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을 권리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 시사IN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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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니면 결혼, 내키지 않는 두 선택지를 넘어서기 위해서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결혼에 이르기 전에 서로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연인일 수도 있다. 또 이혼과 사별 후에 더 이상 친족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는 사람도, 노인과 장애인처럼 특히 돌봄이 필요한 이들도 긴요하게 쓸 수 있는 제도다. 흔히 ‘동거‘를 무책임하고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연으로 함께 살고 있고, 또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과 혈연 이외의 사람들이 함께 살 때 필요한 사회복지혜택과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고, 둘이 동거생활을 시작하고 해소할 때 필요한 공정한 절차를 규정하는 법이다. - P8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핵심은 ‘고독‘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외롭다. 국가는 국민이 외롭게 살도록 방치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폭증하는 1인 가구를 자유와 낭만을 갖춘 새로운 생활방식처럼 꾸미지만 실제로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 누구와 같이 사는 게 민폐가 되는 여러 환경, 너무 높은 결혼의장벽, 가부장적 가족문화 등으로 ‘어쩌다 보니‘ 비자발적으로 1인 가구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가족 간에 물리적, 감정적으로 서로 돌보지 못하거나 돌봄을 거부하는 상황도 빈번해 가족과 함께 살아도 외로운 경우가 많다.
‘고독‘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개인의 기분이 아니라 실재한다.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이 고독한 상태가 되면 그건 사회적 문제이자 정책적 과제다. 지속적인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돌봄을 제공하는 자원이 필요하다.
나는 고독이, 외로움이, 돌봄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많은 - P10

사람이 어쩌면 한국의 가장 큰 정책적 과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고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기껏해야 상담을 해주고 정신과 치료에 대한 보험수혜를 늘려주는 정도다. 물론 경제 정책, 복지 정책, 노동 정책을 통해 사회적 고독을 만드는 요소를 줄여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외로움 자체를 해소하려면 더욱 직접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법은 고독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돌봄‘에 대한 법이다. 우리는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 화장실에서 넘어졌을 때 구급차를 불러줄 사람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은가. 돌봄은 좁은 의미의 간호나 가사노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험난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바쁜 친구와 밖에서 만나 얘기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내일의 건강한 출근을 위해서 오늘 털고 가야 할 이야기도 있다. 치킨을 주문하거나 라면을 끓일 핑계가 되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눈송이만한 외로움이 밤새 몸을굴려 눈사태가 되지 않도록 그저 누군가의 잠자는 숨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물론 누군가와 같이 산다 해도 내 몫의 돌봄은 내가 해야 한다. 하지만 품앗이는 할 수 있다. 내가 힘들고 바쁠 땐 상대가 도와주고, 아플 땐 서로 보살피고 집안일도 대신 해출 수 있어야 한다. 피곤하고 아파도 어쩔 수 없이 출근은 해야 하는데, 빨아놓은 셔츠가 한 장도 없을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묻게 된다. 우리에겐 연대와 협동, 상호돌봄이 필 - P11

요하다.
한국은 돌봄을 이미 상당 부분 공공서비스와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많은 복지비용을 들여 공공산후조리원, 아이 돌보미부터 치매 간병까지 일생에 걸쳐 돌봄 서비스를 지원한다. 물론 돈이 있다면 시장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구입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 제공하는 돌봄은 청소, 아이 보기, 간호하기 등 구체적 행위뿐 아니라 감정노동까지 포함한다.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 나를 아껴주는 기분을 느끼고자 적지 않은 돈을 쓴다.
이러한 돌봄을 정부와 시장이 다 해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가족 대신 정부와 시장이면 충분할까? 돌봄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인격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전인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다. 아무리 많은 자원을 들여 각종 서비스를 지원한다고 해도 채울 수 없는 여지가 있다.
가령 노인 1인 가구가 오늘도 건강히 잘 지내는지, 영양가 있는 식사를 했는지, 사회적으로 단절된 곳에서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회복지비용을 들여야 한다. 더구나 이런 서비스는 해당 노인을 연명시킬 수 있을지언정 외롭지 않게 하기는 어렵다. 이 노인이 믿을 수 있는 친구와 살아갈 수 있는 제도가 있고, 이를 장려하기 위해 임대주택과 수당도 준다면 어떨까? 우리 사회는 ‘특별한 한 사람‘만 내 옆에 있으면 되는 간단한문제를 너무 어렵게 풀어가고 있다. - P12

