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말을 걸 때 - 아트 스토리텔러와 함께하는 예술 인문학 산책
이수정 지음 / 리스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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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그림 한 점 앞에서 우리는 종종 멈춰 선다. 화려한 색채나 정교한 묘사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결국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그림 속에 흐르는 작가의 마음과 시대의 숨결이다. 이 책은 단순히 그림을 소개하거나 해설하지 않는다. 화가 한 사람, 작품 한 점에 담긴 고통과 외로움, 시대의 격랑을 조용히 따라가며, 결국 그림 앞에 선 우리의 마음까지 이끈다. 저자는 오랜 시간 기업과 대중 강연 현장에서 예술을 삶의 언어로 풀어온 이수정이다. 그는 작품이 가진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현실과 감정,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까지 비춘다. 때로는 고야가 남긴 두려움의 얼굴에서, 때로는 고흐의 외로운 붓놀림에서, 한없이 흔들리는 우리의 내면과 닮은 그림자를 발견하게 한다. 그렇게 한 점의 그림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닌, 우리 삶의 깊은 곳과 닿아 있는 하나의 언어가 된다.



책 속에 소개된 예술가들은 모두 각자의 고통과 불안, 시대의 비극 속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육체적 상처와 슬픔을, 수잔 발라동은 억압된 여성성에 대한 저항과 당당함을, 샤갈은 상처 난 심장 위에서도 여전히 춤추는 사랑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의 상처가 고스란히 예술로 옮겨진 순간, 인간의 삶이 얼마나 꺾이지 않는 것인지 깨닫는다. 저자는 그림 속 인물이나 장면을 설명하기보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건져 올린다. 르네상스의 빛나는 미술사 뒤편에서 인간의 고통과 신의 이름 아래 견디던 화가들, 권력과 종교의 그림자 속에서도 화폭 위에 저항과 기도를 남긴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미술사적 사실 너머, 지금 우리의 삶과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화가의 이름값이나 작품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그림을 ‘살아낸 사람들’의 기록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 오늘의 우리 삶을 다시 읽도록 초대한다.



책 속 한 페이지에서는 고흐의 절절한 외침이 담긴 편지처럼, 슬픔에 젖은 별빛 아래서도 ‘괜찮아’라고 속삭여 주는 위로가 전해진다. 또 어떤 페이지에서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화가들의 고독한 삶이, 마치 우리의 지난 상처들을 가만히 쓰다듬는 듯 다가온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미술 에세이가 아니라, 그림이라는 언어를 매개로 삶을 성찰하게 하는 인문학 산책이다. 예술이 결코 화려함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인간의 고통과 흔들림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임을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전하고 있다. 그림은 때로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단한 미술 지식이 아니라, 삶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용기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이 맴돈다. 그들의 고통과 고독,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은 삶의 흔적이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작은 불씨처럼 살아남는다. 그것은 곧 그림 앞에서 멈춰 서는 순간, 우리의 삶이 조금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렇게, 예술이 내 삶을 비추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조용히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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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이세훈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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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는 동안 누구나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때론 사람들 틈에서도, 혹은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외로움은 스며들어 온다. 어쩌면 이 감정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일종의 실존적 징후인지도 모른다. 『외로움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외로움을 무언가 잘못된 상태로 여기고 회피하려는 태도 대신, 철학이라는 오랜 사유의 렌즈를 통해 외로움을 직면하고 이해해 보자고 제안한다. 외로움을 단순히 결핍의 감정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더 나아가 초월적 차원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중요한 통로로 바라본다. 철학자들은 오랜 시간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파스칼의 ‘생각하는 갈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대표’,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키르케고르의 ‘단독자’까지, 철학사 속 주요 인물들이 외로움에 어떤 방식으로 응답했는지를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1장에서는 외로움과 나 자신을 연결하는 길이 열려 있다. 고요 속에서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는 단순한 감정의 흔들림이 아니라, 진짜 나를 향한 질문이다. 외로움을 억누르거나 밀어내려 할 때가 아니라, 그 순간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2장에서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얼마나 ‘연결된 단절’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3장에서는 물리적 환경이 주는 외로움과 자기 성찰의 기회를 탐구한다. 4장에서는 존재 자체의 무게를 견디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 5장에서는 외로움을 어떻게 삶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도서는 철학적 개념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상들을 일상과 연결해내고, 우리가 흔히 겪는 감정과 삶의 문제를 철학이라는 도구로 해석해 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한다. 특히 저자의 글쓰기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다. 시인이자 철학 모임을 오래 이끌어온 저자의 이력이 곳곳에 드러난다. 문장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따뜻하고, 철학적 문맥은 명료하면서도 충분히 사색의 여지를 남긴다.


