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사고를 위한 최소한의 철학 - 철학의 문을 여는 생각의 단어들
이충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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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철학이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기술’임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다가서는 이충녕의 『쓸모 있는 사고를 위한 최소한의 철학』은 많은 이들이 철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인 추상적 개념어들과 낯선 학술 용어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누구나 쉽게 철학적 사유에 입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철학의 지도’라는 은유는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도가 여행자의 길을 안내하듯, 이 책은 철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철학자 이충녕은 유튜브 채널 ‘충코의 철학’을 운영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꾸준히 이어온 인물이다. 그 경험은 이 책 전반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철학의 시작점이 되는 질문들을 끌어와, 그에 대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해석을 나란히 배치한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이론적인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도서는 단순한 철학 개론서라기보다, 질문을 통해 독자의 사유를 일깨우는 철학적 훈련서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도서의 각 장은 하나의 중심 질문을 둘러싼 여러 철학자의 개념과 사유를 엮는다. 첫 장은 고대 철학에서 출발해 플라톤의 이데아와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까지 살펴보며, ‘세상을 설명하려는 욕망’을 추적한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삶의 방향’, ‘자기 정체성’, ‘사회와 국가’, 그리고 ‘현대철학의 흐름’으로 나아가며 사유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단순히 개념을 나열하지 않고, 철학자들의 문제의식이 생겨난 배경과 그들이 던진 질문의 의미를 함께 살펴본다는 점에서, 독자 스스로 사고의 근육을 기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도서의 장점은 난해한 철학 개념들을 쉽게 풀어내면서도, 그 철학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칸트의 ‘정언명령’이나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철학사에서 너무나 유명한 개념이지만, 이를 단순히 암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먼저 묻는다. 독자들은 그렇게 사유의 흐름 속에서 개념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만의 생각을 구성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저자는 도서를 통해 철학 공부의 출발점은 ‘거대한 사유’가 아니라 ‘작은 질문’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성실히 안내한다. 우리는 철학을 배운다고 하면 ‘무언가 고상한 언어’를 익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철학을 ‘생활과 연결된 사고의 기술’로 다시 정의하며, 철학이 삶에 스며드는 방식을 보여준다. 도서 속에는 철학자들의 이름이나 개념보다,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를 통해 철학은 고루하고 먼 학문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필요한 사고의 도구로 변모한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자신도 모르게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를 묻게 된다. 바로 그 순간, 단순한 입문서를 넘어 진짜 철학서로 기능하게 된다. 또한 각 장의 전개 방식도 인상적이다. 철학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다,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함으로써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한다. 이 점은 특히 철학이 낯선 독자들에게 큰 강점이다. 질문은 늘 독자의 삶에 스며 있는 것이기에, 그 질문에 대한 고대와 현대의 다양한 사유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철학은 점차 친숙해진다.



물음표로 시작해 느낌표로 나아가는’ 사고의 여정을 담고 있는 도서는 해답을 주는 학문이 아닌, 오히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고,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을 모르는 사람뿐 아니라, 철학을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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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삶에 새기는 철학의 지혜 - 흔들리는 삶을 단단한 삶으로 바꿔주는 철학을 읽다 하루 한 장 삶에 새기는
최영원 지음 / 보아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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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삶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갈림길을 만난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길일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속 묻는 도서는 그러한 순간마다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는 철학자들의 사유를 하나씩 짚어간다. 하루에 한 꼭지씩 철학자의 생각을 만나고, 그 생각을 삶에 적용해보려는 이 도서는 그 자체로 고요한 사유의 공간이자 실천의 장으로 철학을 고리타분한 학문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해 철학자들의 관점을 빌려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의 사유는 구체적인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가령, 플라톤은 정의를 단순히 선악의 구분이 아닌, 조화와 질서의 상태로 보았다. 이는 개인의 윤리적 행동뿐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상태가 정의라면, 그것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존 듀이의 습관에 대한 통찰은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행동이 곧 우리 자신을 만든다는 점을 일깨운다. 무심코 반복하는 습관이 아닌, 의식적인 반복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이는 단지 개인적인 성장의 문제를 넘어서,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반복이 굳어짐이 아니라 성장이 되기 위해선 자각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무겁고도 실천적인 울림을 준다.