일부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가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동거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면 더더욱 결혼을 안 할 것이고, 출산율이 떨어지며, 우리 사회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 법이 허용한 동거의 방식이 결혼뿐이라 누군가와 같이 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결혼하는 것이라면 정말로 진지하게 가족법의 재건축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족의 위기가 아니라 ‘가족법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을 이루도록 장려하는 법, 서로에게 더 책임을 갖고 정착하도록 독려하는 법, 가족의 믿음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법인 생활동반자법은 당연히 ‘보수적인 법‘이다.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정시킨다는 의미에서 보수적이다. 생활동반자법은 기존의 경직된 가족제도를 떠난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탈락하지 않고 사회를 더 신뢰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우리가 만들어 온 사회복지제도에 더 많은 사람을 포함시키고, 개인으로서, 또 가족구성원으로서 보장받아야 한다고 여겨온 권리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하는 법이다. - P15

한국 사회의 아들딸로 사는 우리에게 ‘부모에 대한 부담감‘이 보편적 - P27

으로 와닿기 때문인 것 같다. 부모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고,
부모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 한국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꼭 모셔서 정신건강 특강을 듣고 싶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인순이의 〈아버지〉, 자이언티(Zion.T)의 〈양화대교〉, 라디(Ra.D)의 〈엄마〉 같은 노래가 필승카드로 쓰이는 한 이 원망과 미안함의 이중적 감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용돈을 드리고 자주 찾아가서 뵈어도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밑 빠진 독과 같다. 쓰고 넘칠 정도로 돈이 많아서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해드리면 괜찮을까? 그럴정도로 돈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녀의 경제력이 충분하다면 아마 부모의 경제력은 넘치게 충분할 가능성이 크고, 한국 사회의 효도는 단순히 경제적 부양을 넘어서 감정적 충만함이라는 좀처럼 완성되기 어려운 목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처럼 관직을 버리고 3년상을 치르는 게 현대식 효도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효도는 자랑할 만한 아들딸이 되는 것이다. 해외로 효도여행을 보내서 동창들이모여 있는 네이버 밴드에 자랑할 사진을 찍게 해주고, 면세점에서 세상을 덮을 만한 샤넬 로고가 박힌 핸드백과 아버지 손목 관절에 무리를 줄 만큼 무거워 보이는 롤렉스 시계를 사드리는 것이다. 부모님 지인이 듣고 단박에 알 만한 직업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효도가 될 만한 직장을 잡으려면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털어 지원을 받아야 한다. 효도 - P28

를 하려면 불효를 해야 하는 딜레마다. 지금의 불효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성공을 이뤄 부모님의 노후까지 책임져야한다. 이렇게 한국 사회 청춘들은 효도를 향한 피의 레이스를 진행하고 있다.
미안하다가도 가끔은 화가 난다. ‘좋은 직장도 못 갖고 돈도 못 버는 게 누구 탓인데‘ 생각하다가도 죄스러운 마음에 얼른 지운다. 미안하다가 원망했다가 잘 해야지 하다가 부담스럽다가 부모에 대한 감정이 널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부모 덕으로 사장이네 대표네 갑질을 할 때면 더 좋은 위치에 나를 올려다주지 못한 부모가 원망스럽다. 재벌기업까진 물려주지 않더라도 그때 내게 조금 더 투자를 해줬더라면, 딸이라고 학원비를 아끼지 않았더라면, 내게도 학자금 대출이 없었다면, 전세금만 보태줬다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자식을 좋은 위치에 보내기 위해 과잉 투자한 부모에 대한 원망도 있다. 학업 성취만 요구하고 내 마음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원망이다. - P29

결국 자식에게 ‘올인‘한 후 부양을 받는 게 이들의 노후대책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악화된 노동 환경에서 자녀는 부모를 부양할 만큼 충분한 돈을 벌지 못 한다. 정부는 기초노령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사회복지제도를 급히 만들었지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 역시 국민연금처럼 돈을 미리 쌓아 놓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 대상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이중고에 시달린다. 굶어 죽지 않을 수준의 노인 복지, 그나마 잘 갖춰진 의료제도와 기술로 한국의 노인은 아프고 가난하게 오래 산다. 그 결과 한국의 노인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이 일하는데도 가장 가난하고 압도적으로 많이 자살한다.
노인일자리 사업을 나가거나 폐지를 주워 돈을 벌고, 기초노령연금을 적게나마 받고, 자녀가 조금이라도 용돈을 - P32

주면 간신히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조그만 돌부리도 너무나 버거운 절벽이 된다. 국민건강보험이 허락하지 않는 병을 오래 앓는 것, 노인복지센터나 경로당을 가지 못할 정도로 다쳐 밥과 여가를 해결할 수ㅠ없는 것, 오랫동안 살던 동네가 재개발 되는 것, 자녀가 실직을 하는 것 모두 준비되지 않은 돌부리다. 노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자녀의 생활도 도미노처럼 함께 무너진다. - P33

현재의 부양의무제는 착하고 가난한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원망하고 미안해하도록 한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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