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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IMF 외환 위기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부모님은 열 살의 제니를 데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한다. 낯선 언어와 시선 속에서 제니는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려 애쓴다. 피부색과 서투른 말투만으로 아이들의 은근한 조롱과 배척을 견뎌야 하던 어느 날, 한국에서 온 한나가 다가온다.
한나가 제니에게 다가가는 순간, 한나는 같은 ‘이방인’으로서의 연대를 갈망한다. 그러나 제니는 멀리서 안타까운 눈길로 한나를 지켜보면서도, 자신이 어렵게 쌓아 올린 ‘소속감’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나의 존재가 자꾸만 신경에 거슬려, 제니는 마음 한편이 무겁다.
두 아이는 친구가 전부인 시절, 서로를 밀고 당기며 불완전한 우정의 경계를 탐색한다. 제니는 백인 아이들의 시선과 자신의 불안 속에서 한나를 평가하고, 손을 뻗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한다. 그 모습은 불안정한 우정의 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어찌 보면 답답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지만, 그만큼 현실적이어서 그들의 감정이 일으키는 파동이 낯설지 않았다. 글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 친구 M과 나눴던 손편지와 미묘한 질투를 떠올렸다. 다른 반인데도 쉬는 시간마다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 교실로 뛰어들어와 민망하게 만들던 그 아이.
색연필로 정성껏 그린 삽화와 십여 쪽에 달하는 짧은 동화 이야기를 편지로 건네던 M., 나는 친구로서의 그아이를 좋아함과 동시에 선생님의 관심을 독차지하던 그녀에게 느낀 질투를 제3자를 통해 무심코 드러냈다. 그 사소한 오해는 M의 서운함을 샀고,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삶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 아련한 슬픔이 뒤섞였던 감정은, 제니와 한나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글을 쓰며 비로소 제니와 한나의 마음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도저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흐리멍텅한 혼란일 뿐이다.(중략) 수많은 단점을 골라내 억지로 감추거나 바꾸느라 자신의 초상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사랑할 때, 나는 가려지고 훼손된다.”
경계에 서서 자신을 지키기에도 버거운 한나의 마음, 감정을 드러냈을 때 자신을 잃을까 두려워 마음을 잠그는 아이.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보루인 듯 느껴져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잊고 지냈던 친구 M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때 함께 나눈 시간과 떡볶이의 추억 속에서, 미안함이 여전히 가슴 한켠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