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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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넉줄의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 P95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 - P102

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꽃은 양초 불꽃들이.

뜨거운 고름 같은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그녀는 눈을 부릅뜬다.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 P103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P114

내가 함께 올라탄 트럭이 시내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두차례 길을 잘못 들었고, 겨우 도착한 예비군 훈련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총을 가져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 P115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계엄군이 십분 안에 도청에 다다를 거라는 무전이 들어왔을 때, 김진수는 자신이 맡은 창을 등지고 서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죽을 거지만, 여기 있는 어린 학생들은 그래선 안된다.
마치 자신이 스무살이 아니라 서른이나 마흔쯤 되는 사내인 것처럼 그는 말했습니다.
항복해야 돼. 만약 모두 죽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총을 버리고 즉시 항복해. 살아남을 길을 찾아. - P116

*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 P117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방금 전까지 눈을 마주치며 대화했던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피를 곁눈으로 보며, 누가 죽고 누가 남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나는 복도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습니다. 그들이 매직으로 내 등에 무엇인가 글씨를 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극렬분자. 총기 소지. 그렇게 썼다는 것을 상무대 유치장에서 다른 사람이 알려주었습니다. - P118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 P118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처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 P119

두살 많은 외사촌형을 따라 시민군에 들어갔는데, 형은 마지막 새벽 YMCA에서 죽고 혼자 잡혀왔다고 했습니다. 카, 카스테라가 제, 제, 제일 머, 먹고 싶어요. 사, 사이다하고 가, 같이. 외사촌이 죽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던 그 아이는, 뭐가 먹고 싶으냐는 말에 주먹으로 눈언저리를 문지르며 대답했습니다. 눈을 문지르지 않는 그 아이의 왼 주먹, 꽉 움켜쥔 그 손가락들 사이에 약솜이 끼워져 있는 것을 나는 묵묵히 바라봤습니다. - P120

그후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 P126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 P130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이었습니다. 더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 P133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 P135

어용노조를 큰 표차로 꺾고 뽑힌 노조 간부들을 구사대와 경찰들이 끌고 가던 날, 2교대를 하려고 기숙사를 나와 출근하던 여공들 수백명이 사람의 벽을 만들었다. 많아야 스물한두살, 대부분이 십대인 여자애들이었다. 제대로 된 구호도 노래도 없었다. 잡아가지마요. 잡아가면 안돼요. 소리치는 그녀들을 향해 각목을 든 구사대가 달려들었다. 헬멧과 방패로 중무장한 경찰 백여명을, 차창마다 철망이 쳐진 전경차들을 당신은 보았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무장했을까, 얼핏 생각했다. 우린 싸움을 못하고 무기도 없는데.
성희 언니가 큰 소리로 외친 것은 그때였다. 옷을 벗어. 우리 다 - P155

같이 옷을 벗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들은 옷을 벗었다. 잡아가지 마요, 소리치며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어 흔들었다. 그녀들이 지닌 가장 은밀한 것, 모든 사람들이 귀중하다고 말하는 것, 처녀들의 벗은 몸을 그들이 만질 수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브래지어 차림의 여자애들을 흙바닥에 끌고 갔다. 등허리의 맨살이 모래에 긁혀 피가 흘렀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속옷이 찢겼다. 안돼, 잡아가면 안돼. 고막이 터질 듯 쨍쨍한 울부짖음 사이로, 그들은 수십명의 노조원들을 곤봉과 각목으로 때려 닭장차에 집어넣었다. - P156

양장점 주인이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영암의 동생네로 내려가버린 화창한 봄날이었다. 낮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서름서름 거리를 걷던 당신의 눈에 그 시내버스가 들어왔다. 계엄 해제. 노동삼권 보장. 차창 아래 길게 걸어놓은 흰 현수막에 파란 매직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작업복 차림의 전남방직 여공 수십명이 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햇빛을 못 봐 데친 버섯같이 얼굴이 창백한 여자애들이 나무 막대들을 들고, 차창 밖으로 팔을 내밀어 차체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기억하는 쨍쨍한 목소리, 무슨 새나 어린 짐승들이 한꺼번에 내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좋다 좋다
같이 죽고 같이 산다 좋다 좋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 P158

