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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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바다를 좋아한다. 스무 살 무렵 바다를 처음 보고 매료된 이후로 늘 그랬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고 싶을 때도, 시간의 여유가 생길 때도 바다로 가곤 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바다는 눈에 보이는 수평선과 손에 닿고 몸을 담글 수 있는 얕은 해안가뿐이다. 아, 그리고 단 한 번의 스쿠버다이빙 경험.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볼 때면 그 별이 있을 우주를 떠올리며 두려움이 섞인 경외감이 밀려오는데, 바다에 대한 상상은 딱 어릴 적 읽었던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서 멈춘 듯하다.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잘 알지 못하는 곳, 심해.

오랜 전부터 그런 심해는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두려움과 환상의 무대였다. 올라우스 망누스의 16세기 해양 지도 『카르타 마리나』는, 심연의 괴물과 전설 속 물고기들이 붉고 검은 삽화로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그것은 "바다는 무시무시한 곳이다"는 공포와 경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실 삽화 속 괴물들이 무섭기보다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졌다.


망누스 이후에 심해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다양한 잠수정을 이용한 목숨을 건 탐험이 이어졌고, 인류는 마침내 마리아나 해구와 같은 심해 최심부까지 닿으며 바다의 베일을 조금씩 걷어냈다.


수전 케이시는 이러한 역사적 궤적 위에 자신의 여정을 그려 넣는다. 그녀가 박광층(수심 200~1,000m)에서 바라본 풍경을 이렇게 고백한 대목은, 심연의 빛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실감하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빛을 1급 마약으로 분류하고 싶다. 넋을 잃고 그곳에 앉아 있노라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 빛은 완전한 어둠도 완전한 밝음도 아닌 어스름 속에서만 가능한, 군청빛의 몽환적 아름다움이다.


마지막으로, 리미팅 팩터호를 타고 로이히 해저화산으로 향하는 여정은 심해 탐사의 극한과 경이로움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런 말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잠수정에 치명적인 고장이 발생해서 몸이 순식간에 플라즈마가 되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괜찮아요."


리미팅 팩터호의 소유주이면서 탐험가인 베스코보의 말에 조금 부러운 마음도 생겼다. 몸이 순식간에 플라즈마가 되어 사라진다 해도 괜찮다니? 살아가면서 내가 입자의 상태로 흩어져도 좋을 일을, 그런 벅찬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당신은 어떤 빛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가?"라고 내게 묻는 듯했다.


달의 모든 분화구에 이름이 붙고 화성의 3차원 지도를 아이폰으로 볼 수 있는 지금, 해저의 80퍼센트는 상세한 지도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연일 숨이 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마치 심해 다큐멘터리 한 편을 눈앞에서 본 듯한 기분이었다. 몰디브에서 며칠간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며 바다 속으로 뛰어들던 순간이 떠올랐다. 심연만큼 깊지는 않았지만, 그때 느낀 두려움과 경이로움, 내 옆을 스쳐간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언더월드』가 일깨워준 모험심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바다에 대한 신비함과 설렘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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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장성남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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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여름의 유혹인 복숭아는, 과육이 완전히 무르익으면 감춰두었던 눈물처럼 갈색 그늘 사이로 진득한 과즙을 흘린다. 계절이 깊어질수록 나무에 매달린 복숭아들은 여름 햇살 아래 살을 올리며 여물어간다. 그러나 자라는 과정에서 열매에 생채기가 나기도 한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는다. 벨벳 같은 껍질로 감싸인 부드러운 속살에 멍든 자욱으로.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은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내면의 공허를 느끼며 글쓰기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무심코 흘려보낸 기억들과 관계의 미묘한 불협화음이 모두 내면의 목소리를 깨우는 신호였음을 저자는 뒤늦게 알아차린다. 타인의 인정과 책임감으로 빼곡했던 삶이 위기를 맞자, 저자는 멈춰 선 시간의 한 지점으로 돌아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나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의 칭찬과 인정에 늘 목말랐고, 타인의 한마디에 내 존재 가치가 출렁였다."


