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글은 처음이라 - 한번 깨달으면 평생 써먹는 글쓰기 수업
제갈현열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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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글을 쓰는 일은 늘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철학에 관심이 많아 거의 10년째 『두 남자의 철학수다』라는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진행자 '메뚝씨'가 글을 써야 한다고 매번 잔소리?를 하시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글쓰는 사람들 얘기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책을 읽고 인스타에 몇 줄 요약하려고 해보니, 생각처럼 잘 써지지 않았다. 막상 쓰려니 머릿속은 복잡한데 문장은 밋밋하고, 만연체로 늘어지기 일쑤였다. 글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철학책 원전을 읽을 때도 그랬다. 별다른 배경지식 없이 그냥 덤볐다. 『에티카』, 『존재와 시간』, 『정신현상학』 같은 책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철알못이었기에 오히려 가능했던 일이다. 온전히 이해 했을리는 만무하다. 다만, 완독에 의의를 두고 그리했으니.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잘 쓰는 법도, 구조도 모른 채 그냥 쓰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썼다. 한마디로, 막 썼다. 처음 철학책을 읽을 때처럼 글쓰기 앞에서도 나는 또 한 번 무모한 초심자다. 그래도 쓰다 보니 욕심이 생겼고, 글쓰기에 대한 갈증도 조금씩 자라났다.


『팔리는 글은 처음이라』는 그 막막한 갈증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준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판매하며’ 살아간다는 관점에서 글쓰기를 해석한다. 취업, 이직, 기획, 제안, 비즈니스 운영… 이 모든 순간 글은 나를 대신해 말을 건넨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 세상이 사고 싶은 글을 써라”였다.

저자는 자기만족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독자(시장)의 필요와 욕구를 중심에 두는 ‘시장 우선주의’의 태도를 강조한다.


처음엔 ‘시장에 팔리는 글’이라는 표현에 살짝 반감도 있었다. 하지만 곧 그 뜻을 이해했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 글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결국 공허하다는 것을.

읽는 이를 배려하는 태도에서 진정한 글쓰기가 시작된다는 점은, 나 역시 글을 써보며 조금씩 체감하면서도 자주 놓치는 부분이다.


이 책은 『문장 강화』처럼 표현력이나 문장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 책은 아니다.

글이 어떻게 읽히고, 어떻게 반응을 끌어내고, 결국 어떻게 ‘팔리는지’를 중심에 두는 실전 글쓰기 안내서다.


‘잘 쓰는 글’보다는 ‘읽히는 글’을 목표로 삼는 사람에게 훨씬 더 현실적이고 유용한 조언을 건넨다.


요즘 나는 북스타그램을 통해 거의 매일 서평이나 책소개를 쓴다.

책을 읽고, 인상 깊은 문장을 골라내고, 나만의 생각을 붙이는 과정 속에서 느낀다.

글은 감상의 흔적이자,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시도라는 것을.


『팔리는 글은 처음이라』는 그런 글을 어떻게 더 정확하게, 더 설득력 있게 다듬을 수 있을지를 알려준다.

막연한 열정이 아니라, 전달되는 글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태도를 제시하는 책이다.


매일 글을 쓰며 더 나은 문장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글쓰기의 방향을 짚어주고, 한 문장을 자신 있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네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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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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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혼란스러움. 신선함. 이 책을 읽는 첫 느낌이 그랬다. 우리가 얼마 전까지 경험했던 지도자는 무속신앙에 의지하고 민심에는 무관심한, 불통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18세기의 왕이 이토록 진보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21세기, 점괘와 SNS를 통해 국정을 판단하던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반대로 18세기 조선의 군주가 실학자와 함께 국가 정책을 고민하고 민생의 해법을 찾기 위해 진지한 문답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18세기 조선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아이폰을 들고 테슬라를 탄다고 해서, 우리가 더 진보된 시대를 살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든,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삶의 방식과 사상이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가, 아니면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21세기에 산다고 모두가 현대적인 사람은 아니며, 18세기를 살았다고 해서 모두를 ‘옛날사람’, ‘낡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한 이 책은 정조의 ‘책문(策問)’과 다산의 ‘대책(對策)’을 바탕으로, 고전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문답서다. 단순한 명령과 보고가 아닌, 질문과 응답을 통해 함께 국정을 설계해 나간 기록이다.