기에 서 있는 대학병원 건물을 당신은 올려다본다. 쨍쨍 울리는 여자애들의 노랫소리가 이 밤으로부터 아득히 먼 버스에서 울려오는 것을 듣는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 먼저 가신임들을 위해 다 같이 묵념합시다, 먼저 가신 임들을 따라 끝까지 싸웁시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귀하니까. - P160

성희 언니가 소모임에 신입 회원을 받자고 해서 당신이 말을 꺼내봤던 아이였다. 당신처럼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나이를 속이고 공장에 들어온, 키가 자그마하고 웃음이 송글송글하던 그애는 거절했다. 저는 조합 활동 적극적으로 못해요. 해고되면 안되거든요. 동생 학비도 보내야 하고, 언젠가 저도 공부를 할 거니까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장파열로 당신이 입원해 있었을 때였다.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다 잠깐 문병 온 동료가 말했다.
……사방에 흩어진 우리 신발을, 정미가 전부 모아서 노조 사무실에 갖다놨다. 쪼그만 게 그렇게 서럽게 울더란다.
연행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 벗겨진 신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을 것이다. 열여섯살 난 그애는 무엇이 자신을 울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신들을 가슴에 안고 이층 노조 사무실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빈방으로 걸어올라갔을 것이다.
그날 오후 회진을 온 말쑥한 얼굴의 의사와 레지던트와 인턴들을 당신은 유심히 올려다봤다. 그애는 그들 같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그때 생각했다. 동생을 대학 졸업시키면 이십대 중반이 될 것이고, 그때부터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해도…… 아니, 그애는 그때까지 공장에서 버티지도 못할 것이다. 그애는 자주 코피를 쏟았고 깊은 기침을 했다. 발육이 덜 돼 열무처럼 가는 종아리로 - P164

방직기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기둥에 기대서서 의식을 잃듯 깜박 졸았다. 어떻게 이렇게 시끄러워요? 아무 말도 안 들려요. 처음 일을 배우던 날엔 방직기 소음에 놀라, 겁에 질린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당신에게 외쳤다. - P165

썰물처럼 잠이 밀려나가며 고통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순간, 어떤 악몽보다 차가운 순간이 다시 왔다. 당신이 겪은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 - P166

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 P167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 P173

스스로가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쪽이었다. 경찰의 발에 아랫배를 밟혔을 때 노조를 떠났다. 교도소에서 나온 뒤 성희 언니를 따라 얼마간 노동운동에 몸담았지만, 성희 언니와 달리 온건한 실무만을 맡았다. 그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격이 다른 단체로 옮겨왔고, 깊이 상처 입히는 길이란 것을 알면서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다. 지금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에 담긴 휴대용 녹음기와 테이프를, 결국 월요일 아침 우체국에 들러 윤에게 반송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버스에서 터져나오는 여자애들의 쨍쨍한 노래에 이끌려 광장으로, 총을 든 군대가 지키는 광장으로 걸었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럼. - P175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 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 P207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 - P212

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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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적 힘의 비밀 움직씨 만화방 3
앨리슨 벡델 지음, 안서진 옮김 / 움직씨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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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건 나쁘건.

그래도 나라는 사람은 내가 태어난 시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곤 해.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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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이연숙 지음 / 난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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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엄마의 외로움을 외면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보상해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엄마를 볼 때면 그래서 무력해진다. 나는 엄마의 환상(또는 망상)을 공유할 수 없는 ‘딸‘이기에 기꺼이 그녀를 방치하면서 그녀의 이해자인 척한다. 엄마는 이런 집에 사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지겹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치욕스럽다고 말했다. 최근에 사귄 친구가 자기와 ‘급‘이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것 같아 더 다가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것은 엄마의 오랜 열등감이고 자존심이다. 내가 뭐라고 말해야 했을까? 나아질 거라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다. - P16

일단 몸을 일으켜서 씻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그런 장면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했고 결국 포기했다. 나는 씻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지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책임질 준비가 된 성인입니다. 이런 식으로 삶이 천천히 망가진다. 망가진다는 것을 안다. 처음에는 이렇게 머리를 감지 못하거나 옷을 입지 못하는 일로 시작해서 살아가는 것에 흥미를 잃게 된다. 나는 분명히 내가 매듭짓지 못하고 벌여놓기만 한 일들,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한 일들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그것들을 모두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단지 미루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게 되면서 나는 나를 주워담는 것 역시 포기한다. 도처에 내가 굴러다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언젠가는 주워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 P17

