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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과학자 - 망망대해의 바람과 물결 위에서 전하는 해양과학자의 일과 삶
남성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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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시에서 성장하고 살아온 나에게 바다는 늘 쉼과 위로 또는 낭만의 장소였다. 빽빽하고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늘 궁금한 미지의 공간이기도 했다. '바다 위의 과학자'라는 제목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제목만으로도 설렘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바다를 향한 저자의 애정과 경외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인류는 아직 바닷물 한 방울만큼도 바다를 완벽히 알지 못한다"는 그의 고백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지식의 한계를 직면하게 했다. 내가 해변에서 느꼈던 작은 감동들이 사실은 바다의 일부분만을 경험한 것이라는 깨달음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자가 설명하는 '진짜 바다'는 수평선 너머,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수도 없이 발을 담그고 감탄했던 바다가 바닷가였다니. 그렇게 따지고 보면 제대로 된 바다는 경험해보지 못한 셈이다.


바닷가가 아닌 망망대해에서 경험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은 책 전체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육지의 끄트머리도 찾아볼 수 없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밤... 검은 바다 위에서 보는 별빛이 찬란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는 사실은 오직 먼바다에 나가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남성현 교수는 단순한 연구자가 아닌, 바다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 비밀을 탐구해온 탐험가이기도 했다. 75회에 걸친 승선 조사를 통해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남극까지 누빈 그의 여정은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우윳빛 바다의 발견, 태풍과의 조우, 심해의 신비로운 현상들에 대한 묘사는 평범한 일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열어주어, 나도 모르게 바다의 깊은 세계로 빠져들며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이 경이로운 바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평등의 공간이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편하고 안전한 공간인 셈이다." 그렇다. 도시의 아케이드 공간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 우리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바다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공간이기에,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진정한 위안과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는 위로가 되고 낭만이 되는 그 미지의 푸른 바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푸른 행성일 수 있는 이유는 바다가 지구 표면의 7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신비하고 광활한 이 공간은 인류가 달에 발자국을 남겼음에도 아직 그 깊은 곳까지 완전히 탐험하지 못한 마지막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바다 위의 과학자』는 이 경이로운 바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며, 신비와 감동을 전하는 동시에 해양 현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준다. 과학과는 거리가 먼 나는 과학적 사실과 데이터보다도 그 적막하고 고요한 바다 위에서 별빛과 달빛을 받으며 갑판에 누워있었을 저자가 떠올라 미소 지어진다. 

책을 읽고 나니 바다…아니 바닷가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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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 초록 지붕 집의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곽춘 옮김 / 메이킹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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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오후 5시 무렵이면 시작하던 '빨간머리 앤'을 보려고 집으로 달려가던 어린 시절.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독특한 성격과 밝은 에너지로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앤에게 반해버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TV 앞에 앉아 앤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했던 그 시절의 추억이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며 선명하게 떠올랐다.


소설 속 앤을 따라가며 그녀의 넘치는 상상력과 마주치는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모습을 보니, 어른이 되면서 잊고 살았던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일상의 작은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감탄하던 일, 온종일 같이 붙어 있던 친구, 실패해도 '내일은 새로운 날'이라며 다시 일어서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평범한 풍경 속에서도 경이로움을 발견할 줄 아는 시선.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잃어버린 걸까? 앤의 이야기는 마모되고 잊혀졌던 나의 일부를 일깨워주는 듯했다.


“알아야 할 것이 무척 많다고 생각하면 즐겁지 않나요? 그런 것 때문에 저는 산다는 게 즐겁고, 또 그런 세상이 즐거운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앤을 단순한 어린 낙관주의자로 볼 수도 있지만, 그녀의 매력은 삶의 고난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고아로 자란 앤이지만, 그녀는 결핍보다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삶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커스버트 남매와 함께한 초록 지붕 집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관습적인 가족이 아닌, 서로를 정말로 사랑하고 보듬어 주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퀸즈를 졸업했을 때만 해도 제 앞에 놓인 미래는 곧게 뻗은 큰길 같았어요. 저는 그 쭉 뻗은 길을 바라보면 수많은 이정표가 제 눈에 보일 거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길에 모퉁이가 생겼어요. 그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놓여 있는지 저는 몰라요.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이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래요. 모퉁이는 그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아주머니, 그 모퉁이 다음에는 길이 어떻게 뻗어 있을지 궁금해요."


