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인터뷰하다 - 삶의 끝을 응시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시간
박산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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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마흔을 앞두고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고,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종의 기원』의 한 대사가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친구와 나눈 대화 중 이런 말이 있었다. “마지막 일주일이 남는다면 무엇을 할까?”


그 질문이 내게 깊이 각인되었다.

아니, 어쩌면 ‘죽음’이라는 단어가 막연한 그림자 속에 머물다 마침내 형체를 얻은 듯했다. 그때부터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약 내게 마지막 1년이, 한 달이, 혹은 단 일주일이 남는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죽음은 언제나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너의 것이기도 하다. 『죽음을 인터뷰하다』는 이 두 얼굴의 죽음을 함께 마주한다. 한 개인이 맞이하는 ‘나의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마주하는 ‘너의 죽음’, 즉 애도와 상실의 시간을 함께 다룬다.


책 속에는 요양보호사, 장례지도사, 펫로스 심리상담사, 가톨릭 신부, 호스피스 의사까지, 죽음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다섯 명의 전문가가 등장한다. 요양보호사 이은주는 생의 끝자락에 선 이들을 돌보며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고, 장례지도사 유재철은 고인의 마지막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일을 통해 삶의 품격을 완성한다. 펫로스 심리상담사 조지훈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들의 상실과 애도를 함께하며, 신부 홍성남은 믿음과 사랑으로 타인을 위로한다.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은 환자가 고통 없이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곁을 지킨다.


그중에서도 특히 홍성남 신부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내가 죽고 난 다음, 내 무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와 그리워하고 울어줄지가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문득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나의 죽음을 슬퍼하며 꺼이꺼이 울어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마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나를 그리워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직시한다는 것은 유한한 생의 진실과 마주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정서는 단지 두려움이나 슬픔에 머물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혹은 나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마음껏 애도하며 슬퍼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남은 시간 동안 삶에 충실하게 머물다가 조용히 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을 인터뷰하다』는 바로 그 태도를 이야기한다. 죽음이 삶의 반대편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죽음은 반드시 ‘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삶은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또 나누어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은 두렵지만 결코 완전한 고독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질문을 바꾼다. “나에게 마지막 일주일이 남는다면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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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홍 지음 / 부크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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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그저 찰나의 만족일 뿐, 지속되지 않는 순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날들은 그 찰나와는 무관하게, 밋밋하고 반복되는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 속에서 가끔 찾아오는 만족은 한 줄기 바람처럼 금세 스쳐 지나가고, 다시 무심한 하루가 이어진다.


제목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가 말하는 “매일의 행복”은 완전한 만족이나 지속적인 희열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내며, 잠시 스쳐 지나가는 빛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감각에 더 가깝다.


“언제나 무너질 수 있다. 후회할 수 있고 망설일 수 있다. (…) 정답처럼 떠도는 문장들을 모두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실수하고 고민하고, 실망하고 결단하며 다시 일어선다.”


이 책은 그런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불행과 좌절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문장으로 다정한 위로와 힘을 건넨다. 작가의 문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상처와 흔들림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자각이야말로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다시 나아갈 방향을 찾게 하는 기준이 된다.


삶도, 자신도 불완전하고 불안정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을 지켜 내는 법을 배우는 것.

작가는 행복이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의지와 회복의 과정 속에 스며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고생 끝에 얻어내는 보상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곁을 맴돌다가 문득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내 곁에 다가올 때, 선물처럼, 기쁨처럼 받아들이고 또 하루를 이어가면 된다.

풀 내음이 묻어 있는 가을바람,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파란 하늘, 사랑하는 이와 주고받는 무해한 농담과 웃음들. 그 하루들이 쌓여 어느새 우리의 삶이 되어 있을 테니까.


호흡이 짧은 글들이라, 처음부터 차근히 읽기보다 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를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다. 가을날 나무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가볍게 읽기에도, 고민과 생각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에 천천히 책장을 넘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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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파르의 하루 알맹이 그림책 80
아르노 네바슈 지음, 안의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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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모두가 잠든 이른 아침, 가스파르는 눈을 떠요. 가스파르는 청소부랍니다. 쓰레기통이 꽉 차, 길거리에 흘러넘치지 않게 하려면 아주 일찍 일어나야 하지요. 집을 나설 채비를 하는 가스파르는 고요한 이른 새벽 시간을 아주 좋아해요.”