무엇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처분만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로 끔찍스럽다. 나는 내가 정말로는 그를 죽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의 피로하고 아픈 얼굴을 본다면 결국 눈물을 쏟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참아낼 수 없다. 나는 그를 저주할 권리가 있다. 그를 죽일 권리가 있다. 그를 고문하고, 그의 손목을 자르고, 그의 눈알을 찌르고, 그를 거세하고, 그를 수십 번 난도질할 수 있는, 적어도 그런 음모를 꾸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죽어가는 소식을 들으면서 모든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가 그를 죽으라고 사주한 탓이라 느낀다.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비극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느낀다. 속죄하기. 수치 없이 살기. 그런데 어떻게 가능하지? 아빠 없이 어 - P34

떻게 내가 수치 없이 살지? 아니 왜 그렇게 살아야 하지?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 P35

일상적인 곤궁에 대해 쓰는 일.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쓴다. - P36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를 하루에 열 번 정도 말한다. 그런데 물론 그러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아니고 싶지 않다. - P37

<나르코스>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파블로가 어릴 때 우린 찢어지게 가난했어. 그애가 어느 날 신발이 낡았다고 학교에서 놀림받고 왔지. 나는 밤중에 신발가게에서 신발을 하나 훔쳤다. 그리고 그애는 다음날 새 신을 당당하게 신고 갔어. 나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존엄이란 그런 거야. 이런 말들이 나를 지탱해준다. 가난이 나를 추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나를 추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신발을 훔치자는 구호로 들린다면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음.)
슈퍼에서 물건을 사다가 내가 내 가난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동정을 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했고 더이상 가난에 대해 쓰지 말자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멈출 수 있을까? 이게 내 당당함이 아니라면, 비참함 속에서 굴러다니는 말들을 주워 삼키는 게 내존엄이 아니라면, 뭐가 내 말이 될 수가 있을까? - P76

죽은 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느낀다. 죽은 자들의 말과 글 속에서 견딜 만한 우정을 찾고 또 그 속에 몸을 숨긴다. - P83

(배운 여자들에게 경고. 아빠를 이미 죽였다고 생각할 때조차 그는 충분히 죽지 않았습니다.) - P120

꿈은 비물질적일 뿐만 아니라 반물질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어서 어딘가에 기록이라도 할라치면 그 의도를 눈치채곤 비웃듯이 녹아서 사라진다. 여기 적히느니 차라리 자살이라도 해버리겠다는 태도다. 만약 꿈이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고 있다면 말이다. 꿈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때로는 분하고 이가 갈린다. 이런 끔찍한 일을 자고 있는 동안에 당했는데 그 내용을 기억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남아 있는 것은 그저 ‘당했다‘는 감각뿐이다. 꿈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시간을 충격받은 채로 지냈는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고 해도 여전히 짜증은 난다. 성가시다. 나는 꿈을 꾸라고 내게 말한 적이 없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책임질 수 있다. 그러나 밤에 일어난 일. 우리가 잠들었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 우리는 그저 수치스러워하며 얼굴을 감싸쥔 채 깨어나야만 한다. 십계명에서는 ‘남의 아내를 원하지 말라고한다. 하지만 어떻게 원한 것만으로 죄가 될까? 저지르지도 - P122

않은 죄에 대해 우리는 속죄해야 할까?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왔다. 중요한 것은 어떤 꿈은 정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정하건 말건 꿈은 내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꿈의 기록을 필요로 하는데, (물론 지금처럼 잘되지는 않는다. 꿈이 반항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꿈이 번역을 요청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모든 꿈의 완전한 기록을 원할까? 그런 장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걸 사용하게 될까? 실제로 그런 장치가 있다고 한다면 처음에는 혐오스럽고 이후에는 실망스럽다가 연민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많은 현대의 매체들이 그러한 장치를 꿈꿨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P123

요즘 말이랑 울음이 동시에 경쟁하듯이 쏟아져나온다. - P145

근데 알리기 위해 말해야 할까?
알리다니 무엇을? 입을 여는 순간 분리된다. 말하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들이 입 밖으로 굴러떨어진다. 그걸 보고 있다. - P146

