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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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보다 훨씬 고급 능력자. 그렇게 첨벙첨벙 다 잡아 없애고 돌아다니면 뭐 해요? 돈 되는 일을 해야지."
문득 아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마음의 한 부분이 잠시 경련을 일으키듯 움직였다. 은영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위험하고 고된데 금전적 보상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은영의 능력에 보상을 해줄 만한 사람들은 대개 탐욕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좋지 않은 일에만 은영을 쓰려고 했다. 아주 나쁜 종류의 청부업자가, 도무지 되고 싶지 않았다.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 P117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들은 너무나 오래 남았다. 어린 은영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 P185

"있잖아, 다음 선거에는 너희들한테도 선거권이 있어."
대흥의 설명을,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를 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끄트머리에 그렇게 덧붙여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이의 눈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대흥은 그 반짝임 때문에 늘 희망을 얻었다.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그러니까 그 바보 같은 교과서를 막길 잘했어. - P233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인표가 은영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크게 말하지 않았으므로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인표가 아니라 은영 스스로가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거짓말이어서,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 P265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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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입양했습니다 - 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 탄생기
은서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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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입양 가족이 됐다는 소식에 누군가는 "어리가 결혼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물었다. 우리는 결혼 대신 친구와의 동거를 선택했고, 남편과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 대신 친구를 입양해 가족이 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여전히 ‘미완‘ 상태인가 보다. 친구와 사는 것은 임시 가족이고, 언젠가는 각자 결혼할 거라고 전제한다. 결혼한 부부에게는 이혼하면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는 둘 중 한 사람이 결혼하면 입양이 깨지는 거냐고 묻는다. - P7

우리가 입양 가족이 된 건 현재로써 서로의 법정대리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생활동반자법이 있었다면 우리는 입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끼리 반려인이라는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부모 자식이라는 수직적인 관계가 되는 건 원하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함께 살며 힘이 되는 존재에게 가족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하는 건 개인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부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생활동반자법이 조속히 제정되기를,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돼 안정적으로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 - P8

제주 시절에 만나 절친이 된 백은 내가 어리와 살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편안해 보여 부럽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나보다 생일이 빠른 그 친구에게 나를 입양하라고 했다. 그럼 딸도 생기고 더불어 손녀까지 생기게 된다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자고. 현재 법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이라도 입양을 통해 얼마든지 여러 명의 가족을 만들 수 있다. A가 B, C, D를 입양해 엄마(혹은 아빠)와 여러 명의 자녀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아니면 A가 B를 입양하고, B가 C를 입양하고, C가 D를 입양해 딸(혹은 아들), 엄마(혹은 아빠), 할머니(혹은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까지도 만들 수 있다. 결혼과 혈연 중심의 가족 생태계를 교란시켜버리는 것이다. - P231

처음 생활동반자법이 논의됐을 때 참 반가웠다.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보듬어 누구나 특별한 한 사람을 서로의 법적 보호자로 지정할 수 있다는 것. 믿고 의지하는 사람과생을 나누며 외로움과 우울을 막을 수 있다면 돌봄으로 인한 복지 비용도, 고독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노인들에게 더 필요한 법이 아닐까 싶었다.
법과 제도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우리처럼 성인 입양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우리는 가족이 생겨 든든해졌지만, 우리 같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늘어났을 때 그것이 과연 건강한 사회의 모습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우리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겨나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알리고 법 제정을 보다 앞당겨 - P240

사람들이 입양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아도 서로의 보호자가 돼안정적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갈 수도 있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논의가 더 진행되기 전에 자신만의 틀에 갇힌 사람들이 성인 입양부터 제한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넓은 가족의 범주 안으로 끌어안는 대신 더욱 배척하기 위해서 말이다.‘정상가족‘ 프레임에 갇혀버린 이들에게 우리가 아무리 어떤 이야기를 한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만 믿고 싶어 할 테니까. 안타까울 뿐이다. - P241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은 존재해왔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 테두리 안에 받아들인다면 우리처럼 입양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함께 사는 구성원이 꼭 결혼으로 맺 - P241

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나이 차가 많건 적건, 이성 간이든 동성간이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살면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1인 가구의 돌봄 비용이 줄어들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건 둘째 치고라도, 1인 가구의 외로움을 해소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옆에 함께 있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 1년에 몇 번 만나는 가족들이 채워줄 수 없고, 돈으로도 채울 수 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과함께 살고, 함께 살며 힘이 되는 존재에게 가족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하는건 개인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성인 입양은 입양신고서 한 장만 제출하면 다음 날 바로 가족이 될 수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가장 구속력 있으면서 모든 행위에서 법적 권리를 강력히 주장할 수 있는 부모자식 사이가 되는 것이 이렇게 쉽다는 게. 입양은 이렇게 쉬운데 다양한 가족을 품어줄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은 왜 그리 어렵기만 한 건지, 참으로 모를일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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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마민지 지음 / 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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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에는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아온 역사를 알게 되었고, 한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역사를 구조적으로 돌아보면서 내 감정도 같이 정리가 된 뒤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왜 부동산에 집착하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서, 부모님에게 일방적으로 향해 있던 분노, 짜증, 화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여기저기로 분산되었다고 할까? 그 맥락을 이해한다는 것이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신화에 대한 희망에 - P221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부모님이 내 유년기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끝내 설명해주지 않았던 빈칸을 카메라를 들고나서야 채울 수 있었기에 속이 시원하다는 것에 가까웠다.
종로의 한 카페에 앉아 있다가 대낮에 인파 사이를 걸어가고 있는 아빠를 우연히 발견한 뒤로 나는 아빠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이 작은 호기심은 단순히 나의 부모님으로서가 아닌 마풍락, 노해숙이라는 개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생애사를 분석하며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풍파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 개발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부모님이 지었던 주택들이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었던 장소와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던 순간에 나는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부모님이 했던 사업이 도시개발정책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가설이 사실로 증명되었고, 내 인생에 단절되어 있던 서사가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미처 모르고 있을 나머지 이야기를 찾기 위해 우리 가족에 대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영화를 만드는 나에게 카메라는 의사의 청진기, 과학자의 현미경과 같이 내가 속한 세계를 탐구하는 도구였다. - P222

