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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서양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서양 철학은 언제나 '아르케(archē, 기원)'를 탐구해 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을 묻는 데서 사유가 출발했고, 그 기원을 밝힌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안을 주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는 4원소론(물, 불, 흙, 공기)에서 출발해 고대 그리스·로마 전통을 토대로 삼고, 기독교가 신앙과 학문을 통합한 뒤 르네상스에서 고전을 재발견하고 계몽주의에서 이성의 승리가 선언되는 일련의 발전으로 포장되었다.
그런데 정말 서양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일하고 직선적인 궤적만을 걸어온 것일까?
니샤 맥 스위니는 『만들어진 서양』에서 이런 '계보학' 자체가 후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발명된 허구임을 보여준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을 '그리스인'으로만 생각했을 뿐 유럽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아랍의 첫 번째 철학자인 알킨디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아랍어로 번역되고 주석이 달리면서 오히려 더 풍부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 문헌의 상당 부분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아랍어 필경사와 번역가들의 헌신 덕분이다.
르네상스의 '고전 재발견' 역시 비잔틴 황제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 같은 망명 지식인들이 그리스 문헌을 서유럽으로 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남성 중심의 인문주의 문화 속에서 지적 영역을 개척한 고급 매춘부 툴리아 다라고나와, 18세기 백인 중심 문학계에 등장해 인종적 고정관념을 뒤흔든 흑인 노예 출신 시인 필리스 휘틀리의 사례는, 서양사가 결코 단일한 목소리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서양 철학의 연속성'이라는 서사는 이슬람 세계의 보존과 전승, 비잔틴 망명 지식인들의 역할, 그리고 수많은 비서양적 요소들의 기여 없이는 완성될 수 없었다. 서양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그리스–로마–기독교'라는 단일한 계승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이런 복잡한 진실을 의도적으로 차용하면서도 지워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의 목소리는 지운 채 '우리'와 '타자'로 구별하게 되었을까? 맥 스위니가 추적한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이는 분명한 정치적 전략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위협 앞에서 유럽의 여러 세력들은 분열된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줄 공통의 정체성이 필요했다.
여기서 핵심은 배제의 논리였다. 이슬람을 '타자'로 규정함으로써 기독교 유럽의 결속을 다졌고, 동방 정교회를 '덜 서양적인' 것으로 여김으로써 가톨릭 서유럽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구별짓기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문명화된 서양'과 '야만적인 비서양'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은 제국주의 확장의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되었다.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식민지 출신 지식인이 서양 학문의 허점을 지적해도 '서양에 대한 원한'으로 폄하되었다.
결국 '우리'와 '타자'의 구별짓기는 문화적 순수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독점하려는 정치적 전략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14인의 삶을 보면 문명의 경계와 정의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역사는 빈틈없이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많은 개인과 문화가 만나 부딪히며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복합적 서사였을 뿐이다. 고고학자가 유물을 조심스레 발굴해 먼지를 털어내듯, 맥 스위니는 ‘서양’이라는 개념에 덧씌워진 신화를 하나씩 걷어 내 그 아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편견이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서양인이 아닌 내가 서양의 관점으로 이슬람과 아시아 문화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단순히 서양사를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체계 자체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