나는 재가 될 때까지 타는 것을 지켜보거나 그게 아니면 시작도 하지 않는 종류의 인간에 가까운 것 같다. 정신과 선생님은 그 중간을 자꾸 찾으라고 하는데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는데 그냥 못하는 거다. - P216

반성하는 게 너무 좋아서 반성 그 자체가 되어버린 사람들・・・ 인신공격이 대단한 인권운동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 지가 말하는 건 당사자성이고 남이 말하는 건 인권침해(?)인 사람들・・・ 인권 인권 외치면 인권이 자동으로 생기는 줄 아는 사람들・・・ 자기집 개 이름도 인권으로 지을 사람들・・・ 어제까지는 남 욕하는 농담에 웃다가 오늘은 갑자기 정신 차린 사람들・・・ 지가 그렇게 하는 게 대단한 사회개혁인 줄 아는 사람들・・・ 반성은 집에 가서 혼자 하고 일기장에 쓰면 되는데 굳이 동네방네 죄송하다고 떠드는 사람들・・・ 전자렌지에 햇반 데우는 시간보다 빨리 반성하고 빨리 죄송한 사람들・・・ 하여튼 어떻게든 인간을 분류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 사람들・・・ 남들이랑 자기랑 똑같지 않으면 세상이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트윗 몇 개로 인권이 나아졌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는 사람들・・・ - P257

어젯밤에는 내내 아빠 생각만 했다. 아빠처럼 죽으면 어떡하지? (나는 장례식을 떠올리고 있다.) 아니면 내가 아빠처럼 - P259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빠는 친구 하나 없이 죽었다.) 나는 아빠가 아니었다고 변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변명이 끝나지를 않는다. - P260

레즈비언 부럽다고 한 그 부분이 문젠 거죠. 레즈비언이 어떻게 부러울 수가 있겠어요? 물론 레즈비언이 부럽다고 한 맥락은 이해가 가지만요(남자랑 권력 싸움도 안 해도 되고 내가 여자라 이런가?
가 남자라 이런가? 이런 생각 안 해도 되고 더치페이 하면 되고 기타 등등). 근데 레즈비언들 입장에서는 어떻겠어요, 자기들은 결혼도 못하고 어디 나가서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과잉 성애화된 이미지를 부여받고 스리섬 하자는 소리 듣고 너 여자 역할이니 남자 역할이니 그런 말 듣고 너무 피곤하겠죠? 그런데 누가 레즈비언이라 부럽다, 이런 말을 하면 미친놈 아닌가 생각이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겠죠.
그치만 전 다른 이유로 레즈비언이 부럽다는 말이 존나 이해가 안 갔는데요. 왜냐면 그 트윗을 쓴 사람도 여자들이랑 조금만 있어보면 알겠지만 도대체 이 미친 여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 여자들은 다 미쳤는데 어떻게 이 여자들과 연 - P262

애를 한다는 것인지? 제가 레즈비언 연애를 하고 레즈비언 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그냥 여자들이 미쳤다는 사실 자체였거든요. 여기 적을 수도 없는 별의별 미치광이 같은 여자들이 다 있었고 그녀들도 절 그렇게 생각하겠죠. 그런 것들은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게 뭐였을까? 그게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건 그냥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의 증상이었을까? 그 여자는 왜 미쳤을까? 왜나였을까? 지금은 잘살고 있을까? 그 여자는 여자라서 미친 걸까 그냥 미친 걸까? 이게 다 우리가 여자라서 벌어지는 일인걸까? 왜 나는 여자들을 만나나?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죠. 결국에는 나는 동성애자조차 못 되고 그냥 미친 여자에 중독됐다는 결론이 나와요. 이걸 부러워한다는 거가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가요. 그냥 하는 말이었겠지만 이미 미친 여자 중독에 빠지고 난 뒤에는 답도 없거든요. 그냥 미친 여자들이 하자는 대로 흘러가는 겁니다. 제가 너무 레즈비언들을 미쳤다고만 단정하고 있나요? 이것이 일종의 중독 증상이 아니라면 어떻게 님들이 동성만을 연인으로 고집하는 걸 설명할 수 있죠? 그냥 님들은 미친 겁니다・・・
그리고 여자를 대상화하는 것도 몹시 피곤한 일이죠. 이젠 저는 이빨 다 빠져서 그렇게까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떤 여자를 보고 일초 만에 자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은 아니죠. 어떻게 해도 정상은 아니죠. 그리고 그걸 고 - P263