나는 이 이야기를 IMF 외환위기를 겪어낸 또래의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 가세가 기울고 부모님의 언성이 높아지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친구들에게 차마 이런 속사정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마음속 깊은 곳에 짐을 진 채로 성인이 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흩어져 있는 서사를 각자의 방식대로 다시 채워나가고 있을 사람들과, 전기가 나간 방 한구석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순간에 대해, 등교하기 전 머리를 감기 위해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이며 지각할까봐 발을 동동 구르던 순간에 대해, 내가 살고 있는 초라한 집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불안해하며 죄지은 사람처럼 골목길을 돌고 돌아 집에 가던 순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 P229

처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부모님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았던 아빠가 왜 대낮에 종로를 거닐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고, 엄마는 하필 많고 많은 직업 중에 부동산을 파는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부모님의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사람의 삶이 한국의 도시개발사와 촘촘하 - P252

게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사를 그 시대의 맥락 속에 위치시켜 본다는 것은 부모님이 겪어온 삶의 지형을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중산층이었던 우리 가족은 왜 하루아침에 추락한 걸까? 부모님은 왜 부동산에 집착하는 걸까? 나는 왜 사춘기 시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던 걸까? IMF 외환위기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걸까? 마음속에서 무수히 생겨났다 없어지길 반복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신화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갑자기 좁은 평수로 집을 이사가야 했거나, 양육자가 정리해고로 직업을 잃었거나, 중소기업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부도가 났거나, 양육자 중 특히 어머니가 실질적 가장이 되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한, 어떤 형태로든 정상가족이 해체되는 경험을 하며 자신의 속사정을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끝없이 치솟는 아파트값을 보며 더 이상 내 집을 가지지 못할 거라고 체념해버린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조건들 위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다가도, 그 땅이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탐구의 과정을 따라가다보니 어느 순간 부모님은 물론 나의 욕망까지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도 나는 컴퓨터를 하다가 문득 나에게 땅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날 때마다 혹시 - P253

이천에 새로운 개발 정보가 있나 검색을 해보곤 한다. 끊임없이 발버둥 쳤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늘 나를 무겁게 짓눌렀고 나 역시 지금보다 조금 더 잘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일확천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주거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마음 편히 사는 것이다. 부모님이 국민임대주택에 입주하고, 나 역시 청년전세임대주택에 살면서 공공주택의 효용을 많이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방 한 칸에서 사는 것과 주방과 침실이 분리된 집에서 사는 것은 내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보일러 가스가 샐 위험이 없는 집에서 잠을 자며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하루의 시작을 다르게 만들었다. 운에 기대는 것은 어쩌면 비슷해 보이지만 아파트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내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부동산이 주거에 대한 모든 해결방안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기 위한 집이 아니라 살기 위한 집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말은 도대체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집 없이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언제쯤 부동산을 뛰어넘어 이 문제를 함께 마주할 수 있을까?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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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동물성애자 - 종도 편견도 넘어선 사랑
하마노 지히로 지음, 최재혁 옮김, 정희진 해제, 강상중 추천 / 연립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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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섹스의 대상이 ‘동물‘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개나 말을 파트너로 여기며, 인간과 동물 사이에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대등한 사랑의 교환이 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선량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런 ‘동물성애자Zoophile‘(주파일) 그룹에 ‘참여 관찰‘하여 "섹스란 무엇이고, 섹슈얼리티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휴먼‘ 도큐먼트다.
저자를 그렇게 위험 요소가 다분한 ‘참여 관찰‘로 이끌어갔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폭력이 매개되지 않고도 대등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섹스와 섹슈얼리티를 향한 갈급과, 그러한 인간관계를 향한 눈물겨운 동경이 추진력이었다. 이렇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희구의 배후에는 끔찍한 ‘성폭력‘을지속적으로 당해왔던 저자의 ‘트라우마‘가 자리했다. 그런 정신적 고통이 그녀가 ‘동물성애자‘의 세계로 뛰어든 원동력이되었던 셈이다.
섹스, 섹슈얼리티가, 그리고 사랑이 한 꺼풀만 벗기면 지배와 능욕, 폭력이 될지도 모른다는, 지울 수 없이 절망적인 회의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이 자리 잡은 뒤라면 어떨까? - P6

"나는 ‘사랑‘을 잘 모르겠다."라는 이 책의 첫 문장은 저자를 줄곧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던 신음과도 가까운 절실한 질문이다. 파고들자면 "인간을 잘 모르겠다."라는 말과 다름없다. 그렇다. 이 책은 사랑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또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스스로 답하고자 했던 저자의 편력기인 동시에 다른 의미에서는 ‘영혼의 구원‘을 기록한 도큐먼트이기도 하다. - P7

그렇지만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가 말한 "예외는 상태의 본질을 비춰낸다."라는 경구를 빌려본다면 ‘성‘과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동물성애자‘라는 ‘예외‘는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는 ‘참조항‘이지는 않았을까?
적어도 이 책의 무대가 되는 독일에서조차 ‘동물성애자‘는 ‘인간성애자‘에 비해 ‘예외‘로 여겨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예외적 존재라는 사실을 지렛대로 삼으면 - P7