사랑하는 매튜 아저씨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머릴라 아주머니의 건강 악화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에이번리에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주머니를 돕기로 한 앤. 꿈에 그리던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삶의 모퉁이를 만나지만, 그 모퉁이 너머엔 또 무엇이 있을지 설레이며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앤의 모습에서 진정한 성숙함을 발견한다. '초록 지붕 집의 앤'은 그녀가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시 세상에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앤을 따라 웃다가 울다가 붉은색 예쁜 책장을 덮고 잠시 생각한다. 그녀가 마주치는 모든 자연물들—꽃과 나무와 숲과 시냇물—의 아름다움에 매번 경이로운 감탄을 표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도 앤처럼 인생의 모퉁이마다 잠시 멈춰 서서 꽃과 나무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가진다면, 일상에서 자주 잊곤 하는 삶에 대한 사랑과 긍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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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인의 지혜수업 - 복잡한 세상을 명료하게 보는 힘
심정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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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선과 악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며, 단지 인간의 주관적 판단으로 인한 좋고 나쁨의 감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텍스트를 읽기 전까지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은 칼로 잰 듯 정확하고 명확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스피노자의 관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상은 1+1=2처럼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변수들이 출몰하고 때때로 그것들을 잘 조합하고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수없이 닥쳐오는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풀어가려면 문제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환경은 이러한 복잡성을 다루기보다 단순 암기와 정답 찾기에 치중해왔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오랫동안 주입식 학습과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구조에 의존해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상을 '맞다/틀리다', '좋다/나쁘다'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얼마 전 한국 교육과 엘리트들, 그리고 파시즘에 관한 토론을 접했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한국사회 전반에 경직된 사고를 고착시키고 권위주의에 물들게 하여, 결국에는 공동체를 병들게 만드는 파시즘으로 이어진다는 요지였다.


심정섭의 《1% 유대인의 지혜수업》은 이러한 고착된 사고의 틀을 깨는 대안을 제시한다. 유대인들의 지혜가 담긴 탈무드는 하나의 정답보다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신 이외의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에도 하나의 답만 있다고 보지 않으며, 인간 세계에서 절대 악과 절대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책에서 소개하는 2×2 매트릭스 사고법은 우리가 놓치기 쉬운 선택지들을 보여주며, 문제를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는 마치 양자역학에서 입자가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중첩 원리와도 닮아 있다. 우리의 생각 역시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브루타라 불리는 탈무드식 토론법 또한 인상적이다. 한국 교육에서는 "2+3=□?"와 같이 하나의 정답만을 찾게 하는 닫힌 질문이 주를 이루지만, 하브루타에서는 "'□+□=5'에서 □에 들어갈 수 있는 수들은 무엇일까?"와 같은 열린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은 '2, 3'이나 '1, 4'와 같은 양수뿐 아니라 '-1, 6'과 같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게 만든다. 


이처럼 열린 질문은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들의 가능성을 찾게 해준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열려 있고 폭이 넓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전세계 인구의 2%밖에 안되는 유대인들이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글로벌 비즈니스와 학문,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과 분열은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정치, 종교, 젠더, 세대 간의 갈등에서 우리는 자주 이러한 사고방식을 목격한다. 이분법적 사고는 쉽게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탈무드의 지혜는 문제 해결의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하며, 때로는 모두가 옳을 수도, 모두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무의식의 층위까지 뿌리 깊게 자리잡은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단시간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사유의 형태를 바꿔나가는 훈련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이 책이 제시하는 탈무드의 지혜와 생각훈련법은 우리에게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연한 사고 방식을 통해 분열된 우리 공동체를 아우르고 타인를 포용할 수 있는 혜안을 배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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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엄격함 -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그리고 실재의 궁극적 본질
윌리엄 에긴턴 지음, 김한영 옮김 / 까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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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그림을 보고 있다. 창문이 있는 벽면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창밖으로는 구름 낀 하늘과 풍경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창문 앞에 놓인 이젤 위의 그림이 창밖 풍경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마그리트는 왜 이 그림에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이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근본적인 한계와 조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과 같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하여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이젤 위의 그림과 창밖 풍경을 완벽히 일치시킴으로써, 우리가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감각과 해석을 통해 재구성된 이미지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칸트가 주장했듯이,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형식을 통해 구축된 세계일 뿐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젤 위의 그림이 실제 풍경의 일부를 가린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인식이 실재를 직접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가공하고 재구성할 수밖에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각을 거치지 않은 실재를 직접 바라볼 수 있을까