치려고 해도 고칠 수가 없죠. 그걸 고친다면 당신은 더이상 동성애자가 아니게 되니까요・・・ - P264

오늘도 면접 가서
원래 뭐하시는 분인가요? 하길래
웃으면서 아 네 저 글써요 이랬는데
내면에서 엄청나게 죽어갔음
글쓰는 게 뭐
직업입니까?
그거는 고급 취미겠죠
면접 가서 누워 있다고 말할 셈이에요?
진심이야?
물론 누워 있죠
그것도 글쓰기의 일부예요 - P268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건 유년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고 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억들이다. 대부분 가족과 관련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어쩌면 평생을 그 기억과 싸워야 할 것이다. 때때로 나는 그 기억을 잊지 않음으로서, 마치 부담스러운 식사를 먹어치워 소화해내듯 그들을 극복한다는 생각도 든다. - P282

이건 다 계절 탓이다. 추워지면 혼자일 땐 더욱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고 여럿일 땐 더욱 여럿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둘 사이의 온도 차이가 너무 커서 나는 자주 누굴 사랑하거나 그리워하거나 한다. 입김이 떠오르고 풍경은 창백하다. 어떤 뒷모습은 쓸쓸하고 어떤 뒷모습은 싸늘하다. 혼자서 사 - P283

랑하거나 사랑받았던 기억. 쏟아지는 화살처럼 박히던 말들, 목도리 사이로 비져나오는 폭소들, 그러다 돌처럼 굳어버린 입술들. 모두 겨울에 일어났다. 나는 흉터처럼 겨울을 기억한다. - P284

무수히 작 - P294

고 사소한 결심들이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어떤 시절의 사진들은 너무 반짝거려서 쳐다보는 것조차 죄악처럼 느껴졌다. 나는 망가지고 있고 부패하고 있다. 나는 내 친구들이 일찌감치 청산한 이십대 시절의 악습들을 끌어안고 익사하고 있다. 모두에게서 버려졌다고 느낀다. 혹은 내가 모두를 버렸다고 느낀다. 나는 내게서 풍기는 악취를 숨길 수 없어서 가장 어둡고 축축하고 낮은 곳에서만 기어다닌다.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장면들이 보여요. 나는 어제 죽은 사람들이 머물다 간 장소에 있어요. 언젠가는 산채로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멋진 무용담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본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95

최고의 복수는 용서다 vs 최고의 용서는 복수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다. 가해한 대상을 잊어버리고 승천시킴으로써 복수."
"최고의 복수는 용서다. 용서함으로써 그 사람의 세속적인 치졸함을 감싼다. 최고의 디그레이딩."
"최고의 용서는 복수다. 가해자의 가해 행위보다 십퍼센트 정도 증량된 가해를 가해자에게 되돌려줌으로써 동시에 가해자가 됨 =용서."
"최고의 용서는 복수다. 복수함으로써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중요한 존재임을 컨펌."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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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개정증보판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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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은 눈에 띄게 확산되었지만 가족 단위 총력전으로 사회의 거친 경쟁을 헤쳐나가는 양상은 더 치열해졌다. - P8

나는 이 모든 문제들을 연결하는 단어로 ‘가족’을 꼽겠다. 한국만큼 "모든 사회문제는 가족문제"라는 말이 잘 들어맞는 곳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공공의 역할까지 가족에게 떠넘겼 - P13

고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가족 총력전‘이 되다시피 했다.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의 자율성은 무시됐으며 가족주의의 극단이라 할 마음가짐, 즉 아이를 소유물처럼 바라보고 통제하는 행동은 여전하다. 가족 바깥의 사람들에 대한 배척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화됐다. 그러는 동안 국가는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저만치 물러나 각 가족의 ‘각자도생‘만 부추겼다.
늘어나는 비혼과 저출산으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나는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형태가 급변하는 현실과 달리,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주의와 그것의 강력한 작동방식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P14