정조는 지시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진지하게 묻는 리더였다. 다산 정약용 역시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민생과 국방, 지리와 제도 등 현실적인 국가 과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그 시대, 군주에게 직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40대 국왕 정조에게 30대의 다산이 때로는 놀라울 만큼 직설적인 글을 보냈다는 점은 인상 깊다. 신하로서의 예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다산의 태도는 신선했고,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신뢰와 상호 존중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정조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젊고, 신분도 낮은 신하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답을 실제 정책에 반영해 국정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열린 태도와 통찰력을 지닌 군주였는지를 보여준다.


조선 후기, 기득권 세력이 강하게 버티고 사회적 불균형이 심화되던 상황에서 정조가 보여준 통치 철학은 오히려 더 빛난다. 그는 기존 질서 속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체제 안에서 가능한 개혁의 틈을 치밀하게 찾아냈다.


부패한 관료와 당파적 이해관계 속에서도 그는 민생을 중심에 두고 정치의 방향을 끊임없이 조율하고 개혁을 추친했다. 그래서 정조는 오늘날까지도 ‘개혁군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그의 질문에 응답하며 함께 국가의 미래를 고민한 다산이 있었다.


이제 대선을 불과 2주 앞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누구인가. 정조와 다산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를 다시금 묻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왕이 아니다.


시대를 읽고, 민심에 귀 기울이며, 두려움 없이 실천할 수 있는 사람.

우리가 찾아야 할 리더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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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느슨함 - 돈, 일,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품위 있는 삶의 태도
와다 히데키 지음, 박여원 옮김 / 윌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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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라떼는... 으로 시작하는 얘기를 해보자면, 내가 회사 다닐 시절에는 주5일 근무가 없었다. 6일 근무는 기본, 때로는 주 7일 풀로 일하고 야근까지 해내야 했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능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긴장을 늘 장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직장에 인생을 몰빵 하지 않고, 퇴근 후의 시간과 주말의 여유를 지키려는 흐름이 서서히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반가운 변화이다. '회사에서 자아실현 하지 말라'는 말이 이제는 그저 냉소적인 충고로만 들리지 않는다. 일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일터에서 보내는 삶 속에서도, 남은 시간을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려주는 일이 더없이 소중하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 없기에, 일 외의 시간에서야말로 진짜 삶이 피어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입시 경쟁, 취업 전쟁, 결혼과 출산이라는 일련의 '과업'들 앞에서 늘 정답처럼 보이는 삶의 계단을 오르느라, 마음 챙길 틈조차 없이 지치고 망가지는 일이 흔하다. 단발의 생인데, 우리는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살다 보면 모든 일에 100점 받는 일보다, 80점만 맞아도 될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 책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잘 살아가는 법, 다시 말해 '느슨한 인생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완벽하게 자신을 통제하고 세상의 기준과 속도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동안, 우리는 체력이 고갈되고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간다. 와다 히데키 교수는 30년이 넘는 임상과 상담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잘 사는 어른'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편안하게 들려준다.


그는 말한다. 마음속에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해'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고정된 잣대를 가지고 여백 없이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우울감에 쉽게 잠식될 수 있다고. 지나친 성실함은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날카로운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80점이면 충분합니다." 그의 이 조언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태도에 대한 제안이다. 완벽함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약간의 부족함을 허락하는 순간, 삶은 오히려 더 편하고 단단해진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 뿌리는 사회 구조에 있다. 변화는 시스템과 공동체의 인식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돌보고, 지키고, 아껴주는 일이다.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말이다.


조금 못해도 다소 못나도 있는 그대로 괜찮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그리고 오늘부터 좀 더 느슨하게, 여유를 부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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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유전자를 춤추게 한다 - 호모 사피엔스의 눈부신 번영을 이끈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비밀
장수철 지음 / 바틀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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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요즘 해 질 녘이면 논에서 개구리들의 떼창이 울려 퍼진다. 뻐꾸기와 소쩍새까지 합류해 거의 오케스트라 수준이다. 지난주부터 우리 동네 논에는 본격적으로 모내기가 시작됐다. 트랙터가 요란하게 논을 갈고, 물이 찬 논 위로 농부들이 뭔가를 하신다.(농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뭘 하고 계시는건지 늘 궁금하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겐 낯설고도 신기한 풍경이다.