이 오랜 철학적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가 『천사들의 엄격함』에 담겨 있다. 윌리엄 에긴턴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던 세 명의 사상가칸트, 하이젠베르크, 보르헤스의 삶과 사유를 통해 이 문제를 탐구한다.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통해 존재의 유한성을 깨달은 칸트, 실연의 아픔 속에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펼친 보르헤스, 아인슈타인과 끊임없이 논쟁하며 양자역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하이젠베르크. 이들은 철학, 문학, 물리학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실재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자신의 사유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이젤의 역할은 칸트에게는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필수적인 틀(시간, 공간, 인과성)이었고, 하이젠베르크에게는 고전물리학이 전제한 결정론적 세계관의 한계였으며, 보르헤스에게는 경험을 선별하고 조합하여 의미를 창출하는 인간의 해석 작용이었다. 칸트는 우리가 인식 형식을 통해서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음을 밝혔고,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통해 결정론적 세계관이 붕괴됨을 보여주었으며, 보르헤스는 기억력의 천재 푸네스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단순한 감각의 축적이 아니라 그것을 의미 있게 연결하고 해석하는 과정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상학과 생 철학에 더 매력을 느끼는 나로써는 실재의 궁극적 본질을 탐구한다는 것이 나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나름의 사유를 정리해본다면 이는 단순한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근본적인 틀을 확장시켜 준다고 생각한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보듯 우리의 인식은 늘 불완전하고 주관적 해석에 머문다. 그러나 그림 속 그림의 바깥을 상상할 때 세계와 타인에 대해 좀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인식은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다양성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실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의 각도를 조금씩 넓혀가는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세계를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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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행복일지도
왕고래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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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는 '행복'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었다. 마치 물건을 소유하듯 행복도 손에 쥐어야 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과시해 이차적 만족을 얻어야만 진정한 행복인 것처럼 여겼다. 이러한 행복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이라 탓해 본다. SNS에 전시되는 행복한 순간들의 인증샷,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부추기는 미디어의 메시지들. 더 나은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자기계발서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하나의 성과이자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남들이 인증한 맛집을 찾아가고, 휴가철이면 마땅히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하고, 더 넓고 비싼 아파트로 옮겨가야 한다는 강박. 우리의 일상은 어느새 'must'로 가득 찬 체크리스트가 되어버렸다. 행복조차 소유와 전시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우리는 매 순간 행복해야만 하는 걸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진정한 행복이란 불필요한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스러운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데에서 온다고 했다.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갈망하고 과시하려는 욕망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500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이와 비슷한 통찰을 제시한다. 행복을 상수로, 불행을 변수로 지정해버리면 평범한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문제들로 인해 우리는 마치 패배자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행복과 '해피(Happy)'를 구분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어쩌면 서구의 'Happy'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것일 수 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처럼, 진정한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나 타인의 시선에 있지 않다. 행복이란 문화와 시대, 개인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 것임에도, 우리는 너무 획일화된 기준을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행복 기준이 유독 높은 것도, 압축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이상적 목표치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깊이 공감했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살아가는 것. 불행보다는 조금 멀고, 과도한 행복과도 거리를 두는 균형 잡힌 삶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단짠단짠의 맛처럼, 삶도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주관적 안녕감' '자아실현적 안녕감'의 조화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보통의 하루'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주어진 상황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 정신과 몸의 균형을 돌보는 것, 그리고 홀로 있을 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법까지. 이는 결국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저자의 따스한 언어와 시선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전 시골 집으로 이사한 후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울 근교의 마을이라 해도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 고독을 즐기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늘과 나무와 땅과 함께 하는 시간.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저자가 말한 '보통의 하루'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이 작고 아담한 책을 덮으며 저자의 마지막 말들을 되새긴다. 행복이란 영화속 스펙타클한 번쩍거리는 완벽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 수많은 오늘들의 합일지 모른다고. 그리고 무탈하고 안온했던 오늘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것. 행복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보이는 일상의 작은 기쁨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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