‘인간 성애‘와 관련되어 산처럼 굳건한 ‘관습‘이나 ‘도덕‘, ‘정해진 규칙‘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희미한 기대가 저자를 ‘동물성애자‘의 세계에 참여하여 관찰하는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 P8

‘휴머니즘‘ 혹은 ‘인간주의‘나 ‘인권, 시민권‘이 확립되어 인간이 귀한 존재로 여겨지고 존중받는 만큼, 한편으로 동물이 ‘식육‘이나 ‘유해한동물‘, ‘이상 번식‘이라는 이름 아래 이렇게도 많이 살육된시대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동물이 ‘펫‘으로 키워지고 어떤 동물이 ‘식육‘의 대상이 되는지는 인간에 따라, 혹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기에 동물에게는 원칙적으로 어떤 ‘권리right‘도 용인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 P9

요컨대, 휴머니즘의 시대야말로 동물이 ‘사람‘이 - P9

정해놓은 경계와 구분에 따라 대량으로 죽임을 당하고 사람의 위장 속으로 사라져가는 시대다. 펫으로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다행히 ‘생生‘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성‘을 박탈당한 ‘펫‘ㅡ‘순진무구한 어린이‘로서 다뤄지는 운명에 처한다. 개나 고양이를 ‘거세‘하는 관행은 그러한 상황을 매우 잘 보여준다. - P10

그렇게 본다면, 휴머니즘의 시대는 ‘폭력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분명 동물학대나 동물의 ‘혹사‘는 근대 이전에도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제멋대로‘ 선별한 결과로 인해 이렇게까지 많은 동물의 ‘생사가 갈리고 나아가 방대한 수의 동물이 죽음을 선고받은 시대는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근대사회는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중시하며 개인의 ‘자유‘를 지상의 가치로 삼는다. 관점을 바꿔보면 사회 관계나 문화의 모든 국면에 감춰진 형태로 폭력을 내재한 - P10

이른바 ‘폭력의 존재론Ontologie‘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 근대사회는 공동체나 사회 형성에 잠재된 폭력(=배제의 구조)은 가시화되지 않은 채, 폭주할지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폭주 끝에 전쟁이 도사리고 있다면, 자신의 경험으로 뒷받침된 저자의 지적은 폭력의 존재론을 겨누며 찌르는 칼과 같은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11

저자의 참여 관찰 대상이 된 독일의 ‘동물성애 옹호단체‘ 제타에 모인 ‘주파일‘은 현대 사회에 내재한 ‘폭력의 존재론‘의 주술과도 같은 속박으로부터 달아나 폭력을 매개하지 않은 섹슈얼리티를 추구하는 ‘선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제타의 압도적 다수가 남성이며, 수컷 동물을 성적 대상으로 두는 ‘주파일 게이‘가 과반수를 차지한다. 게다가 ‘게이‘ 전원이 수컷 개를 받아들이는 섹스를 하는 ‘패시브 파트‘라는 점은 그들이 폭력적인 것을 기피하고 싶은 ‘마음이 - P11

따뜻한‘ 남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을 ‘수간자‘와 한데 묶어 취급한다면 그야말로 폭력적인 곡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동물성애자‘이지, ‘수강자‘가 아니다. 하물며 그들은 파트너인 개나 말에게 ‘퍼스낼리티‘를 느끼며 그들의 ‘성‘을 확실히 받아들이는 동시에, 파트너가 ‘요구하지 않을‘ 때는 무리하게 섹스를 강요하는 일도 없기에 ‘페도필리아(소아성애)‘와도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이러한 오해와 곡해, 단정, 편견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이 책은 귀중한 정보로 가득 차 있다. 나 역시 책을 읽고 깨닫게 된 사람 중 하나다.
주파일의 섹스나 사랑의 대상이 ‘독특‘하다고는 해도, 그들이 ‘파트너‘와 맺는 관계는 성실하고 정직하며 ‘고풍‘스럽기까지 하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성스러운 동물성애자‘가 ‘성도착자‘가 아닐뿐더러 ‘이상성애자‘도 아니며, 또한 섹스와 사랑의 ‘혁명가‘ 역시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폭력의 존재론‘이 얽어맨 속박에서 달아나고 싶어 하는 ‘은둔자‘인지도 모른다. - P12

나는 ‘사랑‘을 잘 모르겠다.
뭉뚱그려 ‘사랑‘이라 말했지만,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것이다. 박애, 가족애, 이웃에 대한 사랑,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향한 사랑, 연인을 향한 사랑, 자애, 성애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사랑의 형태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연인을 향한 사랑과 그와 연관되어 일어나는 성애다.
나는 ‘섹스‘를 잘 모르겠다.
섹스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해야만 하는 보편적 행위 중 하나다. 포유류인 인간 역시 이성과 섹스를 나누지 않으면 후세를 번영시킬 수 없는 운명이다. 여성인 내가 남성과 섹스를 하고 아이를 가져 출산하면, 인간이라는 종에게 부과된 과제 하나를 수행하는 셈이 된다. 섹스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하면 이야기는 간단히 끝나겠지만, 섹스를 생식에만 한정된 행위로 단정짓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 P21

소심한 사람은 거짓으로 초연한 척한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 있는 힘껏 살아가긴 했지만 단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을 뿐, 마음의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사랑과 섹스를 비웃고 경시하는 태도로는 결코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과 섹스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다는, 아주 강렬한 욕구가 생겨났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문제에 나만의 관점을 가지고 싶었다. - P25

