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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언젠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심리학 책과 철학서를 뒤적이며 답을 찾아 헤맨 적이 있다.
라캉은 내가 믿는 ‘나’란 사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반사체일 뿐이라 했고, 프로이트는 자아를 무의식이라는 심연 위에 아슬아슬 떠 있는 불안정한 구조로 보았다.
니체는 그마저 허구라며, 자아를 충동과 힘의 흐름이 잠시 만들어낸 일시적인 형상이라 보았다.
셋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같은 진실을 가리킨다.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나는 지금껏 나를 ‘나’라고 믿으며 살아왔는데, 철학은 말한다. 그 ‘나’조차 구성되고, 흔들리며, 해체될 수 있다고.
『아웃사이더』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신경학자가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뒤틀리고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뇌졸중 이후 병적인 무관심 상태에 빠진 데이비드, 단어를 점점 잃어가는 마이클, 알츠하이머로 인해 남편을 불륜 상대로 착각하는 트리시, 자신의 팔다리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애나 등, 일곱 명의 환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체성의 균열을 겪는다. 일곱 명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삶의 흐름과 내면을 따라가는 묘사는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느껴졌다.
이들의 사례는 자아가 어떤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기억, 지각, 주의력, 행동 통제 능력 등의 다양한 기능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복잡한 작용임을 말해준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이들이 단지 뇌질환을 앓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천천히 밀려나 ‘아웃사이더’가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기억을 잃고, 말을 잃고, 감정을 잃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정상’이라는 범주 안에 머무르지 못한다.
푸코와 알튀세르는 개인의 정체성이 고유한 본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권력, 제도 같은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우리는 모두 사회가 부여한 이름과 역할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외부의 구조를 받아들이고, 의미를 만들고, 스스로를 ‘나’라고 인식하는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뇌라는 신체적 토대 위에서 가능해진다.
정체성은 사회적 맥락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다시 짜 맞추는 일은 개인의 몫이며, 『아웃사이더』는 그 사실을 구체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17세기,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뇌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고.
우리는 모두, 언제든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는 존재다.
사고나 질병 하나로, 내가 나라고 믿었던 확신은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깨질 수 있다.
‘자아’가 고정된 실체라는 환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받아들임이야말로 인간다움의 시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