‘정상가족‘ 안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성차별적 위계구조 못지않게 아이들을 억압하는 것은 자녀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드는 부모라는 권력이다. 또한 ‘정상가족‘의 바깥에서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가족관계에 속한 아이들은 차별을 넘어 종종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까지 놓이기 십상이다.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인간‘이다. 그저 작을 뿐 성인과 다르지 않은 사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초대받아 성인과 종류만 다를 뿐인 불안을 견뎌내야 하는 여린 생명체다. 한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가 그 사회의 수준을 드러내 보여준다면 작은 단위의 사회라 할 가족도 아이를 중심에 놓고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가족을 다룬 책들도 거의 성인의 문제들만을 다뤘을 뿐 아이를 중심에 둔 책은 찾을 수 없었다. - P15

「아이에 대한 체벌을 부모와 양육자가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회는 학대에 대해서도 민감성이 떨어진다. 체벌을 해도 된다고 보는 태도가 뿌연 안개처럼 사회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아동학대를 뿌리 뽑을 방법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구성원의 절반가량이 특정 연령층에 대해 특정한 조건하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수용하는 사회에서는 체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폭력이 더 높은 수위의 폭력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 P27

그러나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 P30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정할 때, 아동을 성인과 달리 대해서는 안 된다. 폭력은 더욱 그렇다.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대상이다. 체벌은 엄연히 별개인 인격체에 대한 구타이고 폭행인데도, 자녀를 소유물로 바라보는 부모의 관점에서 지속된다.
부모의 훈육적 체벌은 의도가 선하기 때문에 신체의 온전성 및 인간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상 부모 중심, 성인 중심인 해석일 뿐이다. 체벌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 - P32

르치는지에 대해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체벌은 갖가지 이유로 행해질 수 있고, 거기 따라붙는 훈계도 그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표면상의 다양성을 넘어서, 체벌은 언제나 단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체벌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너의 몸은 온전히 너의 것이 아니며, 나는 언제든 너에게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체벌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 가르침을 수용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모욕의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모욕은 타인의 인격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부정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동의를 강요한다.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가 된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 - P33

‘체벌 덕분에 오늘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라는 논리 역시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체벌금지가 사회적 의제가 될 때마다 등장하는 체벌 옹호의 논리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은 『런던통신』에서 "학창 시절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영향 중 하나"라고 말했다.
어릴 때 회초리를 맞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는 겪어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아마 지금과 비슷하거나 폭력에 민감한 감수성을 장착한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기성세대는 그 시대의 제한된 문화적 환경에서 자녀를 가르쳤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 방법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체벌의 유해성을 연구해온 발달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거쇼프는 이를 자동차 안전벨트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성인의 상당수는 자동차 안전벨트가 없던 시절에 자랐다. 하지만 누구도 안전벨트가 없었던 덕분에 내가 잘 자랄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안전벨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탈하게 자랐다고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체벌 덕분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체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 P41

체벌이 훈육 방법으로 효과적이지 않으며 해롭다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체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더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폭력도 사랑이라고 가르치며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P42

‘글로벌 이니셔티브‘로부터 받은 답신의 골자는 "이전보다 상당히 진전된 것은 맞지만, 가정 내 체벌금지로 볼 수 없다"라는 거였다. ‘금지인 듯 금지 아닌 법‘이라는 말이다.
첫 번째 이유는 법안에 ‘체벌‘이라는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체벌에 관용적인 사회에서는 누구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나 ‘폭력‘, ‘학대‘라는 표현에 체벌이 포함된다고 해석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설령 법원이 이 개정안을 가정 내 체벌금지로 해석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체벌금지는 해석이 아니라 법률 그 자체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글로벌 이니셔티브‘의입장이었다. ‘체벌‘이라는 두 글자가 법안에 금지의 대상으로 명백히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두 번째 이유는 <민법> ‘친족편‘ 제915조의 ‘징계권‘ 조항 - P56

때문이다. 이 조항은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글로벌 이니셔티브‘는 부모나 양육자가 자녀에게 가하는 징계에는 일반적으로 체벌이 포함되므로 ‘가정 내 체벌금지‘를 달성하려면 이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거나 "징계를 할 때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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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한채윤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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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충분히 여자로 보이지 않아서 ‘남자‘로 결론이 나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탈코르셋을 하더라도 여자로 식별되어야 하는 더 지독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감출수 없는 큰 가슴이나 화장하지 않아도 희고 부드러운 피부와 같은 특징이 더 강력한 성별 구분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니 탈코르셋은 눈에 보이는 화장, 치마, 긴 머리를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범주를 - P52