수간과 동물성애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수간은 동물과 하는 섹스 그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때로는 폭력적인 행위까지 포함한다. 사랑의 유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동물성애는 동물에 대한 심리적 애착 유무가 중요하다.
"동물과 섹스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동물성애자가 내세우는 섹슈얼리티에는 사랑과 섹스에서 생겨나는 어려움과 왜곡이 내재된 듯 느껴졌다.
동물성애자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섹스와 마주하고 있을까?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사랑과 섹스를 깊이 생각하고 타인에게 이야기하려고 할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우리를 고민에 빠뜨리는 문제에는 공통되는 면도 있는 듯했다. 그들과 만난다면 나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사랑과 섹스를 둘러싼 문제는 마구 뒤엉켜버린 채, 이미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동물성애자의 사랑과 섹스를 알아가는 것이,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뒤얽혀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응어리를 풀어내는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조합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펼쳐지는 관계나 섹스 같은 행위마저도 추상화하여 드러내 주지 않을까? 동물과 사랑과 섹스를 한다는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사랑이란 무엇인가?" 혹은 "섹스란 무엇인가?"라는 더 큰 질문을 다시금 살펴볼 수 있지는 않을까? - P30

그때 내 안에서는 호기심보다도 불안감이나 염려 섞인 마음이 더욱 강했다. 제타의 사이트를 정성껏 읽고 "동물을 사랑하며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라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려 했지만, 그저 표면상의 방침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내가 경험했던 심한 성적 학대를 일삼거나, 폭력적인 성욕을 동물을 향해 발산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런 불안감을 품은 채, 주저하면서 제타 멤버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 P43

Singer는 2001년에 미국 웹 매거진 <너브닷컴Nerve.com>에 ‘진한 애무Heavy Petting‘ 라는 제목으로 논고를 발표했다. 싱어는 잔학한 행위를 동반한 동물과의 섹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하지만 동물과의 섹스가 항상 잔혹함을 동반할 리는 없다. (중략) 때로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 만족하는 성행위로 발전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라고 썼다. 폭력 행위를 동반하지 않는 한 동물과의 성적인 접촉이 용인될 수 있다고 해석될 만한 싱어의 주장은, 그 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성과학이나 심리학, 철학 등이 인간의 성이 나타나는양상에 초점을 두고 동물성애의 문제를 검토하는 데 비해, 범죄과학에서는 동물과 벌이는 성행위를 어떤 경우에든 동물학대로 여기고 단죄한다. 예컨대 피어스 베언Piers Beirne은 그런 입장에 있는 범죄과학자다. 베언이 제시한 가장 큰 논거는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으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합의를 전달할 수 없다."라는 점이다.
동물성애는 다양한 면에서 논의할 수 있는섹슈얼리티다. 섹스나 사랑을 둘러싼 문제인 동시에, 동물과의 관계성도 얽혀 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동물성애는 범죄와 마찬가지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하게끔 하는 행위다.
동물성애가 병리적인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성적지향의 일종인지에 관한 견해는 현 단계에서는 아직 통일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제타는 후자의 입장이며, 편견과 차별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 P53

주파일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미하엘은 동물에게만 성적 욕망을 느끼지만, 내가 만난 주파일 중에는 인간과도 연애나 섹스를 하는 사람도 있다.
성적 대상이 되는 동물의 성별에도 차이가 있다. 남자 주파일의 파트너 동물이 수컷인 경우 ‘주파일 게이‘라고 부른다. 파트너를 암컷으로 두는 여성은 ‘주파일 레즈비언‘, 파트너의 성별에 상관하지 않으면 ‘주파일 바이섹슈얼‘이라고 한다. 물론 자신과는 다른 성별인 동물을 좋아하는 ‘주파일 헤테로‘도 있다. 또한 섹스에서 취하는 입장을 가리키는 말도 있는데 수동형을 ‘패시브 파트‘, 그 반대를 ‘액티브 파트‘라고 한다.
"나는 수컷 동물을 상대로 삼으니 ‘주파일 게이 패시브 파트‘지요."
미하엘은 그렇게 말했다. 다시 말해, 미하엘은 수컷 동물을 사랑하고, 섹스에서는 동물의 페니스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취한다. 자신의 페니스를 동물에게 삽입한 적은 없다.
하지만 미하엘의 현재 파트너 케시는 암컷이다. 이상해서 이유를 묻자, 거꾸로 질문이 돌아왔다.
"주파일이라고 해서 꼭 섹스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 P60

실제로 미하엘은 케시와 섹스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에게 그녀는 ‘아내‘다. 케시와 섹스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가 바라지 않으니까요. 동물에게는 저마다 개성이나 성격, 취향이 있어요. 인간과 마찬가지죠. 케시는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었어요. 혹시 그녀가 바랐다면 나는 거기에 응했으리라 생각해요. 페니스를 삽입하는 행위는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예전에 암컷 개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키우던 소형견으로, 실내견이라 중성화 수술을 할 필요가 없어서 생식 기능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섹스하고 싶다‘고 어필하는 것을 느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하엘에게 개가 섹스를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오히려 나는 어째서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지 궁금해요. 목이 마르다든가, 배가 고프다든가, 놀고 싶다든가 하는 마음은 잘 알면서, 어째서 섹스에 대해서만은 모를 수가 있지요?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그런 건 잘 모르겠다고 - P61