이 고백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차별과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가난 때문에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에도 그는 밭일을 도우며 맏딸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져야 했다. 절대 권력처럼 느껴졌던 아버지 앞에서 연약하기만 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향한 연민과 사랑은 동시에 미움, 책임감, 죄책감으로 뒤섞여 그의 마음에 새겨졌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은 오랫동안 삶의 페이지 어딘가에 묻혀 읽히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한번의 이혼과 딸의 방황, 그리고 또 다시 만난 사랑. 그 힘든 시간들 속에서 저자는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면의 공허함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그는 펜을 들고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이제 그는 그 상처들을 들여다보며 어린 시절의 자신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숨겨진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살면서 우리는 흉터를 꽁꽁 감추며 그럭저럭 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봉인이 터져버릴 때가 온다. 그 순간 비로소 오래된 아픔을 직면하게 된다.


기억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어떨까?

치유는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의 상처가 선명해질 때, 우리는 글을 통해 그 아픔을 어루만지고 재해석할 수 있다.

진솔한 글쓰기는 마음의 멍 자국 위에 부드러운 위로를 스스로 얹어 주고,

오롯이 자신의 못난 과거를 끌어안는 용기가 새로운 싹을 틔우는 첫걸음이 된다.


어느 날 어떤 기억이, 상처가 당신을 불러 세울 때, 고요히 들여다보며 작은 노트를 하나 꺼내 응답하기를.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왔고, 견뎌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도 좋겠다.

조금…간지러우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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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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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IMF 외환 위기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부모님은 열 살의 제니를 데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한다. 낯선 언어와 시선 속에서 제니는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려 애쓴다. 피부색과 서투른 말투만으로 아이들의 은근한 조롱과 배척을 견뎌야 하던 어느 날, 한국에서 온 한나가 다가온다.


한나가 제니에게 다가가는 순간, 한나는 같은 ‘이방인’으로서의 연대를 갈망한다. 그러나 제니는 멀리서 안타까운 눈길로 한나를 지켜보면서도, 자신이 어렵게 쌓아 올린 ‘소속감’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나의 존재가 자꾸만 신경에 거슬려, 제니는 마음 한편이 무겁다.


두 아이는 친구가 전부인 시절, 서로를 밀고 당기며 불완전한 우정의 경계를 탐색한다. 제니는 백인 아이들의 시선과 자신의 불안 속에서 한나를 평가하고, 손을 뻗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한다. 그 모습은 불안정한 우정의 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어찌 보면 답답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지만, 그만큼 현실적이어서 그들의 감정이 일으키는 파동이 낯설지 않았다. 글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 친구 M과 나눴던 손편지와 미묘한 질투를 떠올렸다. 다른 반인데도 쉬는 시간마다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 교실로 뛰어들어와 민망하게 만들던 그 아이.


색연필로 정성껏 그린 삽화와 십여 쪽에 달하는 짧은 동화 이야기를 편지로 건네던 M., 나는 친구로서의 그아이를 좋아함과 동시에 선생님의 관심을 독차지하던 그녀에게 느낀 질투를 제3자를 통해 무심코 드러냈다. 그 사소한 오해는 M의 서운함을 샀고,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삶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 아련한 슬픔이 뒤섞였던 감정은, 제니와 한나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글을 쓰며 비로소 제니와 한나의 마음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도저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흐리멍텅한 혼란일 뿐이다.(중략) 수많은 단점을 골라내 억지로 감추거나 바꾸느라 자신의 초상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사랑할 때, 나는 가려지고 훼손된다.”


경계에 서서 자신을 지키기에도 버거운 한나의 마음, 감정을 드러냈을 때 자신을 잃을까 두려워 마음을 잠그는 아이.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보루인 듯 느껴져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잊고 지냈던 친구 M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때 함께 나눈 시간과 떡볶이의 추억 속에서, 미안함이 여전히 가슴 한켠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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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그림 - 찬란한 계절을 사랑하게 만드는 명화 속 여름 이야기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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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넘기니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푸른 바다와 뜨거운 모래 위에서 들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잔잔한 윤슬이 반짝이며 손짓하고, 어느새 마음은 그림 속 아이들과 함께 수평선을 향해 달려간다.


비록 해변과 강가가 이국의 풍경일지라도, 여름날의 기억은 각자의 가슴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뜨거운 모래 위에 앉아 수박 한 조각을 베어 물면 팔뚝까지 흐르던 달콤한 끈적함, 발끝이 얼어붙는 듯한 계곡물의 쨍한 시원함, 평상 에 둘러앉아 나누던 백숙 한 그릇의 따스한 온기까지, 이 모든 감각이 그림을 보며 되살아난다.

