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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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당신은 하나의 책, 미완성 문학 작품, 기술적 역사의 보관소다. (…) 다시 말해 일종의 ‘사자의 유전서’다.”


‘내가 죽은 이들의 유전자책이라니.’ 어딘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전자와 몸속에 과거의 흔적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도킨스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점은, 그 익숙한 진실을 어떻게 읽느냐에 있다. 그는 유전자를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를 묻는다.


이제 과거를 읽는 열쇠는 화석이 아니라 유전자다. 더 이상 땅속에서 발굴한 뼛조각만 붙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 몸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 읽히기 시작했다. 도킨스는 유전체라는 책을 해독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라는 고대 문서 개념을 인용한다. 팰림프세스트는 한때 값비싼 양피지에 쓰인 글을 지운 뒤, 그 위에 새로운 글을 덧씌워 다시 사용하던 문서다. 겉으로 보이는 문장은 현재의 기록이지만, 그 아래에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과거의 흔적들이 층층이 남아 있다.


이를테면 포토샵 파일 위에 투명 레이어가 겹겹이 얹힌 것과도 같다. 도킨스는 유전체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진화는 돌연변이를 통해 과거의 문장 위에 새 문장을 쓰는 일이다. 그 유전체 안에는 조상이 겪었던 환경과 생존 전략, 미래에 대한 예측까지 담겨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생물의 사례도 책 속에 등장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이끼개구리는 몸 전체가 이끼처럼 생겨 이끼 낀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귀엽게 보이는 이 위장은 단순한 겉모습이 아니다. 조상들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된 전략이 유전체에 반영된 결과다. 유전자는 후손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날지를 예측했고, 그 예측이 반복되면서 ‘이끼 같은 몸’이라는 표현형이 선택된 것이다.


이처럼 도킨스는 생물의 몸과 행동을 통해 유전체에 담긴 과거와 미래의 흔적을 읽어낸다. 생물의 형태는 단순한 겉모습이 아니라, 유전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율해온 판단의 결과다. 진화는 유전자의 예측이 현실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를 실험해 나가는 긴 이야기이며, 위장과 의태는 그 예측이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불멸의 유전자』는 생명체를 ‘읽을 수 있는 기록물’로 바라보게 만든다. 유전자에 담긴 정보는 어떻게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가, 그 예측은 어떤 방식으로 몸과 행동에 스며들어 표현되는가. 도킨스는 이 모든 질문을 과학적 설명뿐 아니라, 은유와 이야기, 상상력을 통해 풀어낸다.


우리는 각자 유한한 시간 속을 살아간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허무함이 따라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개체를 넘어, 우리 안의 어떤 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묘한 위안을 준다.


문득, 사르트르가 『말』이라는 자서전에서 자신은 하나의 책으로 남아 불멸의 존재로서 독자에게 바치겠다고 말한 대목이 떠오른다. 도킨스가 유전자를 통해 생명을 읽고자 했다면, 사르트르는 삶을 텍스트로 만들어 자신을 남기려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선언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은 다음 세대를 향해 조용히 한 페이지씩 쓰여지고 있다. 유전자든 기억이든,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다음 생의 문장으로 이어지고 전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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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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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PACT)이 시행된 가상의 시대.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탄압의 대상이 된다. 아시아계 무명 시인 마거릿은 반역 혐의에 연루된 뒤 사라지고, 남겨진 아들 버드는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지운 채 살아간다.


krei는 분리하다라는 뜻이래. 그녀가 읽는다. 판단하는 거지. 체와 비슷하네.” 이선이 말했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떼어내는 거니까. 그래서 krisis는 더 좋든 나쁘든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뜻한대.”


이 소설의 모든 장면은 일종의 krisis다. 누가 남고, 누가 사라질지를 결정짓는 조용한 심판대. 사람들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으려 하고, 마치 금을 밟으면 죽는 오징어게임처럼, 모두가 위태롭고 경직된 모습이다.


PACT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은 곧 체포와 격리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감추고,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다름’이 죄가 되는 사회.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사회가 만든 기준의 체에 걸러져 폭력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다른 외모와 언어, 문화는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감시와 혐오의 표적이 된다.


디스토피아적 배경이지만,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의 풍경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버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점차 감시와 통제의 공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소설 전체에 드리운 감옥 같은 분위기는 미셸 푸코가 말한 ‘감시사회’를 떠오르게 한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의식만으로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그 문장 속 주어는 신에서 엄마, 선생님, 직장 상사, 이웃으로 바뀌고, 결국 모든 타인의 시선으로 확장된다. 감시는 법이나 제도보다 훨씬 깊게, 사람들 내면에 자리 잡는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감시하며 ‘정상’이라는 틀 안에 조용히 자신을 가두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어린 버드가 엄마의 편지와 단서를 좇아가는 여정은 조마조마하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 소설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자유나 표현이 아니다. 말할 수 있는 권리,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능력, 곧 우리 존재의 중심이자 생명의 순환을 담당하는 심장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감정과 연대, 윤리적 중심을 잃은 사회를 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감정이 흐르지 않는 사회는 결국 죽은 사회다.