하죠. 동물과 진짜로 함께 살아간다면 당연히 알 수 있으리라생각합니다만."
그리고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말을 뱉었다.
"개와의 섹스는 자연스럽게 시작됐어요."
이 말을 대체 어떻게 해석하고 상상하면 좋을까? 나는 긴 의자에 발을 뻗은 채 침묵했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섹스"란 과연 어떤 것일까?
주체를 인간으로 바꿔 생각해봐도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섹스라는 행위가 너무나도 형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섹스는 밀실 같은 공간에서 일대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데이트를 하거나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일부러 차려입고 온 옷을 벗는다. 누구라도 그러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절차가 있으며, 처음 섹스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비슷한 순서를 밟는다. 보통 다들 그러리라 상정하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 진행되며 섹스는 하나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순간은 과연 있을 수 있는 걸까?
혼란스러웠던 나는 미하엘이 말한 ‘자연스럽게‘의 의미를 다시금 물었다. 미하엘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개뿐만 아니라 동물은 하고 싶을 때 해요. 먹는 일, 노는 일과 다를 바가 없죠. 그게 무척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저 원하는 것을 즐기는 거죠"
미하엘이 말하는 ‘자연스러움‘은 바꿔 말하면 ‘본능‘에 가까운 의미일까? 의식화되고 사회화된 인간의 섹스와는 다른 차원이라는 점은 이해가 된다. 그래도 개와 섹스를 시작하는 - P62

방법은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예컨대 인간이라면 자기 전에 침대에서 섹스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또한 섹스하고 싶어졌을 때 상대방에게 의향을 물을 필요도 있다. 동물과는 그런 과정이 성립할까? 미하엘은 동물 중에서도 수컷 개하고만 경험이 있으므로 그 경우는 어떤지 물어봤다.
"당신이 섹스하고 싶어졌을 때,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서 수컷도 하고 싶어지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개가 먼저 원해서 다가오는 거예요."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개가 섹스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어야 할까? 미하엘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수컷 개는 대체로 밥을 먹고 난 후에 섹스하고 싶어해요. 내 첫 번째 파트너도 항상 그랬죠."
"식사를 끝낸 개가 조르면 섹스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항상?"
미하엘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상대가 하고 싶다고 해도 나 역시 하고 싶을 때 하는 거죠. 그런 게 섹스라고 생각해요." - P63

예를 들어 미하엘의 집은 정원, 거실, 부엌, 침실을 막론하고 어느 곳이든 동물의 기운으로 충만했다. 거실에 틀어박혀 미하엘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어째선지 개와 고양이도 함께 상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하엘의 집에서는 개나 고양이가 인간과 동일한 ‘힘‘을 가지며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그런 공간은 서로 시선이 교차하는 양과 질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미하엘은 더듬더듬 이야기하지만,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말이 끊길 듯 이어지는 게 처음에는 그의 성격 탓이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그가 나보다는 동물들에게 더 주의를 쏟고 있음을 깨달았다. 케시의 섬세한 움직임이나 고양이의 시선에 끊임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때때로 말을 중단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대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반려동물이 - P65

말썽을 부리지 않는 한 특별히 상대하지 않는다. 개는 인간의 대화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미하엘과 개와 고양이는 빈번히 눈을 맞추며, 종종 서로를 지긋이 쳐다본다.
만약 그들의 시선 교환을 실로 이어보면, 몇십 분 만에 촘촘한 그물코를 지닌 망이 방 한가운데 펼쳐질 것이다.
그 그물망 안에 있는 나까지 개나 고양이와 서로 뒤얽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공간은 독특했다. 주파일의 집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함께, 그리고 완벽히 동등한 강도로 존재하고 있었다. - P66

파트너와의 수명 차이가 주파일의 가장 큰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서로 다른 종이 가진 차이인지라 어쩔 도리가 없다. - P71

"동물에게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퍼스낼러티가 있어요. 퍼스낼러티는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아요. 나와 그 동물이 느긋이 함께 지내다 보면 퍼스낼러티를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나에 대한 동물의 반응 방식이랄까, 그런 것들로부터 보이는 거죠."
미하엘뿐만 아니라 많은 파일이 "동물에게는 퍼스낼러티가 있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좀처럼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아무리 동물을 사랑한다고 해도, 어떤 동물이든 좋다는 의미일 리가 있겠냐고 말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특히 개가 좋아", "무엇보다 말이 마음에 - P72

들어."라는 식으로 종에 대한 선호는 있지만, 그렇다고 ‘개라면 어떻든 상관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같은 견종이라도 주파일이 ‘사랑‘하는 대상은 그중 자신의 파트너뿐이다. - P73

미하엘이 말하는 동물의 퍼스낼러티는 ‘캐릭터 character‘보다는 판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개념이다. 캐릭터는 직역하면 ‘성격‘이나 ‘성질’이지만, 구체적으로 동물 저마다가 지닌 기질과 특성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거친 말, 점잖은 개, 장난꾸러기 고양이처럼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캐릭터, 즉 성격과 성질이다. 누가 보더라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그 동물이 지닌 어떤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퍼스낼러티는 자신과 상대의 관계성을 통해 생겨나거나 발견되는 개념이다.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 P73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를 향한 반응이 나타난다. 주파일들은 그렇게 주고받으며 나타나는 관계의 특별함을 특정 동물이 갖춘 퍼스낼러티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퍼스낼러티는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생겨나며, 자신의 퍼스낼러티 또한 상대방이 있어야 성립한다. 말하자면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상태로, 상호관계에서 생겨나고 발견되며 그 관계를 통해 즐겁게 음미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캐릭터가 항목별로 나열해서 쓰는 개조식 문장이라면, 퍼스낼러티는 산문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 배경에 함께 보낸 시간, 달리 말하면 ‘사적인 역사‘가 있어서 그 문맥에서 생겨나는 성격을 퍼스낼러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궁합이 맞지 않는다든가 기계적인 주고받음밖에 없는 사이(인간과 개라면 때 맞춰 먹이를 챙겨줄 뿐이라든가, 산책이나 시켜주는 정도의 관계)라면, 퍼스낼러티를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인간이 맺는 관계라고 해도 캐릭터와는 다른 퍼스낼러티가 생성되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한 사람에게 누군가가 특별한 까닭은 공유한 시간을 통해 형성된 그 사람만의 독특한 퍼스낼러티에 매료되어서다. 퍼스낼러티는 계속 변화하면서 동시에 생성되기 때문에, 그 사람과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동안 계속 새롭게 형성되는 자기 자신의 퍼스낼러티에도 끌린다.
퍼스낼러티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방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연인 사이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퍼스낼러티, 가족끼리만 이해하는 퍼스낼러티처럼 말이다. 이렇듯 관계성에 - P74

