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결혼 - 여자들 사이의 섹스 없는 사랑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
에스더 D. 로스블럼 & 캐슬린 A. 브레호니 지음, 알.알 옮김 / 이매진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보스턴 결혼‘은 미국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존재한 여성들 간의 동거 관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성애적 결혼이 여성을 완성시킨다는 남성 중심적 여성관이 팽배하던 시절 결혼은 여성에게 유일한 ‘승인‘의 장이며, 동시에 영원한 족쇄였다. 결혼은 남성의 경제력과 여성의 출산력을 교환하는 제도였고, 그 결과물인 ‘가정‘은 냉담함과 엄격함에 따라 지배됐다. 그러나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만한 전문직 일자리들이 생겨나면서 여성은 결혼하지 않으면서도 잘 살 ‘궁리‘를 해냈다. 청교도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혼이면 당연히 금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와 여성들 간의 친밀성을 결합해낸 여성의 문화적 능력이 바로 ‘보스턴 결혼‘이었다. 여성들은 마치 친밀한 부부처럼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지만, ‘섹스‘가 없는, 또는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관계로 함께 살았다. 물론 이것은 19세기 미국의 현상만은 아니다. 보스턴 결혼 같은 관계로 사는 여성들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이를 낳아줘야 한다는 강박도, 남편의 감정과 성적 충동을 일방적으로 헤아려줘야 하는 불평등도 존재하지 않는 여성들 간의 동거 관계는 평온하고 장기적이었다. 그러나 보스턴 결혼은 그뒤 ‘성적인‘ 것을 강조하고, 비혼 동거 여성을 낙인찍고 비정상화하는 사회적 변화에 밀려 더는 언어화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성관계를 뜨거운 ‘열정‘의 산물로, 여성 간의 친밀성을 레즈비어니즘으로 ‘낙인‘ 찍는 사회에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들 사이의 친 - P8

밀성은 서둘러 자매애와 우정으로 정의 내려졌다. 자신의 정체성을 레즈비언으로 규정하는 여성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레즈비언은 ‘성적으로 여성에게 끌리는 존재‘라는 존재론적 속박에 눌려 헌신적이지만 섹스가 부재한 관계를 ‘위기‘로 여기기 시작했다.
《보스턴 결혼》은 이런 인식의 혼란을 해결하려 한 레즈비언 여성들이 쓴 책이다. 로맨틱하면서도 성적이지 않은 여성들 간의 관계, 격한 감정을 성기 섹스로 환원시키지 않는 관계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지은이들은 선조 언니들의 지혜와 현대 레즈비언 여성의 자부심을 복원해 ‘신 보스턴 결혼‘을 창조해내고 있다. - P9

얼마 전 어느 워크숍에서 마니 홀은 레즈비언 관계에서 섹스가관계를 정의하는 변수가 되는 까닭을 설명했다. 홀에 따르면 우리 레즈비언들은 자신의 관계를 외부에서 거의 승인받지 못한다. 그런데 섹스를 하지 않으면, 내부의 인증조차 없어져버린다. 홀이 레즈비언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관계의 "참고서Cliff Notes"들을 버리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섹스 서사sex narrative보다는 친밀함 서사intimacy narative가 될 만한 것을. 가부장제가 좋은 관계는 섹스를 포함한다고 간주한다면, 섹스를 뒤집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 홀은 "세상에 섹스 같은 것은 없다. 로맨스니 환상이니 절정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없다.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것은 남성 발기다. 우리는 이제 때려치겠다고 맹세를 해야 한다"라고 썼다. - P34

관계란, 집단이 합의한 이름이 있든 없든, 관계다. 우리는 관계를 범주화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관계의 한 양태를 병리 현상으로 취급하려고 보스턴 결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 우리 언어로는 기술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무형의 관계들까지 레즈비언 문화의 어휘를 확장해보려는 뜻이다.
내 의견으로는, 보스턴 결혼이(아니면 다른 어떤 류의 관계든지) 상대적으로 바람직하고 건강한지는 결국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그런 관계에서 성적이지 않으려는 자신의 욕구와 동기들을 자각하고 있는가? 자기 본능과 본성을 막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성적 본능을 가로막으면서 다른 본능들까지 막고 있는가? 자신의 성애적인 본성에 수반된 에너지를 다른 통로로 이끌어주고 있는가? 이것이 자신에게 좋고 건강한 선택인가?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가, 그것은자각과 의식이 동반된 선택인가? - P47