『외로움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는 독자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고, 자기 삶의 깊은 지층으로 내려가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외로움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감정의 본질을 이해하고 삶의 일부로 수용하게 된다. 철학은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유의 길이다. 외로움이 깊어지는 이 시대에, 이 책은 조용한 동행자가 되어 줄 것이다. 내면의 고요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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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결정적 순간들 -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 중첩과 얽힘이 만든 신비로운 세계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4
박인규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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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북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양자역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마치 외계의 언어처럼 느껴지는 복잡하고 난해한 학문을 떠올린다.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에 존재한다거나,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는 그저 신기한 상상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박인규의 『양자역학의 결정적 순간들』은 이런 막연한 두려움과 오해를 걷어내고, 과학사의 흐름 속에서 양자역학이라는 이론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났는지를 알기 쉽게 들려준다.



드라마처럼 짜인 한 편의 지적인 모험기같은 이야기의 출발점은 플랑크가 제시한 새로운 에너지 단위 개념이다. 고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던 현상 앞에서 그는 ‘양자’라는 단서를 꺼내 들었고, 이 한걸음이 훗날 물리학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서막이 된다. 이어 등장하는 아인슈타인과 보어,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 같은 과학자들은 단지 식과 개념을 만든 학자가 아니라, 각자의 철학과 성격이 투영된 인간적 고민 속에서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밀고 당긴 주인공들로 그려진다.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첨예한 대립이다. 아인슈타인은 확률적 해석에 끝까지 의문을 제기했고, 보어는 자연의 본질은 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쟁은 단지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위한 논의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신념의 차이까지도 드러낸다. 이처럼 개념을 나열하는 대신, 그 개념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의식과 시대적 배경을 함께 설명하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이해의 맥락을 잡게 돕는다.

중반부터는 양자역학의 주요 개념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 슈뢰딩거 방정식, 중첩과 관측, 불확정성 원리, 스핀과 같은 핵심 이론들이 수식 중심이 아닌 비유와 예시를 통해 서술된다. ‘입자냐, 파동이냐’라는 질문이 왜 어리석은지, 그리고 인간의 사고 역시 얼마나 단순화된 이분법에 갇혀 있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내는 대목은 특히 인상 깊다. 과학을 통해 오히려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로 나아가는 저자의 시선이 돋보인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현대 양자과학이 어떻게 실험적으로 그 정당성을 입증했는지를 다룬다. 오랜 기간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얽힘 현상이 실험을 통해 확인되고, 마침내 202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통해 과거의 패러독스가 현실의 기술로 바뀌는 전환점이 펼쳐진다. 단지 이론적 승리가 아닌, 양자 컴퓨팅, 양자 암호와 같은 구체적인 응용 가능성이 언급되며, 독자를 다시 ‘현재’의 시간 위로 끌어올린다.



전체적으로 ‘양자 얽힘을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구성을 지니고 있다. 복잡한 수식을 요구하지 않지만, 개념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중고등학생부터 일반 성인 독자에 이르기까지, 양자역학의 흐름을 알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따라갈 수 있도록 쓰여 있다. 동시에, 양자 이론이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과 기술 발전의 윤리적 함의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물리학의 역사에서 양자역학이 차지하는 자리는 단지 하나의 이론 체계를 넘어서,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놓은 사건이다. 『양자역학의 결정적 순간들』은 이 거대한 변화를 단 한 권에서 흥미롭고도 명료하게 전달해낸다. 복잡한 개념에 좌절했던 독자도, 막연한 호기심을 품고 있던 독자도, 이 책을 통해 미시 세계의 경이로움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 100주년을 맞이한 오늘, 그 의미를 되새기는 데 가장 알맞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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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AI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요? - 딥페이크, 여론 조작, 가짜 뉴스, 댓글 부대… AI 시대, 우리가 알아야 할 신종 AI 범죄와 법
박찬선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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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북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이 질문은 단순히 미래 기술에 대한 기대를 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다. 박찬선의 『당신은 AI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요?』는 기술의 빛나는 외피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독자에게 냉정한 자문을 유도한다. 과연 우리는 이 기술을 얼마만큼 신뢰해도 될까? 도서는 AI 기술이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일례로, 생성형 AI가 누군가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학습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은 ‘표절’과 ‘창작’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 과거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기술적 결과물이, 이제는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다. AI 작곡가가 수익을 가져가는 시대, 우리는 ‘창작의 주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딥페이크 기술의 확산은 더욱 심각하다. 특정 인물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 제작이나, 유명인의 가짜 영상은 단순한 장난을 넘어 범죄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 책은 실제로 발생한 사건들을 통해, 그 기술이 피해자 개인에게 어떤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단지 기술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감정과 인격의 문제임을 일깨운다. 주목할 부분은 도서가 ‘경고’에 머물지 않고 ‘대응’의 방향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챗GPT와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이 가짜 뉴스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실험하고, 이러한 텍스트를 탐지하는 프로그램까지 소개함으로써, 독자가 실질적인 예방책을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교육자나 법조계, 행정 관계자에게는 정책과 교육을 설계하는 데 실질적인 참조가 될 수 있다.