의해 형성되는 퍼스낼러티는 인격이나 개성, 성격과는 다른 개념이다.
다른 펫이나 동물과 비교하여 ‘자신의 파트너만이 특별하다.‘고 하는 것은 주파일과 파트너 사이에 둘만의 상호관계가 성립되었다는 뜻이다. 그 관계에서만 파트너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기에 헤어 나오기 힘든 매력이 형성된 것이다. - P75

동물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 제타 회원에게 동물의 크기는 중요한 문제다. 그렇기에 개 중에서도 소형견을 파트너로 삼은 사람은 없다. 인기 있는 견종은 저먼셰퍼트나 로트와일러, - P77

래브라도리트리버, 도베르만 같은 대형견이나 그 잡종이다.
왜 이렇게 개와 말이 인기가 있을까? 수의학자 제임스 서펠 James Serpell이 펴낸 『가정견 — 진화ㆍ행동ㆍ사람과의 관계The Domestic Dog: Its Evolution, Behaviour and Interactions with People』에 따르면 개의 가축화가 시작된 시점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이다. 당시 인간은 수렵하거나 나무 열매를 채집하며 생활했다. 최초의 개(가축화된 개)가 남긴 가장 오래된 뼈는 지금으로부터 1만 4000년 전의 것이며, 독일 본오베르카셀Bonn-Oberkassel에 있는 후기 구석기 동굴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인간과 개가 공생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가 독일에서 발견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적어도 유럽에서 사람과 개가 태곳적부터 함께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도 예로부터 사람이 개와 함께 살았다는 증거가 있다. 조몬繩文시대(기원전 14000년~기원전 1000년) 여러 유적에서 매장된 개의 유골이 발견됐는데, 그중에는 골절된 개에게 치료해준 흔적도 있다. 이때부터 개를 사역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공생하는 동료로 여기지는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한편 말의 가축화는 개보다 역사가 짧다. 어떤 설에 의하면 기원전 4000년 무렵에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가 수렵에 도움을 주었다면, 말은 고속 이동을 실현해주었다. 유럽인이 말에게 느끼는 강한 동경은 주요 도시마다 기마상이 많은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역사 속 영웅은 말 위에 걸터앉아 오늘도 거리를 굽어보고 있다.
이렇듯 개와 맡은 역사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지극히가깝게 생활해온 동물이다. 인간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특별한 - P78

애착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개는 현대 도시 생활자에게 함께 생활하기 가장 쉬운 동물의 대표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는 개인도 사육할 수 있고, 경제적 부담도 그리 크지 않다. 집 안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접촉할 기회도 많다.
말은 개에 비해 사육 비용이 많이 든다. 독일에서는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목초지가 펼쳐져 있고 느긋하게 거니는 말을 볼 수 있다. 아시아와는 달리 말과 거리가 가까운 사회다. 그렇다고는 해도 말을 사육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 주위의 주파일 중에서도 말을 동경하는 사람은 많지만, 소유한 사람은 매우 적었다.
이러한 이유로 주파일이 파트너로 삼는 동물은 개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말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개와 말은 다른 종에 비해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쉬운 점도 큰 특징으로 꼽는다. 개와 말이 원래 지닌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이 두 동물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 확실하게 축적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 P79

"섹스를 화제로 삼아야 센세이셔널하니까, 대부분 - P85

주파일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성행위에만 한정해서 다루곤 해요.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동물이나 세계와 맺는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무척 어려운 문제지요. 세계나 동물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가에 관한 논의니까요. 주파일을 비판한다는 것은 다른 종을 향한 공감이라는 중요한 감각을 비판하는 셈이죠. 누구를 사랑하는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런 것을 두고 타인에게 간섭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 P86

인간 사회에 살면서 종을 넘어서는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 종의 차이를 절감하게끔 만드는 일이 ‘예의범절을 교육해야 하는‘ 훈육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개 주인에게 훈육은 당연한 일이지만, 주파일은 훈육의 옳고 그름이나 올바른 훈육 방법이 과연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들은 주변의 동물과 대등해지고 싶어 하지만, 대등성이 어떻게 담보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다. - P87

한스는 크로코와 대등하게 사는 것과, 함께 살기 위한 훈련을 둘러싼 문제 사이에서 수많은 모순을 깨달았다. 제타의 주파일들은 한스와 크로코에게 생겼던 일을 보고 대등해지기 위해 훈련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 개답게‘ 기르려는 시도는 역시 잘되기 어렵다고 느꼈던 것 같다. 주파일은 파트너인 동물을 ‘대등한 존재‘로 바라보지만, 그것은 사바나와 같은 야생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자를 향해 인간이 품는 감각과는 다르다. 파트너가 본능대로 행동하면 곤란하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 사회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파일이 말하는 ‘파트너와의 대등성‘이란 무엇일까?
매일의 일상에서 자신과 파트너 사이에 힘으로 지배하는 관계가 최대한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주인에 비해 산책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등 사람에 따라 방법은 다르리라 생각한다. 모든 파일이 가진 공통점은 그들의 생활이 파트너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항상 파트너의 모습을 시야에 담고 있어서 파트너가 무엇을 바라는지 눈치챈다. 그들은 24시간 끊임없이 파트너와 접촉한다. - P92