첫 장과 마지막 장에서 가스파르는 같은 새벽을 맞이한다. 집을 나서기 전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어둑한 거리에 갓 구운 빵 조각을 들고 걸어 나서는 순간. 반복되는 하루의 시작이지만, 그는 이 시간이 즐겁고 기쁘다.


그의 기쁨과 만족을 보며 그 원천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자연스럽게 고대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행복을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적 태도와 덕 있는 삶에서 찾았다. 여기서 말하는 덕(아레테, aretē)은 인간이 가진 능력을 이성에 따라 조화롭게 발휘하는 삶의 탁월함이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아파테이아(apatheia, 평정심)였고, 덕과 평정심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가스파르의 태도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한 내적 평정과 닮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프롬이 말한 자유의 불안을 넘어 타인과 연대하는 삶의 한 모습처럼 다가왔다. 근대 이후 인간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가 주는 불안을 감당하지 못해 종종 권위나 이념, 소비에 기대곤 한다. 그러나 프롬은 자유에 따르는 불안을 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며 타인과 연대를 나누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말했다.


쓰레기 트럭을 타고 동네를 구석구석 돌며 하루에도 수천 번 허리를 굽히는 그의 노동은 고단하고 반복적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작은 만남과 기쁨이 차곡차곡 쌓인다. 매일 같은 길 위에서 마주치는 고양이, 우체부, 달리기하는 청년, 노란 우비를 입고 킥보드를 타는 꼬마. 이 평범한 풍경들은 노동을 단순히 힘겨운 일로만 남기지 않는다. 특히 망가진 킥보드를 고쳐 아이가 다시 달릴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은, 그의 노동과 수고가 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넘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일까. 그의 만족감과 자유가 문득 부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하루의 반복 속에서, 노동의 끝에서 기쁨을 발견하며 살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보게 된다. 아마도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끊임없이 더 많은 것, 더 특별한 것을 찾아 헤매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깨닫지 못한 채, 끝내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발버둥 치다 삶을 소진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가스파르의 하루』는 아르노 네바슈 특유의 감각적인 색채와 질감 있는 화면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낸 작품이다. 판화풍의 거친 질감은 수작업 그림이 지닌 온기를 전하며, 보는 이에게 따스한 여운을 남긴다. 가스파르의 이야기는 고된 노동과 소박한 순간 속에서도 행복이 깃들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덧 : 오랜만에 보는 그림책, 가볍게 책장을 펼쳤다가 마음 깊이 따스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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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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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책 표지가 예쁘다. 약간의 불투명함이 더해진 트레이싱지로 감싼 디자인은 단순한 일러스트 위에 한 겹의 막을 드리워, 은은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앤솔러지가 무슨 뜻일까 찾아보니,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은 모음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걷다』는 ‘걷기’라는 동사를 주제로 다섯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김유담의 「없는 셈 치고」는 부모를 잃고 고모 집에서 자란 ‘나’가 사촌 민아와의 어긋난 관계와 병든 고모에 대한 의무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성해나의 「후보(後步)」는 철물점을 운영하는 안드레아가 뒤로 걷기를 통해 재즈 클럽 ‘상수시’와 세실과의 세월을 되새기며 삶의 걸음을 다시 정리한다. 이주혜의 「유월이니까」는 이별 후 운동장을 걷던 주인공이 달리는 여자와 낯선 남자를 만나며, 불안과 삶의 기로에 선 자신을 성찰한다.


임선우의 「유령 개 산책하기」는 죽은 반려견 ‘하지’가 유령이 되어 돌아오고, 그와 다시 산책을 하며 타인과 연결되는 과정을 그린다. 임현의 「느리게 흩어지기」는 글쓰기 강좌에 나선 명길이 산책 속에서 고독과 타인과의 거리를 성찰하며 산책 같은 삶을 꿈꾸는 이야기다.