이 도서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철학자들의 사유가 현재의 사회 문제에까지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반 일리치는 현대의 제도와 기술이 오히려 인간성을 앗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일리치는 제도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의존적으로 만들며 자율성을 잃게 만든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느린 저항’은 오늘날 기술에 의해 통제되는 삶을 다시 인간적인 감각으로 회복하자는 제안처럼 다가온다. 이는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실천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픈 이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행위, 아이와 함께 걷는 시간,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본 그의 사유는 따뜻하고도 단단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인상적이다. 헤겔은 진정한 자유는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필연성 속에서 자유를 찾는 이 사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그저 선택할 수 있음이 자유가 아니라, 조건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방향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생긴다는 통찰이다. 또 루소와 롤스를 통해 불평등과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루소는 불평등을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로 바라보며, 정의는 모든 사람의 기회를 보장하는 공정함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반면 롤스는 누구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은 ‘무지의 상태’에서 사회의 원칙을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두 철학자의 시선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불공정한 구조를 성찰하게 하며, 어떻게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도서는 단순히 철학자의 명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오늘의 삶에 연결시키는 방식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말은 고전 속 문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 된다. 기억이 자아를 구성하고, 신념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리쾨르와 키케로의 통찰도 결국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말미의 필사 코너는 철학자의 말을 단순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써보며 자기 삶에 새겨보도록 유도한다. 손으로 따라 쓰는 행위는 곧 마음을 따라가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철학자의 문장을 넘어, 그 말의 의미를 삶 속에 녹여내게 된다.


철학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도서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사유의 힘으로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을 보여준다. 매일 한 꼭지씩, 철학자 한 사람씩을 만나는 일은 바쁜 삶 속에서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도서는 우리 모두가 던지는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겸손하고 진지한 답변을 모은 한 권의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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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논어 - 굽이치는 인생을 다잡아 주는 공자의 말, 개정증보판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최종엽 지음 / 유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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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북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나면,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해진다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는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마치 계절로 치면 늦가을쯤일까. 이미 거두고 정리할 것이 많지만, 동시에 아직 남은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앞으로의 삶을 좌우한다. 『오십에 읽는 논어』는 바로 이 시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도서는 동양 고전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고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논어』를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고전의 문장을 나열하거나 주석처럼 풀어놓는 방식이 아니다. 오랫동안 인문학 강연을 해 온 저자는 공자의 말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짚어내며, 오십이 처한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연결 짓는다. 읽다 보면 마치 인생 상담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겉돌던 고전의 문장들이 오늘 나의 문제로 깊숙이 들어와 닿는 것이다.


도서의 구성은 총 60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고, 각 꼭지는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되어 있어 하루에 하나씩 읽으며 스스로 돌아보기에 알맞다.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다. 퇴직 이후의 삶, 건강,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마음을 다잡는 법, 나의 소명, 배움의 자세, 책임감 등 오십이라는 시기가 마주하는 실존적인 문제들을 포괄한다. 이 모든 이야기 위에 공자의 말 한 줄이 등불처럼 놓인다. ‘한 줄’의 문장이, 때론 인생의 방향 전체를 바꾸는 자극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도서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공자의 가르침을 단지 인용하거나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운 근심이 있다’는 말을 통해 단순히 걱정을 경계하라는 도덕적 교훈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멈춰서 미래를 생각해보아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지나간 날을 자책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바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변화의 지점을 찾도록 독려한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핑계’와 ‘책임’에 관한 이야기다. 중년 이후의 삶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명함 하나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핑계를 찾거나, 타인을 탓하며 멈춰버리기 쉽다. 저자는 그런 심리를 지적하며 “지금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한다. 듣기에 따갑지만, 이 말을 곱씹고 나면 몸과 마음이 조금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도서의 제목이 ‘오십에 읽는 논어’이긴 하지만, 그 실천적 메시지는 오십을 넘은 이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앞선 세대에는 미처 배우지 못했던 삶의 중심을 찾는 법, 관계를 다시 세우는 지혜, 흔들리지 않기 위한 기준이 녹아 있다. 그렇기에 마흔의 사람에게는 준비로, 예순의 사람에게는 점검으로 다가갈 수 있다.