어느 특정한 날이라고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았던 여름날의 추억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프리다 칼로의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다. 붉은 속살을 드러낸 일곱 개의 수박 위에 선명히 새겨진 “Viva la Vida”라는 글귀.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8일 전 남긴 이 마지막 외침은, 달콤하고 연약한 과육의 신선함과 절절하게 대비된다.


무슨 마음으로 그렸을까? 맛있고 달콤한 수박의 유혹, 칼끝에 맺힌 연약한 껍질과 과육, 그 위에 새긴 ‘인생이여, 만세’라는 문장. 영화처럼 극적이었던 그녀의 삶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 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삶을 끌어 안고 긍정한 그녀의 의지에는 말 못할 경외감이 밀려온다.


모든 여름이 지나고 찬란함과 고통, 기쁨과 슬픔을 겪어 낸 뒤에도, 과연 나도 그녀처럼 ‘인생이여, 만세’라고 외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렇듯 찬란한 빛과 깊은 사유가 공존하는 이 책은, 우리의 숨겨진 여름 기억을 부드럽게 소환하며 그때의 설렘과 쉼, 시원한 물방울의 감촉을 되살려준다.


이런 여름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 풍경을 화폭에 담은 화가들의 작품 100점이 『여름이라는 그림』 안에 있다 . 매년 여름이면 고향의 해변으로 달려가 푸른 바다를 그렸던 호아킨 소로야, 대표적인 여름꽃인 수련이 만개한 정원을 남긴 클로드 모네, 한여름 해변의 낮 풍경을 자주 그렸던 필립 윌슨 스티어,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름의 풍경을 포착해, 우리에게 계절의 서정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어쩐지 가장 빠르게 스쳐 가는 계절, 여름. 선선한 선풍기 바람 아래 수박 한 입 베어 물며, 마치 미술관을 집으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책을 펼쳐 보아도 좋겠다. 순간의 빛과 색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며, 여름의 설렘을 다시금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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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무지개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용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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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무지개를 보면 어쩐지 설렌다.

그 신비한 빛의 띠가 단순한 굴절 현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어린 준재는 비 오는 날,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서 본 ‘과잉 무지개’를 기억한다. 엄마는 “행복이 너무 많을 때 보이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그는 하루를 여는 일조차 버거웠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화재로 어머니를 잃었으며, 믿었던 친구에게 부모님의 사망보험금을 맡겼다가 전부 잃었다.

남은 건 점점 불어나는 빚뿐이었다.


그런 그 앞에, 운명처럼 하나의 사이트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단 하나의 제안을 했다. ‘백 일 동안 살아 있기.’

그 시간 동안 그들이 내준 일을 해내면, 약속한 날 조용히 죽음을 맞게 해주겠다고 했다.


“산다는 건 도대체 뭐길래, 한없이 놓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있는 힘껏 붙잡고 싶게 만드는 걸까.”


나 역시 그런 마음이 스쳐간 적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확히 말해 ‘잘 살고 싶었지만, 그게 되지 않아 힘들었던’ 순간들이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사르트르의 이 말처럼, 삶은 결국 탄생과 죽음 사이, 끊임없는 선택들로 이루어진 여정이다.

그 말은 곧, 인생이 태어남과 함께 이미 죽음과 묶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고통과 상실도 결국은 끝이 있다.

삶 또한 그렇다. 오늘의 하루가 내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죽음을 앞에 둔 삶은 매 분 매 초가 더 선명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소설 속 준재가 단체와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삶을 향한 열망이 되살아났던 것처럼.


생명체는 본성적으로 살아가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살아 있으면서도 마치 죽은 듯한 절망에 잠기기도 한다. 그 절망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붙잡을 것인지, 놓아버릴 것인지.


『과잉 무지개』는 삶과 죽음 사이, 한 존재가 일상의 소소한 장면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붙잡아 살아내는지를 잔잔히 비춰준다.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안에서 오히려 삶의 숨결이 또렷해지는 역설.

그리고 끝을 각오한 순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삶이란 얼마나 아슬아슬하고도 기적 같은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지개는 굴절된 빛이 만든 환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찰나의 빛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건, 순간의 아름다움 속에서 희망을 엿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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