확장하고 여성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기본값을 여성도 가져올 수 있고, 인간은 두 개의 성별이 아니라 더 다양한 인간으로 살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태어나는 순간에 모두가 입을 모아 남성이라 지정했고, 정성껏 아들로 키워진 사람이 스스로 여성임을 밝히며, 자신의 의지로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 것은 코르셋 강화가 아니라 ‘코르셋 엿먹이기‘다. 트랜스젠더는 시스젠더 지정성별 여성들 중심의 탈코르셋 운동의 방해꾼이 아니라 지원군이다. - P53

탈코르셋 운동을 하면서 트랜스젠더 혐오를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그럼에도 트렌스젠더를 자신들이 벗어던진 코르셋을 주워서 입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 트랜스젠더를 조롱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그림은 누구나 코르셋을 입고 벗을 수 있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미 실패한 분석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입히려는 코르셋은 쉽게 입고 쉽게 벗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머리를 짧게 잘라도, 바지만 입어도, 화장하지 않아도 바로 그런 점이 신경 쓰여서 여성으로 보이도록 말하고 행동하려 애쓰게 만든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에게 ‘겉은 저래도 속은 천상여자‘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걸 숱하게 보지 않았는가.
탈코르셋 운동을 더 대범하게 펼쳐야 한다. 성별 경계를 가지고 노는 여유를 갖고 여성임을 의심당하는 걸 즐길 필요가 있다. 수많은 시스젠더 여성들이 코르셋을 입어왔고 지금도 입고 있듯이, 트랜스젠더 여성이 코르셋을 입는다고 해서 새삼 더 강화될 것도 없다. 또 많은 시스젠더 여성이 탈코르셋의 길을 찾았듯이트랜스젠더 여성도 탈코르셋을 도모할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탈코르셋을 넘어 사회가 코르셋을 작동시키는 걸 멈추게 해야 한다.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막대기를 꽂아 멈추게 할 투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그러니 손을 잡자.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탈코르셋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 P54

트럭을 버리라는 요구, 조용히 걸어가라는 요구는 모두 우리를 춤추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존재를 즐겁게 축하하는 걸 막고 싶은 거다. 길을 걷는 것조차 큰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구는데 타협할 여지는 없었다. 우리가 준비한 음악과 사람들의 흥겨운 춤과 환호와 박수도 없이 좁은 길을 우회해서 신촌을 한바퀴 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 P98

나는 혐오와의 싸움은 결코 단일 승패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 - P99

각한다. 한두판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이 싸움은 누가 더 끈질기고 진심인가의 문제다. 이날 퍼레이드 차량의 운전기사님들은 계약된 시간이 지났다고 퇴근할 수도 있었지만, 대기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상황에서도 불평은커녕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며 오히려 기획단을 응원해줬다. 무대 음향을 맡은 회사 직원 중에는 애인과 1,000일 기념일이어서 데이트 약속이 있었던 분, 예비 며느리와 첫인사를 나누는 약속이 있었던 분도 계셨는데 약속을 미루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다. 성소수자든아니든 혐오를 목도했을 때 같이 싸워야겠다고 주먹을 쥔 이런 분들이 있으셨기에 밤 10시에 퍼레이드가 가능했던 것이다.
퀴어문화축제의 정신이 무엇일까. 퀴어퍼레이드는 무엇을 위해 열리는 걸까. 2000년에 50여 명으로 시작했던 퀴어퍼레이드였지만, 단지 참가자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는 것만이 퀴어퍼레이드의 목표일 수는 없다. 우리는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이 세상의 그 어떤 시선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모이고, 거리를 누비고, 서로의 존재를 축하하고 즐거워하는것이 그 자체로서 얼마나 큰 저항인지를 표현하고 느껴왔다. 나는 이토록 선명한 방식의 투쟁을 사랑한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상처받고 슬프고 화도 나겠지만, 광장으로 나와 춤을 출것이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저항, 절대 길들여지지 않을 퀴어라고 생각하니까.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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