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편지
설라리 젠틸 지음, 최주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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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은 탓인지, 범인을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6시간을 읽어 내려갔다. 끝내 범인을 맞히지 못한 채 책을 덮었지만, 찾고 싶었으나 끝내 찾지 못한 데서 오는 묘한 만족감은 무엇일까.


"나는 처음으로 살인자와 커피를 마시게 된다."

소설 작가 프레디는 보스턴공공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을 바탕으로 새로운 소설을 구상한다. 그러나 열람실 밖에서 들린 여성의 비명과 함께 네 사람은 '캐럴라인 펄프리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되고,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어준 채 빠르게 친밀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프레디의 휴대폰으로 피해자의 비명 소리와 아파트 현관문 사진이 전송된다. 발신자는 그날 함께 있었던 '잘생긴' 케인. 문제는, 그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초반부터 네 사람 중 하나가 범인이라는 단서를 던진다. 나는 인물들 사이의 대화와 행동,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세심하게 의심하며 추리를 이어갔다. 이야기 곳곳에 흩뿌려진 단서와 흔적들을 따라가며, 누가 연기하고 있고 누가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긴장감이 소설 전체를 이끌어간다.


사실 프레디는 '현실'의 호주 작가 해나 타이곤이 쓰고 있는 소설 속 인물이다. 해나는 보스턴을 배경으로 『도서관 비명 살인 사건』을 집필 중이고, 현지에 거주하는 오랜 팬 리오에게 베타리딩을 부탁한다. 문제는, 리오의 피드백이 점점 선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시체를 둘 장소를 추천하거나, 실제 범죄 현장을 찍은 듯한 사진을 보내는 그의 행동은 단순한 팬의 호의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살인 편지』는 이처럼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 있는 액자 구조를 통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침범한다. 프레디는 소설 속 인물이지만, 그녀가 겪는 공포는 해나의 현실을 반영하고, 해나가 마주한 긴장은 결국 나에게까지 전이되었다.


결국 『살인 편지』는 범인이 밝혀지고 사건이 매듭지어지는데도, 이야기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허구와 현실이 맞닿는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이중의 추리를 하게 만든다. 하나는 이야기 속 사건의 진실을 좇는 추리고, 다른 하나는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서사의 경계를 추적하는 추리다.


직감과 믿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직감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경험이 체화되어 작동한 결과인 반면, 믿음은 명확한 근거가 없어도 유지될 수 있는 확신에 가깝다. 내가 소설 속에서 끝내 범인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단서들이 특정 인물을 강하게 지목했고, 그에 대한 인상이나 배경이 판단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서를 정교하게 배치하면서도, 그 판단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살인 편지』는 추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근거로 믿거나 의심하는지를 되묻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끝나고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범인이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내가 왜 그렇게 믿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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