의 비유와 전통은 신기하게 잘 알면서도 SF 장치들을 참으로 서툴게 쓰고, 용어의 의미를 참으로 무분별하게 무시하며, 바퀴를 다시 발명하면서 어찌나 스스로에게 탄복하는지, 그들의 시도야말로 방법을 배우지 않고도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증명하려 하는 망한 노력처럼 보인다. - P432

기묘하게 아름답고, 생생한 세부 사항 모두가 이질적이지만, 그런데도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친숙하기만 한 풍경. 모든 소설이 그렇듯, - P435

SF는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 P436

어떤 이들은 과학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다 몰아냈다고 장담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과학이 세상에서 마법을 쫓아냈다고 울면서 "다시 마법에 걸리기를" 빈다. 하지만 찰스 다윈이 어떤 몽상가 못지않게 발견과 경이와 심원한 신비로 가득한 놀라운 세상에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세상에서 마법을 빼앗은 사람들은 과학자가 아니라 세상이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본 사람들, 신이 움직이는 기계로만 본 사람들이다. 과학과 환상문학은 지적으로 모순되지만, 둘 다 세상을 설명한다. 양쪽 모두 상상력이 활발하게 기능하여 의미를 찾고, 딱정벌레를 설명할 때나 여마법사를 설명할때나 세부 사항과 사고의 일관성에 엄격한 주의를 기울여 지적인 동의를 얻어 낸다. 규정하고 금지하는 종교는 과학과 환상 양쪽 모두와 불화하며, 종교는 믿음을 요구하기에 양쪽의 공통 기반인 상상력을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자라면 다윈과 루슈디 둘 모두를 드러난 진실을 반대하는 "불복종하고 불경한 인습 파괴자"로 비난해야 한다. - P465

사라마구의 진실 말하기는 지성, 치열한 예술적 용기, 그리고 진지한 인간의 애정이라는 희귀한 조합에서 말미암는다.
노벨상 연설에서 사라마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충분히 이들과 동화했는지 잘 알 수 없는 유일한 지점은 그 여자들과 남자들이 그런 가혹한 경험에서 얻은 미덕, 바로 삶에 대한 당연하다는 듯 소박한 태도입니다…… 저는 매일 제 정신에 울리는 끈질긴 호출처럼 그 교훈을 느낍니다. 저는 광활한 알렌테주 평원에서 제게 주어졌던 존엄의 예시와 같은 위대함을 조금 더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잃지 않았어요. 시간이 이를 말해 줄 겁니다. - P479

전통에 맞게 출판사나 비평가의 구멍에 밀어넣을 수 없는 소설들은 "경계선"이라느니 "페미니스트"라느니 "지역적"이라느니 하는 폄하의 라벨을 얻고, 그러면 교수들이 그 작품들을 무시하고 소위 전문가들이 모욕할 수 있게 된다. - P486

신체나 정신 모두에 큰 고통을 많이 겪은 모리는 독서를 "보상"으로 본다. 실제로 책은 모리의 열정과 적극적인 지성이 더 큰 예술과 사상의 현실을 접하는 유일한 길이다. 사랑하던 모든 사람과의 이별, 부서진 골반의 고통, 대단히 고상하고 무척이나 이상한 세 고모들이 보낸 여자 기숙학교의 숨 막히는 쩨쩨함, 그리고 정신 나간 마녀인 어머니의 불가사의한 공격을 다 헤쳐 나가기 위해 모리에겐 책만 있으면 된다. 거의 그렇다. 하지만 독서마저도 결국에는 모리를 저버리고, 인생에 친교를, 사람의 온기를 구하려던 모리는 효과 있는 마법에 의존한다.
『타인들 속에서』는 재미있고 사려 깊으며 예리하고 흠뻑 빠 - P493

져들 만한 이야기지만, 마법에 대한 부분은 그 이상이다. 모리가 새로 사귄 친구들이 자신과의 우정을 선택한 게 아니라 자신이 건 주문에 강제당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모리가 겪는 도덕적인 고통은 힘의 책임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사람의 고통이다. 그리고 쉽거나 빨리 해결되는 고통도 아니다. 이 책의 핵심은 위령의 날 전야에 웨일스 산 속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도록 도우라는 요정들의 명령에 모리가 따르는 장면이다. 모리를 불구로 만든 차 사고에서 모리의 쌍둥이 자매가 죽었는데, 자매의 영혼은 지금 어둠의 문 앞에서 붙들고 매달려 모리가 그녀를 보내지 못하게 한다. 말을 아낀다는 점에서도 극적인 면에서도 잊기 힘든 이 대목에서는 모든 상실과 어려움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만큼 몰려들고, 마치 옛 발라드에서처럼 조용하고 사실적인 서술이 불가해한 경험을 심화시키며, 기이한 일을 현실로 만든다. - P494

SF 소설에서 자기들은 SF를 싫어한다고 되풀이하여 선언하는 등장인물들을 보게 되는 건 이상한 일이다. 단지 지넷 윈터슨은 대놓고 장르를 쓰면서도 "문학 작가로서의 신용도를 지키려 하는 걸까 추측할 뿐이다. 분명 이젠 윈터슨도 모두가 SF를 쓴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텐데? 과거 골수까지 리얼리즘에 파묻혔던 작가들도 이제는 SF의 비유와 장치와 플롯이 가득한 소설들을 내놓다 보니,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문학의 정전‘을 지키며 으르렁대는 머리 셋 달린 개들뿐이다. 확실히 나는 차이를 모르겠다. 뭐 하러 신경을 쓸까? 하지만 나는 상상의 공동 기금을 이용하면서, 정작 그 기금을 만들었고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이용하 - P495

도록 열어 놓은 동료 작가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척하는 저자들의 기묘한 배은망덕이 신경 쓰인다. 약간만 보답하는 너그러움을 보여 준대도 나쁠 게 없으련만. -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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