"충분히 가르쳐서 섹스를 하게끔 만든다는 뜻이에요? 그런 식으로 개를 트레이닝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요. 개는 어떻게 하면 섹스할 수 있는지 처음부터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성적인 행위를 위해 동물을 훈련한다는 것 자체가 주파일답지 않아요. 그건 동물을 도구로 취급하는 거죠"
내가 만났던 모든 주파일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생각이다. 그들은 "섹스를 위한 성적인 트레이닝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라는 윤리관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제타의 이념이기도 하다. 섹스를 유도하는 것은 요컨대 동물을 섹스 토이처럼 다룬다는 뜻이며, 주파일로서는 허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짓을 한다면 동물과의 대등성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리라.
나는 에드바르트에게 또 질문을 던졌다.
"섹스할 때는 동물과 대등한 관계성을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에드바르트는 "흠" 하더니, 한 박자 쉬고 이렇게 말했다.
"먼저 섹스는 집 안에서 일어나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외부 세계 때문에 그들을 교정하고 순응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나와 개는 이미 대등해요. 섹스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집에서 나는 항상 버디와 대등해지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섹스만이 대등성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당신이 듣고 싶은 쪽은 섹스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겠죠?"
내가 어쩔 수 없이 끄덕이자,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럼 내 경험을 이야기해드리죠. 나는 범성애자 - P96

pansexual로, 지금까지 딱 한 번 수컷 개와 섹스한 적이 있어요. 페니스를 삽입당한 경험이죠. 맞아요, 그때 우리는 대등했죠. 서로 섹스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예스와 노를 서로 표명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게 가능했죠. 그런 의미에서 그 개와 나는 대등했던 셈이죠."
인간과 개가 서로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예스와 노를 표명한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지점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미하엘이 말한 "수컷 개가 원해서 다가왔다."라는 말과 통하는지도 모른다. 골똘히 생각하면서 나는 에드바르트에게 수컷 개와의 섹스는 어떤 감각인지 물었다.
"개의 섹스는 인간과 전혀 달라요. 인간은 계속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이죠. 하지만 개가 허리를 움직이는 것은 처음 잠깐뿐이에요. 그 후에는 이상할 정도로 가만히 있어요.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몇 번이나 사정해요. 개는 등 뒤에서 내 항문에 삽입하지만, 완전히 긴장을 풀고 내 몸에 기대죠. 내 머리 바로 아래로 개가 얼굴을 기대고 있어서 따뜻하고 너무나도 좋은 감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래요, 신비로운 체험이었어요."
에드바르트는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 말했다.
"인간과의 섹스와 개와의 섹스, 어느 쪽이 좋아요?"
내가 그렇게 묻자, 에드바르트는 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애용하는 파이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개예요. 하지만 섹스의 쾌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에요. 쾌감이나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인간과 섹스하는 쪽이 더 좋아요. 머리를 써서 즐길 수 있고, 여러 가지 방법도 가능하죠. - P97

내가 개와의 관계가 좋다고 말한 건 관계성이 마지막까지 이어지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배신하지만 개는 배신하지 않아요."
그에게 있어 동물은 인간보다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인 듯했다. 쾌감이 이유가 아니라, 관계성이 가져다주는 질적인 차원에서 에드바르트는 인간보다도 개와의 섹스를 택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섹스는 개와의 관계성을 더 밀접하게 느끼기 위한 행위인지도 모른다. - P98

"나는 중성화에 반대예요. 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개의 성을 컨트롤하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그의 마스터베이션을 돕는 거예요. 버디는 나와 대등한 존재고, 나와 똑같이 성적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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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배윤민정 지음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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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얼마간 전통적인 호칭대로 시가 구성원들을 부르던 나는, 어느 순간 호칭을 입에 올리는 일 자체를 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다짜고짜 말을 시작하거나, ‘저기...‘ 같은 감탄사로 운을 띄우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몇 마디 말이 아니라 대화를 하려면 상대를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했다. 어느덧 나는 여섯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없이 웃고 있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호칭에 신경을 쓰다보니 꼭 해야 할 말이 아니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쪽을 택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차별적인 가족 호칭 문화가 대물림되어온 진짜 목적은 이것인지도 몰랐다. 여자들이 시가에서 입을 닫도록 하는 것.
시가 구성원이 모인 자리에서 미소만 짓고 있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수진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선 보통 두현의 아버지가 대화를 주도했다. 두현의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가정과 직장 생활이 무탈한지 물었고, 두현과 재현은 아버 - P28

지의 질문에 대답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와 수진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오르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것을 묻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다 수진과 내가 입을 열어도, 배우자가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쁘다거나 배우자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반드시 그런 얘기만 하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시가 모임이 끝나고 나면 가슴속에 석연치 않은 기분이 남았다. 나는 결혼 전 두현의 부모님과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때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고 복잡한 호칭 관계가 만들어지고 나니, 남자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위계를 정하는 관습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에 내가 두현의 부모님을 ‘어머님‘과 ‘아버님‘이라고 부를 때 장유유서의 관습만을 의식했다면, ‘아주버님-제수씨‘와 ‘형님-동서‘ 호칭에서 느낀 것은 배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전락했다는 감정이었다. 시가 모임에서 오직 남편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경향도, 남편의 나이를 기준으로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정해지는 부계 중심적인 질서와 무관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가슴속에 떠돌던 기분은 점점 구체적인 질문으로 떠올랐다. 나는 두현의 가족들과 평등한 관계로 만나고 있는 걸까? - P29

그들이 나에게 자유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한, 이 자유는 모욕의 또 다른 얼굴에 불과할 뿐이다. - P117

폭력에 대해 항의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당신이 나에게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의 1차적 반응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없는 것처럼. 내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가해자의 무반응, 목격자들의 외면, 내가 겪은 일은 ‘사소한 일‘이라는 분위기에 눌려서 나는 늘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물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외쳐도 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닿을 수 없다고. 그렇게 내가 침묵하고 나면, 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인간 사회를 서열 구조로 보는 사람들에게 약자의 목소리는 가벼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강자는 침묵을 행사할 수도 있고, 명령할 수도 있다. 사소한 것과 사소하지 않은 것을 결정할 힘이 있다. - P179

-최근에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요?