‘보스턴 결혼‘이라는 명칭의 시발점이 된 헨리 제임스의 소설《보스턴 사람들The Bostonians》(1885)은 19세기 후반 미국 도시 지역에 이런 관계가 널리 퍼져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소설에서 헨리 제임스는 서로 헌신적인 여성 커플을 여럿 등장시킨다. 제임스는 자기 소설을 "뉴잉글랜드에서 아주 흔하던 여자들의 우정 가운데 하나[에 관한] …… 아주 ‘미국적인American‘ 이야기"로 특징지었다. 그런 관계는 ‘보스턴 결혼‘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아직 여성 동성 관계female same-sex relationship가 ‘레즈비언‘으로 널리 낙인찍히는 시대가 아니던 19세기 후반, 자기 일을 가진 여성들에게 그런 ‘결혼‘은 굉장히 그럴듯한 것이었다. 그런 관계는 여성에게 동지애companionship, 돌봄nurturance, 마음 맞는 이들끼리 나누는 연대감, 로맨스(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관계는 아니라도 일부에서는, 섹스)를 가능하게 해줬다. 자기 삶에 ‘중요한 타자‘가 가져다 주는 모든 이점을 주면서, 이성애에 따라붙는 짐들, 그러니까 자기 직업을 가진 앞서 나가는 여성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짐은 없었다. 한 세기가 지나도록 이런 관계는 많은 중산층 여자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지로 남아있었다.
19세기 후반, 여성에게 새로이 열리고 있던 직업군에서 일하려고 진지하게 고려하던 여자라면 여러 번 임신하고 대가족을 꾸릴 책무를 지는 상황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어 - P51

렵지 않게 이해했다. 남아 있는 선택지 가운데서 제일 나은 것은
‘노처녀‘였다. 노처녀로서 이성 간 내연 관계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는 일은 도덕 규범에 어긋났으나, 가까운 여성 친구와 나누는 동지애를 굳이 멀리할 이유는 없었다.
과거 긴밀한 여성 간 우정은 고귀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로맨틱한 우정이라는 관례가 서구권에서 보인 발전을 추적했는데, 적어도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서구 관례와 비슷한 것들을 비서구 세계, 예를 들어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구의 성과학자들이 ‘레즈비언‘이라는 종種으로 정의해버리고 자기들이 내린 정의를 대중의 의식에 퍼트려놓기 전까지, 로맨틱한 우정은 다른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가능하고 또 널리 흥했다. ‘레즈비언‘은 로맨틱한 우정 관계에 전제되고 높이 찬양받던 ‘고귀한 순수성‘을 수상쩍게 만드는 성 정체성을 의미했다. 또한 ‘레즈비언‘이라는 범주의 출현은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자기 애정을(따라서 자기 자신까지)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분류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면서 이 여성들을 나머지 여성들로부터 갈라놓았다.
그러나 여성들의 강렬한 애정이 언제나 수상하게 비춰지지는 않았다는 증거는 압도적이다. 역사적으로 젊은 여자들에게는 종종 다른 여자들과 키스할 수 있고, 서로 아껴주고, 함께 잠을 자고,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고, 영원한 믿음을 약속하는 관계가 허용됐다. 이런 관계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성적이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개인의 성적 취향이 가지는 스펙트럼을 고려하면, 실제 성기 성애genitally erotic가 그중 전혀 없었다고 믿기는 어려우며, 역사적인 기록도 일부는 확실히 그런 성애를 나눴다고 입증한다. 하지만 나는 대 - P52

부분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위에 제시했듯이, 저 로맨틱한 친구들과 동시대에 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믿은 것과 같은 까닭에서다. 성욕의 잠재력에 관한 일반적인 생물학적 설명 방식도 있다. 그러나 개인이 사회와 나누는 상호작용과 개별 환경이 성욕의 표현 범위를 결정짓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는 킨제이가 면담한 여자들 가운데 20퍼센트가 19세 무렵에 삽입 성교를 해봤다고 했는데, 1971년에는 대조군 표본 수치가 거의 50퍼센트에 가깝게 올랐다. 변한 것은 명백히 성욕의 생물학이 아니라, 더 많은 여자들이 욕망을 의식하고 그 욕망에 따라 행동하도록 허용(때로는 심지어 강요)한 사회인 것이다. 이성애 행위와 동성애 행위 사이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는 1950년대보다도 훨씬 심하게 여자들이 섹슈얼리티를 부정하게 만드는 시대였다. 이 시대 여성들은 좋은good 여자한테는 자발적인 성욕이 없다고 믿게끔 자랐다. 단순히 부부 관계와 출산의 의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남편의 욕구를 고려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지 않는다면, 여자들은 성적이지 않은 존재였다. 이성애 경향이 있든 동성애 경향이 있든, 섹슈얼리티에 가해지는 이런 제재에 맞서 싸운 여자들보다는 이것을 내면화한 여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대개 성적이지 않게끔 사회적으로 구성됐다. - P53

