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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귀찮 지음 / 밝은세상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저마다 고유한 빛을 내듯, 우리 또한 각자 다른 존재다. 그런데 왜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까? 이유야 여러 가지일 테지만, 선택지는 늘 몇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두 저자가 보여준 삶의 방식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도시와 회사 생활의 반복적인 리듬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간 두 창작자. 충남 금산과 경북 문경, 서로 다른 시골 마을에서 각자의 삶을 일구며 주고받은 편지들은, 마치 누군가의 비밀 편지를 엿보는 듯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편지들이 단순한 안부를 넘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또 다른 형식이자 조용한 분투의 기록임을 알게 된다. 안정된 회사를 떠나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낯선 시골집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결코 가벼운 결심이 아니다. 불안한 매일을 살아내는 용기, 그리고 기다림과 인내가 절실히 필요한 여정이다.
시골살이와 프리랜서. 얼핏 들으면 낭만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삶은 도시의 편리함과는 거리가 먼, 기다림과 소소한 불편으로 채워진 시간이다. 불확실한 수입, 예측할 수 없는 일상, 가끔은 고립감마저 스며드는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 묵묵히 지켜내야만 한다.
프리랜서와 시골살이를 각각 경험해 보았기에, 나 또한 그들의 삶이 낯설지 않았다. 봄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잡초와의 전쟁, 어느 날 불쑥 나타나는 뱀, 멍하니 서 있다 말벌의 스캔을 받는 아찔한 순간, 지하수 모터 고장으로 겪는 단수, 그리고 폭설 속에서 하염없이 제설차를 기다리던 겨울. 시골살이는 낭만으로 포장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을 상쇄 해주는 자연이 주는 위로와 안정이 있다. 데크 위까지 찾아와 눈을 맞추는 다람쥐, 땅콩을 달라며 공중에서 호버링하는 곤줄박이, 하루 종일 머리 위에 펼쳐진 탁트인 하늘, 밤이면 총총히 빛나는 별들. 자연은 매 순간 직접적인 만남과 경이로움을 선물한다.
"오늘은 자연이야말로 그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산을 오르던 제 마음과, 폭포 아래 한참을 서 있다 내려온 제 마음이 이렇게 다르니까요. 밤새 내린, 때아닌 비를 묵묵히 맞이하는 산처럼 살고 싶습니다."
책 속 이 문장을 읽으며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자연은 재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계절을 묵묵히 맞고, 비를 견디고, 바람을 통과시킨다. 세상은 점점 기호와 숫자로 사람과 사물을 재단하려 하지만, 자연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의미가 없다. 때가 되면 자라고, 계절마다 별의 자리가 바뀌고, 손으로 흙을 일구고, 잡초를 뽑아내며 하루하루를 그저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웠다. 예쁜 그림을 그리고 따뜻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두 사람. 세상의 기호와 편리함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삶을 차분히 만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조용한 감동을 준다.
우리가 모두 제각기 다른 별빛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그러한 삶도 괜찮은 삶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해서, 마음 깊이 그들의 느리고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응원한다.
P.S. 김미리 작가님의 추천에 따라 조심스레 제초호미를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그리고 나 역시 귀찮님처럼 반잡초 방임파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잡초와의 전쟁을 자청하는 집사(남편)가 있어 다소 한가하게 정원과 텃밭을 바라볼 수 있다. ^^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