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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중심으로 사는 법 - 이론물리학자가 말하는 마음껏 실패할 자유
김현철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0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민지는 꿈이 의사 선생님이예요.”
올케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의사 놀이를 좋아했고, 아이가 원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아이가 진심으로 그 일을 소명처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올케가 말하지 않은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저 웃고 말았다.
의사라는 직업을 진심으로 소명으로서 선택한다면 그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SKY에 입학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노력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값진 성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득 의문이 든다. 왜 우리는 모두 의사가 되고 싶어하고, 대학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밖에 없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가?
이쯤에서 라캉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아이의 욕망의 시작은 대개 부모로부터 비롯된다. 아이는 세상을 처음 마주할 때 부모의 시선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춘다. 부모가 무엇을 부러워하고, 좋아하며, 무엇을 ‘좋은 삶’이라 말하는지 그 말투와 표정 하나하나가 아이의 욕망을 빚어낸다. 그래서 아이의 욕망은 순수하게 자신의 것이기 어렵다.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부모의 시선과 사회의 언어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길에서 벗어나 보고, 무언가에 미친 듯이 몰입해보아야만 비로소 ‘나’의 기쁨과 욕망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주의 중심으로 사는 법』의 저자 김현철은 그런 몰입의 경험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간 사람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시에 깊이 빠져 김수영의 시를 탐독했고, 로트레아몽에 매료되어 직접 시를 쓰며 시인을 꿈꾸었다. 그러나 고3이 되자 현실적인 고민이 찾아왔다. 몇 달 남지 않은 대학 입시가 그것이었다. 그나마 시와 가장 닮은 학문이 물리학이라고 느껴 인하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시에 이어 물리학에 매료된 그는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독일 유학길에 올라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이어가는 이론물리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그는 말한다.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각자가 만들어가는 고유한 삶의 궤적을 지켜본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았다. 학계를 떠나 유튜버가 된 학생, 물리학을 충분히 공부했다며 다른 길을 택한 학생,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 독일 유학 후 교수가 된 제자까지. 그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슷해 보이는 길 위에서도 삶의 방향은 무한히 다양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년이면 우리 아이도 고3 수험생이 된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아이에게 밥을 벌어 먹고 사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해왔다. 그 중에는 예술가도 있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노동, 이를테면 목수 같은 기술자의 길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내 마음은 늘 분열되어 있다. 기술자가 되어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SKY에 합격한다면 기쁨을 감추지 못할 것임을 안다.
“만약 서울대에 붙는다면 집 앞 벚나무에 현수막을 걸겠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러니 올케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체제 안에서 안착하고 싶은 본능에 기울어 있다.
책을 읽으며 아이에게 이 책을 꼭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으로 조언하는 나의 말보다, 아이가 스스로 세상과 부딪히고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가길 바란다.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만의 중심으로 서는 법을,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를.
“혼돈을 품은 자만이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혹여 아이가 혼돈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더라도 그 옆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지지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나 또한 더 배우고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