단순한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가만히 곁에서 붙잡아 주는 인생의 조언자 같은 도서는 책장을 덮고 나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삶의 방식’과 ‘나의 중심’에 대해 다시 묻게 된다. 나아가, 문장 하나하나가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되찾는 나침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긴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오십에 읽는 논어』는 흔들리는 인생의 허리를 곧게 펴고 다시 걸음을 내딛게 해주는 ‘지혜의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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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 오심과 권력, 그리고 인간을 심판한 법의 역사
김웅 지음 / 지베르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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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과거의 재판을 통해 현재를 비추고, 과거의 비극을 통해 미래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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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 오심과 권력, 그리고 인간을 심판한 법의 역사
김웅 지음 / 지베르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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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는 법에 대한 도서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도서이다. 단순히 형사사법제도의 역사나 법조문 해석을 다루기보다, 정의와 권력, 그리고 공동체의 심리를 해부하며 우리가 법이라는 제도에 왜 그렇게 많은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품는지를 묻고 있다. 저자는 약 4000년에 걸친 재판과 사법제도의 흐름을 따라가며, '무엇이 옳은가'보다 앞서 '우리는 왜 그것을 옳다고 믿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그 대답은 늘 간단하지 않다.



도서는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열린 한 재판으로 독자를 이끈다. 소크라테스가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재판을 단지 철학자 한 사람의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적 불안, 전쟁의 패배, 정치적 격변, 대중의 분노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모여 터져 나온 결과물이었다. 철학자는 당시 공동체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존재였고, 사람들은 그 균열이 더 이상 커지기 전에 누군가를 처벌함으로써 안정을 되찾고자 했다. 그렇게 법은 공포에 대한 해답이자, 심리적 안정을 위한 도구가 된다. 도서의 초반은 고대 법전의 탄생 과정을 다룬다. 우르남무와 함무라비의 법전, 로마 12표법 등은 흔히 신의 명령처럼 여겨졌지만, 사실은 사회를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통치자의 전략이었다. 법이 신의 이름을 빌렸던 이유는 그것이 반박 불가능한 권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적 장치는 결과적으로 약자를 보호하고자 했다기보다, 통치 권력을 정당화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즉, 법은 정의의 이름을 빌렸지만 본질은 정치적 타협과 권력의 표현이었다.



중세의 마녀재판은 이러한 구조의 전형적인 연장이었다. 감정에 휩쓸린 재판은 증거보다는 의심, 사실보다는 두려움에 의존했다. 사람들은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법이 본래 지향해야 할 이성과 절차, 그리고 객관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도서의 백미는 사법제도의 구조적 차이에 대한 설명이다. 유럽 대륙의 직권주의와 영미권의 당사자주의가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과 철학 위에서 탄생했음을 분석하며, 이 두 체계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지 짚어낸다. 직권주의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진실을 구성하려는 반면, 당사자주의는 검찰과 변호인의 대결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 두 시스템은 단지 절차의 차이를 넘어, 개인과 국가, 자유와 통제 사이의 균형을 다루는 철학적 선택임을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현대 형사사법제도의 비효율성에 주목한다. 많은 사람들이 형사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이 비효율성이야말로 억울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문명화된 장치’임을 강조한다. 절차가 까다로운 이유는 바로 감정과 권력, 그리고 대중의 심리로부터 피고인을 지키기 위해서다. 오히려 너무 효율적인 재판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런 재판은 마녀재판이나 소크라테스의 경우처럼 감정이 판단을 대신하는 상황으로 쉽게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는 결코 법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은 인간 본성과 끊임없이 충돌해온 제도이며, 그 충돌 속에서 조금씩 진화해왔음을 이야기한다. 법이 완벽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수하고, 오해하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그 감정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원칙과 절차를 고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억울한 희생을 막고, 정의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끊임없이 틀리면서도 법을 만들고 고치고 지키려 하는지, 그 오래된 이유를 되묻는 성찰로, 법을 공부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공정함’과 ‘정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질문이 담겨 있다. 저자는 과거의 재판을 통해 현재를 비추고, 과거의 비극을 통해 미래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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