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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혼란스러움. 신선함. 이 책을 읽는 첫 느낌이 그랬다. 우리가 얼마 전까지 경험했던 지도자는 무속신앙에 의지하고 민심에는 무관심한, 불통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18세기의 왕이 이토록 진보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21세기, 점괘와 SNS를 통해 국정을 판단하던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반대로 18세기 조선의 군주가 실학자와 함께 국가 정책을 고민하고 민생의 해법을 찾기 위해 진지한 문답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18세기 조선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아이폰을 들고 테슬라를 탄다고 해서, 우리가 더 진보된 시대를 살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든,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삶의 방식과 사상이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가, 아니면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21세기에 산다고 모두가 현대적인 사람은 아니며, 18세기를 살았다고 해서 모두를 ‘옛날사람’, ‘낡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한 이 책은 정조의 ‘책문(策問)’과 다산의 ‘대책(對策)’을 바탕으로, 고전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문답서다. 단순한 명령과 보고가 아닌, 질문과 응답을 통해 함께 국정을 설계해 나간 기록이다.
정조는 지시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진지하게 묻는 리더였다. 다산 정약용 역시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민생과 국방, 지리와 제도 등 현실적인 국가 과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그 시대, 군주에게 직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40대 국왕 정조에게 30대의 다산이 때로는 놀라울 만큼 직설적인 글을 보냈다는 점은 인상 깊다. 신하로서의 예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다산의 태도는 신선했고,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신뢰와 상호 존중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정조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젊고, 신분도 낮은 신하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답을 실제 정책에 반영해 국정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열린 태도와 통찰력을 지닌 군주였는지를 보여준다.
조선 후기, 기득권 세력이 강하게 버티고 사회적 불균형이 심화되던 상황에서 정조가 보여준 통치 철학은 오히려 더 빛난다. 그는 기존 질서 속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체제 안에서 가능한 개혁의 틈을 치밀하게 찾아냈다.
부패한 관료와 당파적 이해관계 속에서도 그는 민생을 중심에 두고 정치의 방향을 끊임없이 조율하고 개혁을 추친했다. 그래서 정조는 오늘날까지도 ‘개혁군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그의 질문에 응답하며 함께 국가의 미래를 고민한 다산이 있었다.
이제 대선을 불과 2주 앞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누구인가. 정조와 다산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를 다시금 묻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왕이 아니다.
시대를 읽고, 민심에 귀 기울이며, 두려움 없이 실천할 수 있는 사람.
우리가 찾아야 할 리더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