기계처럼 경직된 사회에서 마거릿은 침묵을 강요받은 이들을 대신해 이야기를 모으고, 그것을 다시 말하려 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심장을 되찾은 듯한 삶의 맥박이 느껴진다.


“네가 배개 아래 묻어두었던 유치들을 박하사탕을 담던 작은 깡통에 모아두었어. 가끔 그걸 꺼내 손에 쏟고 손바닥에서 구슬처럼 서로 부딪히게 해. 네가 행복하길 바라. 네가 알기를 바라. 내가 얼마나 바라는지”


“네가 태워났을 때, 네 아빠는 네게 내 이름을 주고 싶어했어. 미우. 묘목이란 뜻이지.. 하지만 나는 네게 그의 성을 주었어. 가드너. 뭔가 자라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나는 네가 자랄 뿐 아니라 자라게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어. 네 삶을 통제하고, 네 힘을 미래에 두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사람.”


" 널 원했어. 그녀는 그렇게만 말한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자 버드가 들어야 할 전부다. 그녀가 그를 원했다. 여전히 그를 원한다. 그녀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아서 떠난 것이 아니다."


비록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았어도, 끝내 말을 걸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의 여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언어와 사랑, 연대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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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마음 - 도시는 어떻게 시민을 환대할 수 있는가
김승수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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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월요일 아침 9시 40분, 강남역 11번 출구.

한때 나는 그 도시를 매일 걷곤 했다. 출근길의 인파와 뒤엉켜, 도시의 속도를 따라 걷던 날들. 주말 밤의 열기로 반짝이던 거리는 아침이면 언제나 빛 바랜 듯 창백했다. 뜨거운 숨결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상점과 빌딩들만 기계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도시도 사람들도 어딘가 지쳐 있었다. 나는 그 창백함 사이를 어색하면서도 익숙하게 걸었다. 유리창 너머 진열된 물건들이 반짝였지만, 그 빛깔은 차갑기만 했다. 손에 들린 커피 한 잔이, 그 아침의 유일한 쉼이었다.


『도시의 마음』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이름은 발터 벤야민이었다. 그가 말한,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떠돌던 산책자 플라뇌르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목적 없이 걷되 예리하게 관찰하고, 무심히 스쳐가는 풍경 속에서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그 감각. 벤야민에게 도시는 하나의 텍스트였고, 그는 간판과 진열창, 군중의 발걸음 속에 감춰진 근대의 얼굴을 읽어냈다. 김승수 역시 전주라는 도시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도시는 시민을 환대하고 있는가? 저자는 이 질문을 25년의 행정 경험과 8년간의 전주시장 재임 동안 집요하게 붙든다. 우리는 지하철 요금만 있으면 도시 어디든 닿을 수 있지만, ‘닿는 것’과 ‘환대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갈 수 있다는 것은 이동의 권한이지만, 환대는 존재에 대한 인정이다. 어느 공간이 나를 받아들이는가? 어떤 장소에서 나는 스스로를 시민이라 느낄 수 있는가?


물론 도시에서도 환대를 ‘살’ 수는 있다. 카페나 상점, 브런치 맛집. 돈을 지불하면 우리는 고객이 되고, 일정한 친절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래로서의 환대, 유효기간이 정해진 관계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런 환대라도 필요하기에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가 진정한 삶의 공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건 없는 환대다.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머물 수 있는 자리, 말없이 앉아 있어도 괜찮은 공간. 그런 곳에서야 우리는 도시와 관계 맺는 시민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도시에 과연 그런 공간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장소와 건물들 속에서, 지불 없이 환대의 경험을 얻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자본이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공공 기관과 도시 계획이 설계한 자리가 더 중요해진다. 누구나 조건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이 있는 도시야말로 진짜 환대를 실천하는 도시일 것이다.


책에서 소개되는 ‘책의 도시’ 전주의 사례들은 단순한 정책 보고가 아니다. 한옥마을도서관, 책기둥도서관, 예술놀이터처럼, 시민 누구나 머물고 머무름으로써 관계를 맺는 공간들은 도시라는 텍스트의 문장을 새로 써 내려간다. 폐공장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꾸고, 성매매 집결지를 재생하는 작업은 도시 문장의 주어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벤야민이 이 도시를 걸었다면, 변화하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감정 구조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포착했을 것이다.


이 책은 도시정책자나 건축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도시에서 살고 있는가? 우리의 도시에는 기억이, 감정이, 그리고 환대가 깃들어 있는가?