다른 시대에는 이런 관계가 허용됐는데, 어째서 지금은 낙인이 찍혔는가? 아마 ‘여러 세기에 걸쳐 남자들이 이런 관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이런 관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불가침이자 보편적인 남성 우월주의(여자는 남자로부터 독립된 존재일 수 없다는 관념을 강요하는)에 타격이 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로맨틱한 우정이 사회 조직에 주요한 위협으로 여겨지지 않은 까닭은 이 로맨틱한 우정을 주로 찾아볼 수 있던 중간 계급과 상류층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여자는 다른 이유를 제쳐두고서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아남으려면 결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해 그런 관계는 한시적이거나 적어도 결혼에 견줘 부차적으로 비춰진 것이다.
또한 그런 관계는 사회적 요구에도 부응했다. ‘정숙한‘ 여자는 결혼 말고는 남자와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평판에 흠이 나지 않게 하려면 자기 애정을 어디다 둘지 조심해야만 했다. 여자의 정조에는 어떤 오명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한 여자에게 남편의 가정으로 옮겨갈 때까지 아무도 사랑하지 말라고, 감정이든 희열이든 무엇이든 느끼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다른 여자와 나누는 로맨틱한 우정은 그런 감정적 요구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고 또한 이미 말했듯 죄가 되지 않고 무해하다고 간주됐다. 젊은 여자의 순결(보통 엄청 - P55

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에 그런 관계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여자가 결혼할 때까지 여러 가지 문제에 말려들지 않게 지켜준다고 여겨졌다. - P56

‘로맨틱한 우정‘, ‘보스턴 결혼‘ 같은 용어가 ‘변태‘, ‘도착‘, ‘동성애‘, ‘레즈비어니즘‘이라는 용어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갔다.
이 태도 변화는 성적 가능성을 사람들이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한다. 여성-여성 관계의 관례가 전에는 사회적 위협이 될 수 없었지만 1920년대쯤에는 그 위상이 변했다. 여성주의 운동이 거둔 다양한 성공은 이제 노동 인구로서 더 많은 여자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했다. 앞서나가는 극소수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더는 생존을 위한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됐다. 경제 문제가 여자들을 결혼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하고 맺는 관계를 통해 완벽하게 만족한다면, 오랫동안 여성주의의 공격에 버텨온, 이성애 결혼이라는 위기에 처한 제도는 뭐가 되겠는가? 여성-여성 관계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것이 이성애를 변호하는 무기가 됐다.
낙인찍기가 여성-여성 관계에 끼친 영향은 복합적이다. 한쪽에서는 그 영향이 매우 파괴적이었다. ‘레즈비언‘이라는 이름표로 낙인찍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여자들에게는 수세기에 걸쳐 여자들이 누려온 강렬한 동성 간 감정적 결속의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해야만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레즈비언‘만이 다른 여 - P59

자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자신은 레즈비언이 아니라 한다면, 이 여성들은 다른 여자를 향해 그 어떤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 게 되더라도 그것을 억눌러야만 했다. 이런 의미에서 1920년대 여자들에게는 그 선조 격인 여자들보다 훨씬 허용되는 범위가 좁았다.
한편으로는 ‘레즈비어니즘‘이 소개돼 여자들이 자기의 동성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훨씬 큰 자유가 생겼다. 자기네 관계를 영속 가능성이 있는 관계로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들 스스로 ‘레즈비언‘ 이라는 이름표를 받아들이면 다른 여자를 향한 사랑을 단초로 하나의 생활 양식이나 나아가 하위문화까지도 구축할 수 있게 됐는데, 예전에는 대체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번 여자가 ‘레즈비언‘이라는 이름표를 받아들이고 레즈비언 하위문화 속에 자리를 잡으면, 다른 여성들을 향한 사랑과 관련한 전에 없던 또 다른 압력들, 자기 정체성이 낙인찍히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의 압력들에 시달렸다. 근대에 등장한 새로운 통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심지어 여자나 아이까지도 성적인 존재였다(이것은 앞에서 썼듯, 유럽과 미국의 역사 전반에 걸쳐 격렬히 부정돼온 사고방식이다). 바로 전 세기나 더 앞선 시대의 가정을 완전히 뒤엎고, 마담 드 스탈과 세라 오언 주엣의 편지에서 드러나는 그런 정열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관계는 예외 없이 성적 요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는 추측이 널리 퍼졌다. 또한 관련 당사자인 여자들이 종종 그런 전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신의 충동이 자기를 에로틱한 방향으로 이끌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즉 스스로 다른 여성과 강력한 결속을 경험했다고 인정하면 ‘레즈비언‘이라는 - P60

이름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고 ‘레즈비언‘은 여성-여성 간 ‘성적‘ 관계를 암시하므로, 이 여자들은 그렇게 보이게끔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내면화된 압력을 받았다(단지 자신에 관해 감정적으로 일관성 있는 시각을 취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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