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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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PACT)이 시행된 가상의 시대.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탄압의 대상이 된다. 아시아계 무명 시인 마거릿은 반역 혐의에 연루된 뒤 사라지고, 남겨진 아들 버드는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지운 채 살아간다.


krei는 분리하다라는 뜻이래. 그녀가 읽는다. 판단하는 거지. 체와 비슷하네.” 이선이 말했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떼어내는 거니까. 그래서 krisis는 더 좋든 나쁘든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뜻한대.”


이 소설의 모든 장면은 일종의 krisis다. 누가 남고, 누가 사라질지를 결정짓는 조용한 심판대. 사람들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으려 하고, 마치 금을 밟으면 죽는 오징어게임처럼, 모두가 위태롭고 경직된 모습이다.


PACT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은 곧 체포와 격리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감추고,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다름’이 죄가 되는 사회.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사회가 만든 기준의 체에 걸러져 폭력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다른 외모와 언어, 문화는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감시와 혐오의 표적이 된다.


디스토피아적 배경이지만,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의 풍경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버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점차 감시와 통제의 공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소설 전체에 드리운 감옥 같은 분위기는 미셸 푸코가 말한 ‘감시사회’를 떠오르게 한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의식만으로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그 문장 속 주어는 신에서 엄마, 선생님, 직장 상사, 이웃으로 바뀌고, 결국 모든 타인의 시선으로 확장된다. 감시는 법이나 제도보다 훨씬 깊게, 사람들 내면에 자리 잡는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감시하며 ‘정상’이라는 틀 안에 조용히 자신을 가두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어린 버드가 엄마의 편지와 단서를 좇아가는 여정은 조마조마하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 소설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자유나 표현이 아니다. 말할 수 있는 권리,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능력, 곧 우리 존재의 중심이자 생명의 순환을 담당하는 심장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감정과 연대, 윤리적 중심을 잃은 사회를 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감정이 흐르지 않는 사회는 결국 죽은 사회다.


기계처럼 경직된 사회에서 마거릿은 침묵을 강요받은 이들을 대신해 이야기를 모으고, 그것을 다시 말하려 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심장을 되찾은 듯한 삶의 맥박이 느껴진다.


“네가 배개 아래 묻어두었던 유치들을 박하사탕을 담던 작은 깡통에 모아두었어. 가끔 그걸 꺼내 손에 쏟고 손바닥에서 구슬처럼 서로 부딪히게 해. 네가 행복하길 바라. 네가 알기를 바라. 내가 얼마나 바라는지”


“네가 태워났을 때, 네 아빠는 네게 내 이름을 주고 싶어했어. 미우. 묘목이란 뜻이지.. 하지만 나는 네게 그의 성을 주었어. 가드너. 뭔가 자라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나는 네가 자랄 뿐 아니라 자라게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어. 네 삶을 통제하고, 네 힘을 미래에 두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사람.”


" 널 원했어. 그녀는 그렇게만 말한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자 버드가 들어야 할 전부다. 그녀가 그를 원했다. 여전히 그를 원한다. 그녀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아서 떠난 것이 아니다."


비록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았어도, 끝내 말을 걸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의 여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언어와 사랑, 연대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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