반듯한 도로와 아파트 숲에 익숙했던 나는, 시골로 이사 온 뒤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여전히 ‘농경사회’라는 토대 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흙냄새 가득한 일상을 배경으로 『문화는 유전자를 춤추게 한다』를 읽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유전자가 춤을 춘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저자는 한류 열풍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다. 

"우리 민족에게 가무에 뛰어난 남다른 문화적 DNA라도 있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결론은 다르다. 가무에 대한 열정은 특정 민족만의 DNA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사회적 본능’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춤추고 노래하던 조상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얘기다.


춤과 노래는 생존 전략이었다. 공동체의 유대를 다지고 협동심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었으니까. 특히 농경사회는 이 본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정착 생활과 공동체 중심의 문화, 의례와 축제는 가무를 집단 퍼포먼스로 발전시켰고, 오늘날의 K-팝 역시 그 연장선에서 해석 될 수 있다.


저자는 특히 ‘가무의 진화적 기능’에 주목한다. 춤은 단순한 흥이 아니라 집단 지성과 협력의 기술이었다. K팝의 ‘칼군무’가 세계인을 사로잡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모방 본능을 자극하고, 원초적인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우리의 뇌는 여전히 ‘함께 맞춰 춤추는 것’에 열광한다.


『문화는 유전자를 춤추게 한다』는 우리 안에 흐르는 진화의 흔적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한다. 저자는 자연과 문화가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해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문화가 유전자를 어떻게 춤추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문화와 유전자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매운맛을 사랑하게 된 이유(2장), 뒷담화가 왜 필요한가(3장), 성적 선택의 전략(4장), 가족관계(5장), 소통능력(6장) 농업혁명 이후 바뀐 유전자(7장), 질병(8장)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비밀(9장) 문화의 다양성(10장) 등 문화와 유전자의 상호작용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보여준다.


자연이 우리를 진화시켜 왔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문화는 유전자를 춤추게 한다』는 이 질문에 대한 탐색이다.

유전자와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해 온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자연의 산물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진화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도 문화라는 힘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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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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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한때 문이란, 열려 있거나 닫혀 있는 둘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 같은 철학자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접촉’이나 ‘경계’가 실은 완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개념적 이상이라 말한다. 물리적 세계도 마찬가지다. 문은 완전히 닫히지도, 완전히 열리지도 않는다. 늘 두 상태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모호한 경계에 머무를 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랑이든 관계든, 세상의 모든 것이 명확히 호명되고 경계 지어진 상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무언가가 변하거나, 모호한 채로 머무른다는 개념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A는 A여야 했고, A가 B나 C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은 내게 전혀 허용되지 않은 영역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상상력이 빈곤한 시선이었다.


소설은 크리스틴이 아침에 집을 나서서 밤에 코르뒤레에 도착하기까지, 단 하루 동안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이 시간은 단순한 거리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빅토르와의 작별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다.


크리스틴은 신경이 점점 마비되어가는 동성애자 빅토르를 사랑한다. 빅토르 역시 그녀를 아끼지만, 그의 욕망은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의사 테스트의 분석처럼, 그는 여성과의 사랑을 일종의 타락으로 인식하며 크리스틴과 거리를 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틴은 그런 그에게 더욱 깊이 끌린다. 수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빅토르에게로만 귀착된다.


어긋나거나 경계를 벗어난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답답함은, 어쩌면 아직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모든 감정에는 이름이 붙어야 하고, 모든 관계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나는,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들과 모호한 관계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육체노동자』는 말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경계 밖의 모호한 사랑의 변주곡이다. 사랑과 욕망, 질투와 결핍이 서로 얽혀 경계조차 흐릿해진 복잡한 감정의 풍경이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결코 단일한 정서가 아니다. 그것은 모순된 감정들이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크리스틴이 빅토르를 향해 품는 마음은 사랑과 배신, 집착과 거리두기, 갈망과 체념이 기묘하게 혼합된 형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 역시 결코 하나로 정제된 무엇이 아닌 듯하다. 소설이나 아침 드라마처럼 극적인 서사가 없더라도, 사랑은 언제나 인간의 심리와 욕망, 결핍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누군가에게는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얼굴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애매한 거리감과 끌림이 공존하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사랑은 정의하려는 순간, 그 본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정이다. 결국 우리는 그런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과 함께 살아간다.


사랑은 때로 모순되고, 설명하기 어렵고, 규범에서 벗어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모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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