강변이나 공원에 가면 앞으로 걷고, 때로는 뒤로 걷고, 혹은 맨발로 걷는 이들을 마주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어 서로를 볼 수는 있지만, 책 표지를 감싼 트레이싱지처럼 그들을 선명히 볼 수도, 완전히 알 수도 없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저마다 다른 결로 빛났지만, 성해나의 「후보(後步)」가 특별히 세련되게 다가온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할 수 있다. 작가는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퇴락’이나 ‘퇴보’의 이미지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후보(後步)’, 곧 뒤로 내딛는 또 다른 걸음으로 새롭게 이름 짓는다. 뒤돌아보며 삶을 정리하고, 과거의 시간을 품은 채 여전히 걸음을 이어 가는 모습 속에서 쇠락은 낡은 그림자가 아니라, 재즈처럼 변주의 가능성으로 바뀐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작품은 김유담의 「없는 셈 치고」였다. 성해나의 이야기처럼 세련된 변주나 장치는 없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담백하게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관계와 심리를, 투명한 한 겹 막도 없이 드러낸다.


레비나스는 『시간과 타자』에서 타자를 내가 끝내 이해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불가해한 존재로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을 ‘안다’고 믿으며, 때로는 그의 심리까지 조정해 자기 뜻대로 하려 한다. 이때 타자는 이해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환원되어 버린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관계라 여겨지지만, 그 안에서도 서로의 마음과 삶은 끝내 다 알 수 없는 타자의 영역에 남는다. 작품 속 고모, 고모부, 민아와 ‘나’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모든 것이 쉽게 덮일 것 같지만, 실상은 끝내 메워지지 않는 간극과 오해, 책임과 의무가 겹겹이 쌓여 상처로 남는다. 「없는 셈 치고」는 그 모순과 무게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걷다』의 다섯 걸음은 그렇게 우리 각자의 삶에 남아 있는 불완전한 걸음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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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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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읽던 세계명작 동화들은 현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실재하는 세계였다. 책 속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나 단순한 활자를 넘어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존재했다. 그래서 무서운 이야기를 읽은 날에는 꿈속에서도 쫓기듯 달아나야 했고, 주인공의 비극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다 잠든 날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문학이란 두 세계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였다.


곽아람의 『나와 그녀들의 도시』는 그런 책 속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기록이다. 저자는 안식년 동안 뉴욕을 거점으로 삼아, 『빨강 머리 앤』의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틀랜타, 『작은 아씨들』의 콩코드 등 아메리카 문학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들을 직접 찾아갔다.


그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문학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진지한 여정이었다. 진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저자가 편안한 렌터카 여행자가 아니라, 지인의 차를 얻어 타거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때로는 불편한 여정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2D로 그려왔던 그 세계가 3D로 실존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내게 소중했다. 책 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건 문학이 단지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 문학이 말하는 인간의 위대함과 선의, 그리고 낭만이 실재한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장소들을 떠올렸다. 지금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다면, 나는 사르트르가 자주 글을 쓰던 파리의 '까페 드 플로르'로 향할 것이다. 깨어 글을 쓰기 위해 각성제 코리드란을 하루에 한 갑씩 씹어 먹으며 집필을 이어갔던 그의 흔적을 그곳에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곳, 내가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다. 프로이트가 여러 차례 로마를 방문하며 해석하고자 했던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이 있는 성 베드로 빈콜리 성당이다. 그는 신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을 왼팔에 안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마주하며, 억눌린 분노와 절제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여러 번 그곳을 찾았다고 한다.


조각 속 모세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듯 온몸의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어 있고, 눈빛은 분노와 결의로 차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두었고, 프로이트는 그 안에서 인간 내면의 갈등과 절제의 근원을 이해하려 했다.


결국 곽아람의 여행과 내가 꿈꾸는 여행은 같은 지점을 향한다. 문학과 예술이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적 가치들이 여전히 현실 어딘가에서 맥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와 그녀들의 도시』는 그런 확인의 여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학과 예술이 추상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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