후반부는 AI가 사이버 공간을 넘어 물리적 현실에서 어떻게 범죄화되는지를 다룬다. 드론이 약을 운반하는 도구에서 마약 수송 수단이 되고, 자율주행 기계가 교통수단에서 무기화될 수 있다는 점은, ‘기술 중립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기술은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선도, 악도 될 수 있다. 도서의 가장 큰 미덕은, 법적 공백의 영역까지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사회 전반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데 반해, 법과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는 2026년 시행될 ‘인공지능기본법’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기술 발전과 함께 반드시 준비해야 할 법적, 제도적 기반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법은 현실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처럼, 기술로 인해 달라지는 현실을 법과 윤리가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지 숙고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전문가 집단만을 대상으로 한 전문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간결한 문체, 실제 사례 중심의 구성, 각 장 말미에 실린 예방책과 프로그램 소개는 일반 독자도 충분히 AI 범죄의 양상과 그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동시에 현직 경찰, 변호사, 교수 등 실무자들의 추천이 더해져, 이 책이 단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가치를 지닌 도서임을 방증한다. 『당신은 AI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요?』는 인공지능의 전면적 확산을 앞둔 오늘날, 기술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기 위한 필수적인 안내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도구가 어느새 사람을 속이고 해를 가하는 수단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제 기술의 진보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그 통제의 방식 또한 고민해야 한다. 믿어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의 차이를 가르는 지혜를 얻고 싶은 이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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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샤론의 어반스케치 : 고급편 - 햇살 담은 수채화
드로잉샤론(김미경) 지음 / 도서출판 큰그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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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펜 드로잉에 이어 수채 채색까지, 도시 풍경을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인 도서는 전작에서 선을 다루는 기초적인 흐름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채색이라는 ‘마지막 숨결’을 더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색을 입힌다는 건 단순히 시각적 요소를 더하는 것을 넘어, 풍경 속 시간과 감정을 담아내는 일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과정에서 겪는 두려움과 어려움을 헤아리며,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채색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저자 김미경, 필명 ‘드로잉샤론’은 그림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책머리에서 “붓을 드는 것이 어렵다”는 독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한다. 채색에서 번짐과 실수에 대한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다. 도서는 그러한 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두려움 너머의 가능성을 부드럽게 보여준다. 수채화는 실수가 아닌 ‘의외의 발견’으로 완성된다는 믿음 아래, 겁내지 않고 붓을 들 수 있는 용기를 북돋운다.



세 가지 큰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는 도서는, 첫 번째 장에서는 스케치의 기본기를 다지고, 선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 집중한다. 해칭, 구도, 명암과 원근법 등의 설명은 드로잉에 익숙해진 이들이 다시 한번 감각을 정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두 번째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수채화 기법을 다룬다. 물의 농도, 색의 혼합, 번짐의 속도 등 수채화에서 핵심이 되는 요소들을 다루며, 실전 연습을 통해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마커펜을 활용한 채색 팁도 제공되어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세 번째 장, ‘햇살 담은 어반 스케치’이다. 이 장에서는 실제 도시와 마을 풍경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이 펼쳐진다. 창가의 화분, 유럽의 거리, 제주도의 유채꽃 마을, 뉴욕의 가을, 프라하의 다리… 각각의 장면은 저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일상의 찰나이며, 햇살과 감정을 머금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순한 풍경 그리기를 넘어, 그 장소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기류까지 색으로 풀어낸 시도가 돋보인다. 그림과 함께 덧붙인 설명은 독자가 채색에 감정을 담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한다. 또 다른 미덕은 ‘완벽한 그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얼룩과 번짐, 계획하지 않은 색의 혼합이야말로 그림을 더욱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임을 강조한다. 이는 초보자는 물론,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온 사람에게도 해방감을 안겨주는 메시지다. ‘잘 그리기’보다는 ‘느끼고 표현하기’를 지향하는 책의 철학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미술 수업이자 심리적 치유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부록에서는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스케치가 실려 있다. 수원 화성에서부터 프라하, 산토리니까지, 다양한 지역의 건축과 풍광이 수채화 특유의 투명한 색감으로 펼쳐진다. 그곳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장면 속 바람과 햇살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단순한 테크닉을 넘어, 그림이 전하는 정서적 교감을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림이란 기술이 아니라 감정과의 대화임을 일깨운다. 무채색의 선으로 시작해 채색을 거쳐 온기를 더하는 과정은, 결국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색은 무언가를 덧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에 있는 감정과 이야기를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사람, 수채화에 자신이 없는 사람, 일상의 장면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따뜻한 격려와 실용적인 안내서가 되어, 채색에 대한 두려움을 풀고, 자연스럽게 물감이 종이에 번지는 흐름을 즐기는 일, 그 여정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당신의 일상에도 햇살이 번지듯, 그림 속에 감정과 시간이 스며드는 순간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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