저자는 말한다. 도시가 바뀌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고.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 도시를 산책하는 자만이 도시에 깃든 시간을 읽을 수 있다. 김승수는 우리 모두에게 그 산책자의 시선을 권한다. 이제는 시민이 도시를 읽고, 도시에게 말을 걸 차례다.


언젠가 전주를 찾게 된다면, 한옥 도서관과 숲속 도서관에 들러 조용히 머물러보고 싶다. 그 공간들이 어떤 분위기와 여운을 품고 있는지, 직접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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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지구라는 놀라운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아이작 유엔 지음, 성소희 옮김 / 알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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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제목에서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연상된다.

원제가 『Utter, Earth』인 것을 보면, 한국어판 제목은 번역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은하수를…』에서 히치하이커는 우주의 법칙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리둥절하게 떠도는 존재로,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묻는 인물이다.


지구라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

그래서인지 우리는 종종 지구별의 주인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뒤집는다.


아이작 유엔이 말하는 ‘히치하이커’는 정작 이 지구에 늦게 도착한 손님, 잠시 얹혀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 행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자주 오독하거나 무시한다.


단편 단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책 속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낯선 이름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놀랍지만,

저자는 이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과 호흡, 습성과 침묵을 따라가며 인간의 존재를 되묻는다.


나무늘보의 느림을 통해 삶의 속도를 되돌아보고, 이름조차 낯선 ‘레서쿠두’나 ‘애기족제비’를 통해 언어가 만들어내는 위계와 편견을 포착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동물은 그저 설명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각자 하나의 세계이자, 고유한 서사를 지닌 존재다.

위트가 넘치는 그의 문장 속에 등장하는 그들은, 지구별에 함께 거주하는 이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집’에 대한 저자의 사유다.

코끼리조개처럼 평생 한자리를 지키는 존재도, 소라게처럼 빈 껍데기를 줄 서서 바꾸는 존재도, 긴집게발게처럼 살아 있는 해면을 등에 이고 다니는 존재도 각자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하고 살아간다.


‘집’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존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속엔 외로움이, 본능이, 관계가 깃들어 있다.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가, 어디에 머무르고 싶은가, 어떻게 살아내고 싶은가를 스스로 묻게 하는 공간.

이 질문은 결국 오늘날의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과연 지구라는 집에서, 타 생명체들과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향한 시선에서 얼마나 겸손한가?


인간이 아닌 비인간의 존재에게 이름을 붙여 호명하고, 분류하고, 관찰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말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우리는 그 곁을 잠시 지나가는 히치하이커에 불과할 수 있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은, 지구별의 이웃으로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게 아직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책장을 덮고 나서 알았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신기한 동물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낯설게 느껴졌던 건, 그들의 생김새나 습성이 아니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경계도, 우열도 두지 않는, 그 위계 없는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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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들 - 희미한 질문들이 선명한 답으로 바뀌는 순간
김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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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말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나의 일부를 내어주는 행위이자, 존재를 드러내는 시작점이 된다.


나를 드러내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말은 선명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이 담아내는 세계는 깊고, 넓고, 높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높이’는 저속함을 벗어난, 품격과 깊이를 지닌 차원을 의미한다. 말은 존재의 깊이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그런 말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해 기록한다. 쉽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말 속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단단한 언어들을 발견하고, 그 위에 사유를 덧입혀 자기만의 문장으로 다듬는다. 책에 담긴 25개의 말은 그렇게 태어났다. 누군가의 언어였지만, 저자의 시선과 해석이 더해지며 더 깊은 의미를 품게 되었고,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열쇠로 놓였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치는 직업군, 기획자. 이 책 속 기획자는 단지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실무자를 넘어, 세상을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작지만 정확한 단어들을 길어 올려 의미를 정리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모든 과정 속에 기획자라는 존재의 태도와 감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그램이라도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반짝이는 말들을 주워 담는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말을 소비하지 않고 수집한다. 친구와의 농담,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대화, 식당에서 셰프가 건넨 한마디까지도 그는 흘려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언어 수집을 넘어, 말이라는 매개를 통해 존재와 마주하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그는 말 속에 깃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만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언어로 다시 품어내려 한다.


이 감수성은 사물과 현상, 그리고 관계를 피상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말에 담긴 맥락과 정서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는, 세상을 깊이 바라보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런 관점에서 『기획의 말들』은 꼭 기획자라는 직업군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들 속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말을 주고받지만, 정작 그 말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돌아보는 일은 드물다.


소설가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에 매료되어 단어들을 바구니에 담아 모았듯, 우리도 일상의 말들 속에서 마음에 남는 단어들을 조용히 수집해볼 수 있다. 그 작고 조용한 습관이, 언젠가 내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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