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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들 - 희미한 질문들이 선명한 답으로 바뀌는 순간
김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말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나의 일부를 내어주는 행위이자, 존재를 드러내는 시작점이 된다.
나를 드러내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말은 선명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이 담아내는 세계는 깊고, 넓고, 높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높이’는 저속함을 벗어난, 품격과 깊이를 지닌 차원을 의미한다. 말은 존재의 깊이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그런 말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해 기록한다. 쉽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말 속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단단한 언어들을 발견하고, 그 위에 사유를 덧입혀 자기만의 문장으로 다듬는다. 책에 담긴 25개의 말은 그렇게 태어났다. 누군가의 언어였지만, 저자의 시선과 해석이 더해지며 더 깊은 의미를 품게 되었고,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열쇠로 놓였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치는 직업군, 기획자. 이 책 속 기획자는 단지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실무자를 넘어, 세상을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작지만 정확한 단어들을 길어 올려 의미를 정리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모든 과정 속에 기획자라는 존재의 태도와 감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그램이라도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반짝이는 말들을 주워 담는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말을 소비하지 않고 수집한다. 친구와의 농담,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대화, 식당에서 셰프가 건넨 한마디까지도 그는 흘려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언어 수집을 넘어, 말이라는 매개를 통해 존재와 마주하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그는 말 속에 깃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만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언어로 다시 품어내려 한다.
이 감수성은 사물과 현상, 그리고 관계를 피상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말에 담긴 맥락과 정서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는, 세상을 깊이 바라보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런 관점에서 『기획의 말들』은 꼭 기획자라는 직업군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들 속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말을 주고받지만, 정작 그 말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돌아보는 일은 드물다.
소설가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에 매료되어 단어들을 바구니에 담아 모았듯, 우리도 일상의 말들 속에서 마음에 남는 단어들을 조용히 수집해볼 수 있다. 그 작고 조용한 습관이, 언젠가 내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