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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오나시는 일본어로 ‘얼굴(카오)’이 ‘없는(나시)’ 존재를 뜻한다. 말 그대로 ‘얼굴 없는 존재’다. 정체성을 잃고, 타인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그는 금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 욕망을 빨아들이듯 흡수하며 끊임없이 음식을 집어삼킨다. 그렇게 욕망을 먹고 자란 그는 점점 몸집이 불어나고, 마침내 괴물로 변해버린다. 그 모습은 소비와 모방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 모습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한계 없이 팽창하는 그의 몸은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과도 같다.
원래 자본주의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잉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잉여를 다시 소비하게끔 구조화 되어 있다. 이 구조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자극받고, 결핍은 채워지기보다는 오히려 재생산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소외는 필연이다. 무언가를 사고, 욕망이 잠시 채워졌다고 느끼는 순간은 너무도 짧다. 금세 또 다른 결핍이 고개를 들고, 우리는 다시 욕망을 좇게 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그러나 행복도는 52위.” 이 수치가 나타내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달려왔을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 『성장이라는 착각』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파고든다. 성장 중심 사회가 남긴 피로와 균열을 들여다보고, 이제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한다.
“더 많이 가졌지만, 더 공허하다.”
저자 안호기는 30년 넘게 현장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취재해 온 언론인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성장 신화’를 다양한 사례와 통계로 해부한다. GDP, 수출, 기술 혁신 같은 그럴듯한 지표들 뒤에는 불평등, 기후 위기, 돌봄의 위기, 그리고 높은 청소년 자살률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GDP가 오른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불평등은 심화되고, 환경은 파괴되며, 공동체는 서서히 무너진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자본의 논리 속에서, 돌봄과 연대, 삶의 온기 같은 것들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유령처럼 그려진 가오나시는 타인의 욕망을 끝없이 삼키며 커지지만, 결국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책 속에서 비판하는 성장 중심 시스템 또한 이와 닮아 있다. 겉으론 풍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은 고립되며, 삶은 점점 공허해진다.
『성장이라는 착각』은 바로 이런 현실을 예리하게 비춰낸다. 그리고 치히로의 진심이 가오나시를 정화시켰듯, 저자는 돌봄과 분배,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탈성장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라고 말한다.
사실 ‘탈성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가 멈추는 건 아닐까? 그러다 일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탈성장은 ‘멈춤’이 아니라 ‘방향 바꾸기’에 가깝다.
지금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인간과 지구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도록 체계를 바꾸자는 제안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가지는 대신, 더 의미 있게 살아가고, 단순한 즐거움을 누리며, 타인과 깊이 연결되는 삶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성장 없는 사회는 상상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암스테르담의 도넛 경제 모델, 바르셀로나의 공유경제 실험, 커먼 포레스트 운동 등은 삶 중심의 전환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GDP가 아니라, 우리가 돌보고 싶은 삶의 총량을 키우자”는 이 책의 메시지는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온 ‘성장’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경제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