한창 호칭 싸움을 전개하던 시기,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이런 질문을 봤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두 가지 답을 떠올렸다. 분노와 호기심. 나에게는 이 두 가지가 동전의 앞뒷면과 다르지 않은 감정이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났고, 그랬기에 알고 싶었다. 왜 재현과 수진은 내가 이름에 ‘님‘자를 붙이자고 제안한 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왜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아랫사람이라고 말하는 걸까? 왜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런 위계 구도에서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걸까? 답을 얻으려고 움직이다 - P213

보니 더 많은 질문과 마주쳤다. 가정의 평화는 무엇이고, 가족의 질서는 무엇인지. 그 밑에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명이 잠겨 있는지. ‘정상 가족‘은 이 소리에 귀를 막은 채 그 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 P214

그러니까 이런 거야. 한 나라가 있다고 생각해봐. 그 나라에서는 같은 값에 남자에게는 고기 200그램을 주고, 여자에게는 100그램을 주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 그런데 나는 착한 고깃집 주인이라서 여자들에게 몰래 고기를 조금씩 더 챙겨줘. 가난하거나 아이가 있으면 200그램을 다 줄 때도 있고.
그런데 어느 날 이 법을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지금까지의 내 행동이 잘못된 거라고 여자들이 따진단 말이야. 고기 양을 여자와 남자한테 다르게 주는 것은 나쁘다. 당신은 잘못된 행동을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억울하지. 나는 정해진 대로 따랐을 뿐인데, 내가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여자들에게 조금씩 더 챙겨주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불이익을 감수하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잘못했다고 할 수 있지? 나한테 고맙지도 않나?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지?
나는 자기에게도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 나와 부모님은 자기를 이해한다고, 그것도 대단한 거라고⋯. 그런데 그런 마음은 이 상황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거야. 고기를 적게 줘서 생긴 문제였다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면 끝날 일이라는 거지. - P248

그 구조 안에서 내가 애썼다는 얘기는 할 필요도 없는 거였어.
그런 생각이 떠오르니까 정신이 들었어. 아, 내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아파할 일이 아니구나. 내 감정이 문제가 아니구4. 미래의 내가 현재로 와서 멱살을 잡고 말하는 것 같더라니가. 이것 봐, 시스템이 잘못됐다니까! - P249

"그러니까. 문제는 구조였어. 나와 부모님이 자기에게 가해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구조를 직시해야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거였어. 그런데 나는 자꾸 나와 부모님의 노력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만 있었던 거야. 자기 입장에서 보면 이 잘못된 위계 구조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달라진 게 없는데 우리 노력을 알아달라고만 하는 건, 자기에게 이 위계를 받아들이라고 좋게 타이르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거지." - P249

살기이 글을 쓴 이후 ‘이혼하라‘는 댓글을 참 많이 받았다. 일각에서는 전통적인 가족 호칭과 서열 문화가 싫다면 잔말 말고 이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쪽에서는 기혼 여성은 가부장제 유지에 기여할 뿐이니 ‘탈혼‘만이 정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자는 가부장제의 기득권인 남성 집단의 반응이고, 후자는 가부장제 해체를 원하는 여성 집단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판이하게 성격이 다른 두 집단에서 결혼 제도 밖으로 나가라는 똑같은 말이 나온 것이다. 나는 이 현상을 보고 생각했다. 이혼 혹은 탈혼은 이 싸움을 끝내는 너무 쉬운 방법이 아닐까?
사회에서 전형적인 선택지로 주어지는 것에는 늘 함정이 있다. 나는 결혼을 통해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혼 - P266

혹은 탈혼은 과연 이 전형성에서 벗어난 선택인가? ‘가부장제의 수용‘ 아니면 ‘관계의 단절‘이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지만이 나에게 주어진 것인가? 나는 이것 또한 가부장제의 작동 방식 중 하나가 아닌지 의심했다. 결혼 제도 안에서 가부장제에 반기를 든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 수용을 선택하면 개인의 존엄을 잃고, 거부를 선택하면 관계가 단절되는 선택지로 여자를 밀어 넣는 것.
나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가꾸어가길 원한다. 동반자와의 관계를 법과 제도를 통해 보호받고 지원받길 원한다. 동시에 여자의 삶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가부장제가 사라지길 원한다. 나는 사랑을 원하고, 내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보호를 원하며, 여성 인권의 향상을 원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욕망이고, 동시에 내가 시민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삶의 권리다. 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한 가지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것에 대 - P267

한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고 싶다. - P268

상대방이 거부한다면 부딪쳐보는 것도 우리의 선택지 중 하나다. 나는 결혼한 여자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 ‘갈등을 최소화하며 현명하게 변화를 끌어내라‘는 목소리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런 말들은 변화가 일어나기까지의 시간 동안 여자에게 차별을 감내하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이 ‘가정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평화 밑에는 여자, 특히 ‘며느리‘의 인내가 깔려 있다. 나는 약자의 침묵으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구성원들이 부딪치고 갈등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더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민주주의가 그러하듯이.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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