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무어의 『공허에 대하여』는 현대 사회가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과 소유에 몰두하는 현실 속에서, ‘비어 있음’이라는 낯선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깊은 사유의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두려움이나 결핍으로 여기는 ‘공허’를 오히려 영혼의 재탄생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채움이 아닌 ‘비움’을 통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말하며, 조용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독자의 내면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무어는 심리치료사이자 철학자, 그리고 영성 지도자로서 평생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왔다. 이전 저서인 『영혼의 돌봄』이 일상의 고통 속에서도 영혼을 돌보는 태도를 강조했다면, 이번 책은 그 돌봄의 본질이 ‘공허의 수용’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공허를 단순히 채워야 할 결핍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자신과 세상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의 틈으로 본다. 우리가 불안을 느낄 때조차 그것을 밀어내지 않고, 그 자리를 온전히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충만함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은 40여 편의 짧은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은 마치 동양의 선문답처럼 짧지만 깊은 사유를 품고 있다. ‘반지 없는 손가락’, ‘빈 접시’, ‘줄줄 새는 자루’, ‘텅 빈 건물’ 등 상징적 제목들은 우리 일상 속의 ‘비어 있음’을 은유한다. 도덕경의 ‘바퀴살’ 이야기를 예로 들며, 바퀴가 돌 수 있는 것은 중심이 비어 있기 때문이고, 그릇이 쓰임을 가지는 것은 속이 비어 있기 때문임을 상기시킨다. 무어는 이 단순한 진리를 통해 인간의 삶도 결국 ‘비어 있음’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공허는 단순한 고요나 무기력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삶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무어는 “공허는 우리가 삶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계획과 노력, 성공의 언어 속에서 자신을 소모할 때, 영혼은 점점 공허해진다. 그러나 그 공허를 피하지 않고 직면할 때, 오히려 그 안에서 자유가 피어난다. 그는 “침묵 속에서 비로소 가장 깊은 목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채움의 중독’에서 벗어나 ‘비움의 지혜’를 배울 것을 권한다.
책의 문체는 단정하고 명상적이다. 서두르지 않는 문장, 여백이 많은 문단은 그 자체로 ‘공허’를 체험하게 만든다. 무어는 종교적 교리를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 불교의 무(無), 도가의 무위(無爲), 기독교의 케노시스(비움) 같은 동서양의 영적 개념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며, 우리가 잊고 지낸 ‘텅 빈 공간의 가치’를 일깨운다. 그는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가르치는 바가 ‘내면의 고요로 귀환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이 책이 주는 울림은 ‘결핍의 수용’이라는 주제에 있다. 현대인은 늘 무언가를 더 얻고, 더 이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산다. 그러나 무어는 “채움은 끝이 없고, 비움만이 완결된다”고 말한다. 그는 독자에게 고요한 저항을 제안한다. 친구가 오지 않은 자리에서 혼자 앉아 있기,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기, 빈자리를 채우지 않고 그대로 두기. 이런 작고 사소한 ‘비움의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공허에 대하여』는 불안과 번잡함으로 가득한 시대에 던지는 조용한 선언문이다. 비어 있음은 실패가 아니라 회복의 징조이며, 멈춤은 뒤처짐이 아니라 깊어짐의 시작이라는 깨달음을 전한다. 이 책은 무엇을 더 할지 고민하는 사람보다, ‘무엇을 내려놓을지’ 묻는 사람에게 더 큰 위로를 준다.
삶의 무게가 버거운 이들에게 무어의 글은 마음을 가볍게 하는 바람처럼 다가온다. 그는 말없이 전한다. “당신이 비워낼수록, 세상은 더 넓어질 것이다.” 이 책은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 믿게 하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영혼의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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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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